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정말 사랑스러운 표지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2012년에 나온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으로 표지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왠지 읽으면서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느긋하게 누워서 고양이의 부드러운 목덜미를 간질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느꼈다. 손가락을 살살 간질거릴 때마다 고양이는 기분좋게 갸르릉 거려주고 살짝 꼬리를 흔드는 그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분수처럼 흩어지는 그런 느낌...
소설은 일단 영화 '시월애'가 참 많이 생각났다. 이정재와 전지현이 나왔던 그 영화도 이 소설과 똑같이 같은 하나의 공간을 두고 서로 시간대를 달리하는 두 남녀가 편지를 주고 받던 그런 이야기였다. 어쩌면 정말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 영화에 영향을 받아 쓴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영화의 영향이 많이 느껴진다. 최근에 함께 나온 '패러독스 13'도 알고보면 당시 방영되었던 미국 드라마 '로스트'를 살짝 변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뭐, 아무튼 호기심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대한 리뷰가 얼마나 되나 살펴보니 무려 133개나 된다. 정말 압도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우라나라에서의 히가시고 게이고 인기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인 것 같다. 정작 나로서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만난 게 얼마되지 않는다. 아마도 영화(우리나라 영화 말고 일본 영화) 때문에 들춰보았던 '용의자 X의 비밀'이 처음인 것 같은데 그 시기 즈음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도 순수 작품에 대한 관심 보다는 영화나 드라마 원작으로서의 궁금증 때문에 보았다. 이를테면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면 그 원작을 찾아 읽고 '회랑정 살인 사건'을 보면 또 그 원작을 찾아 읽는 식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정말 많이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우리나라만 해도 '백야행'과 '용의자 X의 헌신' 두 작품이나 된다.) 그것만 해도 얼추 한 반 정도는 보았던 것 같다. 일단 그 정도의 경험으로 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대해서 말하자면 색다른 시도이긴 해도 완전한 전환은 아니고 행여 색다른 시도라 인정한다 해도 그게 한 때의 기분전환으로 쓴 일시적인 변주라고 할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그동안 히가시노 게이고가 보여준 정황상 다다를 수 밖에 없는 종착지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된다는 것이다.(원래는 여기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는데 쓰다보니 꽤나 길어져서 과감히 생략했다. 훗날 제대로 밝히기로 하고 바로 패러독스13과의 비교로 넘어가려 한다. 널리 양해해주시기를...)
기왕에 말이 나왔기 때문에 '패러독스 13'과 한 번 비교해 말해 본다. '패러독스 13'은 2009년에 나왔다. 나미야 잡화점이 나오기 정확히 3년 전이다. '패러독스 13'은 일단 SF 다. '패러독스 13'은 새로이 나타난 블랙홀의 영향으로 13초간 지구 전체의 시간대에 문제가 생긴다는 설정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니까 13초란 순간이 모든 지구에서 삭제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삭제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왜냐햐면 사람의 기억이란 어디까지나 그 시간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수정되면 기억 또한 수정되어 바뀌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혹 이것이 이해 안되신다면 필립 K 딕의 '유빅'을 읽어보실 것을 추천드린다. 거기 나오는 능력자들 중 하나는 임의적으로 과거의 시간을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수정을 당해도 누구도 자신의 과거가 수정되었는지 모른다. 바로 몇 초전만 해도 전혀 다른 현재를 살고 있었는데도 완전히 달라진 현재를 진짜 자신의 현재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패러독스 13'의 13초 실종의 효과는 이런 것이다. 아무튼 결국 그 순간이 지구에 도래한다. 그런데 정작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라 했던 과학자들의 말과는 달리 지구에서 사람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오직 몇 몇 만이 텅 빈 지구에 남아있다. 하지만 살아남은 그들조차 미래가 별로 순탄치 않다. 지구가 마치 격노하는 것처럼 요동을 치기 때문이다. 지진, 쓰나미가 바통 터치를 하듯 그들에게로 밀려든다. 폐허와 절망만이 그들에게 남겨진 모든 것이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패러독스 13'은 이런 내용이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지는 하필이면 그들만 살아남게 된 진짜 이유도 꽤나 충격적이다. 읽어보시면 왜 굳이 이 작품을 인용해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말하려 하는지 아실 것이다. 그건 두 작품의 분위기가 극과 극이기 때문이다. '패러독스 13'이 그림자라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빛이라고 할 수 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두고 말한다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갈릴레이 교수라면 '패러독스 13'은 '용의자 X'다. 그런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바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일단은 여기서도 기본적으로 시간의 교묘한 뒤틀림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이러한 경향에는 한 가지 작품이 더 존재한다. 그것은 2010년에 나온 '플래티너 데이터'다. 흥미로운 것은 앞의 두 작품이 모두 다크한 버전이라는 것이다. 밝고 희망찬 버전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밖에는 없다. 불과 1년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어 버린 까닭은 무얼까? 133편이나 되느 리뷰들 중에서 그저 그런 한 편의 리뷰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일부러 이런 계보학적 질문을 해 본다.
의문은 하나 더 있다. 왜 히가시노 게이고는 하필이면 오일 쇼크가 일어났을 때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까? 나미야 잡화점은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하나는 숨어든 세 명의 청년이 살고 있는 현대의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우유 통에 상담용 편지를 넣는 사람들의 시간이다. 바로 그 시간이 지금으로 부터 30년 전, 오일쇼크로 한창 위기 담론이 떠돌던 일본인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80년대의 버블이 있기 바로 전 위기의 일본을 그린다. 왜 그럴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녹아있는 희망과 긍정의 메세지를 기억하면 여기의 답은 얼추 나오는 것 같다. 그것은 그 때의 일본이 현재의 일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본은 그 때만큼이나 위기다. 새삼 쓰나미와 지진 그리고 원전 사태로 정의내려지는 2011년의 3. 11을 거론할 것도 없다. 지금도 여전히 엔저를 고수해야 할만큼 일본은 그 자신있었던 경제에서조차 위기인 것이다. 그런데 오일 쇼크 이후에 일본은 눈부신 80년대의 성장이 있었다. 모두들 그 때가 일본의 가장 전성기라고 이야기들 한다. 그러니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통해서 무얼 주려 하는지는 분명해진다.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잘 견디면 오일 쇼크 후의 호황기처럼 다시금 좋은 시절이 찾아올 것이다'라는 메세지를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 장에 세 명의 청년들이 하필이면 호황기의 일본을 예언하는 편지를 쓰는 것도 바로 그 과거를 환기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말해 그 때 히가시노 게이고가 등장인물의 손을 빌려 편지를 쓰면서 상정했던 수신인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일본인들이었다는 이야기다. 오일 쇼크 때 모두들 먹거리를 사재기 할 정도로 이제 일본은 끝났다라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가장 눈부신 전성기가 온 것처럼 바로 그 때를 떠올리며 희망을 가지라고 말이다. 그가 전하고픈 진심은 마지막에 나오는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의 편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글 진심으로 기원합니다.(P. 447)
문제는 정작 이 편지의 수신인이 30년 뒤의, 바로 오늘의 일본을 살고 있는 세 청년이라는 것이다. 즉 이것은 30년 전의 목소리다. 오일 쇼크로 인해 위기에 빠져 있던 그 때의 일본으로 부터 온 목소리인 것이다. 똑같은 위기요 절망의 상황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자의 목소리. 그래서 가장 눈부신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목소리. 바로 그 목소리가 같은 위기와 절망에 빠진 현재의 세대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전하고 있다. 이 이상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하려 하는 것이 어떻게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까?
이는 이러한 경향의 시작이 되는 '패러독스 13'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그 때도 완전 폐허였고 생존이 절망적이 상황이었다. 그 때 생존자들은 어떻게 했던가? 나미야 잡화점 처럼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었던가? 아니었다. 생존에 방해가 되는 인물은 가차없이 버려졌다. 아내가 머리를 다쳐 살아날 가망이 없자 그의 남편은 기꺼이 안락사를 시킨다. 그러면서 억지로 도움을 줘서 일으키기 보다는 그냥 내버려 둬서 운명에 맡기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말한다. 비정함이 하나의 원칙이었던 게 '패러독스 13'이었다. 이는 '나미야 잡화점'이 간직한 우주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그러므로 이러한 변화엔 아무래도 현실 사회의 영향이 있었다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재미있는 건 요이다 슈이치의 '원숭이와 게의 전쟁'도 그렇고 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그렇고 이상하게도 작가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소설에서 이렇게 작가가 주고자 하는 것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경우가 또 있었던가 싶다. 좀 더 살펴봐야 제대로 말 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이건 최근에 들어와서 생겨난 경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요런 부분이 좀 흥미롭다. 작가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작품보다 더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이 부분을 나중에 시간이 나면 좀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133편에 또 한 편의 리뷰를 더하며 이 글을 여기서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