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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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뜩하고 잔혹하며 믿을 수 없다. 오랜만에 돌아온,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혼다 테쓰야가 선보인 '짐승의 성'을 읽고난 느낌이다. 어디에나 흔히 있는 평범한 맨션인 선코트마치다의 한 집에서 일어난 감금 학대와 일가족 살인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사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저런 짓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섬뜩했고, 가족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혈육에게 무참히 살해 당했을 뿐만 아니라 토막 나는 것도 모자라서 살은 모조리 믹서기로 갈려지고, 피는 패트 병 같은 것에 채워지며, 뼈는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고와져 모조리 버려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잔혹했으며 이 모든 비극이 머리도 능력도 별로 뛰어날 것이 없는 한 남자에게 세뇌 당하고 몸과 마음 모두 지배 당하여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다.


 '짐승의 성'은 제목 그대로 인간미 하나 없는 짐승 같은 존재가 다른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을 자신의 성으로 삼아 가족을 점령하고 가족을 깡그리 파괴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소설엔 아직도 더욱 충격받을 사실이 하나 더 남아 있으니, 소설에 있는 이 모든 이야기가 놀랍게도 실제로 일본에서 일어난 '실화'라는 것이다. 이른바 '기타큐슈 일가 감금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바로 그 사건이다.



 2002년 3월 6일.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자신의 손녀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꽤나 오랫동안 전혀 만날 수 없었던 손녀였다. 모처럼 걸려온 전화에서 손녀는 급박한 목소리로 자신이 현재 있는 곳을 알리며 감금 당하고 있으니 얼른 도와달라고 전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할아버지는 바로 경찰에게 알렸고, 경찰은 그리로 출동하여 손녀를 감금하고 있었던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체포했다. 그러나 손녀의 아버지인 줄 알았던 남자는 아버지가 아니었고, 손녀의 아버지는 그에게 살해 당했다는 게 밝혀진다. 그러나 그것이 그 집에서 일어난 범죄의 전부는 아니었다. 더 엄청나고 놀라운 범죄가 있었으니, 그것은 체포된 여자의 일가족 6명이 모두 그 집에 감금 되어 살다가 남자에게 재산을 뺏기고 그의 전기 고문과 학대를 받아 죽거나 자신의 딸과 사위에게 살해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살해된 이들 중엔 당시 10살인 딸과 5살인 아들도 있었고, 이 딸은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까지 살해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주었다. 희생자가 가족 전원이라는 점과 아무리 세뇌와 고문이 자행되었어도 가족이 가족을 죽였다는 점 그리고 범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가족이 가족의 시신을 낱낱이 조각내고 흔적도 없이 처리했다는 점에서 인간의 금기와 상식을 가볍게 뛰어넘는 이 범죄 앞에서 일본은 오롯이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짐승의 성'은 그것을 거의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소설 속 누군가의 말처럼 진실이 드러날수록 페이지를 넘기는 게 두려울 정도로 어둡고 으스스하다. 누구나 이 소설을 읽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아마 이것이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이렇게 멀쩡한 사람들이 이토록 손쉽게 한 남자에게 자신의 더없이 소중한 가족에게 그런 참혹한 짓을 저지를 정도로 지배당해 버렸던 것일까? 얼른 '이런 일이 가능하긴 한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지만, 일본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니 아무래도 가능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고, 거기다 작가가 실제 사건에서 일어난 일들은 너무나 잔혹해서 소설에 그대로 담는 것은 무리라 독자를 위해 그 수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많은 소설가와 시나리오 작가가 한탄한 것처럼 정말 현실은 인간의 상상력을 가볍게 뛰어넘는구나 생각되는 한 편, 짐승과 인간의 차이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의 두께처럼 얇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희생된 이들이 평범한 가족이고, 더구나 한 사람은 경찰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렇게나 짐승으로 추락하는 일이 그렇게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을 것 같고, 어쩌면 인간성을 포기한다는 것이 그토록 쉬운 일이기에 인류는 온갖 사상과 제도를 두텁게 만들어 짐승으로의 퇴로를 두텁게 차단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세상이 불안하고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가족에게 기댄다.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인 혈연으로 만들어진 유대라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하기에 가장 강고하고 신뢰할만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은 그 가족이란 것마저 너무나 손쉽게 붕괴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자식이 부모를 감시하고 학대하며 고문에 살해까지 서슴없이 한 것을 보노라면 가족의 그런 강한 유대도 어쩌면 그저 우리의 상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절로 드는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이 일본에 가져다 준 충격과 공포가 너무나 컸기에 작품으로 사건을 다룬 게 혼다 테츠야의 '짐승의 성'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차례 논픽션과 픽션으로 만들어졌다. 만화 '사채꾼 우시지마'도 세 권에 걸쳐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혼다 테츠야는 왜 이 사건을 소설로 만든 것일까?


 소설을 흔히 사회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소설이 동시대와 조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떤 소설이든 나름대로 그 시대상에 대한 상념과 발언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이야기를 짓고 나눈다는 것은 고대로부터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에 일차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 본질적인 마음은 지금의 소설가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들역시 경험의 형태를 가진 외적 자극이 글을 촉발 시켰을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짐승의 성'도 현재 일본의 어떤 모습이 혼다 테츠야로 하여금 쓰게 만든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수긍이 가능하다면, 과연 현재 일본의 무엇이 '짐승의 성'을 쓰도록 만든 것일까? 이것은 소설의 내용을 보면 어느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바로 갈수록 우국화 되고 있는 아베 정권에 대해 높아져만 가는 일본 국민의 지지율 상황이 혼다 테츠야로 하여금 '짐승의 성'을 배태하도록 한 것이라고 말이다.


 아베 정권을 받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영국의 브렉시트를 가져 온 마음 그리고 미국에서 트럼프를 당선시킨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현재 어렵고 불안하게 살게 된 이유를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족속들' 탓이라 여기고 있으며 그것들을 내 눈 앞에서 치워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지지를 한 것이다. 이 모든 경향들이 하필이면 한 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국가들에게서 더 현저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박정희 향수에 빠진 자들과 똑같이 화려했던 과거의 옛 영광을 회복하여 보다 더 강대한 국가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영락한 현재의 처지를 상상적으로 잊고자 하는 마음도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알폰소 쿠아론의 아들인 조나스 쿠아론이 감독한 '디시에트로' 영화는 이런 심리를 잘 보여주는데, 거기서 멕시코 밀입국자들을 총으로 마구 학살하는 미국 백인은 집도 없이 사냥개 하나만 데리고 낡은 차 하나를 타고서 황야를 떠도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 그는 한없이 전락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자기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멕시코의 밀입국자들을 처단하는 것으로 치유한다. 그것이 치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멕시코 보다 우월한 미국인이라는 사실 뿐이다. 그런데도 살인까지 포함해 모든 것이 정당화 된다. 일본도, 영국도 그리고 미국도 상식적인 차원에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하고 있는 근본엔 바로 이런 자의 초상이 있는 것이다. '짐승의 성'은 바로 그런 일본인의 초상을 재현하고, 그 근원에 있는 저열한 심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 부분은 아직 식구들이 본가와 마치다를 오갈 때 이야기라서 저는 그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의 모르지만.... 어머니가 직접 말씀하셨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요시오 씨와 이어지는 일이 자신의 서열을 우위로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 어머니 나름 생각해서 그러신 게 아닐까 하고..."

 모든 암컷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한 마리의 강한 수컷에게 붙으려고 한다. 그 경쟁에서는 부모자식이나 자매라는 관계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것이 제대로 된 인간사회의 구도일까.

 이게 짐승의 무리와 다른 게 뭐가 있을까.(p. 193)


 이렇게 내가 달라 붙으려는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강한 무엇에 달라 붙어 스스로를 상상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여기고 싶은 게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현재 일본의 적나라한 초상이라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 혼다 테츠야는 다시 한 번 '기타큐슈 일가 감금 살인 사건'을 세상 속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실제 사건에는 없었던, 그리고 이야기를 선코트마치다와 양분하고 있는 '신고의 가정'에서 나타난다. 소설은 아주 단란한 신혼 생활을 보내고 있는 신고와 세이코 가정에서 시작된다. 그러다 불쑥 세이코의 아버지가 동거하게 되는데, 신고는 이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세이코의 아버지인데도 자기가 보기엔 일도 없이 빈둥거리는 게 영 보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내쫓으려 한다. 나는 이것이 그저 미스터리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나온 설정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런 신고의 반응은 현재 일본 내로 유입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제 3 세계 사람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선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에게 그들은 불쑥 들어와 원래는 자기 자리여야 했을 곳을 빼앗은 사람들이고, 자기보다 훨씬 못한 일들을 하는 주제에 감히 자신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자들이다. 신고의 생각 그대로다. 그래서 신고가 그랬듯이, 인권이든 뭐든 필요없고 그저 내 눈 앞에서 얼른 치워주기를 원한다. 이런 마음들이 아베를 지지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그런 마음들이 점점 주류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혼다 테츠야는 여기에 커다란 반전을 가져 온다. 스포일러가 되기에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그들이 '훼방자가 아니라 실은 구원자였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짐승의 성'은 혼다 테츠야의 경고로 들린다. 그런 식으로 저열한 욕망에 기대어 자꾸 상식적이지 않은 일을 방치하고 불합리한 행위를 방조하며 비이성적으로 거들고 나서기까지 하면 결국 당신들도 '기타큐슈 일가 감금 사건'의 희생자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바로 다음의 부분에서 그 마음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장기간에 걸친 감금이라면..."

 "'학습성 무력감' 이야긴가요?"

 그렇다. 바로 시마모토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장기간 감금되어 폭력을 당하게 되면 사람은 점차 빠져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결국은 도망칠 기력조차 빼앗기게 된다는 학설이다.(p. 164)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모든 범죄에 이유를 밝힐 가치가 없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은 범죄의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범죄가 발생하는 정신적, 사회적 구조를 해명하고 범죄자를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인간은 무서운 것이 아닐까.

 자신이 피해자가 되는 건 당연히 무섭지만, 가해자가 되는 것도 똑같이 무서운 일이다. 자기 안에도 범죄의 싹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은 괜찮더라도 언제 자신도 범죄자가 될 지 모른다. 그래서 알고 싶은 것이 아닐까. 자신과 범죄자는 뭐가 다른가. 범죄자가 되는 사람과 되지 않는 사람과의 경계선은 어디에 있는가.

 가장 무서운 일은 그 경계선이 없는 것이다. 우메키 요시오를 체포하고 범행 이유를 자백시켜서 그의 지난 인생을 바라보았을 때 자신들과 요시오 사이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이다.(p. 204)


 소설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그 경계선은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이 소설이 더 공포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학습성 무력감'은 그대로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나 아렌트가 악의 본질이라고 보았던 '무사유'와 다를 바 없다. 20세기 이후, 인류 최대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유태인 학살은 바로 이런 독일 인민의 무사유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에서 잘 보여줬듯이 당시 나치 정권을 탄생시킨 독일 인민의 마음은 현재 일본 아베 정권을 지지하고 인민의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 때 독일 인민이 자신의 무사유 때문에 자신도 희생자가 되었듯이, 일본도 같은 운명의 길을 걸을지 모른다. 내 몸 하나 편하자고 다른 이의 고통을 못 본 척 할때, 시대가 날로 나쁘게 전락해 가는 것을 모르쇠 할 때, 무사유 속에 드리워져 있는 비극, 다시 말해 그런 자들 역시 반드시 희생자가 된다는 불길한 운명 역시 점점 현실화가 된다는 것을 역사는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으니까. 이것은 '기타큐슈 일가 감금 살인 사건'의 과정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집약된 모습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앞에 나와야 했던 것이다. 나의 상상적 우월감에 도취하기 위하여 타인에 대한 적대와 학대가 날로 증가되고 있는 이 시기에 하나의 준엄한 경고처럼 말이다.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에도 '박사모'라든가,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난리났네' 하면서 웃은 당시 청와대 대변인 하며 지금도 여전히 구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나 청와대의 7시간에 대해서 철저히 모르쇠 하는 사람들과 거기에 맞장구 치는 사람들을 보면 기타큐슈 일가의 참극은 그리 우리와 멀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그런 자를 볼수록 우리는 더 많이 샤유해야 하고, 약하고 아픈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광화문 광장의 백만 촛불이 분명히 보여주었듯이, 타인을 구하는 것이 곧 나를 구하는 일이다. '짐승의 성'이 아니라 '인간의 광장' 되는 길은 이리도 단순하다. 진리는 단순하다. 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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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 2016-12-2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사건을 다룬 게 혼다 테츠야만이 아니었군요. 이 작품은 너무 잔인해서 두번 다시 읽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사회적으로 읽어내신 글을 보니 언젠가 한번더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ㅎㅎ

ICE-9 2016-12-23 16:01   좋아요 0 | URL
일본 사회에 안긴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평범했던 사람들이 그것도 가족에게 이런 잔인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다니 읽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아마도 생각이 사회적인 걸로 나아간 것 같아요. 이런 사건이 일본인 특유의 권위 순종적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체면을 중시하는 특성 탓인지, 아직도 이들의 행태가 잘 이해 안됩니다. 그래서 저 역시 또 읽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2016-12-24 0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4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5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7-01-0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었군요. 그냥 추리 소설이라고 지나쳤는데.
제 직업 때문에 이런 관련해서 생각이 점점 많아집니다. 인간을 극단으로 모는 것들에 대해.

헤르메스님, 너무 오랜만에 들리네요.
새해에는 종종 들리겠습니다, 평온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2017년 되세요.
변함없는 애정을 보냅니다~ (라고 말해도 되는 사이죠, 우리?)

ICE-9 2017-01-18 15:02   좋아요 0 | URL
와, 마녀고양이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댓글은 따로 남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녀고양이님이 글을 올릴 때마다 들러서 읽었었는데 많이 바쁘신 것 같더군요. 새해엔 좀 여유가 많이 생기셔서 마녀고양이님 글을 많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 역시 변함없는 애정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