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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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도록 기다렸던 책이다.

 예전에 스페인인 교수로부터 라틴어를 배운 적이 있었다. 에스파이나와 로마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조금은 이상한 일이었지만 교수는 로마에 반해 라틴어를 전공으로 삼은 사람이었다. 덕분에 로마에 대한 이야기를 라틴어 강의보다 더 많이 들었다. 저음이 참 매력적인 사람이라 그 목소리로 황혼녘의 창문을 배경으로 키케로의 산문을 낭송할 땐 참으로 멋져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하루는 로마에 대해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 하나 있다면서 소개해줬는데 그것이 바로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였다.



 콜린 매컬로가 신부와 사랑에 빠진 한 여인의 격정적인 로맨스를 보여줬던 '가시나무새'의 작가라는 걸 아는 우리들은 그녀가 로마에 대한 역사소설을 썼다는 것이 얼른 믿겨지지 않았고 더구나 그 때까지만 해도 로맨스와 역사 소설은 양 극단에 서 있는 문학이라고 생각했기에 과연 잘 썼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교수는 그런 우리의 의심이 무색하게도 로마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라이벌 관계였던 마리우스와 술라의 이야기를 꽤나 현실감 넘치게 잘 담고 있다는 둥 칭찬이 자자했다. 그래서 나도 한 번 찾아 읽어볼 생각을 했는데 그 때는 이미 절판된 뒤였다. 어쩔 수 없이 교수의 말을 검증할 기회는 갖지 못했고 시간이 흐르고 나도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어느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최근에 우연히 문학동네 카페에 들렀는데 거기서  이 책의 블라인드 서평단을 모집하는 글을 보게 된 것이다. 블라인드 서평단이니만큼 당연히 작가도, 진짜 어떤 책인지도 밝히지 않고서 그저 약간의 내용만 소개해 놓았을뿐이었는데 그것만 보고도 난 그 책이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임을 이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냐고 댓글로 남겼더니 담당자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걸 보고 '이제야 이 책을 보게 되는구나!'하고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른다. 다행히 서평단에 선정되었고 그렇게 드디어(!) 읽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교수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검증의 기회를 가진 것이다.(생각난 김에 스페인에서 잘 살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교수님^^)


 여기서 '그래 기회를 가져보니 어땠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교수의 말대로였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제 겨우 1권을 읽었을뿐이지만 그래도 너무 재밌었다. 오래 기다렸던 것이니만큼 좀 느긋하게 즐기고 싶었는데 그런 내 맘과는 다르게 페이지가 어찌나 휙휙 넘어가던지 자못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과연 '가시나무새'로 3천만부를 팔아치워 대중성을 입증한 콜린 매컬로다웠다. 그런데 왜 이렇게 걸신들린 듯 읽게 되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건 생동감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작품의 캐릭터나 상황의 묘사가 너무나 치밀하고 현실감 넘치면 '작품이 살아있다!'라는 말을 곧잘 하곤 한다. 내가 보기에 그 말은 딱 '로마의 일인자'를 위한 말이다. 캐릭터도, 그들이 활동하는 로마라는 공간도, 그들이 활약하는 이야기도 모두 4D로 체감하는 것처럼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 콜린 매컬로의 철저한 고증과 상상력이 제대로 화학작용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원래 콜린 매컬로는 한 작품에 꽤나 많은 공을 들이는 작가로 유명하다. '가시나무새'를 쓸 때도 그녀는 그 작품을 4년이나 구상했으며 다 쓰고 나서도 마음에 안 들어 10번이나 고쳐썼을 정도로 완벽주의를 고집했다. 그건 이 '로마의 일인자'도 마찬가지다.


 '가시나무새'를 냈던 시기에 자기처럼 '러브 스토리'란 작품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에릭 시걸에 영향을 받아(에릭 시걸은 원래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당시엔 라틴 문학을 강의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영향으로 콜린 매컬로는 이 작품 이전에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트로이의 노래'도 쓴 바 있다.) 쓰게 된 이 작품을 위해 콜린 매컬로는 무려 13년이나 준비했다.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로마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으며 때로는 나중에 나올 술라의 부하 장군인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의 미트라다테스 원정을 조사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터키를 관통해 17,700km를 답사하기도 했다. 이 책이 로마인들 삶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치밀하게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열정과 노력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건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로마사에 관심이 있다면 마리우스술라란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케사르의 전 세대로서 케사르에서 완성되는 1인 황제라는 전제왕정 시대의 맹아가 바로 이들에게서 발아되었으니까 말이다. 즉 원로원 중심의 공화국에서 황제가 다스리는 왕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가장 중심인 인물인 것이다. 마리우스는 군인이 천직인 사람으로 오랜 전장 경험을 통해 군단의 중심을 120명의 마니풀루스에서 600명의 '코호르트'로 재편하여 후일 케사르가 제국을 건설하는데 가장 밑받침이 되었던 무장보병군단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며 술라는 비천한 몸으로 태어나 오로지 자신의 지략과 능력으로 로마의 일인자에 올라 수많은 정복활동으로 제국의 기틀을 다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국의 기틀을 다졌지만 원래는 둘 다 모두 결코 그만한 자리로 나갈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마리우스는 엄청난 재산에다 뛰어난 군인의 자질마저 갖췄지만 그리스어도 제대로 못하는 촌놈으로 취급받아 집정관이 되려는 자신의 야망을 번번이 접어야 했고 술라는 노예나 다를바 없는 천한 삶의 환경 때문에 엄청난 재산이 있어야만 가능한 로마 정계 진출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그 한계를 극복한다. 그리고 로마인 모두가 오매불망 바라는 일인자 '프린켑스'의 자리에 그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간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마리우스보다 술라가 훨씬 입지전적이다. 마리우스야 원래 가진 것이 많았지만 술라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후일 생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었던 마리우스를 물리치고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며 결국엔 독재관이 되어 스스로 황제라 칭하지 않았을 뿐 황제나 다를 바 없는 권력을 휘두르게 되니 인생이 정말 드라마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술라의 생애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밑바닥 모습에서 시작하는 이 '로마의 일인자' 이야기가 여지없이 흥미로울 것이다. 더구나 콜린 매컬로는 더없이 생생하게 그를 그려내고 있으니. 하지만 모르는 이들에게는 좀전에 내가 술라에 대해 한 말이 분노를 자아낼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의 술라는 그리 공감할만한 인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추천사조차 마리우스를 카이사르의 선구자라는 둥 주인공처럼 대우하고 있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확실하게 드러나겠지만 주인공은 단연 술라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콜린 매컬로는 여기서 술라를 전혀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실제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갈 중심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엔 좀 냉정하다고 싶을 정도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아무래도 역사적 현실을 고려한 탓이 아닌가 한다. 당대 로마에서 그가 장차 걸어가게 될 삶의 모습과 현재 그의 처지는 너무나도 차이가 있기에 분명 그만한 높이를 수직 상승하려면 부정한 수단을 취하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술라는 독재관이 되었을 때 무려 9천명이나 되는 정적들을 학살함으로써 그의 잔혹한 면모를 드러낸 바도 있어서 그런 그라면 충분히 사용할만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마리우스가 주인공으로 강조될만큼 술라가 너무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라 앞으로 이 술라에 대한 독자들의 공감을 어떻게 얻어내느냐가 콜린 매컬로의 과제로 보인다. 내겐 시리즈에 대한 참으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어쨌든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조차 자세하게 소개하지 않았던 마리우스와 술라의 이야기를 이토록 상세히 들을 수 있는 것은 로마 제국 초창기의 모습을 보다 많이 알고자 하는 이들에겐 확실히 더없는 즐거움이다. 더구나 그 내면의 한 올 한 올마저 세밀하게 길어내어 그들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드니 마치 그들이 채취라도 맡으려는 것처럼 책에다 더 코를 박게 된다. 


 솔직히 나는 마리우스와 술라를 삼국지의 주유와 공명 같다고도 느꼈다. 어디까지나 인품이 아니라 승패만 가지고 생각한 것이지만  분명 마리우스는 공명에 대해 주유가 이렇게 말하며 한탄했던 것처럼 똑같은 기분을 술라에게서 느꼈을 것이다.

 "하늘이 이 주유를 내리어 천하를 평정하고자 했다면 어찌하여 또 공명과 같은 자를 세상에 허락하였을까!"


 어쩌면 시오노 나나미도 콜린 매컬로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기분을 공유했을 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는 콜린 매컬로가 이 책을 썼을 때 왜 출판업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을까 아쉬워할 것임에 틀림없다. 콜린 매컬로가 고백하기를 '로마의 일인자'를 썼을 때 당시 매컬로의 출판업자들은 한결같이 이 책을 미워했다고 한다.

 '우리는 로마 이야기 따윈 관심 없어요. 우리가 원하는 건 오로지 가시나무새 아들의 이야기라구요!'


 하지만 매컬로는 굴하지 않고 이 이야기를 펴냈고 이제 사람들은 가시나무새 아들 이야기보다 로마의 일인자 뒷 얘기를 더 원하게 되었다. 원래 매컬로는 케사르의 암살을 끝으로 '로마의 일인자'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었지만 독자의 성원으로 계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모두 일곱 권의 '로마의 일인자' 시리즈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원해도 그 뒷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올해 2015년 1월 그녀는 세상과 작별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대표작 '가시나무새' 머리말엔 다음과 같은 가시나무새에 대한 켈트족의 전설이 인용되어 있다.

 '가시나무새는 죽기 직전 일생에 단 한번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운다. 그 새는 알에서 깨어나 둥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단 한 번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가시나무를 찾아다닌다.'


 '로마의 일인자'는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녀가 이 작품에 쏟은 역량과 나타난 결실을 볼 때, 어쩌면 이 '로마의 일인자'야말로 그녀가 단 한 번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찾아다녔던 가시나무는 아니였을까 생각하게 된다.

 많이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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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자리 2015-07-05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로마인 이야기를 읽을 때, 읽는 재미는 물론이고 시오노 나나미가 참 부러웠어요.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것을 결국 해냈으니까요.

혹시라도 끝내지 못 할까 봐 전권을 다 쓸 때까지 병원에도 가지 않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정말 부럽더라고요.

<로마의 일인자>가 매컬로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것은 너무 아쉽지만 이렇게 용기와 실력을 모두 갖춘 분들은 정말 존경스러워요. 이 책, 빨리 읽고 싶네요 ㅎ

ICE-9 2015-07-05 22:21   좋아요 0 | URL
로마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정말 강추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로마판 삼국지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재미와 로마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한 작품에 이만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작가들이 부러워지는군요.^^

stella.K 2015-07-06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콜린 매컬로우가 타계했군요. 그래서 리뷰 제목을 그리 정하신 거로군요.

저는 의외로 예전에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재미없게 읽은지라 이 책 블라인드 서평단 모집도
별로 관심없었어요. 제가 역사 쪽은 또 약한 편이라. 근데 은근 후회되네요.ㅠ
가시나무 새는 영화도 보고 책으로도 읽었는데 도통 생각이 안 나네요.
저도 조만간 읽어 봐야겠네요.^^

ICE-9 2015-07-07 01:12   좋아요 0 | URL
네, 매컬로가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 아쉬움없이 떠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 본 제목입니다^ ^
로마의 일인자는 사실 역사를 전혀 몰라도 즐기기에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해요. 사실 저도 시오노 나나미의 책은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없네요^ ^; 그랬기에 로마의 일인자는 그 시오노 나나미에게 부족한 부분, 그러니까 쉽고 즐겁게 그리고 아주 생생하게 로마의 이야기에 빠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이 소설을 읽었다면 질투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었던 것이죠.^ ^ 그렇지 않아도 저 역시 `가시나무새`의 기억은 아련하기만 해서 언제고 꼭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