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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서는 한 번 본 영화를 또 보는 일 없는 내가 살인의 추억은 세 번이나 보았다. 연쇄살인범을 잡고자 분투하는 시골 경찰서의 강력계 형사 송강호에 매료된 때문이다. 그는 영화 상영 중에 배우가 아니라 강력계 형사로서 내 눈앞에 있었다. 영화 마지막에 시체가 발견되었던 도랑을 고개 숙여 살피면서 생각에 잠기던 표정. 소설의 결말 방법 중 여운을 주는 결말이 있는데 바로 그런 결말의 진수를 보여주던 것이다.

 

송강호 그가 최근의 기생충영화에서는 반 지하 셋방집의 가장으로 나왔다. 빵을 뜯어먹다가 곱등이가 눈에 뜨인 순간 손가락으로 그것을 튕겨버리던 동작과 표정 연기. 무료하게 사는 궁핍한 가장 모습으로서 100% 성공한 순간이었다.

여기서 나는 궁금한 게 있다. 그 하찮은 곱등이를 어떻게 출연(?)시켰을까 하는 점이다. 아무리 봐도 CG 같지는 않았다. 영화 속 디테일로 명성이 높은 봉준호 감독의 솜씨라고 이해하면 될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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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보여주던 잔혹한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어깨를 으쓱하며 짓던 미소, 일하다 말고 생각에 잠기던 눈빛, 하다못해 어기적거리며 걷던 것까지 그는 암흑가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의 표정 연기에서 단 한순간도 이탈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인턴이란 영화를 보고서 180도 바뀐 그의 표정에 나는 소스라쳤다. ‘전화번호부 만드는 회사가 사양길에 들어서면서 불가피하게 퇴직한 70세 노인이, 한창 잘 나가는 인터넷 소핑몰 회사에 인턴(젊고 예쁜 여 사장의 임시 비서직)으로 채용돼 보이는 선한 표정때문이었다. 두 시간 가까운 상영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선한 표정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아니다. 이탈하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그는 평생을 선하게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총성 한 번 울리지 않고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니로버트 드니로 그는 진정 명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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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나뭇잎 푸르고 꽃들 활짝 피는 풍경, 그 풍경을 마음 편히 즐기는 날이 행복이었다.



그림= 지은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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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생충의 전반부에 기택의 아들 기우가 가정교사를 하려고 대저택에 들어선 장면이 있다. 정확히는 가정교사 채용 면담 차 가슴 조이며 대저택의 뜰로 혼자 들어서는 장면이다. 그 때 하늘의 햇빛이 기우를 조명하듯 내리쬐었다. 정면으로 말이다.

나는 이 장면이 여태 생생하다. 햇빛 한 점 받기 어려운 반 지하 셋집의 기우가 느닷없이 엄청난 햇빛을 받게 되다니!

그 햇빛은 가짜로 대학재학 증명서까지 만들어 왔는데 들통 나거나 해서 면접에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의 투영이었다. 찬란하다기보다 두려운 빛의 뭉치였다.

기우가 어찌 될까?’

짧은 순간이지만 두려움 속에 두리번거리는 기우 모습은, 가난한 청춘시절을 보낸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디테일한 장면 연출로 소문만 봉준호 감독이기에, ‘기우가 대저택 뜰에 들어설 때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 장면에 공을 들였을 게 분명하다. 햇살이 기우를 엄습하는 시간대에 촬영기를 돌리려고 여러 번 현장 연습을 했을 거라는 내 확신이다.

흔한 햇빛까지 자신의 작품에 요긴하게 쓴 봉 감독. 그의 재능에 재삼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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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유령작가에서, 주인공(이완맥그리거 분)이 살인 사건의 단서를 찾아 바닷가를 헤매는 장면을 잊지 못한다. 늘 바람 불고 염분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제대로 자란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한 바닷가.

그 풍경이 막막한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싶었다.

 

사실 우리의 삶은 아름다운 꽃밭과 풍성하게 자란 나무숲만 있지 않다. 의외로 꽃 하나, 나무 한 그루 없는 삭막한 풍경과 수시로 만난다. 영화 유령작가의 감독 로만 플란스키가 황량한 바닷가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했지만 나는 그 바닷가 장면에 가슴이 먹먹해졌고 몇 달 지난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피할 수 없는 삶의 공허함 내지 쓸쓸함을 목격한 듯싶어서.


*영화 유령작가’: 2010.06.02 개봉, (감독) 로만 폴란스키 (주연) 이완 맥그리거

유령작가란 유명인의 뒤에서 그 사람 이름으로 글을 대신 써 주는 작가를 이른다. 실존하지만 드러나서는 안 되는 기막힌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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