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레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오히려 그럴때 감동한다.

진수성찬이나 고량진미가 아니라,

내 식성과 양을 파악하여 입맛을 돋구는 음식을 안성맞춤하게 내어,

밥풀 한톨, 국물 한방울 허투루 남기지 않게 하는 그런 상차림일 경우.

상 위의 그릇이란 그릇은 말끔히 비우게 만들었을때.

산해진미라도 내가 못먹는 음식이이어서,

예의상 젓가락으로 몇번  깨작거리다 마는 경우라면 도무지 감동을 할 수가 없다.

 

이 책이 내게 그랬다.

장르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좀 잔인하다 싶은건 잘 읽지 못한다.

그게 영화라면 좀 더 심각해지는데, 시각적 잔상이 너무 오래 남아 붙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상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읽었다.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검은선'으로 만났다.
시각적 잔인성이나, 반전, 충격적인 요소 모든 면에서 '검은선'이 더 심했다.

 

요번에는 좀 덜하다.
그리고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 

장르소설만의 어떤 강렬한 한방을 원하는 사람의 기대에 살짝 못미칠 수 있겠지만,
그랑제의 매력을 아는 경우라면, 이 작품이 best는 아니어도 흠뻑 빠져 들 수 있다.

내 경우, 이세욱 님의 번역이라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문학작품을 만난 듯 설레였고,
두권으로의 분권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문학동네의 출판 기획력 또한 흠잡을 곳 없었다.

이젠 블렉펜 클럽 시리즈라면 망설이지 않고 골라도 될 것 같다.

이세욱 님의 학문하듯 공들인 번역, 문학동네의 출판 기획력, 장르소설로써의 가독력...

이 셋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물론 이세욱 님의 손을 번쩍 들어주겠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의 번역이었더라면 아무래도 그랑제만의 독특한 매력을 제대로 맛보기 힘들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다른 언어 번역본까지 참고하시는 걸 보고,

이 분의 실력(실력을 평가할 깜냥이 안되는 고로)이 아니라 노력과 열정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랑제의 前作 두 작품을 번역하셨던 역자 이세욱 님은,

이번 작품에서도 문화적 이질감을 줄이면서도 그랑제만의 독특한 작품성을 제대로 살리고 전달하기 위하여,

작가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책 속의 인물들이 움직인 공간들을 실제로 방문하여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종교와 음악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여 출판사 온라인 카페에 올려 놓기도 하셨다.

종이로 만든 책 밑에 번역자가 주석을 다는 기존의 방식이,

소설에 불쑥 개입하여 서스펜스를 감소시키게 될까봐... 출판사 온라인 카페를 이용하셨단다.

근데 이건 종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 같아 좀 서운해지려한다.
책 하단의 주석이 꺼려진다면 책 뒷면의  몇장을 할애하는건 어땠을까?
책을 두권으로 나눌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화보집이나 미세레레 CD를 사은품으로 만드는 건 어땠을까?
이런 시청각 자료가 아쉬웠다.

암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런 것들에 이 책이 가리워진다면 그건 더 아쉬울 그런 책이다.

 

프랑스 소설이다.

파리의 아르메니아 성당에서 벌어진 독일계 칠레인 성가대 지휘자의 살인사건을 다룬 종교와 음악을 넘나드는 소재이다.

 

위의 두 전제만으로도 독서의 방향 잡기가 살짝 혼란스러웠었다.
요번엔 도대체 무얼 갈등의 중심으로 삼으려는 거지?

이념간의 갈등인가, 아님 종교간의 갈등인가, 그것도 아님 다수 민족과 소수 민족 간의 대립인가?
때문에 흠뻑 담금질하기가, 감정이입하기가 좀 머뭇거려졌다.
작가는 이런 문화적 이질감을 염두에 두고 배려한 듯, 아주 세세하고 작은 부분까지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런 배려들은 개연성이 되어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지만,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다 보니 만연체가 되어버려 자칫 늘어지고 지루한 감마저 들었다.

(난 어찌되었든(?) 장르소설의 생명은  긴장감과 급박함이라고 생각하는 부류인가 보다~ㅠ.ㅠ)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감정 이입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이런 자세한 설명 때문이 아니라, 갈등의 경계가 모호한데 있었다.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두형사(한 번도 신분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던 비밀과 고통을 품은 카스단과 마약을 투여하면서라도 잊으려 애썼던 트라우마를 가진 볼로킨)가 등장하는데 그럼 그들은 善인가?
결국 惡이 파멸되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악은 완전 사라지는 것일까?
본인도 모르게 악을 행사하는 그 어린 합창단원은 악인가, 선인가?

그리고 과거 악을 경험하고 악에 충분히 노출되었던, 그리고 지금 자신들의 의지로 악에 대항하고 있는 두 형사는 악인가, 선인가?

 

내가 기실 궁금한건, 두 형사와 본인도 모르게 악을 행사한 어린 합창단원의 지금이 아닌 '미래'이다.
장르소설을 읽다보면, 간혹 모든 인간이 통째로 편먹고 외계생명체나 로봇과 갈등과 대립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인간들 사이'에서 국가나 종교나 이념적 이해관계에 따라...갈등과 대립을 하고, 동지나 적이 되기도 하며, 선악을 나누기도 한다.

이 선악을 나누는 차이는 대단한 것이 아닐 때도 있으며, 때론 아주 사소하기도 하고, 심지어 경계선에 있어서 구별이 모호한 경우도 있다.

 

선과 악은 낮과 밤, 또는 빛과 그림자이다.
낮이 없으면 밤이 없듯이, 선이 없으면 악은 존재 할 수가 없다.
이렇듯 선과 악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히틀러가 600만명의 유태인을 학살 했다고 해서 극악하다고 한다.
그런데 구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은 자기를 안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부족을 침략하여 약탈, 강간, 살인하라고 하고...심지어는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극악하다고 하는 히틀러의 만행과, (비록 구약에 기록될 뿐이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하고 선하신 것으로 알고있는 하나님이 행한 업적과 무엇이 다른가?

그렇기 때문에 한가지 기준이 필요하겠다.
선과 악은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달라져야 하며, 또 인간의 선악은 '인간'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성가곡 '미세레레'에서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브라나'를 떠올리다.

 

'미세레레'는 '그레고리오 알레그리'가 작곡한 성가곡 제목에서 따온 것으로,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의 라틴어란다.

예전에도 몇번 들어본 적이 있지만, 주의 깊게 듣지 않아서 그런지...항상 음악이 귀를 비껴간다는 느낌이 들었던 터라,

성가곡 한곡으로 이런 소설을 만들이낸 그랑제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주의깊게 듣다보면 감동과 매력의 요소가 여럿 있을테지만, 내가 찾아낸 것은 여자인 나도 내기 힘든 곱고 높은 미성 정도였다.

여성이 금지되었던 당시 교회음악에서 이처럼 높은 음이 사용된 것은 뛰어난 카스트라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되는데...그렇게 본다면, 자신의 성을 제대로 발현하고 살지 못하는 것은...그것이 제 아무리 신을 향한 그것이라 할지라도,

더우기 자신의 성에 눈을 뜨기 전의 소년들이어서 '불쌍히 여기소서'가 꼭 그들에게 맞춤한 것처럼 느껴졌다.

성가곡 '미세레레'에서 영감을 받아 씌여진 소설 '미세레레'또한, 그래서인지 변성기를 거치기 전 소년들의 목소리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된 수단이자 도구가 된다.

이쯤에서 생각나는게 칼 오르프(CARL ORFF)의 카르미나 브라나(Carmina brana)이다.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미세레레'가 종교적인 음악이라면,

그 무렵 음악을 했던 칼 오르프(CARL ORFF)는 유럽을 짓누르고 있던 종교의 권위를 마음껏 조롱하는 음악을 했다.

 

카스단은 곡명과 작곡자 이름의 대비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뜻의 미세레레라는 제목은 비통한 느낌을 주는 데에 반해서 알레고리라는 이름은 명랑함, 축제, 환희를 연상시켰다. 

 그때 갑자기 헤드폰에서 아주 높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날카롭고도 부드러운 목소리. 그 부드러움이 너무나 기이하고 강렬해서 듣는 사람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깨뜨리고 순식간에 목이 메게 하는 목소리. 누구도 따라 올라갈 수 없는 높이에 다다른 소년의 목소리. 마치 세상 위로 솟구치듯이 화음들에서 떨어져나가 아주 높은 선율을 따라가는 목소리.

 카스단은 눈앞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세상에, 망인의 집에서 한밤중에 헤드폰을 쓰고 외과용 장갑을 낀 채로 바닥에 앉아 눈물을 흘릴 판이었다.ㆍㆍㆍㆍㆍㆍ레지스 마주아에라는 어린 성가대원의 힘이었다. 소년은 오로지 목소리 하나로 듣는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감춰진 슬픔을 되살리고 사라진 사람들을 다시 불러낸 것이었다.(1권/73쪽)

 

미세레레- 번역과 편집에 대하여


번역의 훌륭함은 앞에서도 얘기했었고, 옥의 티를 살펴 보겠다.

나무딸기 빛깔의 모조가죽(1권/11쪽)

 raspberry는 라즈베리로 적어주면 되지 않을까? '나무딸기'가 오히려 어색하고 겉도는 느낌이었다.

 (맞춤법, 외래어 표기 용례집'일반 용어'참조) 

 

"그래, 고막과 가운데귀를 뚫었어.

ㆍㆍㆍㆍㆍㆍ

 살인자는 양쪽 귀에 어떤 뾰족한 것을 난폭하게 찔러넣은 것으로 보여.

ㆍㆍㆍㆍㆍㆍ"(1권/39쪽)

위에서 '가운데귀'를 '중이'로 고쳐주는게 나을 것 같다.

귀의 세부 명칭중에 '중이'가  '가운데귀'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가운데귀'가 됐을 경우, 밑에 나오는 '양쪽 귀'와 관련 '가운데 귀'로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아이언맨은 심장에 결함이 있고 슈퍼맨은 신비의 물질 크립토나이트에 민감한 것처럼ㆍㆍㆍㆍㆍㆍ(1권/128쪽)

이 부분도 좀 아쉬웠다. 아킬레스건은 '약점'이라는 뜻으로 쓰였을텐데...

의약학 용어와 음악용어가 짬뽕이 되어 나오는 내용 전개 상, 아킬레스건이라고 하니 해부학적 부위가 먼저 생각났다.

 

다음은 말 그대로 오자이다.

 

그 결핍과 그에 따른 기능장애는 오르지(오로지) 마약으로만 치료할 수 있었다.(1권/203쪽)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했던 하인리히 힘러는 트레블린카 강제스용소를 방문하면서 제 거동이 (편)한 것에만 신경을 썼다.(1권/365쪽)

 

되작이다, 궁굴렸다 , 베돌이, 버르집다, 기신기신, 동을 달다, 뭇매를 놓고... 같은 표현 만으로 충분히 이세욱님의 우리말 벼리는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미세레레 - '불쌍히 여기소서' 기원의 대상

 

"그는 우리와 차원이 달랐소. 달라도 이만저만 달랐던 게 아니오."

ㆍㆍㆍㆍㆍㆍ

"그는 이를테면ㆍㆍㆍㆍㆍㆍ내부로부터 고통을 가하는 기술에 훤했소."

ㆍㆍㆍㆍㆍㆍ
"하르트만은 자기 자신을 상대로 그 기술들을 실험했소. 그는 신비주의자였어요. 고통을 통한 회개, 그것이 아마 그가 추구한 길이었을 거요. 그는 벌을 삶의 목적이자 수단으로 생각하는 광신자였소. 제 몸을 훼손하고 저 자신을 고문하는 진짜 미치광이였소."(1권/355쪽)

 

"ㆍㆍㆍㆍㆍㆍ증오는 인간이 가장 널리 공유하고 있는 자질이죠."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군요."

연구원은 팔짱을 끼었다. 미소가 번질 듯 말 듯 입가에 매달려 있었다. 그 미소는 종유석 끝에 달린 차가운 물방울과 비슷했다. 물방울이 아슬아슬하게나마 종유석에 붙어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생생하게 반짝인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하지만 물방울이 땅바닥에 떨어져 부서지는 순간 그것의 참모습이 드러났다. 그건 한방울의 눈물이었다.(1권/387쪽)

 

"그것도 장사라면 장사지. 하지만 그는 아주 특이한 상품을 팔고 있소.ㆍㆍㆍㆍㆍㆍ고통이라오."(2권/84쪽)
"우리 클럽은 어릿광대 놀음이오. 나는 이제 고통에 대해서, 진짜 고통에 대해서 말하려는 거요."

"무슨 차이가 있지?"
"공포를 느낀다는 점에서 다르지요. 여기에서는 모두가 시늉만 하는거요. 손만 들어올리면 당장 고통이 멎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소. 진짜 고통이 언제 시작되는 줄 아시오? 고통을 가하는 자의 의지 말고는 아무 제약이 없을 때요. 그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소."(2권/105쪽)

세상은 그리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고통을 갖고 살아간다.

육체적 고통의 해소를 위해서 병원이, 정신적 고통의 해소를 위해서 종교가 생겨나게 된다.

'미세레레' 같은 종교음악만 해도 그렇다.

불특정 다수의 일반적 고통을 특정한 몇몇의 깊숙한 통증으로 바꾸어 놓는 것을 '고문'이라고 하는데,

얼마전 별세하신 김근태 님의 고문기술자로 명성을 날렸던 이근안의 목사직을 두고 말이 많았었다.

나는 그때 고문을 했었던 과거의 행위나 그런 그가 목사가 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뉘우치지 못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의 태도와 정신 상태가 문제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는 얼마전까지도 자신은 '고문기술자가 아닌 애국자이며, 자신은 그 중 꽃'이라는 웃지 못할 소리를 했었다.

 

암튼 그는 목사직에서 면직되었다.

'고통을 가하는 자의 의지 말고는 아무 제약이 없'는 진짜 고통 자체를 두려워 하고 불쌍히 여기기도 해야 할텐데...

나는 이근안이 생각나서 그런지, 고통을 받는자보단 고통을 주는자가 가여운 것 같다. 

 

미세레레 - 죽음과 중독 사이 

 

한순간 카스단은 죽은 사람의 영원한 안식을 부럽게 여겼다. 예전에 생각하기로는 나이가 들면 죽음에 대하여 참을 수 없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해가 갈수록 어서 죽고 싶은 마음, 자석에 이끌리듯 죽음에 다가가려는 마음이 새록새록 더해갔다.(1권/12쪽)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커피 끓이는 일에 각별한 정성을 들이는 것이 마약을 준비하는 의식과 닮았다는 것을.(1권/81쪽)

 

데파코트는 기분 장애를 치료하는 약이고, 세로플렉스는 신세대 항우울제다. 그런데 두 약이 합쳐지면 신비로운 평형이 이루어진다. 덕분에 그는 기분 장애의 늪에 빠지지 않고 비교적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1권/88쪽)

 

카스단은 두 개의 잔에 커피를 따르고 욕실로 갔다. 9시 30분. 약을 먹어야 할 시간이 지나 있었다.ㆍㆍㆍㆍㆍㆍ평소보다 늦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약효가 떨어질까봐 늘 전전긍긍해온 터였다. 그는 물 한 잔을 곁들여 알약을 먹었다. 그러면서 볼로킨을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마약이 있는 셈이었다.(1권/337쪽)

 

"신경증이란 마약을 복용하지 않는 사람의 마약이다."

볼로킨은 가방을 고쳐메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 자신을 놓고 보면 한 마디를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저는 두 가지를 아우르고 있어요. 마약중독자이면서 신경증 환자이니까요ㆍㆍㆍㆍㆍㆍ(2권/31쪽)

죽음과 중독의 공통점은 둘 다 치명적이라는 거다.

카스단과 볼로킨은 겉으로 소리내어 얘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각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한사람은 약물에, 다른 한사람은 마약에 중독되어 생사를 넘나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연쇄살인범을 수사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각자의 트라우마에 부딪히게 되고, 그 트라우마를 눈물겹게 이겨낸다.

 

퇴직하고 나서 처음 얼마동안 카스단은 인터넷에 취미를 붙였다. 이 새로운 소일거리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지레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환멸을 느꼈다. 웹의 세계는 피상적이고 뉘앙스나 깊이를 일절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 이를테면 패스트푸드 같은 정보가 범람하는 세계였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기계'였다. (1권/177쪽)

 

"아뇨. 이제는 아스키코드라는 특별한 부호체계를 가지고 컴퓨터에게 말을 걸어야 해요. 차원이 다른 거죠. 꽤 복잡해 보이지만 이것 나름의 논리를 파악해야 해요. 기계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그것들의 언어로 말을 걸어야 하고 그것들의 논리를 따라야 해요."(1권/180쪽)

위의 글, 컴퓨터를 대하는 태도로 미루어 볼때 짐작할 수 있듯이 카스단과 볼로킨의 중독을 받아들이는 입장은 다르다.

카스단은 이내 환멸을 느끼고 인간을 소외시키는 기계라고 무시해 버리지만,

볼로킨은 중독의 대상을 분석, 파악하고 논리로 이해, 초월하려고 한다.

 

이런 데서 살다보며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생활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도 먹는 것도 똑같아지지 않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이 마을 사람들은 여기에서만이라도 똑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 한데 모인 것일까? 카스단은 현대 사회가 어쩌면 거대한 사이비 종파와 비슷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부드럽고 은밀하고 고통스럽지 않게 세뇌가 이루어지느 사회. 광고, 텔레비젼 뉴스, 쇼핑센터 따위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길들이는 사회. 어떤 의미에서 복제인간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가 죽어도 철학적 의미의 인간은 개개인을 초월하여 계속 존재할 것이었다.(2권/116쪽)

 

여자들은 특유의 파라볼라 안테나로 그가 어느 여자의 남자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딴 세상' 사람이었다. 몸과 마음이 온통 무언가에 철저하게 중독되어 있는 남자였다. 매력적이지만 어느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존재, 세상에 그보다 더 탐나는 것이 있을까?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살자처럼 이 세상에서 빠져나가려는 사람은 언제나 낭만적으로 보이게 마련이다.(2권/175쪽)

난 위 부분에서 생각이 좀 달랐는데, 볼로킨은 자살자가 아니라 초월자로 분류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아니다, 자살자는 어쩜 이 세상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세상을 살고자 한 사람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

 

이들은 어느새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죽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약물이 되었든지 마약이 되었든지 또는 그보다 더한 것에 세뇌와 중독이 된다고 할지라도 해독제와 해쳐나올 의지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여기서 얘기되는 선과 악은 모호하다.

여러사람에 의해 획일적이고 보편적이며 똑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게 '선'이다, 하지만 매력은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속할 수 없고 붙잡을 수 없는, 그래서 탐나는 존재가 '악'이다.

 

난 이쯤에서,

多數가 움직이는 것만으로 善처럼 보이지만,

기준을 어느 쪽으로 정하느냐에 따라 선악이 뒤바뀔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고 싶은데...

그 다수라는 것의 기준을 정하는 것조차 애매모호하므로 자중하도록 하겠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목소리는 우리 몸의 상태를 드러내는 징표일세. 또한 우리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도 해. 알겠어? 목소리가 정신분석학의 중심에 놓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네. 정신분석학적인 작업의 요체는 내면에 깊이 감춰진 과거의 트라우마를 밝혀내는 것이지만, 그렇게 트라우마를 의식의 표층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정신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트라우마를 말로 나타내야 해. 목소리에는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어. 목소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큰수레'와 같은거야.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깨닫고 목소리를 내는것, 그것이 자유를 얻기 위한 단 하나의 길일세. 자네도 그 길로 가는 게ㆍㆍㆍㆍㆍㆍ"(2권/24쪽)

 

이 부분은 참 중요한 내용인데, 더 모호한 느낌이 든다.

목소리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우리몸 상태의 발현이며, 우리 영혼을 담는 그릇이며, 그래서 우리를 끌고 가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는 거다.

근데, 이부분은 잘못 읽어내면 '큰수레'라는 용어 때문에 '대승불교'로 해석될 수가 있다.

불교를 얘기할 때 '큰수레' '작은수레' '대승' '소승'등은 대구를 이루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쓰이는 예가 있기 때문에,

'불교'와 '큰수레'라는 단어를 같이 사용하여야 할때는 이같은 혼란을 초례할 수 있으니,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참고로, 불교에서 말하는 큰수레는 '다함께'라는 의미의 '큰수레'이다.

  

"트라우마를 억압하면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어. 인간의 영혼은 육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능해. 만약 외부에서 들어온 어떤 이질적인 요소가 생래적인 방어기제를 통해 배척되지 않으면, 부패나 괴저 같은 것이 생겨나게 마련이지."

"그러면 그때 가서 잘라내면 되겠네요."

"네 정신에 관한 얘기야. 정신을 잘라낼 수는 없어."(2권/24쪽)

 

내가 툴툴거리면서도 이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구절 때문이었다.
언젠가 템플스테이 같은 것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는데...이러저러한 이유로 일정을 끝마치지 못한 낙오생이었다.
거기선 불교의 참선과 비교하여 얘기하고 있었는데...
불교의 참선도 물론 좋은 자기수련 방법이지만,

그 방법은 앙금을 가라앉히는 방법이어서,

실생활과 부딫혀 문제가 생겼을때는 미꾸라지가 흐려놓은 흙탕물처럼 혼란스럽기 그지없다고 했었다.

거기선 우리가 택해야 할 방법은, 앙금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아니라 앙금을 잘라내어 없애는 방법이라고 했었다.
그때 난, 잘라내어 없애는 것까지는 아니고 가라앉혀 놓았다가
가끔 끄집어내 추억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고 싶어서 결국 그 수련회의 낙오생이 되었었다.

 

그걸 여기서 이렇게 '정신을 잘라낼 수는 없어'하는 한 구절로 요약해주니, 명쾌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암튼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결국 끝에 가서 惡이 파멸되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악은 완전 사라지는 것일까?
그 전에 노출 되어 악에 물든자와 중독된 자가 생기게 마련인데...그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시인 황지우는 '산경'에서 '그대 비록 악(惡)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약(藥)과 마음을 얻었으니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 고 노래하였다.

산경의 이구절을 미세레레의 해답으로 대신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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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2-01-27 18:36   좋아요 0 | URL
유럽 작가들은 참 다양하게 기독교적 리츄얼이나 코드들을 소재나 알레고리로 활용하네요.
그런 자산들이 있음을 부러워 해야 하는지, 그런식의 소비를 씁쓸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ㅎㅎ
그랑제는 예전에 <크림슨 리버>만 읽었는데 이 책도 보관함으로...
Miserere Mei Deus 개인적으로 그레고리안 찬트를 좋아해서 듣던 곡이군요.
이 시기의 성가들은 신에 대한 '허심한 고백'같은게 느껴져서 좋아요.
요즘처럼 '복이나 주셈'하는 기운이 없어서 더욱 더.


숲노래 2012-01-27 19:23   좋아요 0 | URL
착한 마음도 나쁜 마음도
모두 나한테서 비롯할 테니
나쁨도 착함도 사라지거나 없어지지는 않으리라 느껴요..

순오기 2012-01-27 21:04   좋아요 0 | URL
명절때 고창은 잘 다녀가셨나요?
오랜만에 새글 올라와 반가워요~~ ^^

2012-01-27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2-01-28 00:09   좋아요 0 | URL
오랫만이세요!! 잘 지내시는거죠????
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암튼 이 리뷰를 읽고 어찌 미세레레를 안 읽을 수 있겠어요!!
꼭 읽어볼꼐요.^^

마녀고양이 2012-01-28 12:27   좋아요 0 | URL
아고 머리야....
왜이리 개념들이 어려운게야. 한두줄 댓글로 언급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니,,, ^^

하지만 가라앉히기, 참기, 억압하기, 글쎄....
불교에서 부모나 자식과 연을 끊어야한다는거 있잖아, 나는 그게 과연 자연스러운 방법일까? 그건 회피 아냐?
머 그런 생각을 해. 물론, 내가 워낙 불교 교리에 무식하다보니, 이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거겠지만.
주말 잘 지내길..

2012-01-28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1-28 13:47   좋아요 0 | URL
컴퓨터 잉크가 닳겠어요. 이런 리뷰는 프린트로 뽑아서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하니까요. ㅋ

2012-01-28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1-31 01:50   좋아요 0 | URL
장르소설을 이렇게 감상적으로 리뷰쓰시는 분은 드물 거예요!
명절 잘 보내시고, 일주일도 잘 보내시고, 여전히 잘 계시죠?
저야말로!!!
어린 제가 더 많이 와서 안부를 여쭤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또 불쑥 숟가락 얹기가 어려운 마음^^

이 책도 그저 그렇겠지 했지만 꼭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예요.
 
꽃으로 말해줘
버네사 디펜보 지음, 이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전 ㅅ언니를 만나 인사동 거리를 누비고 다닐 때 길거리 빈 화분에 피어있는 초록색 식물을 보더니,
"배추네~."하셨다. 
속이 꽉찬 배추들은 수없이 봤었지만, 잎들을 헤벌레하게 벌리고 있는 배추는 본 적이 없는지라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얼마전 김장을 하러 시댁에 갔다가...모든 배추들은 잎이 옆으로 헤벌레하게 벌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때맞춰 잘 묶어주면 그동안 보아오던 속이 꽉찬 야무진 배추가 되는 것이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면 잎이 옆으로 헤벌레하게 벌어지는 것이었다.
ㅅ언니가 말했던 배추는 돌보는 이 없어 입이 옆으로 헤벌레하게 벌어진, 
겨울 눈밭에 내팽겨쳐진 `봄동`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속이 꽉 차지 않고 헤벌레하게 벌어져 영 볼품 없다 생각 했던 것도 잠시,
돌봐주는 이 없어도 자라나는 생명력에 가슴이 뜨거워졌었다. 

        봄동아, 봄똥아 
                  - 황 상 순 -

봄동아,
볼이 미어터지도록 너를 먹는다 
어쩌면 네 몸 이리 향기로우냐!
오랜만에 팔소매 걷고 밥상 당겨앉아 
밥 한 공기 금세 뚝딱 해치운다만
네가 봄이 눈 똥이 아니었다면 
봄길 지나는 그냥 흔한 풀이었다면
와작와작 내게 먹히는 변은 없었을 게 아니냐
미안하다만 어쩌겠냐
다음 생엔 네가 나를 뜯어 쌈싸 먹으려므나
살찐 뱃가죽 넓게 펴 된장 바르고 
한입에 툭 쳐 넣으려므나 
봄의 몸을 받지 못한 나는 구린내만 가득하여
너처럼 당당하지 못하고 
다른 반찬 밑에 엎드려 얼굴 가리며
아마 죽은 듯 숨어 있겠지
그렇겠지? 봄동아, 봄똥아.

그리고 이제 난 헤벌레하게 벌어진 배추를 볼 때마다 ㅅ언니를 그리워한다.
`속이 꽉 차지 않아 볼품이 없다`가 아니라, `가운데가 노란 게 여느 꽃보다 예쁘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꽃을 좋아한다는데, 난 꽃이 별로다.
꽃도 살아 숨쉬는 생명체인데, 
잘 키우거나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나 혼자 잠깐 보고 좋자고 꺾어들이는 것도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어린왕자를 들먹이지 않아도 길들인 것엔 책임을 져야 한다.
나 말고 귀하게 오래 넉넉하게 대접받는 곳에 가서 그렇게 예쁘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편과 연애할때도 꽃다발 선물로 몇번 싸웠고,
이제 축하하거나 기념할 일이 있을때, 으레 남편은 꽃다발 대신 작은 화분을 선물한다.

한동안 리뷰 쓰기를 주저했었다.
왠만한 리뷰는 다 페이퍼로 돌렸었다.
(이유는 각자 상상에 맡겨 두고~)
이 책은 별점에 기여하고 싶어 일부러 방향을 리뷰로 잡았다.
별 다섯개를 꽉꽉 눌러 채우지만, 그래도 부족하고 아쉽다.
이 책은 내게 그런 의미이다.

번역가 이진 또한 `존 버든`의 `658, 우연히`로 만났던 그 번역가이다.
흐드러지지 않지만, 단정하고 소박한 것이 넘치지도 않는다.
`존 버든`이라는 작가와도 그랬지만,
이 작가 `버네사 디펜보`와도 잘 어울린다.

물론 그동안 내가 혀를 내둘러가며, 아드레날린을 내뿜어가며...읽던 장르소설 같지는 않다.
하지만 소소한 감동으로도 가슴이 뜨거워 질 수는 있는 것이고,
말이나 글처럼 직접적인 방법이 아닌,
꽃이라는 간접적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을 전달할 때 차(tea)를 이용하지만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빅토리아는 태어나면서부터 고아다.
거칠고 폭력적인 성격 때문에 여러차례 입양 거절을 당하고 보육원을 전전한다.
그녀의 이름 `빅토리아`는 빅토리아 시대에 연인들끼리 사랑을 나누는데 꽃말을 사용하던데서 유래했단다.

열 살때 엘리자베스라는 독신녀에게 입양될 뻔 하는데,
엘리자베스는 그녀 자신도 부모로부터 소외당하고 하나뿐인 친구이기도 한 언니로부터 배신당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꽃과 포도밭을 벗삼아 자신도 고독하게 살고 있어서,
여러차례 입양 거절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빅토리아의 마음이 어떨지를 이해한다.
엘리자베스는 빅토리아에게 말이나 글처럼 직접적인 대화를 하는 직접적인 방법 말고도,
꽃말로 대화하는 간접적인 방법이 있음을 가르쳐준다.
때로는 이 간접적인 방법이 진심을 왜곡시키지 않고 전달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엘리자베스와 빅토리아는 그렇게 그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며,
그렇게 그렇게 조금씩 단절됐던 세상과 소통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사랑에 서툰 두 사람은 결국 오해로 틀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다시 보육원을 전전하던 빅토리아는 열 입곱이 되어 더 이상 보육원에 머물 수 없어지자, 
보육원을 나와 독립하게 되고,
그후 어떻게 서로 간의 오해를 풀고 상처를 쓰다듬고 보듬어 안게 되는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보다 입양이나 보육시설이 한참 앞서 발달한 나라에서도 이런 모순과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래도 그 나라는 꾸준히 나아지려고 노력한다는 점 또한 놀라웠다.

페퍼민트 - 따스한 느낌
왜 있잖아, 좋아하는 사람 앞에 있을 때 간지러운 것 같은 그 느낌.(87쪽)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페퍼민트를 두고 따스한 느낌이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페퍼민트의 멘톨 성분은 차갑고 가벼운 성질을 지녀서 상체의 열을 내리고 몸 밖으로 쉽게 열을 내보내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
오일 형태로 발랐을때 2차 반응으로 화끈한 느낌이 들 수는 있지만(멘소레담 로숀 처럼), 그건 따스한 느낌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증오를 의미하는 꽃이 무언지 가르쳐줄 수 있어. 하지만 싫다는 말은 좀 모호해. 증오는 열정일 수도 있고 냉정일 수도 있거든. 사람에 대한 혐오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어. 그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꽃도 가르쳐줄게."(104쪽)
"엉겅퀴는 어디에나 있어.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를 괴롭히나 보다."(108쪽)
지금껏 나는 오직 꽃말에 대해서만 정직했다. 꽃말을 두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내 삶에는 더는 아름다운 것도, 진실한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151쪽)

우리는 모두가 자신을 숨긴 채, 타인에게 자신을 속이고(어떤 면에선 스스로에게도 비겁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늘을 향해 한점 부끄럼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기 내면의, 본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는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내면의 깊은 상처 때문에,
혹은 세상에 소외당하고 배신당해서 스스로 세상과 단절할 요량으로 세상을 속이고 살고 있다면, 
그것은 죽음과 마찬가지 아닐까? 
혼자, 살아 있다는 것은 죽음과 뭐가 다를까? 고독하고 외롭긴 마찬가지 아닐까?

"아줌만 왜 친구가 한 명도 없어요?"
ㆍㆍㆍㆍㆍㆍ
"그러는 넌 왜 없니?"
"난 친구가 싫으니까요."
ㆍㆍㆍㆍㆍㆍ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미소는, 마침내 번지기 시작한 미소는 오직 안도의 미소였다.
"다행이구나! 난 네가 있어서 행복하거든. 사실은 네가 내일 학교도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네가 집에 있으니 정말 좋더라. 이제 너도 마음을 조금 열었고. 넌 처음으로 무언가에 관심을 보였어. 솔직히 네 마음을 빼앗은 포도가 좀 질투가 나긴 하지만 네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걸 지켜보는 게 참 흐뭇하단다."(160~162쪽)
"내가 나를 못 믿어. 우리가 함께하는 삶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내가 망치고 말 거야."(184쪽)

이 책을 읽으면서 슬펐던 것은, 
비록 한순간이지만, 그리고 좋은 쪽으로 나아지는 과정이지만...
꽃으로 하는 얘길 상대방이 듣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시 얘기하면, 공감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는 얘기이다.

마음을 닫아걸고 공감과 소통을 거부한 자와는 당연한 것이니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마음을 열고 공감과 소통을 절실히 원하는 데도, 비껴가는 경우가 있다.
또는 비껴가고 마주치지 말자고 다짐을 하는데도 헛되게 공감과 소통이 쓰나미처럼 몰려올때도 있다.
사랑이나 연민이라는 게, 그렇게 교통사고처럼 맞닥뜨리는 그런 감정이라지만 읽는 내내 답답하고 안쓰러웠다.

"상관없어."
내가 말했다.
좋은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왠지 경멸조로 들렸다. 그랜트의 얼굴이 시무룩해졌고 나는 화가 치밀었다. 그랜트에게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나는 늘 말투와 어감을 적절하게 조절할 줄 몰랐다. 나는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어색한 사과의 몸짓이었다.(206쪽)

위 경우는 나도 종종 저지르는 실수인데, 나와 타인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났는데도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랄때도 있었다.
빅토리아는 어색하지만 노력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다가간다.

 ㆍㆍㆍㆍㆍㆍ그들은 계산대에 몸을 숙이고 자신들의 고민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걸 한마디로 정의하려 애썼다. 나는 그들에게 구체적인 설명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들은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 들였다. 그들과의 상담은 슬프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으며 그러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희망적이었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보려 애쓰는 그들의 모습은 내게 너무도 낯설었다. 왜 그냥 포기하지 않는걸까.(217쪽)

빅토리아는 엘리자베스와 같이 있었던 기간 동안,
오해로 틀어지고, 그로 인해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가지 것들을 배우기도 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듣는 법도 배웠고,
꽃으로 대화하는법, 그러니까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으로 마음을 전하는 법도 배웠고,
사람과의 사이에서 신뢰나 지켜야 할 규칙, 약속 등 인간 관계도 배웠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 사람에게만 맞춤인 꽃다발을 만들어주는 법도 배웠고, 
무엇보다...꽃과 더불어 상담하고 꽃으로 치유 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ㆍㆍㆍㆍㆍㆍ넌 마치 미안하다는듯 그 꽃을 내게 내밀었어. 나한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네가 만든 부케는 내 평생 보았던 그 어떤 부케보다 완벽했는데도 말이야. 그 순간 바로 알았지. 네가 너 자신을 가치 없다고 느끼고 있단 걸. 용서받을 수 없는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걸."

"이 세상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결함을 지닌 사람이 오직 너뿐이라고 생각해? 몸이 부서질 정도로 상처받은 사람이 너 하나뿐인 것 같아?"

"다른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었어. 결함이 없는 사람. 아니면 결함을 잘 숨기는 사람을. 하지만 그 누구도 너처럼 꽃을 다룰 수는 없을 걸. 빅토리아, 넌 정말 재능을 타고났어. 꽃을 만질 때면 너의 모든 것이 달라져. 얼굴도 부드러워지고 시선은 한곳에 집중되지. 그런 손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꽃을 다루는 네 손은 아주 조심스러워. 그걸 처음 본 날을 잊을 수가 없어. 작업 탁자에서 해바라기를 꽂던  넌 전혀 다른 아이 같았어(348쪽
)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내어보이는 것,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어보이는 것은 더 쉽지 않다.

타인을 내 안에 들이지도 못하고, 내 상처를 내어 보이지도 못하면서,
`나를 받아들여 달라, 어루만져 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의 그것이 나와  똑 같은 상처가 아니면 소통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말 뿐인 치유와 위안이 될뿐이다. 

하지만 나와 똑같은 상처를 지녀 느끼게 되는 치유와 위안은 어느샌가,
나를 속속들이 너무 잘 알아 파헤쳐지는 부끄러움과 낯뜨거움으로 바뀌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나의 고통과 고독을 너무 잘 아는 그 타인과 나와의 관계는 `상처`로 연결된 것이기에, 
타인의 상처를 거울 삼아 자신의 상처로부터 빠져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 순간순간  바라보고 각인하여 그 상처를 극복하고 망각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되는 그런 사람도 있다.

"사람은 다 변해. 하지만 사랑은 변하지 않아. 가족도."(253쪽)

ㆍㆍㆍㆍㆍㆍ나는 웃었지만 눈물은 더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그 눈에 담긴 조건 없는 용서, 검열되지 않은 사랑이 두려웠다. 그랜트처럼 아기도 내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나는 내 아기가 산사나무 가지를 들고 다니며 편안하게 웃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줄 수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줄 수는 없었다. 나의 독성이 아기의 완벽함을 오염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것은 내 몸에서 흘러나갈 것이고 아기는 굶주린 아기 특유의 게걸스러움으로 그것을 삼킬 것이다. 나는 지금껏 내가 알았던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너무도 간절하게 내 딸로 사는 위험에서 내 딸을 구해 주고 싶었다.

`이끼는 뿌리없이 자란다.`(363쪽)

내 딸을 바라보는 동안 한때 나 자신이 결코 느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사랑이 나를 채웠다. 나는 장미 정원에 돌아왔을 때 그랜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끼가 뿌리 없이 자란다면 엄마의 사랑도 뿌리 없이 자랄 수 있으리라. 내가 딸을 키울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내 생각은 틀렸는지 모른다. 아무 연고도 없이, 그 누구도 원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도, 어쩌면 다른 사람들처럼 열정적인 사랑을 줄 수 있으리라.(387쪽)

암튼,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또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 본다.
분명히 누군가는 어디로 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짬뽕공 같다고 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길들여진 것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하는 어느 시점을 지나게 되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 때가 도래한다.

하지만 길들여진 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 사이에 인과관계가' 꼭'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길들이고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그 길들이고 길들여진 누군가에게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런 책임 소재와 관계가 어긋난 불우한 시기를 보냈다고 하여,
내가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자연이라고 불리우는 햇살이나 바람이나 공기 따위의 넉넉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낌없는 나무처럼 넉넉하게 내어줄 수가 있는 것이니,
두려워 말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줄 수는 없었다`따위의 말은 하지 말고,
try to(이거보다 명확하게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우리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ㅠ.ㅠ)해보자.

왜 이현주 목사님의 이 시가 생각나는 지 모르겠다.

     밥 먹는 자식에게
               - 이 현 주 -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에서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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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2-30 04:57   좋아요 1 | URL
봄동과 쌀~~~~ 우리에게 소중한 양식이군요.
꽃을 다루는 손, 난 그거 알아요~~ 나도 꽤 여러해 동안 꽃꽂이를 했거든요.^^
그리운 것들이 많아지는 겨울~~~~ 따스하게 지내시길!

숲노래 2011-12-30 09:07   좋아요 0 | URL
벌어지는 그대로 두어
한복판에 꼿꼿한 줄기로 올라오는
배추꽃을 보면
참 어여쁘답니다.

마녀고양이 2011-12-30 10:31   좋아요 1 | URL
새해에는... 아낌없이 주고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좋은 리뷰 감사하구요, 책 재미있겠다ㅡ, 혹시 버릴거면 나를 주시기를. ^^
 
앤젤스 플라이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6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6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에 번역된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은 두루 섭렵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좋았다.
그동안 그 주인공 해리 보슈를 욕하면서도 멋있다고 했었는데...이젠 그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렇게 품어 갖기 벅찬 남자는 우러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나라에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들은 순서가 뒤죽박죽인채로 번역되었다.
번역된 순서대로 따라 읽다보면,
해리 보슈는 이 여자 저 여자 찝쩍거리는 마초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고고한(高,孤,寒,)것처럼 표현되어지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급기야 그들과 우리의 문화적 차이 내지는 사람을 보는 안목의 차이인가 보다 하고 체념하려 하려던 차에,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이작품 <앤젤 플라이트>에서는
그가 아내 엘리노어 위시를 어떻게 대하는지,
친구들과 부하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그래봤자 다 경찰관이지만),
그의 머릿속과 마음속을 제법 자세하고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꿍꿍이를 알 수 없던 해리보슈라는 인물에 살이 붙고 피가 돌게 되고,
그러면서 그가 가진 오리무중의 과거와 내면과 사연이, 나름 깊이와 더께와 온기를 더해 간다. 

우리는 순간의 만남 속에, 그 찰라의 연속 속에 살고 있다.
순간의 만남 속에서 만나는 건 사람의 일부분이고 단편인줄 알면서도,
일부분이나 단편을 가지고 전체를 미루어 짐작하거나 아우르려 하는 우를 범했었다.
해리 보슈를 향하여서도 여지없이 그 기준을 적용했었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늦게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이 책의 줄거리 라인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고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스포일러가 될 것 같고,
보슈가 고고한 마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밝혀지는데, 그게 좀 눈물겹다.
해리 보슈는 어찌 어찌하여 엘리노어 위시와 결혼을 하는데 일년만에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나려 한다.
어쩜 그는 아내와의 결별보다는, 다시 '홀로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ㆍㆍㆍ보슈는 그 관광객들이 자기한테서 뭔가를 느낀 건 아닐까 생각했다. 위험이나 아픔 같은 것을 느낀 건 아닐까 궁금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감지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보슈에게서 그런 것을 감지해내는 게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꼬박 스물네 시간 이상이나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 한 손을 들어 얼굴을 쓱 부비니까 축축한 회반죽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슈는 상체를 굽히고 두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다시는 느끼지 않기를 바랐던 그 고통이 다시 찾아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외로움을 느낀 것이, 이 도시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 언제였던가. 목 안에 뭐가 걸리고 가슴이 옥죄는 느낌이었고, 이렇게 넓은 공간 안에 있는 데도 수의에 싸여 관 속에 누운 것 같은 밀실 공포증이 느껴졌다.(176쪽) 

과연 해리 보슈는 엘리노어 위시를 사랑했을까?
사랑한다는 감정 자체를 사랑한 건 아닐까?
인간이 애 쓰고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면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닐까? 

"해리, 당신도 중독된 게 있잖아. 나도 있어."
"그게 무슨 뜻이야?"
"새로운 사건을 맡을 때 드는 느낌 있잖아. 다시 사냥에 나설 때 느끼는 스릴감 말이야. 무슨 느낌인지 당신도 알거야. 이제 나는 그런 느낌을 갖지 못하게 됐잖아. 그런데 그 느낌과 가장 비슷한 느낌을 느낄 때가 있었는데, 내가 펠트 천 테이블에서 카드 다섯 장을 집어 들고 들어온 패를 확인할 때였어. 설명하기 어렵고, 이해하긴 더 어렵겠지만, 난 그때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해리. 우린 둘 다 약쟁이들이야. 약의 종류만 다를 뿐이지. 난 당신 약을 갖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잖아."
보슈는 잠깐 동안 엘리노어를 바라보기만 했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감정이 목소리에 묻어나올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문앞으로 걸어가서 문을 열자마자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문밖으로 걸어 나갔지만 곧 다시 들어왔다.
"당신 말을 들이니 가슴이 너무 아파, 엘리노어. 난 항상 당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다시 갖게 하려고 애를 썼는데."(238쪽) 

위 문단에서, 슬프게도 나는 이들 부부의 명확히 다른 입장을 읽을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깨어있게 하지 못하는 걸 깨닫고 가슴 아파하지만, 연민이지 사랑은 아니다.
오히려 해리 보슈는 일을 할때,
전직 FBI요원인 엘리노어 위시 역시 같은 일을 할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그녀는 도박에서 대리 만족을 느낀다. 

위 문단은 번역도 껄끄러워 길지만 옮겨 보았다.
중독은 크게 신체적 증상으로서의 중독(농약, 중금속, 기타 화학약품, 식중독 등)과 정신적 의존증으로서의 중독(알코올, 니코틴, 카페인, 마약, 인터넷, 쇼핑, 도박 등 )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얘기하는 건 정신적 의존증으로서의 중독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해리 보슈는 일 중독, 엘리노어 위쉬는 도박 중독 쯤 되려나?
그러니, '우린 둘 다 중독자들이야, 중독의 종류만 다를 뿐이지.'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그 다음 문장도 해석될 수 있다.
당신이 중독된 것과 같은 중독이 되고 싶다는 것인지,
당신이 사용한 해독제가 갖고 싶다는 것인지,
당신이라는 약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말이다.

 "작년에 둘이 같이 봤던 영화가 생각나네. <타이태닉>말이야."
 "나도 기억나."
 "거기 나왔던 아가씨 있잖아. 그 청년과 사랑에 빠지지. 그 배에서 처음 만난 건데도 말이야. 그리고... 그 청년을 진심으로 사랑했어. 그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마지막에는 그의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어. 그와 함께 있으려고 구명보트를 타지 않았지."
 "기억나, 엘리노어."
보슈는 엘리노어가 옆자리에 앉아서 울던 것과, 자기는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면서 속으로는 어떻게 이 여자는 이토록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일까 황당해했던 기억이 났다.
 "당신이 울었었지."
 보슈가 말했다.
 "그래. 내가 운 건 누구나 그런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해리, 당신은 나한테서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 그런데 난ㆍㆍㆍ." 
 "아냐, 엘리노어, 지금 당신이 내게 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넘ㆍㆍㆍ."
 "영화 속의 그 아가씨는 구명보트에서 다시 타이태닉 호로 올라갔어, 해리."
 엘리노어가 작은 소리로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가 보슈에게는 울음소리로 들렸다.
 "어느 누구도 그 사랑을 능가할 수는 없을 거야."
 엘리노어가 말했다.
 "그래, 맞아. 누구도 능가할 수 없지. 영화니까 그런 거야. 내 말 들어 봐. 내ㆍㆍㆍ가 원하는 건 오직 당신뿐이야, 엘리노어. 나를 위해 뭔가를 해주려고 애쓰지 마."
 "그런데 자꾸 그렇게 돼, 자꾸만ㆍㆍㆍ.사랑해, 해리. 그런데 충분하지가 않아. 당신은 이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
 "엘리노어, 아니야ㆍㆍㆍ제발. 난ㆍㆍㆍ."
 "잠깐 나가 있을게. 생각 좀 정리하려고 그래."
 "집에서 기다려줄래? 15분 이내로 도착할게. 만나서 얘기하자ㆍㆍㆍ."
ㆍㆍㆍㆍㆍㆍ
보슈는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어둠 속에 있고 싶었다.(325쪽) 
"괜찮아?"
"응, 괜찮아....아니, 괜찮아질 거야."
"엘리노어, 사랑해. 이 말을 자주 못 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난ㆍㆍㆍ."
수화기 저편에서 엘리노어가 쉿 하는 소리를 내서 보슈는 말을 멈췄다.

마침내 엘리노어가 작별을 고했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보슈는 얼굴에서 손을 떼고 귀에서 전화기를 뗐다. 마음속에서 수영장이, 침대에 덮인 담요처럼 부드러운 그 물 표면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 세상에 보슈 혼자만 남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는 그 수영장으로 달려가 잔잔한 표면 속으로 다이빙을 해 따뜻한 물속으로 들어갔다. 수영장 바닥에서, 그는 몸속의 산소가 다 사라지고 가슴이 아파올 때까지 소리를 질렀다. 거기 남아서 죽을 것인가, 위로 올라가서 살 것인가를 놓고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까지 버티면서 악을 써댔다.
지금 보슈는 그 수영장과 따뜻한 물이 그리웠다. 폐가 터져버릴 때까지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326쪽)

암튼 둘은 같은 영화를 보고서도, 추억으로 서로 다른 느낌을 간직한다. 
해리 보슈는 현실에 안주하는 타입이다.
진정한 안식처로서의 집은 자기 마음속에 있다고 믿는(414쪽) 그는,
영화에 몰입하고, 영화 속의 사랑을 꿈꾸는 엘리노어 위시가 황당할 수밖에 없다.
반면 엘리노어 위시는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은 눈물겹고 버겁기만 하다. 

그러니 이들은 비껴가고 어긋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해리 보슈의 껄떡거리는 마초기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된 후라서 라고 하지만, 이런 문장들은 제대로 멋지다.

"전 오늘은 그냥 그렇군요, 케이트. 좀 힘든 밤을 보내서. 그리고 비오는 날을 안 좋아합니다."(444쪽) 

보슈는 창문을 닫았다. 비는 언제나 그를 슬프게 했다. 그리고 지금은 비가 없이도 충분히 슬펐다. (446쪽)

보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팔을 뻗어 문을 열었다. 한마디 인사도 없이 차에서 내려 자기 차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걸어가다가 뛰기 시작했다. 자기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었다. 비가 내리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516쪽) 

하지만, 멋지고 감성적이어서 작업 멘트를 슉슉 날릴 수 있는 것과
영화 속 사랑을 꿈꾸는 엘리노어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문젠가 보다.
해리 보슈는 아무 말없이 어깨를 툭 치면서 술 한잔 같이 하는 몸의 대화를 더 수월해 하는 부류인가 보다.

"인간은 변하기 마련이에요."
보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변하죠. 하지만 보통 핵심은 변하지 않아요."(242쪽)
......
보슈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런 말이 아니죠. 내 말은 그때 나는 프랭크 쉬헌이라는 인간의 핵심을 봤다는 겁니다. 그때 나는 그의 사람됨을 알게 되었죠..."(244쪽)  

그러고보니, 나도 참 웃기다.
같은 여자로서 엘리노어 위시에게 마음이 가야할텐데...차라리 해리 보슈에게 마음이 기운다.
아니다 싶은 여자는 빨리 훌훌 떨어버리고,
이 가을 해리 보슈의 고고함을 달래줄 여자를 만나길 바래본다.
(예를 들면, '블랙 아이스'의 '실비아' 같은 여자라면 좋겠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책의 내용은 아꼈는데 책도 엄청 재밌다.
개인적으론 테리 메케일렙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화 되기도 했던 <블러드 워크-원죄의 심장>만큼 재밌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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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10-19 18:38   좋아요 0 | URL
갑자기 오수정 영화 생각이 나네요 똑같은 경험 같은 장면도 다르게 기억하는데 그게 참 당연한데 슬프죠.
그걸 깨닫는것도 전 참 오래걸린 것같아요

잘잘라 2011-10-19 18:39   좋아요 0 | URL
아까 낮에 괜히 생각이 나서 님 서재에 다녀 갔어요. 서재브리핑에 새글 소식이 뜬 것두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요. 그래서 방금 서재브리핑 보구 놀랐어요. 뭐 그냥 그랬다는 겁니다. 가끔이나마 리뷰를 올리시니 다행이다 생각하면서요.

아이리시스 2011-10-19 19:27   좋아요 0 | URL
저도 왔습니다.^______^ 저는 매일 옵니다. 본 글 또 보고, 읽은 글 또 읽고,, 흙흙.
다행이에요. 보고싶었거든요. 리뷰 아껴 읽겠습니다아아아악.^^

프레이야 2011-10-19 20:26   좋아요 0 | URL
님, 와락~ 반가워요.
마이클 코넬리는 안 읽어봤지만 그냥 리뷰만으로도 좋아요.

감은빛 2011-10-20 18:34   좋아요 0 | URL
해비 보슈 시리즈를 양철님 소개글 읽으며 늘 궁금해하고 있었어요.
나중에 시간 여유가 생길때 한꺼번에 볼까 생각중입니다.
그런데 번역 출간이 순서대로 안되었다면,
읽으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단행본 하나마다 딱 에피소드가 완결된다면 그래도 읽을만 했을 수도 있겠네요.

나중에 읽기 전에 양철님께 어떤 순서대로 읽어야 좋을지 여쭤봐야겠네요. ^^
 
저녁의 슬하 창비시선 330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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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빗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그리고 이 시집을 읽었다. 

얼마전 친구가 '사람을 쬐고 싶어서'라고 하며 시 한편을 보내주었었다.
처음 나간 모임에서,
처음으로 맥주에 소주를 말아서 석잔을 마시고 난 다음 날 아침,
비몽사몽간에 읽으면서 처음 보는 시인인데 좋아 바로 주문을 했었는데...
나중에 맑은 정신에 돌이켜보니 이 시인의 시들을 본적이 있었다. 

유독 육체와 가족 속의 아버지에 관한 시가 많았었는데,
눈물 글썽글썽한 눈으로 육체와 가족을 바라본 것마냥,
왜곡되고 굴절되어 표현되는게 거북하게 느껴져 한쪽으로 접어놨었던 시인이었다.
그런데 요번 시집 <저녁의 슬하>에서는 눈물을 그쳤는지...시에서 느껴지던 왜곡과 굴절이 사라졌다.  

 사람을 쬐다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씨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눈가가 짓물러진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사람을 쬐어야 산다고 하면서도,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가 없다.
보도 블록 사이 민들레로라도 살기를 꿈꾸었지, 갈라진 시멘트 마당 이끼로는 아닐텐데...
부질없다 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긁어보는 수고를 한다. 

사람이 두렵다.
타인이 두렵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그토록 차갑고 모질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어젠 또 다른 친구 하나가 나 때문에 속상해서 다른 이를 붙잡고 울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내가 '정이 너무 깊고 헤퍼서 그렇다'고 했다.
속상해 하는 친구를 보금고 편히 울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주지도 못하는 나를 한참 잘못 판단한거다.
나는 타인이 두렵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차갑고 모질 수 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벽을 쌓거나 속으로 파들어 갈 뿐이다.

다만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싶을 뿐,
그조차 들킬까 해를 등지고 서 내 그림자가 만들어낸 어둠 속에 나를 가둔다. 

시인은 눈물을 닦고 시 속으로 걸어 들어 간다.
자신의 직접 경험이니 이번 시집은 넘치지 않는다.
사람의 체온이, 온기가 차갑고 모진 칼날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날도 있다고 눙친다.

옆구리 

옆구리가 전부다
물고기는
비늘 뒤덮인 옆구리로 살고 비늘 뒤덮인 옆구리로 죽는다
봐, 죽어서도 저렇게 제 옆구리를 먹인다
맞아, 아내 몰래 가끔 만나던 그 여자랑
생선구이집에 가서 노릇노릇 옆구리 익힌 거 뜯어먹으며 생각했었지
연애란 네 옆구리 파먹는 거
산다는 건 지금 누가 네 옆구리 쿡쿡 찌르는 거
어두운 밤길 가다가
예고도 없이
무언가가 쑥 들어오면
어떡하지? 그러면 그것도 옆구리로 받아야지
그래 그것도 괜찮겠어 번쩍번쩍
빛나는 칼을 맞고 쓰러져
물고기처럼 둥글고 슬픈 눈으로 너를 쳐다보는 것도
119 구급차에 누워 내 삶의 옆구리로 피가 펑펑 빠져나가는 걸 느껴보는 것도

가장 좋았던 시는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였다.
그렁그렁하던 눈물을 닦았을 뿐만 아니라, 무장해제하고 쓴 유일한 시가 아닐까 싶다.
다른 시들은...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둥글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사람이 사람을 앉히고 발톱을 깎아준다면
정이 안 들 수가 없지
옳지 옳아 어느 나라에선
발톱을 내밀면 결혼을 허락하는 거라더군
그 사람이 죽으면 주머니 속에 발톱을 넣어 간직한다더군

평생 누구에게 발톱을
내밀어보지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단 한번도 발톱을 깎아주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발톱을 예쁘게 깎아주는 사람은
목덜미가 가늘고
이마가 예쁘고 속눈썹이 길다더군 비가 오는 날이면
팔베개도 해주고 지짐도 부쳐주고 칼국수도 밀어준다더군
그러니 결혼을 안할 수가 있겠어
그러니 싸움을 할 수가 있겠어

발톰깎는 사람의 자세는
고양이에 가깝고
공에 가깝고
뭉쳐놓은 것에 가깝다네 그는 가장 작고 온순하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그의 다른 시들은,
칼날을 자기 자신에게 들이댄 채로 썼나 보다.
그래서 그는 전작들에서 쉽게 시 속으로 걸어 들어 가지 못하고 그렁그렁한 눈물을 매달고 있었나 보다.
칼날을 자기 자신에게 들이대고 시 속으로 걸어 들어 갔다는 얘기는...자해하듯 썼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제대로 감정이입한 시가 있다.
시에선 문장부호가 잘 쓰이지 않는걸로 알고 있는데, 슬프다 뒤에 온점(.)까지 '쾅'하고 찍어 넣는다.
나는 피 흘리며 읽고 또 읽는다.

 새는 왜 우는지?

 물고기를 잡아 배를 따보면 알 수 있다 부레가 있고 쓸개가 있고 창자가 있다는 거,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대가리를 뒤져도 생각을 찾을 수가 없다 뇌를 찾을 수가 없다 

 슬프다.  

 다음번엔 새 대가리를 쪼개 찾아봐야지 울음이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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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9-29 10:46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토닥토닥 ... 어떤 일로든 상처 입지 마시기 바래요.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참 좋은 시네요.
낮고 고요히 깔린 오늘 아침 가을비도 촉촉히.. 이 시 마음에 담아갑니다.

2011-09-29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11-09-29 11:10   좋아요 0 | URL
저도 나무꾼님 토닥토닥이에요. 차갑고 모질어야 할 순간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일로는 상처입지 않으시길 바래요. 저도 오늘 회사 가장 친한 친구가 사직서에 도장받은 날이라, 맘이 아주 울적해요.

루쉰P 2011-09-30 10:44   좋아요 0 | URL
사람에게 판단 받고 누군가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과연 그런 인간인가? 혹은 내가 그런 행동을 했는가?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 지더라구요. 제 경우에는요. ^^ 그러고 내 안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 상처를 헤집고 헤집을 수록 아무래도 더 모르겠더라구요. 누군가에게 내가 상처를 준 적이 있는가? 난 내 할 말을 했을 뿐인데 하고 말이죠. 그러다 계속 혼자 어둠 속으로 가라 앉는 모습을 보며 인생이란 어렵구나,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은 어렵구나, 사람과 관계를 만드는 것은 어렵구나 그런 생각과 생각 속에서 머리가 파도가 칩니다.
어렵고 복잡하고 우울해 질 때도 있는 삶은 당연하고 즐겁고 신이 나는 삶은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정하고 사는 제 삶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암튼 양철나무꾼님 너무 안으로 파고 들지 마세요. 그건 교주나 하는 자세랍니다. ^^

알케 2011-09-30 12:57   좋아요 0 | URL
moderate distance...나도 안 넘을테니 너도 넘지마라가 제 처세의 원칙인데 나이드니 좀 외롭긴해도

거추장스럽지 않아서 좋아요 ('따'의 자위같지만 ^^;;)

불에 가까이 가면 화상만 입을 뿐. 적절한 거리에서 쬐어야 따뜻하죠.

기운내셔요

꿈꾸는섬 2011-09-30 15:42   좋아요 0 | URL
나무꾼언니의 감정과 상관없이 '사람을 쬐다'라는 말이 너무 좋아 시를 적어두었어요.
사람을 쬐다, 아까 아이들 마중나가 햇볕을 한참 쬐고 있었거든요. 따스한 햇살이 너무 좋아 쬐고 또 쬐고 그랬지요. 사람도 햇살같은 사람이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쬐고 또 쬘 수 있게요.

같은하늘 2011-10-01 17:33   좋아요 0 | URL
<사람을 쬐다> 좋네요.
요즘 여기저기 속상한 일들이 많아요.
필요없는 것들을 모아놓는 망각의 공간이 머리속에 있으면 좋으련만
잊으려 하는 것들은 더욱 선명하게 기억나기도 하지요.
기운내시고 토닥토닥~~~

2011-10-04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10-05 00:30   좋아요 0 | URL
아~ 어제 이 시집 가방에 넣어갔는데, 가을여자를 먼저 읽느라 못 열었어요.
오늘 펼치면 양철나무꾼님 마음에도 공감할 거 같고,
'정이 너무 깊고 헤퍼서 그렇다'는 친구의 말에는 공감되는데요.^^
가을은 특별히 외로움을 더 많이 타도 좋을 계절이지요~~~~~~~
 
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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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가: 마음이 너무 무거우니 덜어주십시오.  
달마: 마음을 갖고 오너라 
혜가: 마음을 찾아보아도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달마; 찾아낸들 그것이 그대의 마음인가?
 
 

혜가와 달마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때로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통통 튀는 짬뽕공도 아닌 것이 어디로 튀는지 싶을 때도 있고,
움켜쥐었다 싶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연기처럼 실체가 없을 때도 있다. 
단지 마음이 뻐근하고 아파올 때, 어디를 치료해도 여의치 않을 때...마음이란 것이 있고, 그것도 내 안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이 책의 제목은 <안녕, 우울증>이다.
우울증을 직접 대면하게 되고 실체를 파악하게 되는 'Hi, 우울증'일지, 쾌차하여 안녕을 고하는 'Good bye, 우울증'일지는 이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의 지은이 '강용원'은 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알라딘 책 소개를 보면,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는 학문이라 판단하고 삶의 행로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다가 신학을 공부해 성직의 길로 접어들었다. 기본적인 사목과 대학생, 청년 교육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던 중 이 땅의 사회, 역사 문제에 눈뜨게 되면서 자신이 속한 생명공동체의 전통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성직을 내려놓고 사십대 중반에 한의대에 입학, 우리 생태에 맞는 의학이 무엇인가를 탐색하였다. 학업을 마친 뒤 ‘마음향기한의원’을 열어 마음 관련 질환, 특히 우울증을 우리 방식으로 치료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지금은 아픈 사람 하나하나를 앉아서 기다리는 수동적인 개인 치료 방식을 잠시 접고, 이른바 3대 신성학문을 모두 공부한 인생의 뜻을 곡진히 살피면서 능동적 사회 치료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글쓰기와 대중강연에 힘을 모으고 있다.

라고 되어있다.
그의 이력을 알아야 '남성한의사, 여성 우울증의 중심을 쏘다'라는 부제를 단 책이 그럴 듯 해진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리하여 본인 스스로 우울증을 앓았으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서양의학에서의 상담은 상담자가 피상담자와 분리되어 있고, 상담자가 완전하다는 전제가 있으며, 상담자는 말을 하기 위해 분석하면서 피상담자의 말을 듣지만, 저자는 듣기 위해 말을 하고, 가슴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는 차이점이 있단다. 저자는 이를 위해 ‘우리말 생태’와 대중가요 등을 활용한 ‘서민적 텍스트’를 통해 한국적 상담 치료법을 개발해 치료에 활용하고 있단다.

눈에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 기계적으로 통제되는 것으로 세계를 사물화한 이 문명의 프로크루스테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노상강도)식 발상은 심지어 마음조차 뇌에 가두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뇌를 포함한 우리 몸 전체가 삶의 조건과 상호작용하는 사건ㆍ운동doing이지 뇌의 산물being이 아닙니다. 몸 문명이 내다버린 마음은 무한히 생성하고 변화하는 자유로서의 생명 현상입니다. 따라서 마음의 복원은 자유의 복원입니다. 자유는 평등한 소통을 부릅니다. 소통은 모든 생명이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공존과 평화의 위대한 가치를 향해 가려 할 때 마음의 복원이 없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38쪽)

 

그러므로 자신을 비우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비우라는 말의 전제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울증에 걸린 절대 다수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허무한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자신을 돌려주어야 진정한 비움의 세상이 도래합니다.(40쪽)

 

인간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주의를 기울이는 주체, 즉 행위자로서 마음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했다는 측면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의를 기울이는 상대방, 즉 마주 선 주체로서 마음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측면입니다. 우선 주체, 즉 행위자 문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이 마음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사는가를 묻는 것이 지금 우리가 나눌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지닌' 존재라고 하지 않았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바로 이 차이를 간과한 것이 서양의학과 전통적인 한의학이었습니다. 마음을 동사가 아닌 명사로 파악한 것이 둘의 실패 요인입니다. 마음은 사건이므로 지닐 수 있는 사물이 아닙니다. 흐르는 파동입니다. 구조를 흔드는 운동입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며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생명이 주위 조건과 함께 부단히 일으키는 상호작용입니다. 소통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마음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산다는 것은 자신이 소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소통을 추구하는 존재는 마주 선 마음 존재에 먼저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의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합니다. 말을 엮고, 인격을 엮고, 삶을 엮습니다. 함께 도약합니다. 통섭입니다. 결국 마음의 존재로서 산다는 것은 통섭으로 열린 길을 가는 것입니다. 
통섭으로 열린 길을 가는 의학의 주체는 환자 앞에 경청하는 존재로 섭니다. 병을 아는 지식으로 무장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말부터 앞세우는 존재가 아닙니다. 환자 자신, 그 마음을 듣는, 그래서 그 인격과 삶에 참여하는 존재입니다. 병을 확인하고 약부터, 그리고 끝내 약이나 처방하는 자는 의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병을 통해 사람과 삶을 만나 더 평화롭고 행복한 길을 함께 가도록 돕는 자만이 의사입니다.(51~52쪽)

 

위대한 영적 스승들도 인간적 약점과 고통을 안고 있었던 게 사실이고 보면 마음을 치료하는 의자醫者가 이런 유의 흔들림 족에 있다는 게 그리 대수로운 화제가 될 리는 없을 테지요. 다만 이 이야기를 통해 환자와 의자의 인간적 소통으로 치료 연대를 만드는 일이 좀 더 자유롭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병이 전염되듯 치료도 전염됩니다.(72쪽) 

 

우울증 상담치료를 하다 보면 거의 모든 경우에 맞닥뜨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사람 우울증 고쳐 놓으면 뭐 하나. 가족도 그대로, 친구도 그대로, 직장 사람들도 그대로인데...하는 답답함입니다. 모든 마음의 병, 특히 우울증은 대부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것인데, 달랑 그 사람의 삶의 지향성만 어루만져 보았자 관계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현실에서의 삶의 변화 가능성은 그리 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92쪽) 

 

다음은 사소한 일상의 습관들 속에 속살을 감추고 있는 우울증의 양상(105쪽)이란다.
몇개나 해당되는지 체크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실없다 싶을 정도로 잘 웃는다,
늘 양보한다, 따스하게 남을 배려하며 보살핀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못한다,
손해 보고라도 공존을 꾀한다,
급기야 자기를 베어 남을 살리는 자기 파괴적 희생을 감수한다,
경쟁 국면에서 물러선다,
직장생활에서 언제나 일 많은 곳에 배치된다,
꼭 못된 상사를 만나 고생한다,
사고를 자주 당한다,
상대방(연인)의 약점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심각할 정도로 숫기가 없다,
거절당할까 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거나 그냥 침묵한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노력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 때문에 좌절한다,
좋은 기회를 놓치는 징크스가 있다,
아무리 푹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무력하다,
목표를 성취했을 때 이상하게 허망해진다,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 때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상대가 떠날지 모른다는 걱정에 휘말린다,
등등...

어찌되었건, 좋은 수필 한편을 읽은 느낌이다.
본인이 겪은 기록이어서 전해져 오는 깨달음도 남다르다. 
하지만, 우울증 치료로서의 한방치료...갈 길이 멀다. 
본인의 경험을 환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환자들의 무조건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는 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또 한번의 상담만으로 완치된 걸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좋은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서민적 접근이라고 하기엔, 환자와의 상담시간과 비용의 문제도 환자 입장에서는 간과할 수 없다.
부수적으로 금액이나 보험 수가의 문제도 있다.
우리주변의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질환이니, 문턱을 낮추고 금액의 형평성을 맞추는 문제를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울증이란, 자가 치료나 가족 치료가 가능한게 아니다.
다만 '우울증이 이런 것이다' 하는 본인의 경험이 우러난 예가 자세히 나와 있어, 미루어 보고 접근하기 쉬울 뿐이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 다르듯, 우울증의 증상이나 발현도 다 다른데...치료법이나 약 따위는 너무 뭉뚱그려 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독자의 범위를 상담자로 봐야 할지, 피상담자로 봐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 책을 이렇게 끝내서는 훌륭한 한의사 한명을 홍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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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8-19 14:55   좋아요 0 | URL
우울증 양상 체크하다보면 거의 해당되다시피 해서 이젠 안하려고 마음먹어요 님
그런데 님 많이 우울하신가요?
저도 님께 치료제가 되어야 하는데~

양철나무꾼 2011-08-19 15:16   좋아요 0 | URL
ㅎ,ㅎ...때로 때떄로 우울하긴 하지만, 이 책은 직업적 호기심으로 읽었어요.
님이 날려주시는 추천 한방, 달아주시는 댓글 한줄이 제게는 직빵인 치료제 랍니다~^^

yamoo 2011-08-19 14:57   좋아요 0 | URL
한 때 정신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이 쓴 에세이들을 탐독한 때가 있어요. 이나미씨부터 시작해서 김정일, 양창순 등~

언제부터인가 찾지 않게 되더라구요...왜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류의 책들은 매우 유익한데 말이죠.

이 책은 어떨지...궁금은 하지만 절대 읽을 일은 없을거 같아요. 그래서 리뷰라도 꼼꼼히 보고 갑니다~

양철나무꾼 2011-08-19 15:23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실체가 없어 소외되기 쉬운 마음의 비중을 확고히 한다는 것만으로도 일독할 가치는 있어요.
하지만 그 이상...실생활에 적용, 치료법을 엿보고 하는 것을 바라선 안될 것 같아요~^^

제 리뷰를 꼼꼼히 읽어주시다니, 왠지 쑥스럽지만 좀 좋아요~^^

마녀고양이 2011-08-24 10:32   좋아요 0 | URL
일단 나무꾼님의 결론에 저는 공감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서양 상담학 가정에 이의가 있네요. 머, 서양 의학이다 한의학이다 나누는 자체도 좀 우습지만요.
상담자가 내담자와 떨어진 존재이고 완전한 존재라는 개념은 <정신 분석학> 상담에서의 전제 조건이구요,
<인간 중심 상담>이나 <인지 상담>, <실존 치료> 쪽은 상담자도 불완전한 존재라고 인정한답니다. 또한
요즘 더 나아가 수용하고 포용하는 쪽이 상담의 추세이며, 한의학이나 명상과도 상당한 교감이 이루어진다고 압니다.

저자의 말은 따뜻하나, 처음 전제 자체가 오만하다(?)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물론
책을 읽지 않았으니, 리뷰를 통한 생각이지만요~ ^^. 그런데 양철댁, 오랜만이여, 얼굴 좀 보여줘잉.

양철나무꾼 2011-08-25 14:24   좋아요 0 | URL
사실 이 분 한의사지만, 이 분이 얘기하는 건...양의학도 한의학도 아닌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이분 종교적, 학문적으로 엄청 깊이있으시긴 하더군요~^^

과정이 따뜻하면 전제 자체가 오만해도 좋은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고요.
어디서나 기준이 되는 가치는 필요한거니까 말이죠.

아이리시스 2011-08-19 16:55   좋아요 0 | URL
그나마 다행인 게 전 우울증 아닌 것 같아요. 대부분 다 해당 안돼요. 다행이죠?^^ 생각해보니까 저는 완전 제 잘난 맛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인가 봐요. 하하. 잘 계셨어요? 얼굴 좀 보여주세요, 저는 사진으로!

양철나무꾼 2011-08-25 14:35   좋아요 0 | URL
대부분 다 해당 안된다고요? 그 거짓말 진짜예요?
잘 웃지도 않고, 양보도 안 하고, 남을 배려하지도 않으면...딱 B사감 스탈인데~^^

맞나 틀리나, 얼굴 좀 보여줘요~^^

2011-08-19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5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1-08-19 21:45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반가운 리뷰에요.
저도 이 책을 읽었는데 작가의 이력 못지않게 문체가 독특했어요.
좀 추상적 접근이고 문장의 근사한 매력에 더 휘말리게 되는 단점이 있었어요.
특히 우리나라 여성의 우울증, 평생을 살며 여성의 몸이 갖는 트라우마 같은 부분엔 공감이 팍~ 되었답니다.

양철나무꾼 2011-08-25 14:41   좋아요 0 | URL
반갑다고 해주셔서, 감사해요~^^

맞아요~
좀 개인적이고 신변잡기적인 글이 되어버렸어요.


cyrus 2011-08-19 23:19   좋아요 0 | URL
남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여성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과 저자의 이력이 참으로 독특하네요.
우울증이라는게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있는거 같은데,, 아무래도 사람들마다 증상이 다르니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하더라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불치병인거 같아요.
미래에는 암 대신에 우울증이 불치병이 되지 않을까,, 상상도 해보게 되네요 ^^;;

양철나무꾼 2011-08-25 14:48   좋아요 0 | URL
불치병은 아니어도 난치병이다,,,에 한표 하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난치병의 종류 - 무좀, 기미, 중독...^^)

님도 님이지만, 어머니 종종 챙겨드리세요~^^

세실 2011-08-20 07:11   좋아요 0 | URL
우울증은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에서 오는군요. 하긴 못된 상사의 비중이 굉장이 크더라구요. 저라면 적당히 무시하며 살텐데 ㅎ 그동안 뭐하고 지내셨을까? 그리웠어요,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1-08-25 14:50   좋아요 0 | URL
그리웠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든 증후군은 관계에서 오나 봐요, 관계를 차단해 버리면 증상도 없어지지 않을까요?
근데, 관계가 그립고...사람이 그리워서 말이죠, 쿨럭~!

꿈꾸는섬 2011-08-22 16:21   좋아요 0 | URL
저 요즘 우울해요. Goodbye, 우울증하고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1-08-25 14:57   좋아요 0 | URL
제가 '타쿠나 마타타' 노래 불러드릴게요~^^

소나무집 2011-08-23 09:31   좋아요 0 | URL
생활 속에 감추고 있는 우울증 양상들이 저도 상당히 많네요. 다예요.

양철나무꾼 2011-08-25 15:01   좋아요 0 | URL
저도 때때로 많이 겹칠때가 있어요~^^

숲노래 2011-08-24 03:49   좋아요 0 | URL
어차피 도시에서 살아가며 병을 조금 다스려도 다시 도질밖에 없어요.
도시에서 살아가려 한다면, 텃밭을 일구어야 하고,
몸이나 마음이 깨끗해지고 싶으면 도시를 떠나야 해요.
그래서, 도시에 있는 한의원이나 병의원도 모두
한계일 수밖에 없는 처방을 내리거나 글을 쓸밖에 없어요.
모두들 '밑바탕(본질)'을 건드리지는 않아요.

한의원부터 도시를 떠나면 되거든요...

양철나무꾼 2011-08-25 15:07   좋아요 0 | URL
ㅎ,ㅎ...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쉽게 도시를 떠나게 안돼죠.
저는 도시를 떠나야 하는 이유만큼이나 도시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부류이기도 하고 말이죠.

도시에 살면서 한계를 조금씩 극복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은빛 2011-08-24 14:04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면 저는 10대 시절을 무척 우울하게 보냈어요.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사회와 학교에 대한 반항이 좀 심한 편이었죠.
그런데 학생운동부터 시작된 사회운동을 하면서,
저 개인의 우울한 감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쓰게(혹은 못쓰게) 되었어요.

요즘은 우울하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좀 사는게 재미가 없네 정도의 느낌이 가끔 들어요.

양철나무꾼 2011-08-25 15:08   좋아요 0 | URL
'재미'가 주사나 바이러스였으면 좋겠어요.
님께 재미 주사 한방, 재미 바이러스 만발 퍼뜨려 드리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