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박효규 또한 이정규처럼 나와 같은 초중고를 다녔다. 그에 관한 기억은 초등학교(교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때 어느 날이 첫 번째다. 햇빛 화창한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귀갓길에 그의 집에 들르게 됐는데 놀랍게도 작은 아코디언을 꺼내 내 앞에서 연주해 보이는 게 아닌가!

1960년이던 그 시절 음악교과서의 사진으로나 보던 귀한 악기 아코디언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주까지 하다니,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어릴 적 친구 얘기를 쓸 때마다 놀랐다!’는 표현을 나도 모르게 한다. 하긴 어릴 적 눈앞의 사물이나 사건은 경이로울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일이 있더니 세월이 흘러 친구는 음악선생으로, 나는 국어 선생으로 한 학교에서 만났다. 모 고등학교에서, 1994년이다. 우리는 어언 마흔 살 넘은 중견교사였다. 특유의 우렁찬 음성으로 재미난 얘기하기를 즐기는 친구, 50명 넘는 교직원들의 차 중 친구의 차가 가장 낡은 차였다.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새 차로 바꿀 만한데 오히려 그 고물차를 자랑스레 끌고 다녔다. 그뿐 아니다. 어느 날은 뒤 범퍼를 새로 간 모습으로 나타나 동료교사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면서 하는 친구의 말이 너무 재미가 있어 오랜 세월이 지난 이제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저께 어디 다녀오다가, 뒤로 오던 어떤 사람의 차가 내 차 뒤를 받았지 뭐야. 그래서 내 차 뒤를 자기 돈 들여 새로 갈아주었다니까? 이제 내 차는 앞부분만 누가 받아주면 돼. 그러면 내 고물차가 돈 한 푼 안 들이고 새 차로 탄생하는 게 아니겠어? 하하하.”

그러더니 이듬해 여름방학 때 미국으로 이민 가 버렸다.

 

그 박효규 친구 역시 미국에서 내가 올리는 페북의 글을 재미나게 보고 있다는 얘기를, 어제 모 행사장에서 만난 후배한테 전해 들었다. 정말 놀라운 세상이다.

박효규. 자네, 미국에서는 어떤 차를 몰고 다니나? 괜히 궁금해지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