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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13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정연호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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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해서 '개의 심장'은 '거장과 마르가리타'로 뒤늦게 불가코프를 알게된 저에게 있어 오래도록 꼭 한번 읽어 보고팠던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말로 유일하게 만나볼 수 있는 96년인가 열린책들에서 발간한 '개의 심장'은 벌써 절판의 운명을 걸었고 중고로도 구하기 어려운 참 만나보기 힘든 책이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개의 심장'이 특히나 반가웠습니다. 애타게 찾을 땐 한 권도 안 나오더니 창비에서도 '개의 심장'이 나와 약간 헛웃음도 짓게 만들더군요.

 

 

 아무튼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벌써 영화로도 몇 번인가 만들어지고(그 중엔 '제7의 봉인'에 나왔던 막스 폰 시도우가 개-인간을 만드는 필립 필리뽀비치 교수로 분한 것도 있습니다.) 소설에서 필립 필리뽀비치 교수가 늘 아이다의 아리아 한 소절을 흥얼거리는 것처럼 오페라로도 몇 번 만들어진 만큼 어느정도 작품성은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원래 불가꼬프는 오페라 가수를 꿈꾸었다고 하죠. 필립 필리뽀비치가 흥얼거리는 오페라의 아리아는 그 꿈의 잔재인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개의 심장'이 오페라로 만들어진 것을 보았다면 불가꼬프가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런 이유로 필립 필리뽀비치를 작가의 페르소나로 이해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특히나 그가 개-인간 '샤리꼬프'를 자신의 아파트에서 결정적으로 내치는 이유가 샤리코프가 교수에 대해 중상모략 했기 때문임을 보면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당시의 불가꼬프도 근거없이 쏟아지는 음해와 온갖 중상모략 때문에 가장 힘들어하고 있었으니까요. 필립 필리뽀비치의 샤리꼬프에 대한 분노엔 어쩌면 불가꼬프가 당대의 소련에게 보내는 분노가 그대로 투영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과연 개의 시각으로 진행되는 첫 장면부터 절 휘어잡더군요. 불가꼬프는 상상력이 참으로 왕성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개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없을테죠. 구정물 쓰레기통을 뒤지다 요리사로 부터 옆구리에 뜨거운 물세례를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굶주림을 면할 조금의 음식을 위해 이리저리 구걸하고 눈치보고 기대하고 실망하는 개의 심리가 참으로 리얼하게 느껴졌습니다. 보통 '개의 심장'은 혁명에 대한 반감을 노출시킨 작품이라고 평가받습니다만 저도 그것과 다른 의미를 잡아내기는 어렵더군요. 그만큼 불가꼬프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불가꼬프는 개인적 경험으로 인해 혁명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죠. 아시다시피 그의 고향은 키예프입니다. 그는 거기서 원래는 의사가 되었었죠. 그러다 세계 제1차 대전이 터지고 불가꼬프는 야전병원에서 의사가 되어 러시아 남부 전선으로 참전합니다. 글고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발하고 불가꼬프는 갑자기 얻은 병으로 그제서야 군복무에서 해제되어 고향인 키예프로 돌아옵니다. 오래도록 떠나있었던 정겨운 고향이었지만 예전의 평온했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 고향은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의 혁명이 맞물려 독일 점령군의 어용 정부와 그로부터 독립을 쟁취해내려는 민족주의자들 그리고 러시아 혁명주의자들과 거기에 맞서 제정 러시아를 다시 복권시키려는 백위군들이 굶주린 개들이 던져진 뼈다귀 하나를 차지하려고 서로 물어뜯고 싸우고 있었으니까요. 거기서 불가꼬프는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지 제대로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개의 심장'에서 보이는 혁명에 대한 반감의 실상은 바로 그거예요. 외부의 힘으로 사람을 억지로 바꾸려 드는 모든 것을 그는 거부하는 것이죠. '개의 심장'도 정확히 그런 입장에서 쓰여졌습니다.

 

 샤리꼬프가 만들어기지 전, 필립 필리뽀비치 교수의 말엔 이러한 반혁명적인 것들이 넘쳐나지요.

 

 "우리 아파트에서 더 좋아지는 쪽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거요. 그래요. 저 가수들을(조금 전 장면에서 방 일곱개를 혼자서 쓰고 있는 필립 필리뽀비치에게 방을 인민들과 나눠써야고 주장했던 볼셰비키들을 뜻함.) 진압하기 전까지는 다른 아파트도 모두 매한가지야! 오로지 그들이 자신의 연주회를 중지하기만 하면, 상태는 저절로 더 좋게 변화한다고!"  (p. 77)

 

 그건 필립 필리뽀비치 교수가 언제 개-인간 '샤리꼬프'를 경멸하는지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필립 필리뽀비치가 샤리꼬프를 경멸할 때는 대부분 샤리꼬프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말이나 행동을 무분별하게 따라할 때입니다. 샤리꼬프가 카우츠키의 책을 읽는다고 말했을 땐 놀라고 새삼 대견하게도 여기는 필립 필리뽀비치는 그 책을 읽고 내놓는 의견이라는게 당시의 볼세비키리면 늘 내놓는 의견을 그대로 따라한 것 뿐이자 네 생각을 말하라면서 대놓고 경멸하게 되지요. 볼셰비키들로 부터 한 자리를 얻어 청소과장이 되었을 때도 도시를 돌아다니며 고양이를 잡아들이는데(샤리꼬프는 원래 개였을 때부터 고양이를 정말 싫어했습니다. 그가 인간의 두뇌를 가졌으면서도 고양이를 증오하는 것은 필립 필리뽀비치 말마따나 아직 그의 인간 두뇌가 채 접지되지 못하여 남아있는 개의 잔재인 것이죠.) 교수가 그 잡은 고양이들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샤리꼬프는 그걸 다람쥐 털로 만든 외투인 양 속여서 노동자들에게 월급 대신 지불한다는 말을 듣고는 경멸하게 됩니다.(원래 이 소설에 이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영어 번역을 보니 'credit scheme' 이란 말이 있더군요. 뒤에 실린 '악마의 서사시'를 보면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내가 월급을 돈으로 받지 못하고 성냥이나 포도주로 받는데 그래서 'credit scheme'이란 월급 대신 받게 되는 물건이 아닐까 여겨졌고 그걸 비싼 다람쥐 털 외투로 속여 노동자들에게 파는데 샤리꼬프가 일조하고 있으므로 필립 필리뽀비치가 경멸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이런 식입니다. 혁명을 통해 마치 대단한 존재라도 된 듯 뻐기지만 정작 하는 것이라고는 무분별하게 남의 것을 따라하거나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추악한 본성을 제한없이 드러내고 있으니 필립 필리뽀비치는, 그리고 불가꼬프는 혁명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것이죠. 하지만 필립 필리뽀비치 역시 그 보여주는 입장엔 그리 썩 동의하지 못하겠어요. 일단은 엘리트 주의에다 제정 러시아적 귀족 취향에 꽤 강한 향수를 가지고 있거든요. 하긴 불가꼬프 자신도 그랬죠. 그역시 제정 러시아의 복권을 위해 싸웠던 백위군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이러한 혁명에 대한 경멸과 제정 러시아에 대한 은근한 향수를 내뿜고 있는 '개의 심장'은 1920년대의 소련에서 당연히 출간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지어진 지 60년이 지난 1987년이라더군요. 이것만으로도 이 작품이 가히 얼마나 혁명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잘 나타내고 있는 것 같네요.

 

 

 아무튼 여기까지가 드디어 만나게 된 '개의 심장'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느낌입니다만 이렇게 만나게 된 것치고 열린책들판 '개의 심장'은 번역이 참 많이 아쉬운 소설입니다. 제가 러시아어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직역 하느라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직역도 좋지만 그래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문장을 좀 자연스럽게 다듬거나 의미가 정확히 통하도록 번역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참 많이 남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끌림' 이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필립 필리뽀비치 교수의 말에서 종종 등장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요. 물론 책에서도 별다른 설명도 안되어 있고 말이죠. 일례로 그 끌림이란 말은 이렇게 나옵니다.

 

 "이제 더 이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구나! 끌림...!"(p. 163)

 

 "이렇게 내 경우로 이미 증거가 나왔습니다. 이야기하세요! 이 쁘리오브라젠스끼가 말했다고. 끝났어요! 끌림!"

 "끌림!"

 그는 다시 반복해서 외쳤다.(p. 189)

 

 "아주 특별하게 예외적인 병신 같은 놈."

 "그러나 그가 누굽니까? 끌림! 끌림!"

 교수는 소리쳤다.

 "끌림 추군낀!"(p. 192)

 

 이렇게 교수의 입버릇인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데 정작 그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창비 판에는 뭐라고 되었는지 심히 궁금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영문판에는 'Klim'이라 되어 있더군요. 영어를 보니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짐작 되었습니다. 물론 전혀 아무런 뜻이 없는 러시아 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요. 아무튼 Klim은 만트라의 하나로써 주로 욕망 혹은 정욕의 씨앗을 일컫는 것이더군요. 그래서 필립 필리뽀비치가 인간이 다시 젊어지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무리하게 개에다 인간의 뇌하수체를 연결한 결과 '샤리코프'를 태어나게 했으므로 바로 그 욕심, 혹은 욕망을 스스로 한탄하는 것이 아닐까(혹은 그런 의미로 불가꼬프가 쓴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보다 쉽게 독자에게 전해지도록 하기 위하여 '업보'란 말로 번역해보면 어떨까 싶어졌습니다. '업보구나!' 혹은 '업보야!' 이런 식으로...

 

 아무튼 이런 식으로 매끈하지 못한 표현, 자연스럽지 못한 문장 그리고 얼른 이해되지 않는 모호한 단어들이(이를테면 '덧신' 같은 것. 혹시 밸린키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한데 고유명사로 써 주었으면 좀 더 명확하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장화를 신어야 하는 부분에 덧신을 신어라는 표현이 있어 의아하기도 했거든요.) 좀 있어 소설의 상황이나 대화들이 잘 와닿지 않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대사도 많이 나오는데 매끄럽게 번역되어 있지도 않고 거기다 같은 문장에서조차 경어로 썼다가 반말로 썼다가 마구 뒤섞여 있는 터라 더욱 몰입을 방해했습니다. 러시아어에 경어가 따로 있어서 일부러 번역을 그렇게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독자로서는 어조를 좀 통일시켰으면 좋겠더군요. 샤리꼬프에게도 경어와 반말이 혼용되어있어 등장인물들이 샤리꼬프들을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고 있는 것인지 얼른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밖에도 체크해 놓은 문장들이 많은데 러시아 원문을 모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이를테면 샤리꼬프가 인간처럼 능숙하게 보드까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교수가 '대단한 경력의 솜씨로군'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말을 반복하다 마지막으로 '이제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구나! 끌림!"하고 말하게 되는데 왜 이렇게 되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아 다시 또 영어판을 찾아보았습니다. '대단한 경력의 솜씨로군' 은 딱 한 단어 'PHASE'로 표현되어 있더군요. 제가 알기로는 보통 'PHASE' 하나만 나올 때는 뭔가 최종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물론 '대단한 경력의 솜씨로군'도 뜻이 통합니다만 그보다는 '진짜 인간이 다 되어버렸어' 이런 뜻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제 인간이 다 되어버린 '샤리코프'에게 더이상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게 되어버렸으므로 마지막과 같은 한탄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구요. 이렇게 아무튼 뭐랄까 글의 흐름이 잘 이어지지 않는 번역들이 좀 있는데 (특히 사람 앞에 붙이는 호칭 같은 것. 서양에서는 의례 붙이곤 하는 DEAR 정도의 의미를 굳이 귀여운으로 번역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씨만 붙여도 되지 않을까요? 이름앞에 '친애하는', '사랑스러운', '귀여운'과 표현이 자주 나와서 좀 어색했습니다.) 그런 걸 좀 세심하게 신경 써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더군요. 열린책들에서 나온 러시아 소설 읽으면서 이렇게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문장들을 만나본 기억은 없는 것 같아서 이번 '개의 심장'은 더욱 아쉬움이 컸습니다.

 

 모처럼 나온만큼 독자들이 불가꼬프의 매력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도록 다가가기 쉽게 나와주었더라면 정말 좋았을텐데 말이죠. 이런 아쉬움을 마침표처럼 남기면서 '개의 심장'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문을 이쯤에서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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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10-04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알아야 혁명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그저 개를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다니, 하며 놀라워했을지도 모르는데... 개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결국은 바깥에서 바꾸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군요 마지막에는 다시 개로 돌려놓는다고 하더군요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군요 '대단한 경력의 솜씨로군'은 '진짜 인간이 다 되어버렸어'가 더 맞을 것 같네요


희선

까쨔 2015-04-15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끌림은 추군낀의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