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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게 강요된 침묵 - 정치적 중립의 역설
설진성 지음 / 살림터 / 2022년 10월
평점 :
어느 나라나 그렇듯 한국도 교육에 중립을 강조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미성년인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에서 편향적인 가치를 강조한다면 학생이 향후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민주시민으로 자라기 어렵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립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중 정치적 중립이 가장 중요하며, 종교적 중립도 어느 정도는 들어간다. 한국은 유독 기독교에 관대하여 한 때 크리스마스 파티나 카드만들기, 트리만들기 등을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하던 때도 있었으며 지금도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종교적 중립은 전체적으로 지켜지는 느낌이지만 기독교에 편파적인 면이 상당히 있다.
정치적 중립은 매우 강력하다. 국가공무원법과 교육기본법 등 여러 가지 법이 학교 교사에게 정치적 중립의 굴레를 강요하고 있으며 이는 같은 국민의 한 사람인 교사들에게서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이란 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국민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이는 정치에 대한 혐오와 학생의 미성숙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재정권 때부터 비롯된 현재의 주요 흐름 만을 따라는 정치적 조용함이 생존을 보장했던 암울했던 시대의 잔상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서의 정치적 중립을 없었다. 그들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교육했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만들어낸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했고, 노동자를 희생시키고, 자본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교육과정이 실행되었다. 사실 정치적 중립은 그것에 반대하는 진영에만 가혹하게 적용되었다.
일단 교사에게 박탈하는 참정권은 상당한 편이다. 한국의 교사는 정당의 생성 및 가입의 금지, 일체의 정치단체 생성 및 가입의 금지, 선거운동 금지, 공무 외의 집단 행위 금지, 정치후원 및 그 회원의 금지, 공직 선거 출마가 금지된다. 이는 상당히 지나친 편인데 한국과 유사한 수준의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핀란드,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등 대부분의 국가들은 교사의 정당활동과 정치적 후원, 출마, 선거운동을 허용한다. 이 중 제한하는 것은 나라마다 어쩌다 한 개 정도 뿐이며 한국처럼 교사를 정치적으로 완전히 거세하는 국가는 오직 일본뿐이다. 그 나라의 민주 정치 수준은 뭐 다들 아는 수준이다.
책의 저자는 이제 교사에게 참정권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거는 간단하다. 교사도 민주시민이므로 그의 공무에 따른 제한은 최소화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다. 하지만 비교하다시피 한국의 교사들에 대한 참정권의 제한은 상당히 강력하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허용하고 교육과정 및 수업의 운영에 있어 정치적 중립만을 강요해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참정권의 제한은 불공평한 면도 있다. 우선 초중등 즉, 초등, 중등, 고등학교의 교사는 참정권이 부정되는 반면 대학의 교원은 이 모든게 허용된다. 논리는 간단하다. 대학의 교원은 성년을 교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정권이 만 18세로 내려오고, 정당 가입 가능 연령은 16세까지 내려온 지금은 이게 애매하다. 고등학생이 사실상 정치적 성년으로 취급받는 셈인데 그렇다면 고교를 담당하는 교사는 참정권을 허용해도 되는 셈이 된다. 그리고 고교 교사는 상황에 따라 중학교에서도 일하게 되는데 이러면 문제는 더욱 애매해진다. 고교에서 근무하면 참정권이 허용되고 중학교로 가면 부정되는 웃지못할 논리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종교라는 상당한 편향적 가치를 가진 도구를 미성년에게 적극 전파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종교 장소에서 정치적 편향성도 상당히 드러내며 이를 미성년에게 거리낌 없이 전파한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것들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으며 법적인 제한이 전혀 없다. 반면 오히려 더욱 높은 민주시민성을 갖고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정치적 감시도 상당히 이뤄지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에겐 그런 것을 강조한다. 앞뒤가 상당히 맞지 않는 부분이다.
교사에게 참정권을 허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민주시민의 양성때문이다. 교사는 정치적 중립이 법적으로 강하게 강조 되기에 교육을 함에 있어 상당히 조심스럽다. 사회과나 국어, 도덕과 등 여러 교과에서 교육을 하다보면 현재 사회에서 벌어지는 상당히 많은 일들을 소재로 다룰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교육효과가 더욱 높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강요된 중립성으로 인해 그런 시도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교사가 아무런 파당성을 갖지 않거나, 혹은 과도한 파당성을 갖고 이를 적극적으로 전수하는 것 보다는 교사가 합당한 정치적 신념을 갖되 이를 강요 및 주입하지 않고 교육을 하는 것이 교육효과가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즉,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정치적 중립의 굴레에 과도하게 갇히지 않아야 현실 세계의 문제를 교육현장으로 가지고 올 수 있고 이를 통해 학생이 실생활 문제를 접하고 판단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교육이 가장 잘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참정권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는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다. 이번 대선은 교육에 상당히 무관심한 대선이었다. 이런 무관심엔 여러가지고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사가 정치에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 크다. 교원의 수는 전국적으로 수십만에 달하지만 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치인 혹은 정당으로 교육현장의 교육적 의견이 전달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현장 경험자이자 실무자인 교사가 정치인이 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기에 선출직 공무원중 교사 출신은 거의 전무하며 교육부의 고위 관료 역시 행정관료로만 채워져 있다. 때문에 항상 한국의 교육정책은 단 한번도 현장의 의견이 잘 수용되어 진행된 적이 없다. 교사에게 참정권이 허용되어야만 이런 문제가 해결될 소지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