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무심은 문밖에 있는 그대라는 대중가요를 분석해서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노랫말에 반한 때문이다. 정확히는 노래 제목에 반했다. 다른 데도 아닌 문밖에 있는 그대라니. 그 이미지는 지난 시절의 연인이 하필 비 오는 날 찾아와 대문 밖에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서서 다시 만나주기를 원하는 처절한 장면이었다. 문 안도 아니고 문밖이라는 정서적 거리에 대해 무심은 마치 자신의 일인 듯 수필을 써서 열변을 토했었다. (수필: ‘정서적 거리의 절정, 문밖에 있는 그대’)

 

그런데 문밖에 있는 그대못지않은 대중가요 제목이 있다. ‘그리움만 쌓이네이다. 무심이 주목하는 것은 이 제목이 비유법의 원리를 아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비유법은 어떤 사물(원관념)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다른 사물(보조관념)을 끌어다 쓰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감을 나타내기 위해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갔다고 표현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제 그리움이 쌓이네의 비유법적 구조를 단계적으로 살핀다.

1. 원관념은 그리움이 날이 갈수록 더해간다이다.

2. 보조관념은 낙엽이 떨어져 쌓여간다이다.

3. 원관념에 보조관념이 합쳐지면 그리움이, 낙엽이 쌓이듯 더해간다이다.

4. 이를 축약하면 그리움이 쌓이네.

 

그리움이란 추상적 정서를 낙엽이라는 구체적 사물에 빗대어 표현(은유)그리움만 쌓이네’ . 가을이면 하염없이 떨어져 지상에 쌓이는 게 낙엽일진대 그런 자연현상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라니.

그리움만 쌓이네.’이를 어찌 대중가요의 제목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웬만한 서정시의 제목보다 낫지 않은가.

 

덧붙임: ‘그리움만 쌓이네가 워낙 좋은 노래라서 수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원작자인 여진을 비롯해 윤민수, 노영심, 나연 등이다. 최근에는 트롯 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임영웅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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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장 아랫집에서 닭을 여러 마리 키운다. (경사진 숲 속 골짜기에서 농사들을 짓는데 우리 농장이 맨 위쪽에 있어서 이웃집이 아닌 아랫집이란 표현을 하게 된다.) 숲 그늘을 이용해 망을 치고 키운다. 그런데 오늘도 암탉이 꼬꼬댁꼬꼬 꼬꼬댁 꼬꼬!’ 하며 숲이 떠나가라 요란을 떤다. 보나마나 알(달걀)을 낳았다는 신호다

밭일을 쉬고 농막에서 쉬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암탉은 알만 낳으면 요란을 떨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도 암탉이 평상적이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놀라 그러는 게 아닐까. 그래도 그렇지 넓은 숲이 떠나가라 요란 떨다니 다른 까닭이 있지 않을까.

스마트폰을 켜 암탉이 달걀을 낳으면서 요란을 떠는 까닭?’을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도 답변이 있었다. 닭 전문가는 아니고 일반인이 한 답변이다. ‘아마도 산모(産母)처럼 출산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 같다고 한다.

 

농장에 와서 아랫집 암탉이 알 낳고 요란을 떠는 까닭’까지 궁구(窮究)해보다니이 또한 코로나 역병이 가져온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한 모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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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서 동물의 머리에 해당되는 부분이 뿌리다. 뿌리를 다치면 그 식물은 생존이 어렵다.

 

지난 해 겨울이 닥치기 전, 춘심산촌 농장의 칸나 구근들을 캐내서 집에 가져온 건 그 때문이다. 구근이 얼면 칸나가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근들을 상자에 담아 선선한 창고 한 편에 놓았는데눈에 뜨일 때마다 왠지 섬뜩하다. 마치 인간의 영생을 도모해 따로 보관하는 뇌수들을 보는 것 같아서다.

이제 완연한 봄 날씨가 됐으니 불원간 춘심산촌으로 옮겨다 심을 것이다. 그러면 섬뜩한 구근들은커녕 화려한 아름다운 붉은 꽃들이 춘심산촌 어귀를 찬란히 장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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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짜기이지만 넓이가 800평 되는 밭이다 보니 잡초 김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밭두둑에는 비닐 멀칭을, 밭고랑에는 잡초방지매트를 깔아서 기본적인 대처를 했지만 문제는 밭 가장자리와 농로와 농막 주변이다. 비닐 멀칭이나 방지매트를 깔 수 없어 잡초들이 기승이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이내 무성하게 자라서 뱀이 스며들까 두려울 정도다. 그렇기도 하고 깔끔 떠는 아내가 성격상 견디지 못한다. 밭에 가기만 하면 그것들을 김매는 일부터 매달린다.

나는 나대로 예초기까지 동원해 최소한 나흘에 한 번은 쳐낸다. 우리 밭의 김매기는 이를테면 국지전과 전면전을 병행하는 격이다. 아내는 하나하나 김매는 국지전이고 나는 전반적으로 김매는 전면전인 거다.

웃기는 일화가 있다. 내가 작물에 물 주느라 바빠서 나흘이 됐는데도 예초기를 못 돌리고 그냥 귀가하던 차 안에서 아내가 이렇게 물었다.

, 벌써 나흘이 된 것 같은데 당신 언제 털을 깎을 거야?”

로 잘못 말하는 바람에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허허허 웃고 만 거다. 그러고 보면 내가 면도하는 주기도 나흘이었다. 나흘을 그냥 지나가면 금세 수염이 덥수룩한 게으른 사내 인상이 되고 만다. 몸의이나 밭의이나 나흘째 방치하면 무성해진다. 이 이상한 동류감(同類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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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접시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K는 이상하게도그 소리가 편하게 들리던 것이다물론 멀쩡한 접시 하나를 잃었다는 손실감과산산조각 난 것들을 어서 방비로 쓸어 담아서 쓰레기통에 넣어야 한다는 수고로움은 일단 배제하고서 하는 말이다.

사기접시가 산산조각 날 때 소리가 마냥 편하게 들리던 이상한 심적 상황을 K는 곰곰이 헤아려보았다.

아아 그건 사기접시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인 것 같다사기접시의 원래상태― 찰흙 한 줌으로 환원되는 그 편안함!

인간은 삶을 다할 때태어나서 이뤘던 그 동안의 모든 것(가족재산친구사이증오와 사랑등등)을 손놓아버리질 않던가바로 그런 편한 운명(殞命)의 모습을 사기그릇이 깨지는 소리들로 전해주었다.

사기접시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버렸다자신을 빚어준 자연으로 편히 돌아갔다. K는 아내가 놀라서 여보뭘 깨뜨렸나?’외치는 소리도 귓전으로 넘긴 채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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