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철학의 최전선 - 가장 뜨거운 다섯 가지 주제와 그 사유의 지도
나카마사 마사키 지음, 박성관 옮김 / 이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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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20세기에서 21세기에 철학자들이 크게 논의한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한 책이다. 다섯 가지 주제는 정의론, 승인론, 자유 의지, 마음의 존재, 실재론이다. 책은 이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한 여러 철학자들의 논의를 넘나들며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는데 충실히 설명하면서도 간략히 다룰 수 밖에 없다 보니 이해가 쉽지 않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철학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은 편이다. 워낙 어렵기도 하며, 이것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설명으로 내가 가장 신뢰하는 것은 진화론과, 우주론, 지리학이다. 이들의 설명이 가장 그럴 듯 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설명 방법 중 비교적 인과가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과학적 방법보다는 인간의 부실한 합리성에 의존하며 사실 그 합리성도 개인적인 특출한 자질과 그 사람이 자라난 지역의 역사와 문화권에 의해 생성된다. 때문에 상당히 매력적이고 뛰어난 설명이 많지만 역시 많은 한계를 지니며 부실하다. 이 책도 재밌었지만 그러한 한계 내에 있다고 생각된다. 하여튼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정의론

 윤리학은 종래 메타윤리학 중심이던 것이 롤스에 의해 인간의 행동 기준으로 삼아야 할 정의의 원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널리 실행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가 필요한가 등 실제적인 가치 판단의 문제로 논의의 축이 이동한다.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계약의 틀을 사용한다. 그는 사회계약의 틀로 자원 배분 문제를 포함한 정의의 원리를 선택하는 데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계약은 곧 다수결의 원리로 이어지게에 기존의 공리주의와 차별성이 없어진다. 차별성을 두기 위해 롤스는 원초상태와 무지의 베일을 설정한다.

 원초상태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행복 추구를 위해 함께 협력할 때 어떤 권리를 각자에게 할당할지 또 공동으로 관리하는 각종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지 논의하기 위해 모인 상황이다. 무지의 베일은 사람들이 어떤 원리를 채택할 때 그게 자기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알 수 없도록 그 사람의 지위를 망각시키는 원리다. 롤스는 이로 인해 사람들이 두 가지 원리로 정의를 구상할 것이라 생각했다. 제1원리는 기본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개인에게 평등하게 보장하는 것이고 제2원리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허용하는 두 가지 조건이다. 하나는 그 불평등이 있어야 가장 불우한 이의 기대편익이 최대가 되는 것이며 둘은 그 불평등이 직무나 지위가 전원에게 공평하게 개방된 경우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센델은 이런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비판한다. 센델은 무지의 베일처럼 당사자들이 연고 없는 상태에서 행하는 계약은 무의미 한다고 주장한다. 계약이란 상이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의견교환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인식하고 대립을 파악하여 납득가능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인데 무지의 베일상태에선 이런 합의가 있기 어렵다.   

 센델은 롤스나 모든 근현대의 자유주의 국가의 법에는 현실의 인간이 보편적 이성능력으로 보편적 정의와 권리를 인지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만일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각자의 정체성에 따라 달라지는 '선' 이전의 것이 있는 것이라 하였는데 그것이 '정'이다. 센델은 선보다 정이 선행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현상은 선에 대한 정의 우위라고 부른다. 하지만 센델이 보기에 국가는 중립적이지 않으며 선에 대한 정의 우위가 아닌 특정 선에 우세하게 조직되어 있다. 때문에 자유주의는 자신이 비중립적인 문화 위에 성립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그래서 각 개인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어떤 정의가 요구되는지를 숙고하기 위해서 우리 공동체 속에 배양되어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공동선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

 아마르티아 센은 잠재능력을 윤리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잠재능력은 개인이 기본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가능성인데 이는 가난한 제 3세계일 수록 중요하다. 그리고 센의 공동 연구자 누스바움은 문화적 관습이나 생활습관으로 선진국 여성보다 개발 도상국 여성들이 잠재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다. 다만 누스바움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자연으로 받아들이는 여성이 잠재능력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과 그것의 무리한 강요는 옳지 않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2. 승인론

 언급한 정의론에서 방식이야 어떻든 개인 간의 합의가 중요한 절차로 작용한다. 때문에 승인론이 등장한다. 이론 합의에 의한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이 보편적 합리성을 갖춘 자율적인 주체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인론은 인간이 주체성을 갖고 있느냐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가치중립성을 표방하는 자유주의 계열의 정의론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을 전제한다. 반면 보편적 이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기고 무의식과 역사성, 지역성에 의한 생성을 강조하는 쪽이 있다. 

 부정적인 쪽에는 프랑스의 구조주의가 있다. 구조주의는 주체가 자율적으로 존재하며 판단이나 행동하지 않는다고 본다. 각종 구조, 언어를 비롯한 각종 기호체계의 유닛에 의해 본인이 알지 못하는 곳, 즉, 무의식에 규정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그 구조를 밝히려 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간 포스트 구조주의는 구조를 실체시하는 경향마저 문제삼으며 구조의 유동성을 강조한다. 데리다는 개인이 판단을 할 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확신하고 이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데 이 내면의 기준은 에크리튀르(주체와 대상을 규정하는 다양한 기호)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한 에크리튀르는 다른 에크리튀르에 따르며 이것의 원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콰인의 전체론은 사람들이 대상에 대해 품은 신념이나 과학적 명제는 각각 독립적으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정당성을 상호 증명하는 그런 상호의존적 체계라는 주장이다. 이 견해에 따라면 개개의 명제들은 진리성이 상대화되어 궁극적인 형태의 이론적 토대의 부여는 불가능하다. 결국 전체론은 포스트구조주의와 비슷한데 로티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는 인식론을 기반으로 한 근대철학과 분석철학은 양자 모두 토대주의에 기반한다고 파악한다. 그는 절대적 근거가 없는 토대주의 대신 프래그머티즘적 태도를 보인다. 이는 상이한 유형의 다양한 학문과 담론사이에서 회화를 성립시키는 매개, 즉, 논의를 진행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이며 그는 이를 중시한다. 절대적 토대보다는 서로 간의 논의를 받쳐주는 형식을 중시하는 것으로 이는 해석학이다. 


3. 자유 의지

 자유의지는 오랫동안 이성을 갖춘 합리적 주체처럼 철학에서 당연시 되어 온 하나의 전제였지만 과학의 성과로 현재에는 전체적으로 부정된다. 사회생물학자인 윌슨은 자유의지에 대해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는 자기는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신체의 다양한 회로 속에 진행되는 의식 외부의 프로세스에 의해 조종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완전한 지휘권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의지란 결정에 이르기까지 의식 외 활동, 마음의 매커니즘이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기에 생기는 행복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대니얼 데닛은 인간이 왜와 어떻게를 혼동한다고 말한다. 이는 진화론적 근거가 있는데 원인은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어떻게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유는 왜에 대응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연계에는 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순한 인과과정인 어떻게만 존재하지만 인간은 문화적 진화과정에서 이 왜가 분화되어 나온 것이다. 진화상 단순한 생명체는 자신의 목적인 유전자의 유지 복제를 위해 본능적으로 프로그램된 단순한 행동을 반복한다. 이는 거의 확실하고 규칙적이다. 하짐나 생명체는 복잡해지면 유전자의 복제, 유지를 위하여 환경에 더욱 능동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본능을 넘어선 지능이 생겨나 현재 상황에 대한 자신의 대응을 꾸준히 시뮬레이션 하고 왜 이 행동을 해야하는지를 계획하고 반성하며 되묻는다. 이런 것이 확장하여 여러가지에 대해서 왜를 묻게 되는 것이다. 즉, 데닛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굳이 필요가 없는 인과만으로 존재하는 우연적 자연계에 대한 효율적 대응과정에서 왜가 분화되어 생겨난 것이 된다.

 로젠버그는 윌슨 이상으로 자연주의와 과학주의 입장을 취한다. 자유, 자유의지, 도덕성, 의지의 목적은 모두 환상이며 인간의 현상들의 의미를 인문과학에 의해 해석하는 것은 무력하다고 말한다.


4. 마음은 존재하는가

 마음철학에서도 인지과학이나 심리학 생물학 등의 성과를 받아들여 마음을 물맂거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물리적 경향이 강하다. 다만 마음을 구성하는 요소로 생각되는 의식, 자기의식, 감각등을 어떻게 설명할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있는 편이다.

 정신의 모듈성은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것처럼 인간도 각 모듈에서의 처리가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을 마음이라고 본다. 데니얼 대닛은 기존의 마음 철학들을 비판하며 이것들은 모두 뇌의 어딘가에 의식에 중핵에 해당하는 장소가 있고 그곳에 위치한 진정한 자기가 의식 내 모든 사건을 조장하고 있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는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성의 의해 의식을 전체적으로 통합하는 포괄적인 주체는 없으며 내 의식에 있어서는 그때그때 다른 경로로 여러 단계에 걸쳐 결정이나 판단이 이뤄진다. 다만 나중에 그 과정을 돌아보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보고할때 마치 자기 주위의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의 의도에 따라 실행한 통일된 주체가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 뿐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행동에 예측 가능해져 생존을 할 수있으며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통해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음에서는 개개인이 외부 세계를 인식할 때 의식에 생기는 감각의 질적 변화인 퀄리아가 중요시 된다. 이는 마음의 근거로 주장할 때 많이 이용되는데 데닛은 이런 퀄리아 역시 물리적 자극에 반응하는 성향복합체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5. 실재론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으로 실재론은 그 근거가 철저히 박탈된다. 하지만 이에 대항하여 사변적 실재론과 신실재론이 등장한다. 이들은 주체의 인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부정하기 힘든 실재가 있음을 철학적인 사변을 통해 밝히려고 시도한다. 

 현대의 실재론은 과거의 이데아 같은 형이상학적 전제에 의존하지 않으며 주체의 의식을 초월하는 실재에 관해 사유하면서 어떤 속성을 갖는 대상이 존재하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상관주의는 칸트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주제가 어떤 대상과의 관계속에 있으며 그 관계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는 견해다. 상관주의에 따르면 어떤 존재도 필연성이 있기 어렵다. 메이야수는 그래서 세계를 수학화하여 상관주의에서 벗어나려 시도한다. 하지만 자연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체의 의식과 무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논의는 쉽게 부정된다. 

 브라시에는 인간이 개념장치를 매개로 실재의 구조에 접근해 가는데 이 세계는 지적으로 이해하도록 되어 있지 않아 애당초 의미가 주입되어 있지도 않다. 때문에 인간의 개념장치에 의한 행위는 불가피하게 형이상학으로 치닫게 된다. 그는 우주가 무감각, 무목적인 것으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이 그것을 그냥 드러내고 받아들이는게 지성의 성과라고 말한다. 

 샤비로는 과학 수학 역시 인간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존 견해들이 인간의 입장에서 사물을 분석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에게 사물이 작용하고 있는지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물들과 함께라는 느낌이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에서 실재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들에게 주는 느낌이 현재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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