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수업하며 책을 쓰다
이호창 지음 / 하움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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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교육이 들어서면서 교육현장에서 교육자의 자율성이 높아졌고, 족쇄도 어느 정도 풀리면서 많은 연구결과물들이 책으로 출간됬다. 당연히 많이 팔리진 않겠지만 교사들이 쓴 책도 상당히 많아졌고 읽을만 해졌는데 '교사 수업하며 책을 쓰다'처럼 교사입장에서 글을 쓴다는 책은 더욱 독특했다.

 교사가 책을 쓴다면 당연히 소재는 교육에 관한 것일 것이다. 이론에 충만한 사람은 교육 이론에 대해서 쓰겠지만 이는 아마도 교사보다는 교수쪽이나 전문연구자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님들은 대개 자신이 실천한 수업연구과정 및 결과나 상담관련 쪽으로 책을 많이 쓰게 될 것이며 실제로도 그렇다. 또는 최근엔 교육과정과 관련한 책도 선생님들에 의해 많이 나오고 있다. 이해중심교육과정이나 교수평 일체화 책, 또는 교육과정 문해력에 관한 책들이다. 평가에 관한 책도 조금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 교사의 교직 전문성 중 가장 약한 부분이 평가라고 생각한다. 많은 선생님들이 교육과정과 수업에 상당히 힘을 쓰곤 있지만 그것의 성과나 학생의 성장을 검증하는 평가방법에 대해선 이상스레만치 인색한 편이다. 평가에 관한 책이 많아졌으면 한다.

 이 책은 수업 실천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2학년 담임을 오랜 기간 맡으면서 그 아이들과 함께 실천한 수업과 교육과정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 과정을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교사입장에서 책을 어떻게 쓰는지 알려준다.

 우선 분야를 정해야 한다. 언급한 것처럼 수업연구가 주 소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매일 실천한 수업의 기록이다. 수업일화를 자세히 기록하고 학생 및 교사가 그 과정에서 남긴 과정물과 결과물을 사진등을 잘 축척해 놓아야 책을 쓰기 수월해진다. 이런것들이 많아지면 설계를 잘 해야한다. 각 책의 장마다 어떤 내용을 체계적으로 수록할 것이가를 일목요연히 잘 정리해야 한다. 

 마지막은 독특했는데 책을 완성하고, 쭉 퇴고한 후, 이를 출판사에 투고하는 것이다. 유명한 사람이라면 출판사에서 의뢰가 들어오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므로 투고가 유일한 방법이다. 저자는 투고를 할 때 자신의 약력을 자세히 소개했고 이 책이 어떤 선생님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지를 상세히 알렸다. 출판사는 책을 파는 것이 목적이기에 나의 책이 팔릴만한 이유를 알린 것이다. 교사로서 책을 쓴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많은 경험과 강한 내공을 가진 분들이 더 많은 책을 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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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프레지던트 -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 이야기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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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현민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의전비서관이다. 직함이 말하듯 청와대 대통령이 참가하는 의전을 담당한 사람인데 아마 역대 의전비서관 중 가장 유명할 것이다. 유독 문재인 정권에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약간의 흠으로도 트집을 많이 잡긴 했지만 의전 자체에 대해서도 시비거리를 많이 만들어내다보니 그 담당자인 비서관도 그 칼끝을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책에서 밝히듯 탁현민 비서관은 의전으로 인해 고발도 여러 번 당했다고 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의전이 기존 역대정부들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 어느 집단이든 우두머리 급들은 어느 정도 의전이란게 필요하고 사실 굳이 필요가 없을 만한 위치도 이런 걸 대놓고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의전은 모두 꼰대 의전에 불과하다. 의전의 진정한 의미는 그 사람보다는 그 사람이 한 국가를 대표하거나 한 지역, 한 기업을 대표한다는 차원에서의 존중이며 또는 그 행사 자체에 대한 의미 부여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의전에 참여하는 대통령보다는 대통령이 그 행사에 참여하는 이유와 행사의 본질에 집중했다. 여기엔 역사와 민족을 중시하고, 그것을 위해 희생한 진정한 민중을 기리는 의식이 반영되었고 아마도 이것이 본능적으로 그것들과 대척점에 있는 보수 야당과 언론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다. 

 책의 제목은 미스터 프레지던트인데 짙푸른 겉표지와 인주처럼 약간 어두운 붉은색의 속지를 썼다. 책의 겉에도 의전의 느낌을 강조한 셈이다. 프레지던트는 문재인 대통령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탁현민 비서관이 활동을 하며 김형석 작곡가와 만들어낸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대통령 음악은 미스터 프레지던트를 의미하기도 한다. 선진사회의 각 나라의 왕이나 지도자들은 고유의 상징적 음악이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것이 없다. 탁현민 비서관은 이를 만들어 냈던 것인데 그 스스로 아쉬움을 표했듯 윤석렬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위풍당당 행진곡을 썼다. 

 책은 제법 두껍지만 술술 읽힌다.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수많은 의전 행사들과 그것의 의미와 뒷이야기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같가지 노력이 들어가고, 누구를 섭외했으며 어떤 논의를 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가 실려있다. 보다보니 무척이나 당연해 보이고 어쩌면 경호만 좀 신경쓰지 않았을까 싶었던 행사들이 상당한 노력과 시행착오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었다.

 탁현민 비서관은 대놓고는 아니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적잖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중 항상 피곤해보였는데 이는 결과는 둘째 치더라도 항상 맡은 바 직무에 많은 힘을 쏟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책에는 대통령이 각국 정상과의 회담에서 이야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화장실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이야기, 술을 즐김에도 불구하고 항상 군 통수권자로 최상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은 이야기 등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문재인 정부 의전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국군의 날 행사와 트럼프에게 대접한 독도새우, bts의 유엔 연설, 홍범도 장군의 귀환이다. 국군의 날 행사는 매우 파격적이었는데 딱딱한 사열이나 퍼레이드 중심에서 젊은 군인들이 현장에서 축제를 즐기고 싸이의 노래에 맞춰 열기를 뿜어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트럼프에게 대접한 독도 새우는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으며 책에는 한일관계의 민감성으로 독도 새우를 도화새우라는 이름으로 대접하려다 그대고 갔다고 한다. 항의하는 일본에는 우리가 무엇을 대접할지는 우리가 결정한다라는 말로 일축했다고 한다. bts의 유럽 연설은 그자체로 한국에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유엔 관계자들도 열광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행사에 이렇게 높은 시청률이 나온게 처음이었단다. 그럴만 하다. 홍범도 장군의 귀환도 하나의 명작이었다. 우여곡절끝에 카자흐스탄으로 부터의 송환이 결정되었고, 파묘를 통해 조심스레 묘를 찾아내고 장군이 말년 극장 경비를 맡았던 귀한 서류까지 잘 찾아왔다. 

 홍범도 장군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는 한국전에 사망한 한국군의 유해를 적극적으로 찾아왔는데 북한 장진호 전투에서 사망한 유해들 중 북한에 의해서 미국으로 반환된 것으로 우리가 다시 찾아오는 형식이다. 미국은 한국군이 순식간에 수세에 몰려 급하게 참전하느라 인적구성이 완벽하지 않아 한국인을 차출하여 썼고 이것이 지금 우리가 아는 카투사의 원형이다. 그들이 미군을 따라 북진했다 그 치열했던 겨울 장진호 전투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책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수 많은 의전 하나하나를 복기하며 재밌게 읽었다. 의외로 많은 의전이 떠올랐는데 그 의미는 내가 그것을 시청했다는 의미이며 국경일마다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던 재미없던 의전이 문재인 정부에서 만큼의 의미있고 재미나고 독특하며 개성있게 연출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재만큼 독특하고 재미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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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3-02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재미없는 의전들을 의미있고 볼만한 것으로 만들어내는데서 탁현민씨 참 탁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내 했어요. 그런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이 흥미롭네요

닷슈 2023-03-03 14:09   좋아요 1 | URL
내 재미난 책입니다.탁현민 비서관은 대단한 사람이죠.
 
쿼런틴 워프 시리즈 4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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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쿼런틴은 격리란 뜻이다. 같은 제목의 소설도 무척 많고 좀비 영화도 한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기 전 챗gpt에게 쿼런틴에 대해 물어봤는데 같은 제목의 소설이 많아 정보를 더 달라고 했다. 저자 이름까지 입력하니 간단한 정리를 제공해주었다. 

 양자역학은 현대 과학의 기반이면서도 몹시도 어려운데 그 양자역학을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 책의 배경은 21세기 후반으로 과학기술이 몹시 발달한 상태다. 책 배경에서 대충 30년도 정도 전에 인류는 밤하늘에서 별을 잃어 버리게 된다. 대충 태양의 80조배 정도 되는 크기의 막이 지구를 중심으로 둘러쌌는데 그 덕에 별들로 부터의 빛이 차단되어 지구에서는 태양계 정도 밖에는 볼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많다. 사실 이는 태양빛을 막은게 아니어서 지구의 생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인간들은 상당한 혼란에 빠진다. 

 이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 외계 문명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들이 대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인간이 위해가 된다면 이미 충분히 침공이 가능한데 왜 이런 짓만 하는지, 그들의 저의가 무엇인지 등등이다. 이 사건은 버블이라 불렸고, 많은 인구가 버블열이라는 정신병에 시달렸다. 물론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갖가지 종교 단체와 테러 단체가 생겨났고 이들은 지구 곳곳에서 수 십년째 소동을 일으킨다.

 소설의 장소는 공간적 배경은 호주로 아무래도 작가가 호주출신이라 그런 듯 하다. 미래엔 재밌는 설정이 하나 있는데 중국이 홍콩에 압제를 펼치고 대만마저 침공해 대량의 이주민이 발생하여 이들이 호주 북부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이곳이 뉴홍콩이라 불리는데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보면 무척 개연성 있게 느껴지지만 이 소설이 홍콩이 반환되기도 전인 1992년에 출간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대단한 혜안이다.

 미래사회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람의 신경과 뇌를 조절하는게 가능하며 이런 것을 제품으로 팔고 있다. 주인공만 해도 p1-p5에 해당하는 모드를 갖고 있는데 사람은 이것으로 인해 육체적 고통과 감정적 동요를 차단하고 냉정하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은 닉이란 사람으로 전직 경찰인데 아내가 테러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닉은 이 일로 경찰을 그만두고 탐정 일 같은 것으로 하는데 그가 받은 의뢰는 정신병원에 오래 입원하고 있는 로라라는 여자의 행방을 찾는 것이었다. 로라는 뇌손상을 갖고 태어나 3-4살 수준의 지능에 거동이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로라는 행방불명 이전 병원을 무려 두번이나 탈출한 이력이 있다. 

 닉은 로라가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갔을 리는 없고  누군가가 그녀를 모종의 이유로 납치한 것으로 생각한다. 알고보니 로라를 시신의 형태로 반출해갔고 장소는 뉴홍콩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닉은 인간이 양자중첩상태에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로라가 이를 토대로 스스로를 개량하고 탈출까지 가능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외계 문명에 의해 버블이 생겨난 것도 인간이 관측을 통해 대상을 수축시켜 우주의 가능성, 즉 양자중첩상태를 없애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책은 외계문명은 단 한차례도 나오지 않고 양자중첩을 노리는 인간들과 그런 상태에 놓은 사람들의 심리묘사가 주를 이룬다. 때문에 책은 읽기 쉬운 편이 아니다. 이런 독특한 심리를 좋아한다면 또 모르겠다. 하여튼 독특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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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게 강요된 침묵 - 정치적 중립의 역설
설진성 지음 / 살림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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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나라나 그렇듯 한국도 교육에 중립을 강조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미성년인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에서 편향적인 가치를 강조한다면 학생이 향후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민주시민으로 자라기 어렵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립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중 정치적 중립이 가장 중요하며, 종교적 중립도 어느 정도는 들어간다. 한국은 유독 기독교에 관대하여 한 때 크리스마스 파티나 카드만들기, 트리만들기 등을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하던 때도 있었으며 지금도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종교적 중립은 전체적으로 지켜지는 느낌이지만 기독교에 편파적인 면이 상당히 있다. 

 정치적 중립은 매우 강력하다. 국가공무원법과 교육기본법 등 여러 가지 법이 학교 교사에게 정치적 중립의 굴레를 강요하고 있으며 이는 같은 국민의 한 사람인 교사들에게서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이란 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국민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이는 정치에 대한 혐오와 학생의 미성숙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재정권 때부터 비롯된 현재의 주요 흐름 만을 따라는 정치적 조용함이 생존을 보장했던 암울했던 시대의 잔상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서의 정치적 중립을 없었다. 그들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교육했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만들어낸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했고, 노동자를 희생시키고, 자본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교육과정이 실행되었다. 사실 정치적 중립은 그것에 반대하는 진영에만 가혹하게 적용되었다. 

 일단 교사에게 박탈하는 참정권은 상당한 편이다. 한국의 교사는 정당의 생성 및 가입의 금지, 일체의 정치단체 생성 및 가입의 금지, 선거운동 금지, 공무 외의 집단 행위 금지, 정치후원 및 그 회원의 금지, 공직 선거 출마가 금지된다. 이는 상당히 지나친 편인데 한국과 유사한 수준의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핀란드,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등 대부분의 국가들은 교사의 정당활동과 정치적 후원, 출마, 선거운동을 허용한다. 이 중 제한하는 것은 나라마다 어쩌다 한 개 정도 뿐이며 한국처럼 교사를 정치적으로 완전히 거세하는 국가는 오직 일본뿐이다. 그 나라의 민주 정치 수준은 뭐 다들 아는 수준이다.

 책의 저자는 이제 교사에게 참정권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거는 간단하다. 교사도 민주시민이므로 그의 공무에 따른 제한은 최소화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다. 하지만 비교하다시피 한국의 교사들에 대한 참정권의 제한은 상당히 강력하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허용하고 교육과정 및 수업의 운영에 있어 정치적 중립만을 강요해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참정권의 제한은 불공평한 면도 있다. 우선 초중등 즉, 초등, 중등, 고등학교의 교사는 참정권이 부정되는 반면 대학의 교원은 이 모든게 허용된다. 논리는 간단하다. 대학의 교원은 성년을 교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정권이 만 18세로 내려오고, 정당 가입 가능 연령은 16세까지 내려온 지금은 이게 애매하다. 고등학생이 사실상 정치적 성년으로 취급받는 셈인데 그렇다면 고교를 담당하는 교사는 참정권을 허용해도 되는 셈이 된다. 그리고 고교 교사는 상황에 따라 중학교에서도 일하게 되는데 이러면 문제는 더욱 애매해진다. 고교에서 근무하면 참정권이 허용되고 중학교로 가면 부정되는 웃지못할 논리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종교라는 상당한 편향적 가치를 가진 도구를 미성년에게 적극 전파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종교 장소에서 정치적 편향성도 상당히 드러내며 이를 미성년에게 거리낌 없이 전파한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것들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으며 법적인 제한이 전혀 없다. 반면 오히려 더욱 높은 민주시민성을 갖고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정치적 감시도 상당히 이뤄지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에겐 그런 것을 강조한다. 앞뒤가 상당히 맞지 않는 부분이다. 

 교사에게 참정권을 허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민주시민의 양성때문이다. 교사는 정치적 중립이 법적으로 강하게 강조 되기에 교육을 함에 있어 상당히 조심스럽다. 사회과나 국어, 도덕과 등 여러 교과에서 교육을 하다보면 현재 사회에서 벌어지는 상당히 많은 일들을 소재로 다룰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교육효과가 더욱 높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강요된 중립성으로 인해 그런 시도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교사가 아무런 파당성을 갖지 않거나, 혹은 과도한 파당성을 갖고 이를 적극적으로 전수하는 것 보다는 교사가 합당한 정치적 신념을 갖되 이를 강요 및 주입하지 않고 교육을 하는 것이 교육효과가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즉,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정치적 중립의 굴레에 과도하게 갇히지 않아야 현실 세계의 문제를 교육현장으로 가지고 올 수 있고 이를 통해 학생이 실생활 문제를 접하고 판단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교육이 가장 잘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참정권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는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다. 이번 대선은 교육에 상당히 무관심한 대선이었다. 이런 무관심엔 여러가지고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사가 정치에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 크다. 교원의 수는 전국적으로 수십만에 달하지만 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치인 혹은 정당으로 교육현장의 교육적 의견이 전달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현장 경험자이자 실무자인 교사가 정치인이 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기에 선출직 공무원중 교사 출신은 거의 전무하며 교육부의 고위 관료 역시 행정관료로만 채워져 있다. 때문에 항상 한국의 교육정책은 단 한번도 현장의 의견이 잘 수용되어 진행된 적이 없다. 교사에게 참정권이 허용되어야만 이런 문제가 해결될 소지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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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25 13: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동의합니다. ^^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학생들이 교육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거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닷슈 2023-02-25 14:57   좋아요 4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도한 생각이죠.

미미 2023-02-25 14: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런 현실이 참 미스터리 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반가운 책이네요.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정당에도 법조인들보다 교사 출신들이 더 많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닷슈 2023-02-25 14:58   좋아요 4 | URL
맞습니다. 국회의원은 대부분 법조인, 언론인, 대학교원으로 채워져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육정책발전을 위해서도 현장 전문가인 교사출신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교육과정이 단 한번도 현장의 데이터를 토대로 만들어진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빅데이터 시대인데도 말이죠.

singri 2023-02-26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연한게 당연하지않는 시대. 진짜 좀 바껴야됩니다

닷슈 2023-02-28 12:38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좀 싹 바꿨으면 합니다.

추풍오장원 2023-03-10 2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교육이 완전히 괴멸한 상황이고 대체 어디부터 뜯어고쳐야 할지 상상도 못하겠는데 이런 책이 나오는군요.

베터라이프 2023-03-10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기본 문제인 것 같은데요. 더군더나 위에 계신 분들은 정치적으로 잘못된 교사가 아이들을 세뇌시킬 수 있다고 보는 듯 합니다. 교육 현장은 자기들 기대대로 어떠한 정치적 영향이 없어야 한다 이런 입장인 것 같은데요. 그냥 요즘 드는 생각은 정치 엘리트들이 국민은 그냥 제 앞가림이나 하고 정치는 일절 신경쓰지 말아라 이런 추측이 듭니다. 물론 이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지만요.

서니데이 2023-03-13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현대 철학의 최전선 - 가장 뜨거운 다섯 가지 주제와 그 사유의 지도
나카마사 마사키 지음, 박성관 옮김 / 이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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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20세기에서 21세기에 철학자들이 크게 논의한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한 책이다. 다섯 가지 주제는 정의론, 승인론, 자유 의지, 마음의 존재, 실재론이다. 책은 이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한 여러 철학자들의 논의를 넘나들며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는데 충실히 설명하면서도 간략히 다룰 수 밖에 없다 보니 이해가 쉽지 않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철학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은 편이다. 워낙 어렵기도 하며, 이것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설명으로 내가 가장 신뢰하는 것은 진화론과, 우주론, 지리학이다. 이들의 설명이 가장 그럴 듯 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설명 방법 중 비교적 인과가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과학적 방법보다는 인간의 부실한 합리성에 의존하며 사실 그 합리성도 개인적인 특출한 자질과 그 사람이 자라난 지역의 역사와 문화권에 의해 생성된다. 때문에 상당히 매력적이고 뛰어난 설명이 많지만 역시 많은 한계를 지니며 부실하다. 이 책도 재밌었지만 그러한 한계 내에 있다고 생각된다. 하여튼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정의론

 윤리학은 종래 메타윤리학 중심이던 것이 롤스에 의해 인간의 행동 기준으로 삼아야 할 정의의 원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널리 실행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가 필요한가 등 실제적인 가치 판단의 문제로 논의의 축이 이동한다.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계약의 틀을 사용한다. 그는 사회계약의 틀로 자원 배분 문제를 포함한 정의의 원리를 선택하는 데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계약은 곧 다수결의 원리로 이어지게에 기존의 공리주의와 차별성이 없어진다. 차별성을 두기 위해 롤스는 원초상태와 무지의 베일을 설정한다.

 원초상태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행복 추구를 위해 함께 협력할 때 어떤 권리를 각자에게 할당할지 또 공동으로 관리하는 각종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지 논의하기 위해 모인 상황이다. 무지의 베일은 사람들이 어떤 원리를 채택할 때 그게 자기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알 수 없도록 그 사람의 지위를 망각시키는 원리다. 롤스는 이로 인해 사람들이 두 가지 원리로 정의를 구상할 것이라 생각했다. 제1원리는 기본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개인에게 평등하게 보장하는 것이고 제2원리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허용하는 두 가지 조건이다. 하나는 그 불평등이 있어야 가장 불우한 이의 기대편익이 최대가 되는 것이며 둘은 그 불평등이 직무나 지위가 전원에게 공평하게 개방된 경우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센델은 이런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비판한다. 센델은 무지의 베일처럼 당사자들이 연고 없는 상태에서 행하는 계약은 무의미 한다고 주장한다. 계약이란 상이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의견교환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인식하고 대립을 파악하여 납득가능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인데 무지의 베일상태에선 이런 합의가 있기 어렵다.   

 센델은 롤스나 모든 근현대의 자유주의 국가의 법에는 현실의 인간이 보편적 이성능력으로 보편적 정의와 권리를 인지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만일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각자의 정체성에 따라 달라지는 '선' 이전의 것이 있는 것이라 하였는데 그것이 '정'이다. 센델은 선보다 정이 선행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현상은 선에 대한 정의 우위라고 부른다. 하지만 센델이 보기에 국가는 중립적이지 않으며 선에 대한 정의 우위가 아닌 특정 선에 우세하게 조직되어 있다. 때문에 자유주의는 자신이 비중립적인 문화 위에 성립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그래서 각 개인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어떤 정의가 요구되는지를 숙고하기 위해서 우리 공동체 속에 배양되어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공동선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

 아마르티아 센은 잠재능력을 윤리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잠재능력은 개인이 기본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가능성인데 이는 가난한 제 3세계일 수록 중요하다. 그리고 센의 공동 연구자 누스바움은 문화적 관습이나 생활습관으로 선진국 여성보다 개발 도상국 여성들이 잠재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다. 다만 누스바움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자연으로 받아들이는 여성이 잠재능력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과 그것의 무리한 강요는 옳지 않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2. 승인론

 언급한 정의론에서 방식이야 어떻든 개인 간의 합의가 중요한 절차로 작용한다. 때문에 승인론이 등장한다. 이론 합의에 의한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이 보편적 합리성을 갖춘 자율적인 주체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인론은 인간이 주체성을 갖고 있느냐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가치중립성을 표방하는 자유주의 계열의 정의론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을 전제한다. 반면 보편적 이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기고 무의식과 역사성, 지역성에 의한 생성을 강조하는 쪽이 있다. 

 부정적인 쪽에는 프랑스의 구조주의가 있다. 구조주의는 주체가 자율적으로 존재하며 판단이나 행동하지 않는다고 본다. 각종 구조, 언어를 비롯한 각종 기호체계의 유닛에 의해 본인이 알지 못하는 곳, 즉, 무의식에 규정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그 구조를 밝히려 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간 포스트 구조주의는 구조를 실체시하는 경향마저 문제삼으며 구조의 유동성을 강조한다. 데리다는 개인이 판단을 할 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확신하고 이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데 이 내면의 기준은 에크리튀르(주체와 대상을 규정하는 다양한 기호)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한 에크리튀르는 다른 에크리튀르에 따르며 이것의 원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콰인의 전체론은 사람들이 대상에 대해 품은 신념이나 과학적 명제는 각각 독립적으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정당성을 상호 증명하는 그런 상호의존적 체계라는 주장이다. 이 견해에 따라면 개개의 명제들은 진리성이 상대화되어 궁극적인 형태의 이론적 토대의 부여는 불가능하다. 결국 전체론은 포스트구조주의와 비슷한데 로티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는 인식론을 기반으로 한 근대철학과 분석철학은 양자 모두 토대주의에 기반한다고 파악한다. 그는 절대적 근거가 없는 토대주의 대신 프래그머티즘적 태도를 보인다. 이는 상이한 유형의 다양한 학문과 담론사이에서 회화를 성립시키는 매개, 즉, 논의를 진행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이며 그는 이를 중시한다. 절대적 토대보다는 서로 간의 논의를 받쳐주는 형식을 중시하는 것으로 이는 해석학이다. 


3. 자유 의지

 자유의지는 오랫동안 이성을 갖춘 합리적 주체처럼 철학에서 당연시 되어 온 하나의 전제였지만 과학의 성과로 현재에는 전체적으로 부정된다. 사회생물학자인 윌슨은 자유의지에 대해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는 자기는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신체의 다양한 회로 속에 진행되는 의식 외부의 프로세스에 의해 조종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완전한 지휘권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의지란 결정에 이르기까지 의식 외 활동, 마음의 매커니즘이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기에 생기는 행복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대니얼 데닛은 인간이 왜와 어떻게를 혼동한다고 말한다. 이는 진화론적 근거가 있는데 원인은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어떻게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유는 왜에 대응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연계에는 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순한 인과과정인 어떻게만 존재하지만 인간은 문화적 진화과정에서 이 왜가 분화되어 나온 것이다. 진화상 단순한 생명체는 자신의 목적인 유전자의 유지 복제를 위해 본능적으로 프로그램된 단순한 행동을 반복한다. 이는 거의 확실하고 규칙적이다. 하짐나 생명체는 복잡해지면 유전자의 복제, 유지를 위하여 환경에 더욱 능동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본능을 넘어선 지능이 생겨나 현재 상황에 대한 자신의 대응을 꾸준히 시뮬레이션 하고 왜 이 행동을 해야하는지를 계획하고 반성하며 되묻는다. 이런 것이 확장하여 여러가지에 대해서 왜를 묻게 되는 것이다. 즉, 데닛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굳이 필요가 없는 인과만으로 존재하는 우연적 자연계에 대한 효율적 대응과정에서 왜가 분화되어 생겨난 것이 된다.

 로젠버그는 윌슨 이상으로 자연주의와 과학주의 입장을 취한다. 자유, 자유의지, 도덕성, 의지의 목적은 모두 환상이며 인간의 현상들의 의미를 인문과학에 의해 해석하는 것은 무력하다고 말한다.


4. 마음은 존재하는가

 마음철학에서도 인지과학이나 심리학 생물학 등의 성과를 받아들여 마음을 물맂거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물리적 경향이 강하다. 다만 마음을 구성하는 요소로 생각되는 의식, 자기의식, 감각등을 어떻게 설명할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있는 편이다.

 정신의 모듈성은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것처럼 인간도 각 모듈에서의 처리가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을 마음이라고 본다. 데니얼 대닛은 기존의 마음 철학들을 비판하며 이것들은 모두 뇌의 어딘가에 의식에 중핵에 해당하는 장소가 있고 그곳에 위치한 진정한 자기가 의식 내 모든 사건을 조장하고 있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는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성의 의해 의식을 전체적으로 통합하는 포괄적인 주체는 없으며 내 의식에 있어서는 그때그때 다른 경로로 여러 단계에 걸쳐 결정이나 판단이 이뤄진다. 다만 나중에 그 과정을 돌아보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보고할때 마치 자기 주위의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의 의도에 따라 실행한 통일된 주체가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 뿐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행동에 예측 가능해져 생존을 할 수있으며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통해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음에서는 개개인이 외부 세계를 인식할 때 의식에 생기는 감각의 질적 변화인 퀄리아가 중요시 된다. 이는 마음의 근거로 주장할 때 많이 이용되는데 데닛은 이런 퀄리아 역시 물리적 자극에 반응하는 성향복합체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5. 실재론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으로 실재론은 그 근거가 철저히 박탈된다. 하지만 이에 대항하여 사변적 실재론과 신실재론이 등장한다. 이들은 주체의 인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부정하기 힘든 실재가 있음을 철학적인 사변을 통해 밝히려고 시도한다. 

 현대의 실재론은 과거의 이데아 같은 형이상학적 전제에 의존하지 않으며 주체의 의식을 초월하는 실재에 관해 사유하면서 어떤 속성을 갖는 대상이 존재하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상관주의는 칸트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주제가 어떤 대상과의 관계속에 있으며 그 관계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는 견해다. 상관주의에 따르면 어떤 존재도 필연성이 있기 어렵다. 메이야수는 그래서 세계를 수학화하여 상관주의에서 벗어나려 시도한다. 하지만 자연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체의 의식과 무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논의는 쉽게 부정된다. 

 브라시에는 인간이 개념장치를 매개로 실재의 구조에 접근해 가는데 이 세계는 지적으로 이해하도록 되어 있지 않아 애당초 의미가 주입되어 있지도 않다. 때문에 인간의 개념장치에 의한 행위는 불가피하게 형이상학으로 치닫게 된다. 그는 우주가 무감각, 무목적인 것으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이 그것을 그냥 드러내고 받아들이는게 지성의 성과라고 말한다. 

 샤비로는 과학 수학 역시 인간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존 견해들이 인간의 입장에서 사물을 분석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에게 사물이 작용하고 있는지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물들과 함께라는 느낌이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에서 실재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들에게 주는 느낌이 현재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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