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 -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개정증보판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역사란 이제 기록이 아니라 발굴이 되었다.

 더 이상 왕조 같은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하거나 전쟁이나 혁명 같은 거대한 사건 중심이 아니라 그들에게 관심의 스포트라이트를 갖다대느라 상대적으로 가리워졌던 그래서 더 왜곡되기도 했었던 역사적으로 무시되어졌던 존재들에게 다시금 빛을 찾아주고 목소리를 가져다 주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대낮의 환한 광장으로 인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역사의 소명이 된 것이다. 지배계급이 존재했었던 곳엔 어디에서나 그렇게 역사의 관심에서 소외된 자들이 존재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서양의 역사 못지않게 공식적 기록에 그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고 지금 역시도 온전히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한 존재들이 상당한 것이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궁녀가 아닐까 한다.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임중인 신명호의 '궁녀'는 오래도록 빛을 받지 못하여 무지의 베일에 가리워져 있었던 궁녀들의 삶을 제대로 복원해보려 한 저작이다. 그가 새삼 잊혀진 궁녀들의 삶에 주목했었던 것은 여성들의 급속한 사회적 지위 향상과 더불어 조선시대 내내 억압받았던 여성상을 새롭게 조명해보려는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재조명의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대비, 왕비, 후궁, 궁녀등 궁중 여성들이 될 것이라 한다. 왜냐햐면 조선은 그 무엇보다 왕조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중 여성들의 경우 지금도 그것을 재현한 사극들에서 잘 드러나듯 자칫 그 권력의 추구와 흥미본위의 선정성에만 집착해 그 삶의 진정한 모습이 왜곡될 위험을 많이 안고 있다. 신명호는 그래서 역사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드라마에 의해 왜곡될 위험을 우려해 학문적 탐구가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번에 나온 '궁녀'는 바로 그러한 신명호의 문제의식에서 태어난 산물인 것이다.

 

 책은 총 6장에 걸쳐  진행되는데 첫째 장은 오래도록 역사의 관심을 받지 못해 공식적인 사료가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궁녀들의 삶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 그 방법론을 논하고 둘째 장은 궁궐에서 그저 그림자들로만 존재하는 궁녀이기에 혹 우리의 선입견은 그녀들의 삶이 그대로 단일한 무채색의 삶이지 않을까 생각하기 쉬운데 이 장은 궁녀들의 삶이 전혀 그렇지 않음을 그러니까 파란만장한 다채로운 빛으로 가득한 것이었음을 특기할만한 궁녀들 개인의 삶을 통해 드러내는 장이다. 신명호가 하필이면 두번째 장에서 이러한 개개 궁녀들의 삶을 통해 다채로운 궁녀의 삶을 보여주는 이유는 이러한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독자의 흥미를 일으킨다는 점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아무리 궁녀들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오로지 왕조에 대한 충성이라는 보편적 이념으로만 움직였던 존재들이 아니라 그 이전에 보다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욕망을 성실히 추구했던 존재들임을  밝히기 위해서다. 조선 왕조가 건국 당시 부터 개인들의 욕망을 억누르고 보편적인 이념만을 추구하려 했던 나라임은 조선의 기틀이 되는 근본 사상을 다졌던 정도전이 경복궁의 침전을 '강녕전'이라 이름붙인 연유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데, 그 강녕전의 의미는 바로

 

  왕이 밤에 조용히 황극을 닦으며 식욕, 색욕, 권력욕 등 인간의 원초적 욕망들을 잠재워야 한다는 의미였다.(p. 9)

  (여기서 '황극'이란 인간의 원초적 욕망들이 생겨나기 전의 중용 상태를 말하는데 즉 황극을 닦음이란 어디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공평무사한 중립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렇게 조선은 처음부터 개인의 원초적 욕망을 무화(無化)시키는 것을 이념으로 출발한 나라였다. 그렇게 모든 존재들을 보편이라는 광막한 장막으로 덮으려 한 나라였다. 하지만 신명호는 그 왕조의 중심에 있어서 누구보다 그 보편적 이념에 봉사했어야 할 궁중 여성들조차 무엇보다 개인의 원초적 욕망을 추구했던 존재들임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궁중 여성들의 존재 자체가 보편적 이념과 개인적 욕망 사이의 투쟁을 의미하는 상징이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동안 궁녀의 실제 삶이 그동안 역사적으로 전혀 조명받지 못했다는 것의 환유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그 궁녀들의 삶이 그토록 조명받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개인의 욕망 보다는 어디까지나 보편적 이념을 중시했던 조선 때문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가리워졌던 궁녀들의 삶을 복원하는 것은 그렇게 보편적인 이념의 그늘아래 웅크리고 있어야 했을 개인의 욕망들을 복원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그래서 신명호는 자신의 저서 '궁녀'를 욕망을 비롯하며 개인적인 삶의 실현을 밑그림 삼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3장과 4장 그리고 5장은 그 개인으로서의 '궁녀'의 삶에 있어서 바탕을 이루는 조건들을 그려낸다. 즉 3장에서는 궁녀의 선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4장에서는 궁녀들의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고 움직이는지 그리고 5장에서는 그들의 업무와 라이프 스타일을 밝히는 것이다. 이 모든 궁녀들의 삶의 조건들을 다 그려내고 난 뒤 드디어 마지막 6장에서 가장 개인의 원초적 본능이라 할만한 궁녀들의 성과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의 순서는 그냥 무심히 배열된 것이 아니라 지금 궁녀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와 관련하여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보편적 이념의 정수라 할만한 정도전의 강녕전에서 그 중심에서 오히려 개인의 원초적 욕망 충족에 충실하는 궁녀들의 삶까지 이르는 여정은 그야말로 보편적 이념이 결국은 개인의 원초적 욕망에 의해 패배하는 여정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궁녀들의 삶을 통하여 궁녀들 삶 자체의 모습 뿐만이 아니라 이념이 아무리 강고하게 억누른다고 해도 개인의 원초적 욕망은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이로써 역사가 다시금 보편이란 이름아래 지워진 개인들의 삶을 발굴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다. 개인은 그 자체 삶으로서 완전한 것이며 그 개인을 자꾸만 부족한 존재로 만들어서 길들이려 드는 보편적 이념은 그야말로 억압적 가설이거나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궁녀'의 역사란 그저 지나간 역사의 흔적이 아니라 오늘의 생생한 역사로 다시금 음미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즉 궁녀들의 삶이란 사회라면 언제나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보편적 이념과 개인의 원초적 욕망 사이의 대립을 제대로 되새겨 볼 수 있는 현장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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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6-10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번 책은 제목과 표지부터 강렬하네요.
리뷰도 짧고 강렬하고. 마침 책 사려는데, 음 읽어볼까.
<채홍>을 읽었더니 이제 궁녀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요 ㅋㅋ

ICE-9 2012-06-10 22:58   좋아요 0 | URL
후후, 사실 마지막 장에 '채홍' 얘기가 나와요. 읽으면서 소이진님이 읽으면 좋아하겠다 생각도 했더랬죠^ ^ 그런데 정말 오랜만이에요. 제가 너무 들르지도 못하고 그랬죠? 곧 찾아갈게요^ ^

프레이야 2012-06-11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관심가길래 마음에 찜해뒀는데 님의 리뷰 읽고는 바로 담아갑니다.^^

ICE-9 2012-06-13 02:47   좋아요 0 | URL
앗. 프레이야님 감사합니다.^ ^
저는 꽤 만족스럽게 읽었는데 프레이야님도 만족하실 수 있으시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