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토어 밀리언셀러 클럽 138
벤틀리 리틀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를 모르고 읽었다면 스티븐 킹의 소설로 착각할 뻔 했습니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공동체에 웬 낯선 타자가 불현듯 나타나서는 점차 그 공동체를 파괴시켜 나간다는 이야기는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익히 보던 것이었으니까요. 대표적인 것으로 제가 가장 무섭게 읽은 '살렘즈 롯'이 있고 타자와의 전면전이 치뤄지는 '미스트'도 있으며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를 공포소설로 훌륭하게 형상화시킨 'NEEDFUL THINGS(흔히 '욕망을 파는 집'으로 알려져 있는)'이 있지요. 특히 이 '욕망을 파는 집'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더 스토어'는 '욕망을 파는 집'과 유사한 경로로 진행되거든요.


 '욕망을 파는 집'의 영화 포스터.


 잠시 '욕망을 파는 집'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웃간 인심이 좋아 정겨운 작은 마을 캐슬록에 'NEEDFUL THINGS'라는 가게가 문득 나타납니다. 무엇을 파는 지 궁금해하던 마을 사람들 눈에 가게가 쇼윈도에다 걸어둔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팝니다'라는 푯말이 보입니다. 호기심 많은 꼬마 하나가 시험삼아 들어갑니다. 노인인 주인에게 꼬마는 자기가 가장 갖고 싶지만 엄청 희귀한 야구 선수 카드를 말합니다. 그런데 주인이 정말로 구해줍니다. 푯말이 말하는 게 진짜라는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저마다 은밀히 가지고 싶었던 것을 구하기 위해 가게로 찾아옵니다. 그런데 빛이 오는 곳에 그림자도 따라오는 법이듯 욕망이 차츰 실현되어 나가는 것과 동시에 불행도 찾아옵니다. 마약처럼 자신의 거듭된 욕망 실현에 중독된 나머지 파멸로 치닫는 것이죠. 결국 캐슬록이란 평화로웠던 마을 전체가 마을 사람들끼리의 증오로 인한 서로에 대한 학살로 깡그리 파괴되고 맙니다.


  '더 스토어'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주니퍼'란 작은 마을에 '월마트'와 비슷한(저자 자신이 '더 스토어'의 아이디어를 '월마트'를 보면서 떠올렸다고 하는군요.) '더 스토어'가 들어옵니다. 주인공 빌은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그 코스는 '더 스토어'가 들어올 부지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빌은 거기서 사슴이나 동물들이 죽어 있는 것을 봅니다. 동물들의 사체는 사냥이나 사고가 아닌 그냥 거기 와서 자연사 해 버린 것 같아 보입니다. 게다가 '더 스토어'는 여러 지점에서 점원이 총으로 손님들을 학살하는 등의 비극적 사건이 잇달아 일어난 곳이란 걸 알게 됩니다. 빌은 '더 스토어'에 웬지모를 사악함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싫어하게 됩니다. 하지만 '더 스토어'는 마을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옵니다. 다양한 물건을 가까이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점과 많은 고용으로 경기가 오래도록 바닥을 치던 '주니퍼'에 활력을 주리라 기대했던 것이죠. '욕망을 파는 집'에서 마을 사람들이 가게를 좋아했던 이유인 '욕망을 쉽게 이루어준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유로 주니퍼의 마을 사람들 역시 '더 스토어'를 좋아합니다. 하물며 빌조차 '더 스토어'로 가 그 많은 상품을 본 뒤론 그 곳을 파라다이스로 여겨 버립니다. 그러자 '욕망을 파는 집'이 마을 사람들을 지배했듯이 '더 스토어'도 차츰 주니퍼의 마을 사람들을 지배하게 됩니다. 언론을 돈으로 사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만 내도록 하고 경쟁하는 작은 가게들은 주인을 죽여서까지 몰아내 버리며 급기야 주니퍼 의회를 장악해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법까지 바꿔버립니다. '더 스토어' 앞에서 학교를 비롯한 모든 공공기관은 죽고 아름답고 인심 좋았던 '주니퍼'는 오로지 '더 스토어'만이 만인지상의 존재로 군림하는 파시스트적인 마을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욕망을 파는 집'에서 사실은 악마였던 가게 주인에게 영혼을 모조리 빼앗겼던 캐슬록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가 된 것이죠.

 이렇게 비슷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더 스토어'는 그 과정을 보다 현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욕망을 파는 집'과 차이가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욕망을 파는 집'이 욕망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사람을 파멸해 나가는 지를 밝혀 공포를 주로 개인적인 측면에서 드러낸다면 그와 달리 '더 스토어'는 공포 자체를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세력이 사람들의 욕망 실현을 빌미로 어떻게 공동체를 무너뜨려 가는가 하는 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가져온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더 스토어'의 모습이 읽다보면 소설에선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으로는 '생생한 리얼리티'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호러라는 덧칠을 하긴 했습니다만 현실에서 월마트와 같은 SSM이 작은 지역의 상권을 장악해 나가는 과정을 소설이 가급적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SSM, 즉 기업형 슈퍼마켓이 무분별하게 진출하여 골목상권을 위태롭게 만드는 상황은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실감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이 보다 집중하고 있는 그 측면의 공포를 통해 왜 우리가 SSM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내버려 두어선 안되는지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독자를 자기가 속한 현실의 문제로 인도하고 거기에 대해 사유를 통해 참여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분명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포의 변증법'을 쓴 프랑코 모레티는 공포가 자본주의가 은밀하게 감춰둔 독소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파헤칠 수 있는 유용한 통로가 되는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통해 여실히 밝힌 적이 있지요. 그런 면에서 '더 스토어'도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소설이라면 분명 잡아내지 못할 지점까지 내려가 소비지상주의가 모토로 되어버린 현재 자본주의 가 어떻게 인간의 욕망을 형성하고 인간을 길들이며 또한 사회마저 자기 뜻대로 통제해 나갈 수 있는 지, 일상에서 얼른 깨닫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독소를 잘 짚어내주고 있으니까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의 1부와 2부를 이 소설과 곁들여서 읽으면 더욱 '더 스토어'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으실듯 합니다. '더 스토어'는 사실 거기에 나오는 장 보드리야르의 이야기를 소설로 구현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부정적인 면을 말할 차례로군요. '욕망을 파는 집' 보다 담고자 하는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그만큼 부작용도 따랐는데요, 그건 바로 이야기가 시야의 하중을 견디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작가가 공포와 사회적 주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기 싫어서인지 이 둘을 긴밀하게 엮기 위한 설정과 상황들이 곳곳에 보이는데 읽다보면 그게 오히려 이 소설의 악재로 작용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일단 등장인물의 소비가 너무 심하다는 측면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초반의 그렉 하그로브를 들 수 있을 것인데 이 사람은 건설업자로 '더 스토어'의 부지 공사를 맡는데 이야기 초반에서 '더 스토어'를 반대하는 빌과 공청회에서 대립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뭔가 둘 사이에 '더 스토어'를 둘러싸고 갈등을 일으킬 것 같은데 얼마 안가 사고로 죽어버립니다. 그것도 직접 묘사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말로 간단히 처리해 버리죠. 거기다 그 딸이 주인공의 딸에게 나타나서 '더 스토어'에 뭔가 불길한 것이 있음을 은밀히 알리는데 그것도 그것으로 그칠 뿐, 소설에서 더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물과 전개에 있어서 구멍이 불쑥불쑥 존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단단하게 잡아주지 못하고 다소 산만하게 흩어져 오히려 소설이 주고자 하는 공포조차 반감되는 면이 존재하지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요. 공포에 관해서라면 딱 이 소설을 두고 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소설에 공포를 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이게 오히려 소설을 덜 공포스럽게 만드니까요. 바로 독자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밤의 매니저' 때문입니다. 소설에는 '밤의 매니저'라는 좀비 비슷한 존재들이 나옵니다. '비슷한'이라고 굳이 말을 한 것은 소설에서도 그 정체를 딱히 단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영혼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도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두교에서 주술사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좀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죠. 제 생각으로는 '욕망을 파는 집'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긴 이들이 육신으로 계속 남아 있었다면 이런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튼 바로 이 부분이 그 자체로 좋은 소비지상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된 이 소설을 그 비판의 날마저 무디게 할 위험이 있는 초현실로 넘어가게 만드는 데요. 정작 이 존재에겐 그만한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이야기에서 이 존재를 빼버려도 전개상 별 무리가 없고 꼭 있어야할만큼 소설 주제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어쩌면 '욕망을 파는 집'과 마찬가지로 '더 스토어'에 포획된 영혼의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테지만 그렇다면 소설이 더욱 디테일하게 보여줬어야 했을 것 같아요. 그저 죽여서 되는 것으로만 끝내 버리니 영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거기다 이 존재들은 결말에서 중요한 역할까지 하는데 존재 자체의 맥락을 짚어낼 수 없으니 결말도 그렇게 확 와 닿지 않게 됩니다. 아무래도 분명 공포 효과의 증대를 노리고 나온 존재들 같은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수록 오히려 공포의 수치가 하락하도록 부추겨요.

 허다한 공포 영화와 소설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공포는 결코 졸라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섭게 만드려고 잔혹한 장면, 섬뜩한 연출, 음산한 음악을 깔아도 그 맥락이 이해되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공포는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수용자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창조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무서울 때는 언제나 보거나 읽는 자의 상상력이 적극적으로 개입될 때죠. 남이 만든 장면이 아니라 내가 연출한 장면을 통해 공포는 불현듯 도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용자의 적극적 해석 여지(우리는 이것을 공감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를 만들지 못하는 공포는 그저 '제발 무섭게 느껴줘!'라고 조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거죠. 그런 공포는 아무 것도 낳지 못하고 그저 소비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밤의 매니저'가 그러하다는 것이죠. 특히나 밤의 매니저가 되는 제이크의 경우에는 앞뒤까지 맞지 않아 더욱 곤혹스럽습니다. '더 스토어'의 점원인 그는 물건을 소소하게 훔치다가 발각되어 밤의 매니저가 되는데 앞에서 우리는 부랑자 사냥을 통해 아무리 불법적인 일이더라도 태연하게 저지르는 '더 스토어' 점원의 모습을 보면서 '더 스토어'가 얼마나 점원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게 되거든요. 그런데 높은 위치에 있는 제이크가 점포의 물건을 훔친다구요? 앞서도 말했듯이 아무래도 작가가 편하게 캐릭터를 소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어요. 이야기의 전개상 캐릭터가 막상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면 가지치기하듯 쳐내는 느낌이랄까요.

소비지상주의의 부정적인 모습을 비난하는 소설이 이번엔 저에게 소비의 남용을 지적당하고 있다니 어쩐지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런 식으로 작가는 더욱 소비의 질 나쁜 측면을 알려주려는 것일까요? 후후. 아무튼 벤틀리 리틀은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는데 좀 더 이야기를 꽉 장악하고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조금 남네요. 스티븐 킹보다 판돈이 올라가서인지 이야기에 좀 휘둘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별 다섯 개를 주는 것은 비록 90년대에 나왔으나 이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이고 63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저는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까 너무 궁금해서 중간쯤 읽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결말부터 읽고 다시 중간으로 돌아갔을 정도예요.(빌의 딸 '서만사' 때문이었어요. 저는 서만사의 변화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이 가진 또 하나의 소비 남용을 말해야 겠네요. 그건 바로 여성을 너무 수동적으로 소모한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주도적 역할은 어디까지나 남성의 몫이고 여성은 그저 아내 '지니'처럼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불안해하거나 '서만사'처럼 조종당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아요. '더 스토어'에서 여성 점원을 대하는 태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하는데 그렇게 소설이 너무 남성 중심의 시각이 아닌가 하는 텁텁함이 읽다가 들었던 것이 이제야 생각나는군요.으음, 별 하나 정도는 깎아야 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인상으로는 어쨌든 기대되는 작가라는 점에는 변함없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더 나은 모습으로 만나길 바라며 그런 면에서 최고의 호러 소설에 주는 브람스토커상 수상작(90년)이자 90년대 최고의 호러 소설중 하나로 손꼽히는 'THE REVELATION'이 발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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