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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BOOn 3호 - 2014년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월간지)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BOON 3호가 나왔다. 시작은 오사카다. 이제 오사카하면 내게는 애니메이션 '킬라킬'의 '오사카'이다. 난 '천원돌파 그렌라간'을 좋아하는데 그 팀이 나와서 '트리거'란 독립 제작사를 세웠고 거기서 첫 발표한 작품이 바로 '킬라킬'이다.
지금 장동건 주연으로 개봉중인 '우는 남자'의 원작인 '크라잉 프리맨'의 작가 이케가미 료이치의 1974년작 '남조'를 바탕으로 나가이 고의 '큐티 하니'를 믹스했다고 할만한 작품인데 꽤나 물건이다. 그렌라간이 기조로 내세웠던 열혈물을 좋아한다면 분명 좋아할만한 작품이다. 스토리도 좋다. 무엇보다 도무지 예측 불가한 전개가 마음에 든다. 아무튼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고등학교 혼노지를 무대로 펼쳐지는데 그 혼노지를 다스리고 있는 '일진'이라고 할만한 키류인 사츠키는 일본 전국 재패를 위해 무장 수학 여행을 일으킨다. 한마디로 자신의 휘하에 있는 무장 학생들을 수학여행이란 명목으로 파견하여 다른 도시의 고등학교를 점령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사카'다. 역시 상인의 도시답게 오사카는 돈으로 대항한다. 엄청난 돈을 뿌려 오사카 시민 전체를 대항군으로 만든다.(만화적 과장이 무제한적으로 펼쳐지는 게 이 애니메이션의 장점이다.) 하지만 키류인 사츠키는 돈보다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공포라며 그것이 진실임을 보여주겠다면서 압도적인 힘을 과시한다. 정말로 목숨의 위협을 느낀 오사카 시민들은 돈을 내버리고 뿔뿔이 흩어진다.
이 장면이 인상에 남았던 이유는 이 에피소드가 바로 오늘의 일본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분명 그동안 일본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돈'이었다. 하지만 3.11을 이후로 그건 달라졌다. 이제 일본 시민들을 지배하는 건 '공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베 정부는 돈으로 그 공포를 누르려 하고 있다. 이 오사카 에피소드는 그것에 대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돈 따위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공포 앞에서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이것이다.
푸코는 80년대 테러리즘의 증가를 목도하면서 장차 '시큐리티'가 법을 능가할 것이라 보았다. 분단체제인 우리에겐 늘 '시큐리티'가 법을 능가했지만('헌법' 위에 존재하는 '국가보안법'은 거기의 가장 대표적인 증거 아닐까? 그 '국가보안법'을 지탱하고 있는 건 오로지 북한으로부터의 시큐리티 확보 하나 뿐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아무래도 예언적 상황이었나 보다. 아무튼 현재 이러한 푸코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9. 11 이후의 미국, 3. 11 이후의 일본 그리고 유럽 할 것 없이 지금 최대의 화두는 '시큐리티의 확보'이니까 말이다. 그 앞에서 법은 간단히 무시된다. 저 미국의 국토안보부가 그렇고 우리나라의 국정원이 그렇듯이. 그런데 우리나라는 최소한의 시큐리티도 확보하지 못하면서 법만 무시하니 문제다.
NLL 대화록 유출은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렸지만 유출한 당사자들은 모두 무혐의 처리 되었고, 세월호로 수장된 수백명의 희생자들에 대해선 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세월호'는 시큐리티 보장에 있어 이 정부가 너무도 무능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런 주제에 법질서마저 마음껏 무시하고 있으니 분노가 치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그 분노의 표출이 될 것이라 여겼으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본다. 차후에 도 여전히 시큐리티의 불안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분명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BOON 3호에 대한 리뷰인데 오사카가 첫머리부터 나오는 바람에 그만 이야기가 딴 데로 새고 말았다. 각설하고, BOON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는 부분은 역시나 메인 요리라 할 수 있는 특집란이다. 이번엔 '오타쿠'다. '오타쿠의 생태학'이란 제목의 특집란에는 모두 네 개의 꼭지가 있는데 <오타쿠? 오타쿠!>라는 제목의 첫 꼭지는 오타쿠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해주고 있고 <취미와 오타쿠>라는 제목의 두번째 꼭지는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취미검정열풍'을 통해 사실 오타쿠란 취미검정을 즐기는 보통의 일본인과 다를바 없다면서 비정상인으로 보는 오타쿠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고 있으며 세번째인 <'여성 '오타쿠로서 동인녀>는 동인녀를 대상으로 오타쿠의 생태를 관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인데 ,<소토코모리, 일본 바깥을 떠도는 사람들>로 최근 증가하고 있는 태국이나 인도와 같은 물가가 싼 나라에서 적은 비용으로 장기간 체류하면서 유랑하는 '소토코모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 '소토코모리'에 대해서도 일본 주류의 시각은 오타쿠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데 이 글은 그것의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여 그 시각을 용해시키고 있다.
개인적으로 기대하기로는 이번 '오타쿠' 특집은 저번호의 3. 11과 연계되어 새로운 대안적 정체성으로서 '오타쿠'를 탐색하는 것은 아닐까 여겼었는데 뒤의 두 글에서도 어느 정도 그런 것이 감지되기는 했으나 보다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아무래도 일본하면 역시 가장 관심있는 대상이 '오타쿠'이기에 그 관심에 대응한다는 측면에 더 중점을 두고 기획된 특집이 아닐까 싶다.
BOON을 보는 또 하나의 이유인 작가론에서는 이번엔 '무라카미 하루키'와 '아베 고보'를 다루었다. 최근에 '불타버린 지도'를 읽고 넋이 나가버릴 정도로 좋아하게 된 작가가 바로 아베 고보였으므로 반가운 글이었다. 아베 고보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방가르드적 성향에 대해 말하고 있어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하루키에 대해서는 웬만큼 읽었다 여겼는데 동성애에 대한 부분은 이전에 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어서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이 코드에 맞춰서 다시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생겼다. 더하여 일본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괴'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에세이인 '요괴와 공존하는 일본'도 재밌게 읽었다.
BOON에서는 '일본문학출판동향'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나도 읽었던 윤여일의 '사상의 번역'에 대한 소개가 나와 반가웠다. 글의 대부분은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에 할애되고 있는데 나 역시 3. 11 이후의 오에 겐자부로가 궁금한 지라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또 한 권의 BOON과 만나 정보에 대한 갈증을 해갈한다. 일본 문화에 대해서 깊이 있게 들여다 보기엔 유일한 매체라 되도록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읽고나면 늘 다음 호의 특집은 무엇일지 궁금해 지는데 BOON을 아끼는 독자에 대한 작은 배려로서 말미에 '예고편' 같은 것을 좀 실어주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