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판운리 섶다리를 어제 직접 가 보았다. 본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위를 걸어도 보았다. ‘해마다 10월이면 섶다리를 새로 놓는다는 안내판이 있더니 과연 새로 놓은 지 며칠 되지 않은지 깐 흙이 부드러웠다. 걸음을 디딜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려서 시멘트나 철근 하나 들이지 않고 오직 사람의 손길로 만든 다리임을 실감케 했다. 다리 밑으로는 맑은 강물(서강)이 흘렀다.

문득 고조선 시대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떠올랐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이런 아름다운 섶다리가 놓였더라면 사별의 한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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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일로 여기 춘천에서 300리 넘는 곳에 있는, () 소재지 마을에 다녀왔다. 그 면에서 숙소까지 얻어 1박 하고 돌아왔으니 웬만해서는 춘천을 떠나지 않고 사는 나로서는 경이로운 사건이다.

그 면에서 하루 지내면서 재미난 경험을 했다.

새벽 6시에 아침밥을 먹는 습관이라 할 수 없이‘24시 편의점을 찾아갔다.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이라도 사 먹을 생각에서다. 전 날, 그 면에도 24시 편의점이 한군데 있는 걸 봐 두었었다.

하지만 24시 편의점은 불도 꺼지고 문도 닫혀 있었다. 그 면에서 24시 편의점은 간판일 뿐, 그냥 구멍가게나 다름없었다.

생각다 못해 차를 몰고 면의 중심가로 갔다. 다행히도 서넛의 식당들이 이른 아침에 문을 열고 영업했다. 그 중 한 군데에 들어갔다. 주문을 바라는 아주머니한테 나는 벽에 있는 메뉴판을 보고서 말했다.

육개장을 부탁합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말했다.

콩나물 백반만 됩니다.”

그럼 그걸로 해주세요.”

아주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가 밥상을 준비하는 중에 나는 벽의 메뉴판을 다시 살폈다. 놀랍게도 콩나물 백반이 없었다. 메뉴판에 적어놓은 음식들은, 실제로 준비되는 음식과 아무 관련이 없었던 것이다.

지난 6,70년대 춘천의 모습을 보는 듯한 경이로움!

도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전개되고 있는 그 시골 면에 나는 사랑을 느꼈다. 속도를 따지지 않는 인간 중심의 슬로우 시티, 그 시골 면.

 

아주머니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차려내온 콩나물 백반. 아주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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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 나는 철지난 바닷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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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시절, 춘천에 도심 다실이 있었다.

 

당시에는 도심의 뜻을 잘 몰랐다. 나이가 들어서 깨달았다. 도심은 한자로 都心이며 그 뜻은 도시의 중심부였다. 그렇다면 얼마나 잘 지은 이름인가. 시내 한복판인 중앙로 로터리에 접한 다실이었으니.

이런 생각도 든다. 도심의 심()이 본래 마음을 뜻하는 한자이니까 다실 이름 도심은 도시의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어쨌든, 1970년경 중앙로 로터리에 접한 도심 다실은 묘한 데가 있었다. 흔치 않은 지하인데다가 삼각형 공간이었던 것이다. 대개의 다실(다방)이 반듯한 사각 공간인 걸 생각하면 도심 다실은 아무래도 입지(立地)에 사연이 있어 보였다. (훗날, 새로 지은 옆 건물의 일부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 애당초 반듯한 구조를 갖기 어려운 자투리땅이 아니었을까.)

 

 

그 즈음 여름날이다. 내가 무슨 일인지 오전 10시 경에 도심 다실에 들어가 앉았다. 지하라 서늘한데다가 물청소까지 마친 직후라 냉기마저 맴 돌았다. 티셔츠 차림인 나는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 감색넥타이에 연두색 여름양복을 입은 정장 차림의 사내를 보게 되었다. 사내는 다실의 종업원 아가씨(당시 레이지라 불렀다.) 둘과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가씨들이 얘기하고 사내는 눈을 반쯤 감은 채 간간이 고개나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가 그 날 도심 다실에서 본 연두색 차림의 사내를 생생히 기억하는 까닭은, 사내만큼 양복 정장이 잘 어울리는 사람을 여태 못 봤기 때문이다. 얼굴도 잘생긴 사내였다. 탤런트 이정길 씨를 닮아서 종업원 아가씨들이 체면 무릅쓰고 손님도 아닌데 합석해서 말을 붙였던 것 같았다.

다실 벽의 형광등 불빛이, 사내가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함께 움직이는 연두색 상의(上衣) 자락을 선하게 드러내주었다. 다림질이 잘 돼 상의의 날선 줄이 드리우는 그늘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평일 날 양복 차림으로 오전부터 다실에 앉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사내는, 카바레 제비족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남들 출근해서 사무실에 있을 시간에 그런 차림으로 반쯤 졸면서 지하 다실에 있을까. 아마도 노란 달걀 푼 쌍화차 한 잔을 마시고서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반추하는지도 몰랐다.

그 후 나는 사내를 다시 본 적이 없다. 세월이 반세기 흘렀다.

오늘 문득 사내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졌다. 분명한 것은 사내도 나처럼 노인네가 됐을 거라는 사실이다. 지하공간에서도 빛나던 20대 청춘들은 어느 덧 사라져버렸다.

 

내 젊은 시절 춘천에, 지하에 도심 다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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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에 왔다가 의림지에 들렀다. 의림지는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시대부터 있었다니 어언 2000년이 넘었다.

해 질 녘 의림지 일대는 가을 한기가 맴돌았다. 풍경 사진을 찍었는데 ---- 2000여 년 시간은 찍히지 않았다. 문득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쳤다.

우리는 시간의 자취를 공간에서나 발견하는 걸까? 시간은 오직 공간의 자취로만 확인되는 게 아닐까? 시간은 어쩌면 실재한다기보다 관념 속에서나 존재하는 게 아닐까?’

 

 

 

2000여 년 되는 시간이 의림지 호수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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