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춘천에서 자가용차로 두어 시간이면 삼척에 도착하지만 그즈음― 1974년 즈음에는 대중교통으로 하루 종일 걸려야 했다. 실제로는 1박 2일 걸렸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겠다.
춘천에서 늦은 오후에 경춘선 기차를 타고 서울의 청량리역까지 가는 게 첫걸음이다. 그런 뒤 태백산맥을 넘어간다는 영동선 기차를, 기다렸다 타고서 밤새워 가야 한다. 완행열차인 비둘기호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날이 밝은 아침에 동해안의 북평역에 도착한다. 북평역 주위의 식당에서 아침밥을 사 먹고는 삼척읍으로 가는 완행버스를 탐으로써 마침내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역(逆)으로 삼척읍에서 춘천으로 가는 것 또한 그런 1박 2일의 장거리 여행을 각오해야 했다.
그렇기에 방학이나 돼야, 나는 고향 춘천에 갈 수 있었다.
1000리 길 머나먼 객지의 하숙방에서 외로이 지내는 처지.
처음에는, 외로움뿐이다가 차차 객지 생활에 적응되자 이국정취(異國情趣)를 깨닫게 됐다.
푸르른 동해바다가 가까이서 철썩이는 삼척읍에 내가 살고 있다는 깨달음!
산으로 둘러싸인 춘천에서만 살다가 온 나로서는 정말 드라마틱한 일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하숙방에서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베갯머리 가에 파도가 와닿는다는 환상에 빠져서… 잠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