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읽으시면 안됩니다!
늘 말하지만 난 서사가 없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스토리 자체에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게 아니라, 빈약한 스토리를 억지스러운 상황과 대사로 커버하려는 그런 영화, <작업의 정석>은 바로 그런 영화였다. 그래서 난 이 영화에 별을 두개 이상 줄 수가 없다. 대부분 남자들의 로망인 손예진이 나왔다고 해도.
송일국과 손예진은 모두 작업의 선수들, 영화는 이 선수들끼리 밀고 밀리는 대결을 그리고 있다. 이들의 원칙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이렇다.
“뻔한 얘기 말고, 상대로 하여금 도전 이식이 생기게끔 하라.”
누가 송일국의 차를 뒤에서 박았다. 짜증을 내려는데 상대 운전자가 여자고, 겁나게 예쁘다. 그러면 남자들은, “아유 뭐 그럴 수도 있지요.” 하면서 나중에 차라도 한잔 하자고 한다. 작업은 그런 상투적인 대사를 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는 법, 송일국은 목을 쓰다듬으면서 “내일 병원으로 오라.”고 얘기한다. 손예진 역시 선수인지라, 송일국이 만들어준 스파게티를 맛보며 “너무 맛있어요.”라고 헤벌래 하는 대신 “사과식초 쳤지요? 저 그거 못먹는데.”라고 일침을 가한다. 쉽게 넘어오는 상대보단 버티는 상대일수록 도전의식이 생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것 같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업에는 정답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자기가 가진 자원과 환경을 이용해서 어느 길이 좋을지를 파악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어느날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왜 난 여자들에게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건지. 그 기원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생긴 외모 때문에 숱한 수모를 당하면서 난 점점 수줍은 아이로 변해갔고, 고등학교 때는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학 입학 직전에 한 첫 미팅에서 난 두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물론 차였다). 거기서 좌절했으면 아마도 난 조그만 가게에서 타이어를 팔며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살았겠지만(패밀리맨의 패러디에요), 난 그 역경을 유머와 귀염성으로 극복해 나갔고, 결국 수백억을 주무르는 펀드매니저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건 ‘작업’은 아니었다. 난 그때 정말 여자가 두려웠고, 가진 게 없다보니 수줍었으며, ‘여자처럼 굴기’ 말고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여자가 덜 두렵지만, 그간의 패턴이 몸에 배어 여전히 수줍어한다. 어떻게 한번 해보려는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인지라 구석에 수줍게 앉아 테이블만 보고 있는 남자는 희소성을 가지며, 여자들 중 일부는 거기서 매력을 느낀다. 혈기왕성한 시절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내 연애사를 돌이켜볼 때 먼저 손을 잡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였고, 그들 중 몇몇은 먼저 입술을 요구한 것은 그냥 놔두면 내가 몇 달, 심지어 몇 년간 아무 진도도 나가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방구석에 거미줄을 쳐놓고 나비가 오기만을 기다린 나는 여자를 두려워한 게 아니라 유혹한 걸 수도 있으니, ‘작업의 정석’에 나오는 선수들보다 내가 한 수 위가 아닐까? 물론 이건 외모라는 자원이 부족한 내 경우에 국한된 거니 다른 이에게 이 스타일을 권유할 마음은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사람에겐 자기 자신의 매력을 최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찾는 길이 ‘작업의 정석’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