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만나게 된 걸 ‘인생 상담’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맥주 집 마담이 ‘좋은 말씀으로 제 친구 좀 진정시켜주세요.’하며 그녀를 의뢰하면서 만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녀의 이름, 가족사항 등을 전혀 모르는 것으로 설정했다. 마담한테 얘기 들어서 심적 방황의 개요까지 다 알고 있지만 그렇게 설정되어야만 ‘상담’ 이 이뤄질 것 같았다.
사실, 그녀를 처음 보는 건 아니고 정식으로 인사소개를 나누지 못했을 뿐이다. 그녀가 마담이 잡아끄는 대로 수줍게 맞은편 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나는 예를 갖추었다.
“허허허……반갑습니다. 저는 이 집의 단골이구요, 뭐 제가 생맥주를 한 잔 사 드려도 실례는 아니겠지요?”
그녀는 말없이 웃으면서 고개를 한 번 숙이는 것으로 답례했다. 마담과 고등학교 동기라고 했으니 50세? 그렇다면 나보다 여덟 살 아래 나이다. 마담한테 메뉴판을 갖고 오라 해서 그녀한테 펼쳐 보이며 ‘생맥주 500cc는 기본이고요…… 좋아하는 안주가 있으시면 주문하세요.’라고 권했다. 그녀는 안주주문에 별 생각이 없다는 표정이다가, 마담이 어깨를 툭 치며 채근하자 피식 웃으면서 ‘노가리 구이’ 항목을 가리켰다.
불경기는 술값 싼 생맥주집에도 영향을 주는지, 근래 들어 손님이 많이 줄어 든 느낌이다. 작년에만 해도 열 개의 테이블 중 예닐곱 개에 손님이 차는 것 같더니, 오늘은 이 테이블까지 세 개밖에 차지 않았다. 마담이 생맥주 갖다 주기를 기다리며 말없이 앉아 있는 첫 대면시간이란 얼마나 겸연쩍은지, 그나마 흐린 조명불빛 아래라서 다행이었다. 그녀 역시 같은 생각인지 고개 숙여 시선 교환을 피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평범하게 생긴 여자가 심적 방황이 심하다니, 참 모를 일이다. 마담이 거품 오른 맥주잔들을 갖다 놓고 돌아갔다. 그녀와 함께 잔을 들어 가볍게 맞부딪친 뒤 한 모금 마셨다.
“제가 젊었을 때 재건학교 선생을 몇 년 했습니다. 봉사활동 차원으로 수업한 거지요. 그 때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상담을 많이 해줬습니다. 학업 문제, 취업 문제, 빚 문제, 심지어는 결혼 문제까지 말입니다. 허허허허. 여기 마담이 그런 나를 믿고 ‘친한 친구가 마음고생이 심하니까 선생님이 좋은 말씀 좀 들려주세요.’라고 부탁했는데…… 댁의 말씀부터 우선 듣고 싶네요. 상담의 시작입니다. 물론 상담 내용은 비밀로 지켜집니다."
그녀가 맥주잔을 삼분지 일쯤 비우더니 낮은 목소리로 자신이 처한 심적 방황의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얼마 전까지는, 마음고생 한 번 하는 일 없이 잘 살아왔어요. 남편은 시청 공무원인데 워낙 샌님같이 얌전한 사람이라, 속 한 번 썩이는 일 없이 저를 잘 대해 주었거든요. 지금도 잘 대해 주고 있어요. 바람 피우는 일도 없고 술 담배도 안 하는, 아주 착실한 가장이지요. 그러니까 제가 남편한테 불만을 가질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여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저는 속상하기 짝이 없다니까요. 남편이 무슨 흠을 보여야 그걸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겠는데 그러지를 못하니까 말이에요.”
상담원칙에 ‘우선 피상담자의 말에 경청하라’는 항목이 있다. 조리정연하게 말을 잘하는 여자다. 결코 일시적인 감정에 흔들릴 성격은 아닌 듯싶은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그녀가 본격적으로 사연을 털어놓으려는데 마담이 구운 노가리들을 접시에 담아 갖다 놓았다. 그녀의 작은 어깨를 툭 치며 ‘잘 말씀드리고 있니?’ 하는 눈짓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돌아도 안 보며 자기가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남편은 요즘도 ‘내가 뭘 잘못했니? 잘못을 지적해주면 시정하겠다’ 면서 이혼만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지요. 그러나 남편은 제게 잘못한 게 없어요. 잘못이라면 제가 하는 셈인데…… 저는 결혼한 뒤 처음으로 남편한테 제 소원을 말한 것이거든요. 그냥 이혼해 달라고 말입니다. 정말 처음이에요. 그런데도 제 소원을 받아주지 않으니 어찌해야 할지…….”
이 얼마나 기막힌 아이러니인가. 결혼해서 잘 살다가 첫 소원이 ‘이혼’이라니……. 나는 노가리 하나를 집어서 한 입 뜯어 먹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댁의 말씀이 영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렇게 착한 부군과 왜 갈라서려 합니까?”
“어떤 남자를 만나면서부터였어요. 이상한 남자가 아니에요. 어릴 때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남자입니다. 걔를 몇 십 년 만에 만난 순간 온몸이 감전된 듯이 떨리는 거 있지요? 쉰 살 된 나이인데도 청바지에 장발인 걔를 본 순간 내가 왜 반했는지, 저는 정말 제 자신을 알 수 없어요. 그 날 맥주가 몇 잔 오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술 취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걔는 아파트 인테리어 일로 먹고 산다는데 일이 없을 때에는 노가다도 뛰며 산다더라고요. 솔직히 직업도 별로이고 그런 애인데…… 너무나 사정이 딱한 거에요. 십 년 전에 아내와 사별하고 홀아비로 산다잖아요? 자식은 둘이 있는데 결혼도 늦어서 큰애는 고등학교, 작은애는 중학교롤 다닌다더라고요.”
그녀는 속이 다 타는지 잔에 남은 맥주를 비웠다. 나도 따라서 잔을 비운 뒤 마담 있는 주방 쪽을 보며 ‘두 잔 추가!’를 입모양으로 알렸다. 무슨 안주를 다듬던 마담이 즉각 두 잔 주문을 포착하고는 흰 거품이 넘치려는 두 잔을 만들어 갖고 왔다. 마담의 그런 능력에 나는 매번 감탄한다. 거품이 넘칠락 말락 하게 생맥주를 담아오는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면서도 다른 기척을 즉시 포착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손님의 말동무가 돼 대화하면서도 다른 테이블의 손님에게서 무슨 기척이 나면 즉각 포착하는 그 뛰어난 순발력. 그런 능력이 있기에 장기불황을 이겨나가는 게 아닐까.
그녀와 나는 자기 앞의 맥주잔들을 잡아 한 번 가볍게 부딪치고 마셨다. 퐁퐁 자국처럼 맥주거품이 입술 가에 남겨지자 그녀는 보지도 않고 손등으로 정확히 그 부분을 훔쳐낸다. 참, 여자들은 남자가 흉내도 못 낼 능력들이 있다. 내가 취했나? 별 것도 아닌데 감탄하다니.
“댁의 그런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그걸 모성애라고 하지요. 여자 분들한테만 있는 본능이지요.”
“물론 모성애도 작용했겠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거든요. 걔의 처지가 딱해 보이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걔가 너무 좋아서 같이 살고 싶은 거여요. 여생을 그런 애와 함께 살아보고 싶다는 내 마음을, 내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데 어떻게 선생님이 이해하시겠어요? 물론 제가 미친년이지요. 착한 남편과 안정된 집을 두고서 그런 허허벌판에 선 사람한테 달려가려하다니 말입니다.”
‘허허벌판에 선 사람’이라니, ‘낡은 청바지 차림으로 바람에 장발을 날리며 쓸쓸하게 서 있는, 노후의 한 남자’ 모습이 떠오른다. 쓸쓸하게, 멋있는 사내일 듯싶다. 그녀가 주방에 있는 마담 쪽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쟤는 펄쩍 뛰면서 저를 말리지요. ‘네가 젊은 나이에 이혼하려 한다면 그건 이해할 수 있다. 다시 새 출발할 여지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이기에 이해해 줄 수가 없구나. 더구나 생활도 안정돼 보이지 않는, 어린 자식도 둘이나 딸린 남자의 노후를 뒤치다꺼리하면서 살겠다니 그건 정신 나간 년의 짓이다. 만일 네 생각대로 이혼해서 그 남자랑 산다면…… 너는 네 아들한테도 버림받는 어미가 되는 거다. 늙어서 그런 불행이 어디 있느냐!’ 하는 거지요. 그런데 제 아들은요, 아직 장가가지 않은 외아들인데 저한테 이런 말을 한다니까요. ‘나는 엄마의 선택을 존중해. 혹, 엄마가 이혼한다 해도 나는 엄마를 탓하지 않을 거야’ 라고 말입니다.”
뜻밖이다. 대개 이런 경우에는 아들이 아버지 편을 들어 ‘모자란 엄마!’라고 비난하지 않을까? 글쎄, 이제는 세상이 변해서…… 그러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녀의 남편이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소홀한 부분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이빨 새에 노가리 잔가시 하나가 낀 탓에 다소 신경질적이 됐다.
“남편 분이 아들한테 못해준 게 있습니까?”
“아니에요, 아들애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는 아빠에요. 아들애도 제 아빠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단지, 아들애 입장으로는 숨 막힐 것 같은 집안 분위기를 어서 빨리 정리하고 싶은가 봐요.”
“그러니까 댁이 남편 분과 수시로 다투면서 지내는가 보지요?”
“아니에요, 각방을 쓰니까 다툴 일도 없지요. 제가 일단 이혼해 달라는 말을 꺼낸 뒤로는 한 이불에서 잠자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 날부터 각방을 쓰지요. 남편은 착한 사람이라 그 날부터 알아서 자기 식사도 챙기면서 시청을 다닌답니다. 그러니까 언뜻 봐서는 별 일 없이 조용한 집안인데 아들애는 그게 숨 막힐 것 같으니까 어서 죽이 되나 밥이 되나 정리하고 살자는 생각인가 봐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입안의 혀로써 간신히 이빨 틈새 잔가시를 빼고는 이번에는 다소 수준 낮은 질문을 했다.
“남편 분은 댁이 같이 살고자 하는 그 남자를 알고 있나요?”
그녀는 내가 노가리 잔가시를 힘들게 빼내 테이블 밑으로 버리는 것을 본 것 같다. 대답 대신 작고 뽀얀 손가락들로 노가리 하나를 잡아 자잘한 가시들을 발라낸 뒤 살점만 남은 것을 접시 위에 놓았다.
“남편한테 그 남자 얘기는 안 했지요. 그러면 복잡해지거든요. 그럴 필요가 어디 있어요? 나는 단지 ‘당신과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라고만 말했지요. 정말 저는 남편과 같이 사는 것이 지겨워졌어요. 밥 먹고 빨래하고 TV 드라마 보다가 잠자고…… 이런 생활이 지겨워졌어요. 전에는 안 그랬는데 그 남자를 알게 되면서…… 고생 좀 하더라도 그 남자 뒷바라지하면서 ‘한 번 사는 것처럼’ 살고 싶은 거여요. 이해하시겠어요, 선생님?”
젠장, 이상하게 내 마음까지 흔들렸다. 사실, 안정된 생활이란 따분한 생활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잔잔한 바다 위 돛단배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달리 보면 따분한 풍경일 수 있다. 그러므로 돛단배는 항상 거센 파도와 비바람을 찾아서 항행해야 한다? 아니다, 이건 아니다. 나는 흔들린 내 마음부터 급히 다잡았다.
“제가 솔직한 말씀을 드릴까요? 그건 속된 말로 ‘배가 불러서’ 그러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안정된 생활을 부러워하며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가 아닙니까? 댁은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이 없어서 팔자가 늘어지니까 엉뚱한 짓이나 하려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선생님도 여기 친구와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뭐라 말씀하셔도 좋아요, 저는 그 사람과 살고 싶을 뿐이에요. 그러려면 현재의 남편과 갈라서야 하잖아요? ……저는 남편한테 이런 말도 했어요. ‘당신과 이혼하게 되면 나는 아무 것도 갖지 않고 빈손으로 나가겠다’고.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제가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까지 보태어 장만한 거거든요. 2억 이상은 쳐줄 거에요. 저는 그런 재산이고 뭐고 다 포기할 테니 이혼합의서에 도장만 찍어달라는 거지요. 남편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며 응하지 않으니, 어쩌면 좋아요. 저는 그저 그 사람과 하루 빨리 같이 살고 싶을 뿐인데…….”
그녀는 목이 또 타는지 맥주를 들이켰다. 나의 어설픈 인생 상담은 성공하지 못한 듯싶다. 괜히 그 남자가 원망스러워졌다.
“그 남자는 뭐라 합니까? 이혼하겠다는 것에 대해서.”
“자기는 상관하지 않겠답니다. 이혼하고 와도 좋고 안 와도 좋다는 식이지요. 그 남자와 저는 가끔씩 만나거든요. 만나서 차도 마시고 술도 조금 마시고 그러다가 헤어지지요.”
‘그 남자와 잠도 잤어요?’라고 묻고 싶은 것을 나는 간신히 참았다. 참으로 딱한 건 그녀의 남편이다. 아내가 느닷없이 이혼해 달라고 했을 때에는 우선 그 원인부터 제대로 캐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못하고 각방을 쓰는 것으로 대처해 나가는 아둔함이라니…….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니, 직장에 매여서 사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정신적 여유는 없을 듯도 싶다. 직장생활이란 게 언뜻 보면 허술해 보이지만 직장 바깥의 일은 눈여겨볼 겨를조차 없이 만드는, 던져주는 모이에만 길들여져 살도록 만드는 새장 안 생활이니 말이다. 나는 그 새장을 나온 지 4년이 돼간다.
대화가 잠시 소강상태를 맞았다. 그녀는 다시 두 번째, 세 번째 노가리의 잔가시들을 발라내며 침묵했다. 나 역시 달리 떠오르는 말도 없어서 반 넘게 남은 맥주를 다 마셔버리고 갑자기 싱거운 사람이 된 꼴로 앉아 있는데 마담이 어묵 한 그릇을 끓여갖고 왔다.
“친한 친구한테 좋은 말씀 해주시는데 제가 그냥 있을 수 있나요?”
나는 파가 송송 떠 있는 어묵국물을 세 숟가락이나 연거푸 떠 마셨다. 그녀 옆 자리에 앉으니 마치 언니처럼 키 커 보이는 마담이, 그녀한테 물었다.
“어때, 우리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그녀는 말없이 노가리들을 다듬는다. 마담은 눈치 빠르게 내게 말문을 돌렸다.
“선생님, 맥주 한 잔 더 갖다 드릴까요?”
“마담도 한 잔 하슈.”
그녀의 잔이 다 비워지지 않은 걸 보고 마담이 두 잔을 만들어 갖고 와 내 앞과 자기 앞에 놓았다. 그녀가 부스스 일어나면서 말했다.
“말씀 고마웠어요. 제가 바쁜 일이 있어서…….”
“아니, 더 들고 가시지?”
그녀가 소리 없이 웃으면서 일어나니 마담도 따라 일어나 문 앞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다. ‘제 친구, 고집이 대단하지요?’하면서 마담이 자기 술잔을 들었다. 나도 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치고는 단숨에 반 넘게 들이켰다.
“선생님이 꽤 속 타셨나 보네. 미안해요.”
“미안하긴…….”
잔을 내려놓으며 테이블 위를 봤다. 맥주잔들, 어묵그릇, 숟가락 젓가락들, 노가리 남은 접시, 발라낸 가시들, 고추장 담긴 작은 종지 등으로 어지럽다. 정작 상담의 결과는 아무 것도 없는데…….
“친구 분이 학창시절에는 어땠어요?”
“쟤나 나나 평범했어요. 공부도 보통이고 말썽도 피운 적이 없이 그냥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다니까요. 그래서 나는 쟤가 저러는 걸 보고 정말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을 실감해요. 쟤가 저럴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쟤와 내가 공통점이 있다면 연애 한 번 못 해 보고 결혼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쟤가 이번의 남자가 자기 첫사랑이라는 거지요. 나 참, 이해할 수 없어요. 부부로서 오래 살비비고 살았으면 그게 사랑 아닌가요? ……나는 쟤한테 ‘네가 팔자가 늘어져서 그러는 거’라고 욕을 많이 해주었지요. 남편이 꼬박꼬박 봉급 타다 주겠다, 넓고 좋은 아파트에서 살겠다, 무슨 걱정이어요? 나처럼 남편이 산재병원에 누워 있는 바람에 셋방 살면서 벌이에 나선 년도 있는데 말이에요.”
마담은 울화가 치미는지 단숨에 맥주잔을 다 비워 버렸다. ‘남편이 중도 퇴직하며 받았던 퇴직금 모두를 주식으로 날린 사연( 내가 벌써 여러 번 들은 사연이다.)’까지 꺼내려다가 후딱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네에.’ 대답함과 동시에 건너편 테이블 손님 쪽으로 간다.
마담은 그 테이블의 손님한테서 추가로 안주 주문을 받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이라고 해야, 취사용 가스기기와 냉장고가 놓여 있는 간단한 공간이다. 그 공간과 홀은 나지막한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다.
찌개를 끓이는지 가스 불 위의 냄비에 몰두하는 마담. 물방울무늬 원피스에 빨간 앞치마를 걸친 모습이, 특히 조리에 몰두하는 옆모습이 예쁘다. 손님들 쪽에서 나는 기척을 즉각 포착하는 능력도 그렇지만 저 예쁜 옆모습이 더 좋은 자산이 아닐는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칸막이대로 다가갔다. 내가 말을 건네기도 전에 마담은 돌아서서 두 손의 물기를 앞치마에 문질러 닦더니 말했다.
“선생님. 오늘 계산은 이만이천 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