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선배님을 처음 만나기는 1970년 늦봄 어느 날, 춘천교대 풀밭에서였다.

당시 교대 학보사 편집장인 친구가 내게 최 선배님을 소개해 준 것이다.

이번에 월간문학 시 부분 신인상을 탄 선배님이셔. 인사 드려.”

재학 중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사실에 나는 경의의 마음으로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최 선배님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풀밭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뭘 찾으세요?”

네 잎 클로버지. 행운의.”

하면서 미소 지었다.

 

요 몇 년 간, 나는 아내와 농사 일이 끝나면 저녁 식사를 하러 샘밭의 어느 식당에 들르곤 했다. 매운순두부를 맛있게 끓여내는 식당이었다. 너른 식당 곳곳에 최 선배님의 시와 얼굴을 그린 그림이 게시돼 있어 식당 분위기가 남다르게 여겨지는데 그 때도 얼굴 그림은 미소 짓고 있었다.

 

오늘 김유정 문학촌 행사장에서 최 선배님을 만났다. 우리나라 대표시인의 반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얼마 전부터는 춘천시 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서 공사다망한 선배님이다. 하지만 그 미소는 여전했다. 무려 반세기나!

 

      

* 최돈선 시인 : 시집 칠 년의 기다림과 일곱 날의 생’ ‘사람이 애인이다’‘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등 다수

 

 

그림=서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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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파트 단지가 입주 한 달여를 앞두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일제히 불 밝힌 무수한 전등들.

순간 밤하늘의 별들이 어디론가 다 숨어버렸다.

 

사진출처  = 유준파파 제공

 (https://cafe.naver.com/ehappy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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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가 나부낀다. 하긴 갈대는 늘 나부낀다. 워낙 가냘픈 풀이라서 미세한 바람에도 나부낄 수밖에 없다.

그런 갈대밭 속에 아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다. 결코 편히 앉아 있는 자세가 못 된다. 더욱이, 갈대가 만들어놓은 어두운 그늘 속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가슴 먹먹해졌다. 먹다 체한 것같이 가슴이 답답해졌다는 말이다. 결코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그림이 아니었다. 충격 속에 빠트리는 그림이다.

 

사실 어둠 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은 낯선 게 아니다. 바깥세상으로 나오기 전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을 다루는 책이라면 반드시 사용되는 보조그림인 것이다. 과학이 발달되어 심지어는 사진으로까지 그런 태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김춘배 화가의 이 그림은 엄마 뱃속에 안온하게 있어야 할 아이(태아)우여곡절 끝에 안온치 못하게 있는 슬픈 모습이다. 그 까닭을 하염없이 나부끼는 갈대가 대변해 주고 있다.

바람 한 점에도 저는 아프거든요.’ 


슬픔도 감동일 수 있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 그림을 그린 김춘배 화백에게 페북으로 물어봤다.

이 그림의 제목이 뭡니까?”

그러자 뜻밖에 이런 대답이 왔다.

“His name is Today입니다.”

갈대밭 그늘 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이의 슬픔은 현재형이라는 뜻일까? 나는 또 다시 충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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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 어느 날이다. 아내가 밭에 들어갔다가 길이 1미터가 넘은 뱀이 꽈리들 무성한 데로 숨어드는 것을 목격했단다. 나는 그 얘기를 들은 후 웬만하면 그 부근에 가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썼다. 불가피하게 그 부근에 가게 될 때는 '혹시 그 놈을 발로 밟는 불상사가 생길까' 두려워 편히 걷지도 못했다. 

 그런데 한 달 넘게 별 일 없이 꽈리들만 무성하게 잘 자라났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꽈리들이 땅바닥에 다 떨어져 못 쓸 것 같았다. 나는 걱정만 하고 있는데 아내가 어느 새 그 꽈리들을 수확했다. 아내한테 내가 물었다. 

"그 뱀, 못 봤어?"

"못 봤어. "

"당신도 참!. "

"조심하면 되지, 뱀이 뭐가 무서워?"


자, 큰 바구니에 담긴 잘 익은 꽈리 열매들. 색깔이 빨간 건, 내 생각에는 그 무서운 뱀의 음덕(蔭德)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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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시 동면 지내리에 동면방앗간이 있다.

 

내가 동면 방앗간에 주목한 건우직하게 느껴질 만큼 단순 명료하고 토속적이기까지 한 상호때문이다사실 부근에 있는면사무소의 이름도주민자치센터로 바뀌었을 정도로 어느 때부턴가 작명을 길고 복잡하게 하는 시류다나는 이런 시류에 저항감이 있다예를 들어 산골에서 농사만 짓다가 모처럼 면사무소를 찾는 노인이 있다고 가정하자그 노인이 면사무소가 아닌 난데없는 주민자치센터앞에서 얼마나 당황할까고백한다도시에 사는 나 자신도 몇 년 만에 면사무소를 갔다가 주민자치센터라고 바뀌어 있어 몹시 당황했다결국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었다.

여기면사무소 맞지요?”

네 맞습니다.”

 

뭐 하러 그렇게 이름들을 길게 바꾸는지 모르겠다그러면 더 현대적이고 세련돼 보이는 걸까?

글쎄.

 

그런 면에서 나는 동면방앗간이란 간판 명이 좋다얼마나 우직하고 간단명료하고 토속적이고 기억하기 좋은 이름이던가날이 갈수록 모든 게 복잡다단해져가는 세상가게나 사무실 이름만이라도 간단명료하게 짓거나그대로 두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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