단편소설 ‘외출’ 창작배경, (부제) 그 날, 못 견디게 찬란하던 햇빛들
'햇빛'은 셀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따라서‘햇빛들’이란 표현은 옳지 못하다. 그래도 무심은 작품 '외출'에 관한 한‘햇빛들’이란 표현을 고집하고 싶다.
명퇴하자 맞닥뜨린 것은 엄청난 햇빛들이다. 직장(학교)에 있었을 때에는 무심히 보던 햇빛이 명퇴하여 집에 있자 바깥에서 떼로 극성을 부렸다. 하필 명퇴하던 해 봄은 화창한 날이 많았다.
‘명퇴만 하면 집안에 틀어박혀 글을 여한 없이 쓰자!’고 별렀던 재직 때의 결심은 쉬 실행되지 못했다. 컴퓨터를 켜 놓고 하루 종일 앉았으나 글은 서너 줄밖에 나가지 못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럴 만했다. 30년을 시계바늘처럼 직장생활 하다가 느닷없이 글을 쓰겠다니, 무심 자신의 생체리듬부터 거부했던 거다. 그 증거로, 퇴직했는데도 새벽 6시 반이면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나던 일이다. 그 시간은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로서 새벽같이 출근해야 했던 오랜 세월 습관이었다.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었다. 밤 시간은 밤 시간대로 하는 일 없이, 자정 가까이 돼야 잠들 수 있었다. 오랜 세월 학교에서‘야간자율학습 감독’한 뒤 귀가해 잠자리에 들던 습관까지 생체리듬이 돼 있었다. 명퇴 처음부터‘시간에 구애받음이 없이 글을 쓰겠다’는 무심의 재직 때 결심은 비현실적이었음이 드러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을 환기하려고 혼자 외출해 보았다. 젠장, 환한 낮 시간의 외출이란 생경하기 짝이 없는 거리 풍경과의 맞닥뜨림이었다. 의외로 인적 뜸한 거리에 햇살들만 가득했다. 불경기라 그랬을까, 상점들도 문은 열었으나 약속이나 한 듯 개점휴업처럼 적막 속에 잠겨있었다. 차량들마저 도로를 오가지 않았더라면 너무나 쓸쓸한 거리 풍경.
사실, 그런 풍경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다. 명퇴 전 직장생활을 할 때도 휴일이라든가 방학 기간 중에 목격했을 흔한 거리 풍경이었다. 하지만, 바쁜 직장생활 중에 잠깐 보던 것과 명퇴 후 널널한 시간 속에서 유심히 보던 것과는 차이가 컸다. 더구나, 앞으로는 항상 이런 거리 풍경을 보며 살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 때는 절망할 것 같았다.
30분도 못 돼 귀가했다. 다시 혼자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앉아 있게 되었다. 글은 물론 서너 줄밖에 나가지 못했다. 며칠을 그러고 있을 때 어느 날 오전 10시 경 누군가 밖에서 비디오폰의 초인종을 눌렀다. 비디오폰의 화면을 켜자 아무도 없었다. 아니다. 화창한 햇살들만 있었다. 무심 혼자 앉아 있는 단독주택 밖으로 온통 햇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혼자 앉아 있는 집은 성난 햇살들의 바다 한가운데 난파선 같았다.
한 달 후, 아내가 백여 리 떨어진 곳에 출장가게 되면서 무심한테 차 운전을 부탁했다. 아내가 그런 것은 자신이 길치인 까닭도 있겠지만 혼자 집안에 유폐된 듯 보이는 남편을 배려한 마음이 컸던 건 아니었을까?
여하튼 그 날 무심은 목적지에 아내를 데려다준 뒤‘오후 5시경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 시간부터 무심 혼자 낯선 시골지방을 차 몰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맙소사, 티 하나 없는 시골 햇빛은 그토록 맑고…… 무거울 수가 없었다.
엄청난 분량으로 청량하게 떨어지는 햇빛들이라니. 그 날의 일을 몇 년 뒤, 작품‘외출’로 완성한 거다. ‘외출’이 완성될 즈음에는 더 이상 햇빛들이 무겁지 않았다. 무게 하나 없이 그저 밝은 햇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