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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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다 리쿠가 돌아왔다. 얼마만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네크로폴리스가 마지막이었으니 그래도 몇 년이 된 셈이다. 그랬는데 이렇게 갑자기 온다 리쿠의 책이 두 권이나 동시에 발매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하나는 '달의 뒷면'인데 2001년도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불연속 세계'로 2008년도 작품이다. 두 작품간 시차가 무려 7년이나 존재하지만 이렇게 같이 발간되어야 했던 이유가 있다. 그것이 주인공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두 작품은 하나의 시리즈다. 바로 음악 아티스트 발굴이 직업인 '다몬'을 주인공으로 한!

 

 

 다몬은 '삼월은 붉은 구렁'에서의 고이치를 참 많이 연상시키는 캐릭터다. 물론 다몬은 책 보다는 음반을 많이 듣지만 그래도 달의 뒷면에서 문학작품 제목으로 끝말 잇기를 술술 하는 것을 보면 그 역시 음반 만큼 책 역시 많이 읽는 존재가 틀림없다. 다만 고이치가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존재라면 다몬은 끝도 없이 돌아다닌다는 차이점이 있다. 직업이 가능성있는 무명의 아티스트를 찾아내는 것이다 보니 어쩌면 방랑자로서의 삶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가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엿하게 프랑스인 아내까지 두고 있다. 잘 생기긴 했으나 성격은 쑥맥에 가까운데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건 아무래도 여자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보니 이런 남자들이 오히려 여성들에게 어필한다는 얘기를 '삼월은 붉은 구렁'에서 본 적이 있다. 이것도 다몬이 사실은 고이치의 발전형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되는 부분이다.

 

 아무튼 '달의 뒷면'과 '불연속 세계'는 그 다몬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이다. 온다 리쿠의 작품들 대부분이 어디론가 가는 설정인 만큼 이 두 작품도 어디론가로 가서 벌어진다. 온다 리쿠 스스로는 특히나 이 시리즈를 독자들이 기행 소설로 봐주기를 바라고 있다. 낯선 땅 낯선 시간속에서 문득 느끼는 새로움. 여행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이런 느낌을 온다 리쿠는 '달의 뒷면'과 '불연속세계'가 독자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달의 뒷면'은 2001년 작품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기행 소설 보다는 97년에 나온 '삼월은 붉은 구렁'에 보다 가까와 보인다. 분위기나 주제나 할 것 없이. 사실 어쩌면 정말로 '삼월은 붉은 구렁'에서 장편으로 버전 업 되지 않은 네 번째 소설 '새 피리'가 '달의 뒷면'으로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달의 뒷면'에서 주요한 소도구가 바로 비둘기 피리이기 때문이다. '삼월은 붉은 구렁'에서 나왔던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의 유명한 초반부 카페 안의 잡담 장면을 연상시키는 것 같은 대화 장면도 '달의 뒷면'에 현저하게 나타나는데 뭐, 온다 리쿠의 정형화된 스타일일 수도 있겠지만 특히나 문학 작품 제목으로 끝말잇기 하는 것은 '삼월은 붉은 구렁'에서 첫번째 단편 '기다리는 사람들'에서 나왔던 등장인물들의 책을 둘러싼 대화들을 참 많이 연상시킨다. 그러고 보니 구성원들까지 어쩐지 비슷한 것 같다.

 

 

 자꾸만 '달의 뒷면'과 '삼월은 붉은 구렁'의 유사성을 말하고 있는데(어쩌면 정말로 이 작품은 네번째 '새피리'의 버전 업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달의 뒷면'의 결말 때문이다. 내 생각에 이 결말 때문에 이 작품의 호불호가 꽤 갈리지 않을까 싶다. 하긴 온다 리쿠의 팬을 자처하는 나 조차도 그 결말에는 동의할 수 없으니 말 다했긴 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 결말을 포함하여 '달의 뒷면'에서 행해지는 얘기를 소설에 드러난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해야 하지 않나 싶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이 작품과 '삼월은 붉은 구렁'의 유사성을 자꾸만 끌어들이는 것이다.

 

 '달의 뒷면'은 한 마디로 잭 피니의 유명한 소설 '바디 스내처'의 온다 리쿠 버전이다. '바디 스내처'를 모른다면 50년대의 돈 시겔이나 70년대의 필립 카우프만의 영화 '신체 강탈자의 침입'을 떠올리면 된다.(돈 시겔은 우리들에게 '더티 해리'로 유명하고 필립 카우프만은 '참을 수 없는 존재들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이 쟁쟁한 감독들이 앞다두터 영화화 했을만큼 '바디 스내쳐'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영화화 리스트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헐리우드계의 이단아 '어딕션'으로 유명한 아벨 페라라도 90년대에 바디 스내쳐란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최근에는 '인베이젼'이라는 바디 스내쳐 원작중 가장 실패작이라는 니콜 키드만 주연의 영화도 있다. 아무튼 바디 스내쳐는 그 독특하면서도 자극적인 설정,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른 똑같은 무엇으로 바꿔치기 당한다는 (아마 이것의 원본은 옛날 유럽에 전해지던 전설중의 하나인 '체인저링'이겠지만) 그것 때문에 바로 지금까지도 거듭 영화화 되어왔는데 유독 이 설정이 그럴 수 있었던 까닭에는 무엇보다도 그 '바꿔치기'에 담긴 상징성 때문이었다. 처음 잭 피니의 '바디 스내쳐'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사람의 의식이 한 순간 바뀌는 것을 문자 그대로 신체의 강탈로 은유화했다. 그렇게 몸은 그대로이지만 의식만 달라지는 것을 어떤 외계의 힘에 의해 외부에서 보기엔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탈당한 사람과 똑같지만 그 속은 전혀 다른 것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잭 피니는 바꿔치기한 신체에게 감정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이 이데올로기에 의한 변화를 다루고 있음 역시 강조했는데 무엇보다 사회주의는 개인의 감정(혹은 창의성)을 억누르는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필립 카우프만까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은유로 형상화했다면 아벨 페라라는 90년대 들어 새로이 나타나 온 세계를 공포에 떨게한 에이즈에 대한 포비아의 은유로 신체 강탈을 가져왔다.(비단 미국뿐이 아니다. 일본에도 이 비슷한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만들어져왔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가 아마 그 대표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최근엔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의 극장판 하나도 바디 스내쳐를 다루었다.)

 

 

 

 

 

  그렇다면 온다 리쿠는?

  여기서 온다 리쿠를 만일 잭 피니와 헐리우드 감독들과 같다고 보면 뭐,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결말은 여지없이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결말까지과는 과정은 온다 리쿠 특유의 분위기와 내용답게 흠뻑 몰입하게 만들고 귀담아 둘만한 것 또한 많아서 어쩐지 그 결말 마저 그대로 버리기 아깝게 만든다. 그래서 난 다시금 살펴보았고 그러다 삼월은 붉은 구렁과의 유사성이 눈에 띄게 되었다. 또 같은 질문이 반복되지만 그렇다면 온다 리쿠는 신체 강탈을 무엇으로 은유하는 것일까? 물론 개인적인 견해를 전제하고 하는 말이지만 난 그걸 '책 읽기'라고 부르고 싶다.

 

  '삼월은 붉은 구렁'은 책 읽기에 관한 소설이다. 하지만 거기서 책 읽기란 그냥 보통의 취미는 아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듯 소수만의 취미이다. 아마도 누구보다 책을 좋아하는 온다 리쿠는 점점 책을 안 찾고 안 읽게 되는 이 사회에 대해 나름의 안타까움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아마도 책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삼월은 붉은 구렁'을 쓰지는 않았을까. 바로 그렇게 이제는 소주의 연대로까지 추락해 버린 '책'에 대한 연민이 개인적으로는 그대로 '달의 뒷면'으로 이어져 신체 강탈의 하나의 은유로 쓰여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니까 여기서 바껴진 신체들은 이른바 '책'이란 쓰여진 글을 자신의 내부에 포함해버린 존재들을 뜻한다는 것이다.

 

  근거는 여러가지다. 일단 대부분의 사건 정황이 일단 텍스트를 통해 밝혀진다는 것. 시기를 감안하더라도 시각적 매체가 전혀 나오지 않은 것이 이 소설의 특색이라 할 만한데 아마도 그것은 봄이 아니라 읽음이라는 감각을 온다 리쿠가 더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이 소설의 한 부분의 어떤 인물은 아예 만나는 사람 역시도 책 처럼 읽게 된다는 고백까지 한다. 또한 신체 강탈을 일으키는 미지의 존재를 처음 대면한 곳이 도서관이라는 점도 여간 상서롭지 않다. 배경이 되는 야마쿠라가 작은 도시라 해도 그 많고 많은 곳들중 왜 하필이면 도서관일까?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대낮에. 그 역시 '책'이란 신체 강탈에 있어 본질이 되는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특별히 고른 곳이 아닐까 싶다. 또한 앞서도 말했듯 다몬을 비롯한 사건을 추적하는 네 사람이 모두 책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는 점 그리고 문학 작품의 제목을 가지고 끝말잇기를 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점도 그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무엇보다 스포일러상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지만 삼월은 붉은 구렁의 기다리는 사람들의 소우주를 그대로 야마쿠라 전체로 확장한 듯한 네 사람만의 장면은 이 '달의 뒷면' 역시도 '삼월은 붉은 구렁'과 같이 책 읽기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음을 은연중 짐작하게 한다. 그것은 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텍스트가 되고 네 사람이 그것을 탐독하는 장면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지 않을까?

 

 단적으로 온다 리쿠가 왜 '달의 뒷면'에서 책 읽기를 신체 강탈의 은유로 삼고 있는지는 '기다리는 사람들'에 나왔던 한 대사에서 추정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니까 그 단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히려면 책을 금지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바로 이 말이다.

 

 그러니까 바로 이러한 안타까움에서 온다 리쿠는 책 읽기를 통해 보다 확장된 타자를 내부에 포함한 이를 강탈당하고 바껴진 존재로 가져온다는 것이다. 왜? 세상 사람들은 더이상 책을 읽지 않으므로...

 

 그런데 왜 책을 읽어야 하지? 이런 의문이 당연히 들 수 있다. 온다 리쿠는 거기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이것 역시 '기다리는 사람들'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어서 써나가고 이어서 이야기해 나가는, 전설이 새로운 전설을 낳는 이야기" 책은 바로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데,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늘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부는 바람처럼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데 책을 읽지 않으면 그런 것이 단절되니까 그런 것이다. '달의 뒷면'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여기서 주인공 일행이 하는 것 역시도 인용한 저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 서로가 모여서 기록을 하고 자신의 기록을 남의 기록과 이어가게 만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삼월은 붉은 구렁'과 '달의 뒷면'의 연속성을 떠올리게 되었기도 했지만 말이다. 여기서 보듯 온다 리쿠는 무엇보다 이어지는 것을 중시했다. 그래서 공간적 배경 역시 도시를 관통하는 수로들이 사방팔방 이어지는 '야나쿠라'(물론 이 도시는 일본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유명한 '야나가와(柳川)'가 모델이다.)를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실제 야나가와의 모습 (이렇게 사진을 보니 다시 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신체를 강탈해가는 미지의 존재 또한 물의 이미지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책을 읽음이란 외부와의 교감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쓰여진 글과 내가 이어지듯이 그 글을 기록한 타자와 나의 자아가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그 타자의 자아를 내부에 간직하게 되며 그렇게 그의 생각에 내 생각을 이어가듯 쓰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는 거듭되고 발전해나간다. 또한 그 이야기로 인해 우리 역시도 예전의 작았던 자아에서 보다 확장된 자아로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의 내부에 타자를 이해할 공간들이 수로처럼 흐르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온다 리쿠는 '달의 뒷면'을 통해서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모든 것들을 책이 줄 수 있다고 말이다.

 

 이렇게 처음엔 잭 피니의 바디 스내쳐를 좀 다른 식으로 고쳐 쓴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으나 다시 음미해보니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아마도 그토록 바디 스내쳐가 많이 리메이크 되었으나 이를 책 읽기와 연결시켜 풀어나갔던 것은 온다 리쿠만이 유일할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독특한 개성에 놀라고 그런 식으로 신체 강탈을 은유한 것에 감탄한다. 하지만 지극히 독창적이라 오해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처음엔 결말의 부분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온다 리쿠는 결말이 중요하지 않은 작가중 하나이다. 삼월의 붉은 구렁의 제 4부가 미완결로 끝났어도 많은 이들이 그 책의 매력을 느꼈듯이 그렇게 과정 자체가 주는 분위기와 이야기의 흐름의 매력이 진정한 온다 리쿠의 매력이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달의 뒷면' 역시도 커다란 만족감을 줄 것이다. 나 역시 독특하면서도 신비로운 야마쿠라의 매력에 취하고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서둘러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서는 못 배기었듯이 말이다. 한 마디로 '달의 뒷면'은 진정 책이야 말로 벗할 가치가 있는 것임을 온다 리쿠 스스로가 증명해 낸 것이나 마찬가지인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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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4-05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다리쿠는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미스터리 작가라고는 하는데 저는 한 번도 읽어보질 않았어요. 얼마 전(얼마전이... 꽤 오래되었군요) 출간 된 <우리집에는... 어쩌고>를 집에 사두기만 했고 펴보지는 못했죠. 한 권은 읽어봐야 할텐데.
우리나아의 번역은 전부 마음에 드는데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게 바로바로 번역을 안한다는거에요. 아니, 2001년 작품을 지금 번역하면 어쩌잔 거예요! 저같이 차례대로 작품을 거슬러 올라가고픈 독자는 그저 웁니다...

ICE-9 2012-04-05 23:05   좋아요 0 | URL
하하하, 일단 저 역시 소이진님의 말씀에 공감하지만 국내 장르문학 시장이 가진 정말 협소한 여건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출간해준 것 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에요. 일본처럼 미스터리 시장이 광범위하다면 우리가 바라는 만큼과 바라는 속도로 제깍제깍 나올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소이진님 아직 온다 리쿠를 접해보지 않았다면 먼저 '삼월은 붉은 구렁' 부터 접하시고 이 작품을 읽을 것을 권해드리고 싶네요. 개인적으로 온다 리쿠에게 있어서 그 작품은 하나의 원점이라 생각됩니다. '달의 뒷면'과 '불연속 세계'를 읽고나서는 더욱 확신하게 되더군요^ ^

마녀고양이 2012-04-10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다 리쿠의 왕팬이지만,
제가 어쩐 일로 서점에 들러서(사실 약속 시간이 남아서), 온다 리쿠 신간에 눈을 반짝이면서 달의 뒷면을 읽어보는데... 이게 좀 와닿지 않더라구요. 저는 삼월~ 시리즈의 열광자인데 말이죠. 최근의 온다 리쿠 작품으로 번역되어 온 책들이, 예전처럼 착 감기지 않아서 속상합니다.... ㅡㅡ;;;

ICE-9 2012-04-11 03:38   좋아요 0 | URL
오! 마녀고양이님도 온다 리쿠의 팬이셨군요. 르 귄 여사에 이어 같이 좋아하는 작가가 또 한 분 계시다니 많이 반가운데요^ ^ 아, 그런데 예전처럼 착 감가지 않으시다니... 저도 네크로폴리스에선 그랬는데 이번에 온다 리쿠의 매력을 새로이 발견하게 된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님도 얼른 다시금 온다 리쿠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두 작품을 연달아 읽어보니 아직은 버리기 아까운 작가라는 생각이 마구 들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