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토어 밀리언셀러 클럽 138
벤틀리 리틀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를 모르고 읽었다면 스티븐 킹의 소설로 착각할 뻔 했습니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공동체에 웬 낯선 타자가 불현듯 나타나서는 점차 그 공동체를 파괴시켜 나간다는 이야기는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익히 보던 것이었으니까요. 대표적인 것으로 제가 가장 무섭게 읽은 '살렘즈 롯'이 있고 타자와의 전면전이 치뤄지는 '미스트'도 있으며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를 공포소설로 훌륭하게 형상화시킨 'NEEDFUL THINGS(흔히 '욕망을 파는 집'으로 알려져 있는)'이 있지요. 특히 이 '욕망을 파는 집'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더 스토어'는 '욕망을 파는 집'과 유사한 경로로 진행되거든요.


 '욕망을 파는 집'의 영화 포스터.


 잠시 '욕망을 파는 집'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웃간 인심이 좋아 정겨운 작은 마을 캐슬록에 'NEEDFUL THINGS'라는 가게가 문득 나타납니다. 무엇을 파는 지 궁금해하던 마을 사람들 눈에 가게가 쇼윈도에다 걸어둔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팝니다'라는 푯말이 보입니다. 호기심 많은 꼬마 하나가 시험삼아 들어갑니다. 노인인 주인에게 꼬마는 자기가 가장 갖고 싶지만 엄청 희귀한 야구 선수 카드를 말합니다. 그런데 주인이 정말로 구해줍니다. 푯말이 말하는 게 진짜라는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저마다 은밀히 가지고 싶었던 것을 구하기 위해 가게로 찾아옵니다. 그런데 빛이 오는 곳에 그림자도 따라오는 법이듯 욕망이 차츰 실현되어 나가는 것과 동시에 불행도 찾아옵니다. 마약처럼 자신의 거듭된 욕망 실현에 중독된 나머지 파멸로 치닫는 것이죠. 결국 캐슬록이란 평화로웠던 마을 전체가 마을 사람들끼리의 증오로 인한 서로에 대한 학살로 깡그리 파괴되고 맙니다.


  '더 스토어'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주니퍼'란 작은 마을에 '월마트'와 비슷한(저자 자신이 '더 스토어'의 아이디어를 '월마트'를 보면서 떠올렸다고 하는군요.) '더 스토어'가 들어옵니다. 주인공 빌은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그 코스는 '더 스토어'가 들어올 부지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빌은 거기서 사슴이나 동물들이 죽어 있는 것을 봅니다. 동물들의 사체는 사냥이나 사고가 아닌 그냥 거기 와서 자연사 해 버린 것 같아 보입니다. 게다가 '더 스토어'는 여러 지점에서 점원이 총으로 손님들을 학살하는 등의 비극적 사건이 잇달아 일어난 곳이란 걸 알게 됩니다. 빌은 '더 스토어'에 웬지모를 사악함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싫어하게 됩니다. 하지만 '더 스토어'는 마을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옵니다. 다양한 물건을 가까이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점과 많은 고용으로 경기가 오래도록 바닥을 치던 '주니퍼'에 활력을 주리라 기대했던 것이죠. '욕망을 파는 집'에서 마을 사람들이 가게를 좋아했던 이유인 '욕망을 쉽게 이루어준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유로 주니퍼의 마을 사람들 역시 '더 스토어'를 좋아합니다. 하물며 빌조차 '더 스토어'로 가 그 많은 상품을 본 뒤론 그 곳을 파라다이스로 여겨 버립니다. 그러자 '욕망을 파는 집'이 마을 사람들을 지배했듯이 '더 스토어'도 차츰 주니퍼의 마을 사람들을 지배하게 됩니다. 언론을 돈으로 사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만 내도록 하고 경쟁하는 작은 가게들은 주인을 죽여서까지 몰아내 버리며 급기야 주니퍼 의회를 장악해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법까지 바꿔버립니다. '더 스토어' 앞에서 학교를 비롯한 모든 공공기관은 죽고 아름답고 인심 좋았던 '주니퍼'는 오로지 '더 스토어'만이 만인지상의 존재로 군림하는 파시스트적인 마을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욕망을 파는 집'에서 사실은 악마였던 가게 주인에게 영혼을 모조리 빼앗겼던 캐슬록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가 된 것이죠.

 이렇게 비슷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더 스토어'는 그 과정을 보다 현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욕망을 파는 집'과 차이가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욕망을 파는 집'이 욕망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사람을 파멸해 나가는 지를 밝혀 공포를 주로 개인적인 측면에서 드러낸다면 그와 달리 '더 스토어'는 공포 자체를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세력이 사람들의 욕망 실현을 빌미로 어떻게 공동체를 무너뜨려 가는가 하는 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가져온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더 스토어'의 모습이 읽다보면 소설에선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으로는 '생생한 리얼리티'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호러라는 덧칠을 하긴 했습니다만 현실에서 월마트와 같은 SSM이 작은 지역의 상권을 장악해 나가는 과정을 소설이 가급적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SSM, 즉 기업형 슈퍼마켓이 무분별하게 진출하여 골목상권을 위태롭게 만드는 상황은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실감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이 보다 집중하고 있는 그 측면의 공포를 통해 왜 우리가 SSM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내버려 두어선 안되는지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독자를 자기가 속한 현실의 문제로 인도하고 거기에 대해 사유를 통해 참여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분명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포의 변증법'을 쓴 프랑코 모레티는 공포가 자본주의가 은밀하게 감춰둔 독소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파헤칠 수 있는 유용한 통로가 되는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통해 여실히 밝힌 적이 있지요. 그런 면에서 '더 스토어'도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소설이라면 분명 잡아내지 못할 지점까지 내려가 소비지상주의가 모토로 되어버린 현재 자본주의 가 어떻게 인간의 욕망을 형성하고 인간을 길들이며 또한 사회마저 자기 뜻대로 통제해 나갈 수 있는 지, 일상에서 얼른 깨닫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독소를 잘 짚어내주고 있으니까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의 1부와 2부를 이 소설과 곁들여서 읽으면 더욱 '더 스토어'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으실듯 합니다. '더 스토어'는 사실 거기에 나오는 장 보드리야르의 이야기를 소설로 구현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부정적인 면을 말할 차례로군요. '욕망을 파는 집' 보다 담고자 하는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그만큼 부작용도 따랐는데요, 그건 바로 이야기가 시야의 하중을 견디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작가가 공포와 사회적 주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기 싫어서인지 이 둘을 긴밀하게 엮기 위한 설정과 상황들이 곳곳에 보이는데 읽다보면 그게 오히려 이 소설의 악재로 작용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일단 등장인물의 소비가 너무 심하다는 측면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초반의 그렉 하그로브를 들 수 있을 것인데 이 사람은 건설업자로 '더 스토어'의 부지 공사를 맡는데 이야기 초반에서 '더 스토어'를 반대하는 빌과 공청회에서 대립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뭔가 둘 사이에 '더 스토어'를 둘러싸고 갈등을 일으킬 것 같은데 얼마 안가 사고로 죽어버립니다. 그것도 직접 묘사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말로 간단히 처리해 버리죠. 거기다 그 딸이 주인공의 딸에게 나타나서 '더 스토어'에 뭔가 불길한 것이 있음을 은밀히 알리는데 그것도 그것으로 그칠 뿐, 소설에서 더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물과 전개에 있어서 구멍이 불쑥불쑥 존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단단하게 잡아주지 못하고 다소 산만하게 흩어져 오히려 소설이 주고자 하는 공포조차 반감되는 면이 존재하지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요. 공포에 관해서라면 딱 이 소설을 두고 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소설에 공포를 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이게 오히려 소설을 덜 공포스럽게 만드니까요. 바로 독자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밤의 매니저' 때문입니다. 소설에는 '밤의 매니저'라는 좀비 비슷한 존재들이 나옵니다. '비슷한'이라고 굳이 말을 한 것은 소설에서도 그 정체를 딱히 단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영혼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도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두교에서 주술사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좀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죠. 제 생각으로는 '욕망을 파는 집'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긴 이들이 육신으로 계속 남아 있었다면 이런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튼 바로 이 부분이 그 자체로 좋은 소비지상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된 이 소설을 그 비판의 날마저 무디게 할 위험이 있는 초현실로 넘어가게 만드는 데요. 정작 이 존재에겐 그만한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이야기에서 이 존재를 빼버려도 전개상 별 무리가 없고 꼭 있어야할만큼 소설 주제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어쩌면 '욕망을 파는 집'과 마찬가지로 '더 스토어'에 포획된 영혼의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테지만 그렇다면 소설이 더욱 디테일하게 보여줬어야 했을 것 같아요. 그저 죽여서 되는 것으로만 끝내 버리니 영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거기다 이 존재들은 결말에서 중요한 역할까지 하는데 존재 자체의 맥락을 짚어낼 수 없으니 결말도 그렇게 확 와 닿지 않게 됩니다. 아무래도 분명 공포 효과의 증대를 노리고 나온 존재들 같은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수록 오히려 공포의 수치가 하락하도록 부추겨요.

 허다한 공포 영화와 소설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공포는 결코 졸라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섭게 만드려고 잔혹한 장면, 섬뜩한 연출, 음산한 음악을 깔아도 그 맥락이 이해되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공포는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수용자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창조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무서울 때는 언제나 보거나 읽는 자의 상상력이 적극적으로 개입될 때죠. 남이 만든 장면이 아니라 내가 연출한 장면을 통해 공포는 불현듯 도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용자의 적극적 해석 여지(우리는 이것을 공감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를 만들지 못하는 공포는 그저 '제발 무섭게 느껴줘!'라고 조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거죠. 그런 공포는 아무 것도 낳지 못하고 그저 소비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밤의 매니저'가 그러하다는 것이죠. 특히나 밤의 매니저가 되는 제이크의 경우에는 앞뒤까지 맞지 않아 더욱 곤혹스럽습니다. '더 스토어'의 점원인 그는 물건을 소소하게 훔치다가 발각되어 밤의 매니저가 되는데 앞에서 우리는 부랑자 사냥을 통해 아무리 불법적인 일이더라도 태연하게 저지르는 '더 스토어' 점원의 모습을 보면서 '더 스토어'가 얼마나 점원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게 되거든요. 그런데 높은 위치에 있는 제이크가 점포의 물건을 훔친다구요? 앞서도 말했듯이 아무래도 작가가 편하게 캐릭터를 소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어요. 이야기의 전개상 캐릭터가 막상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면 가지치기하듯 쳐내는 느낌이랄까요.

소비지상주의의 부정적인 모습을 비난하는 소설이 이번엔 저에게 소비의 남용을 지적당하고 있다니 어쩐지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런 식으로 작가는 더욱 소비의 질 나쁜 측면을 알려주려는 것일까요? 후후. 아무튼 벤틀리 리틀은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는데 좀 더 이야기를 꽉 장악하고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조금 남네요. 스티븐 킹보다 판돈이 올라가서인지 이야기에 좀 휘둘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별 다섯 개를 주는 것은 비록 90년대에 나왔으나 이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이고 63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저는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까 너무 궁금해서 중간쯤 읽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결말부터 읽고 다시 중간으로 돌아갔을 정도예요.(빌의 딸 '서만사' 때문이었어요. 저는 서만사의 변화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이 가진 또 하나의 소비 남용을 말해야 겠네요. 그건 바로 여성을 너무 수동적으로 소모한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주도적 역할은 어디까지나 남성의 몫이고 여성은 그저 아내 '지니'처럼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불안해하거나 '서만사'처럼 조종당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아요. '더 스토어'에서 여성 점원을 대하는 태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하는데 그렇게 소설이 너무 남성 중심의 시각이 아닌가 하는 텁텁함이 읽다가 들었던 것이 이제야 생각나는군요.으음, 별 하나 정도는 깎아야 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인상으로는 어쨌든 기대되는 작가라는 점에는 변함없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더 나은 모습으로 만나길 바라며 그런 면에서 최고의 호러 소설에 주는 브람스토커상 수상작(90년)이자 90년대 최고의 호러 소설중 하나로 손꼽히는 'THE REVELATION'이 발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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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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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파이어가 겨울밤 매서운 칼바람이라면 이건 봄날 황혼녘 햇살이 벚꽃 잎을 투과할 때의 아련한 열기. 보다 원숙해서 구수하고 따스해서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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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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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란 한 줌의 벚꽃.

 손 안의 벚꽃잎은 제아무리 예뻐도 한 결 부는 바람에도 흩날려 속절없이 사라진다. 웃고 마시고 떠들다가도 문득 손등에 내려앉은 벚꽃잎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작은 분홍빛 두어개에 간직된 허망함. 쇼노스케도 그랬을 것이다. 쇼노스케는 미야베 미유키의 '벚꽃, 다시 벚꽃'의 주인공이다. 소설에서 그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문간 너머 저만치 서 있는 벚꽃 나무다. 그걸 그가 넋 놓고 보게 된 것 역시 허망함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사무라이지만 도쿠가와 막부 시대가 열리면서 사무라이는 이제 칼을 들 일이 없어졌다. 칼로써 존재할 수 있었던 사무라이는 칼을 버려야 했고 그런 그들에게 사무라이라는 이름은 태평성대 막부 시대를 살아가는데 오히려 돌부리가 되었다. 거기다 믿고 따랐던 아비는 누명을 쓰고 할복했으며 가문은 결단나고 세속적 성공을 쫓던 어미와 형과는 소원해졌다. 그는 혼자다. 자신을 든든히 받쳐주던 모든 것들이 손 안에 벚꽃잎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고관 사카자카 시게히데가 그를 불러서는 아비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알려준다. 아비는 횡령죄 혐의를 받았는데 적극적으로 항변했으나 한 장의 문서로 죄를 인정하고 할복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문서가 사실은 누군가 아비의 필적을 흉내내어 만든 위조 문서라는 것이다. 놀라는 쇼노스케에게 사카자카 시게히데는 그 대서가가 현재 다른 크나큰 음모에도 연루되어 있으니 에도로 가서 그를 찾아 아비의 복수를 하라고 말한다. 아비의 명예회복을 간절히 바랐던 쇼노스케는 에도로 온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경험한다.




 에도로 와서 쇼노스케가 거하는 곳은 셋방살이하는 이들이 한데 모여 있는 지금으로치면 연립주택과 비슷하다. 인물과 살이의 묘사를 보노라면 옛날 TV에 방영했다고 하는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이 얼핏 연상될 정도이다. 없는 살림이지만 야박하지 않으며 모두가 제 일처럼 남을 도와준다. 소설은 처음부터 그 곳에 원래 있던 널담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그것이 마치 상징이기라도 하듯 거기 사람을 사이엔 벽이 없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이타적이라는 것을 빼면 타카하시 루미코의 걸작 '메존일각(우리나라엔 도레미하우스란 제목으로 발간된 만화)'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같은 피를 나누었지만 남보다 먼 쇼노스케의 가족과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가족만큼 살가운 이웃들을 생각하면 과연 가족의 경계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밝히지만 실은 이것이 바로 '벚꽃, 다시 벚꽃'에서 미야베 미유키가 천착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대서인을 찾는 문제도 사실은 그가 권력다툼을 해결할 한 수장의 유언을 위조할 가능성 때문이다. 나중엔 또 한 여성의 납치 사건에도 연루되는데 그것도 진짜 가족과 입양의 문제가 얽힌다. 이렇게 소설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모두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그럴 때마다 중요해지는 것은 경계다. 진짜 유언을 보존하고, 순수 혈통을 고집하는 것은 진실을 고집하는 일과 같다. 그러나 진실은 아집에 가까울 정도로 언제나 확실한 경계선을 두려 한다. 나와 남을 나누고 거짓과 격리되려는 진실처럼 유익이 되지 않는 남은 내치는 것이다. 쇼노스케의 어미와 형이 도움이 되지 않는 아비와 동생을 멀리했듯이.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묻는다. 과연 그렇게 진짜를 고집하는 게 좋은 것일까?

 결국 사단은 언제나 진짜를 의식하고 그것을 확보하려 하거나 그것에 상처 받을 때 일어났다. 거기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대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왜 미야베 미유키가 쇼노스케를 둘러싼 이웃들의 삶을 조금은 불필요하다고 싶을 정도로 많은 비중을 두어 묘사하는 지도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가게 된다. 바로 사람 관계에 있어서 확실한 경계 따윈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었음을 말이다.


 이것은 에도로 올라온 쇼노스케의 직업이기도 한 '필사'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필사란 다시 쓰는 작업이다. 그것은 반복이지만 똑같지 않다. 소설에서도 분명히 언급한다. 마음이 일치되어야 똑같은 글이 가능하다고. 그러니 필사는 같지만 다르다. 원래 쓰는 자와 지금 쓰는 자, 그렇게 두 마음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일치된 글은 소설에서 비극을 낳았다. 하지만 일치되지 않은 글은 보다 많은 이에게 배움을 주었고 즐겁게 만들었다. 경계선의 넘나듦은 여기서도 존재한다. 필사란 글이 달라짐이요, 쓰는 이 또한 타인의 글에다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니 경계를 지워가는 행위다.(허나, 완벽한 일치란 또 하나의 확정된 경계선을 만드는 일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쇼노스케는 필사를 하면서 점점 더 자신을 넓혀간다. 나중에 그는 어떤 공간을 입체로 만드는 '입체 그림'도 스스로 제작하는데 그 역시 현실 공간의 필사라고 볼 수 있으니 글씨라는 2차원의 필사 공간이라는 3차원의 필사로 더욱 넓혀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경계를 없애는 가장 대표적인 행위로써 필사가 주어진 것이며 그 필사를 새로운 직업으로 삼은 쇼노스케는 그대로 경계를 넘나드는 대표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 쇼노스케는 아예 자신마저 바꿔버린다. 모습은 그대로이나 다른 사람의 존재를 빌림으로써 이제는 궁극의 필사 단계라고 불러도 좋을 존재의 필사를 하는 것이다.(3단계 진화라니, 쇼노스케가 드래곤볼에 나오는 초샤이어인 같다.^ ^) 그렇지 않아도 지혜에가 기치에게 쏟았던 마음을 헤아리거나 쇼노스케와 와카가 서로에게 주는 배려를 보노라면 관계를 정말 두텁게 만드는 것은 각자의 처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재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포용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쇼노스케를 짝사랑하는 긴의 마음은 얼마나 예쁜가?


 "무사 나리는 체면이 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거예요? 가난한 건 창피한 거예요?"

 엉엉 울고 있으니 말이 또렷하지 않다. 숨 쉬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태에서 띄엄띄엄 하는 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서라도 부자가 돼요. 와다야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도 돼요. 나, 이제 질투하지 않을게요."

 쇼노스케는 할 말을 잃었다.

 "여기 계속 있으면, 쇼 씨도 언젠가, 이래선, 무사로서 창피하다고, 생각할 거 잖아요, 그럼...."

 긴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조그만 등이었다. 가느다란 목덜미였다. 이 처녀는 이 처녀대로 작은 몸뚱이로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 (P.512)


소설에 화창한 봄날의 벚꽃 거리를 걷는 것 같은 다사로움이 가득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너나없이 함께 할 때, 서로의 이마에 반사된 햇살도 더욱 환해지는 법일 테니까.


 '고구레 사진관'부터였을까? 미야베 미유키의 사람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따스하다고 느꼈던 것은.

 '벚꽃, 다시 벚꽃'은 그런 미야베 미유키의 시선이 활짝 만개한 느낌이다. 여기서 만개란 표현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더 힘껏 밀고나갔음을 뜻한다. 소설은 쇼노스케를 통해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곳까지 나아가고 있으니까. 예전에 한 시인은 말했다. "나는 멸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마지막 장면에선 마치 그 시어를 반향으로 듣는 듯 했다.


 소설은 2013년에 나왔다. 시점을 고려한다면 이 소설은 현재 일본에 대한 미야베 미유키의 제안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묻는다면 그건 당시 집권한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을 고려해 본다면 대답이 될 것 같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우익 정책의 본질은 확실한 금긋기이다. 자국과 타국을 나누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국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는 것이다. 마치 그런 아베에게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미야베 미유키는 금긋기에 집착했던 인물들이 어떤 말로를 맞게 되는지 보여준다.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은 모두 셋인데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므로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은 끝내 이전의 자신을 버릴 수 없어 할복하고 다른 이는 타인을 파멸시키는 범죄자가 되며 마지막 사람은 모든 것을 잃고 정처없는 떠돌이가 된다는 것만 밝혀두련다. 반면 기꺼이 경계를 뛰어넘었던 자들은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쇼노스케를 제외하더라도 솜씨가 없었으면서도 아버지가 일으킨 장어 요리를 포기하지 못해 나락으로 점점 떨어지던 한 식당 주인은 한 사무라이의 조언으로 예전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식을 시작하자 번성하게 되고 기치는 입양된 자신을 생각하지 않자 더 훌륭한 여성으로 성장한다. 이렇듯 선명하게 대비가 소설엔 존재하니 전자는 아베에게 보내는 경고요, 후자는 제안이라고 여겨도 그렇게 무리는 아닐듯 하다. 의미심장하게 와닿는 것은 마지막에 나오는 쇼노스케의 스승이기도 한 사에키 노사가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제자야."

 "아, 예."

 "뒤죽박죽이었구나." (P. 626)


 이 소설의 주제를 한 단어로 말하라고 한다면 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뒤죽박죽.

 우리는 거기서 얼른 혼돈을 떠올리고는 갸우뚱할 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렇게 너나의 경계없이 한데 얽히고 설키는 것이 사실은 더 좋은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되면 그 어떤 존재나 그것이 지닌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으며 모두가 대등한 가운데 다양한 존재와 가능성의 하나로써 공존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쇼노스케의 셋방 이웃들이 보여주었듯이 온전한 배려와 포용이 먼저 바탕되어야 하겠지만. 분명 그리 된다면 확실한 경계선 보다는 배제되는 아픔, 잘려나가는 통증이 덜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널담이 모조리 사라진, 미야베 미유키가 꿈꾸는 세상이다. 일본이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어린.


 '벚꽃, 다시 벚꽃'을 통해 우리는 그 꿈의 거리를 거닐 수 있다. 그러다 문득 '벚꽃박죽'이란 말을 떠올리고는 살짝 미소지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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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6-1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 여사의 에도 시리즈는 늘 사자마자 읽었는데
이 책은 출판사가 바뀐 바람에 다소의 꺼림직함이 있어요. ㅠㅠ. 하지말 읽겠죠, 미미 여사의 광팬이니.
읽고 나서 다시 한번 헤르메스님의 리뷰를 읽어야겠네요. 맞아요, 미미 여사의 시각이 참으로 따스해졌죠...

오드득 2015-06-22 20:42   좋아요 0 | URL
정말, 요즘은 `크로스파이어` 같은 처음의 날 선 칼날 같은 분위기가 많이 무뎌진 것 같아요. 화차나 이유, 모방범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새삼 얼마나 멀리 있는 지 실감하게 되죠. 저 개인적인 생각으론 역시 3.11의 영향이 아닐까 싶어지더군요.^ ^
 
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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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 `오만과 편견`은 항상 더 좋은 뒷맛이 기다리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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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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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에세이의 미덕이란 온천에 몸을 천천히 담그다 고개 들어 문득 푸른 하늘을 본 것과도 같이 쉽고 편안한 가운데 돌연 깊은 의미와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하루키의 잡문은 그런 미덕으로 넘쳐나니 선택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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