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두시간 반이 넘는 상영시간을 의자에 앉아서 견디는 게 나로선 힘들었다. 주로 혼자 영화를 보는 나는 의자 서너개의 팔걸이를 모두 올리고 비스듬히 누워 영화를 보곤 했다. 그런데 해리포터 같은 인기영화는 그럴 수가 없었고, 그래서 난 보는 사람이 안스러울만큼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괴로워했다. 물론 보람은 있었지만.
해리 포터의 뛰어난 점은 해리가 뛰어난 마법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마에 상처가 있고 혈통이 좋다는 것 말고 해리가 잘하는 건, 마법이 아닌 ‘의리’와 ‘생명존중 사상’이다. 1편에서부터 한결같이 해리는 문제를 마법으로 풀지 않으며, 이번 시리즈에서도 마법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남을 돕고자 하는 착한 마음이 빛을 발해 트리위저드 게임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1편을 볼 때만 해도 해리가 자기 안에 숨겨져 있는 대단한 마법을 구사하기를 기대했었지만, 이제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헤쳐 나가는지를 기대한다. 하긴, 마징가제트처럼 모든 걸 다 녹이는 회오리바람으로 적을 물리친다면 해리포터는 그저 진부한 영웅담 정도에 그쳤을 거다.
트리위저드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온 프랑스 여학생들은 온갖 귀여운 척을 다하면서 호그와트에 입장한다. 같이 본 분은 그게 유치하다고 했지만, 난 그네들이 나올 때마다 넋을 잃었다. 요즘도 난 길을 걸을 때 그들이 입었던 하늘색 옷만 보면 가슴이 뛴다. 해리가 한눈에 반했던 중국계 배우는 출연 시간도 짧았지만 외모가 영 내 타입이 아니다. 귀여운 아이였던 헤르미온느는 소녀로 자랐고, 영화의 무도회 장면에서 어여쁜 드레스를 입고 숙녀 티를 한껏 낸다. 그녀가 성숙미를 뽐내는 배우로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내 타입은 아니다. 난 배우들 중 ‘론’이 가장 좋다. 키가 훌쩍 자란 론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귀엽고, 삐지는 모습 역시 얄밉진 않다. 내 타입이다.^^
무도회에 갈 파트너를 구하지 못해 해리와 론이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서, 대학 때 생각을 했다. 1학년 때인가 당시 유행하던 쌍쌍파티(일명 카니발)를 갈 기회가 있었지만 여자가 없어 가지 못했고, 나이트 클럽을 빌려서 뭔가를 했을 때 난 남자랑 가야 했다. 영화 속 해리의 심정이 난 그래서 절실하게 다가왔다. 책을 읽은 분들은 책이 더 재미있다는데, 여전히 나는 해리포터가 애들 책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통해서만 그를 만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