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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혜가: 마음이 너무 무거우니 덜어주십시오.
달마: 마음을 갖고 오너라
혜가: 마음을 찾아보아도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달마; 찾아낸들 그것이 그대의 마음인가?
혜가와 달마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때로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통통 튀는 짬뽕공도 아닌 것이 어디로 튀는지 싶을 때도 있고,
움켜쥐었다 싶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연기처럼 실체가 없을 때도 있다.
단지 마음이 뻐근하고 아파올 때, 어디를 치료해도 여의치 않을 때...마음이란 것이 있고, 그것도 내 안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이 책의 제목은 <안녕, 우울증>이다.
우울증을 직접 대면하게 되고 실체를 파악하게 되는 'Hi, 우울증'일지, 쾌차하여 안녕을 고하는 'Good bye, 우울증'일지는 이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의 지은이 '강용원'은 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알라딘 책 소개를 보면,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는 학문이라 판단하고 삶의 행로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다가 신학을 공부해 성직의 길로 접어들었다. 기본적인 사목과 대학생, 청년 교육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던 중 이 땅의 사회, 역사 문제에 눈뜨게 되면서 자신이 속한 생명공동체의 전통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성직을 내려놓고 사십대 중반에 한의대에 입학, 우리 생태에 맞는 의학이 무엇인가를 탐색하였다. 학업을 마친 뒤 ‘마음향기한의원’을 열어 마음 관련 질환, 특히 우울증을 우리 방식으로 치료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지금은 아픈 사람 하나하나를 앉아서 기다리는 수동적인 개인 치료 방식을 잠시 접고, 이른바 3대 신성학문을 모두 공부한 인생의 뜻을 곡진히 살피면서 능동적 사회 치료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글쓰기와 대중강연에 힘을 모으고 있다.
라고 되어있다.
그의 이력을 알아야 '남성한의사, 여성 우울증의 중심을 쏘다'라는 부제를 단 책이 그럴 듯 해진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리하여 본인 스스로 우울증을 앓았으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서양의학에서의 상담은 상담자가 피상담자와 분리되어 있고, 상담자가 완전하다는 전제가 있으며, 상담자는 말을 하기 위해 분석하면서 피상담자의 말을 듣지만, 저자는 듣기 위해 말을 하고, 가슴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는 차이점이 있단다. 저자는 이를 위해 ‘우리말 생태’와 대중가요 등을 활용한 ‘서민적 텍스트’를 통해 한국적 상담 치료법을 개발해 치료에 활용하고 있단다.
눈에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 기계적으로 통제되는 것으로 세계를 사물화한 이 문명의 프로크루스테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노상강도)식 발상은 심지어 마음조차 뇌에 가두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뇌를 포함한 우리 몸 전체가 삶의 조건과 상호작용하는 사건ㆍ운동doing이지 뇌의 산물being이 아닙니다. 몸 문명이 내다버린 마음은 무한히 생성하고 변화하는 자유로서의 생명 현상입니다. 따라서 마음의 복원은 자유의 복원입니다. 자유는 평등한 소통을 부릅니다. 소통은 모든 생명이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공존과 평화의 위대한 가치를 향해 가려 할 때 마음의 복원이 없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38쪽)
그러므로 자신을 비우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비우라는 말의 전제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울증에 걸린 절대 다수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허무한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자신을 돌려주어야 진정한 비움의 세상이 도래합니다.(40쪽)
인간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주의를 기울이는 주체, 즉 행위자로서 마음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했다는 측면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의를 기울이는 상대방, 즉 마주 선 주체로서 마음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측면입니다. 우선 주체, 즉 행위자 문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이 마음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사는가를 묻는 것이 지금 우리가 나눌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지닌' 존재라고 하지 않았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바로 이 차이를 간과한 것이 서양의학과 전통적인 한의학이었습니다. 마음을 동사가 아닌 명사로 파악한 것이 둘의 실패 요인입니다. 마음은 사건이므로 지닐 수 있는 사물이 아닙니다. 흐르는 파동입니다. 구조를 흔드는 운동입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며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생명이 주위 조건과 함께 부단히 일으키는 상호작용입니다. 소통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마음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산다는 것은 자신이 소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소통을 추구하는 존재는 마주 선 마음 존재에 먼저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의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합니다. 말을 엮고, 인격을 엮고, 삶을 엮습니다. 함께 도약합니다. 통섭입니다. 결국 마음의 존재로서 산다는 것은 통섭으로 열린 길을 가는 것입니다.
통섭으로 열린 길을 가는 의학의 주체는 환자 앞에 경청하는 존재로 섭니다. 병을 아는 지식으로 무장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말부터 앞세우는 존재가 아닙니다. 환자 자신, 그 마음을 듣는, 그래서 그 인격과 삶에 참여하는 존재입니다. 병을 확인하고 약부터, 그리고 끝내 약이나 처방하는 자는 의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병을 통해 사람과 삶을 만나 더 평화롭고 행복한 길을 함께 가도록 돕는 자만이 의사입니다.(51~52쪽)
위대한 영적 스승들도 인간적 약점과 고통을 안고 있었던 게 사실이고 보면 마음을 치료하는 의자醫者가 이런 유의 흔들림 족에 있다는 게 그리 대수로운 화제가 될 리는 없을 테지요. 다만 이 이야기를 통해 환자와 의자의 인간적 소통으로 치료 연대를 만드는 일이 좀 더 자유롭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병이 전염되듯 치료도 전염됩니다.(72쪽)
우울증 상담치료를 하다 보면 거의 모든 경우에 맞닥뜨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사람 우울증 고쳐 놓으면 뭐 하나. 가족도 그대로, 친구도 그대로, 직장 사람들도 그대로인데...하는 답답함입니다. 모든 마음의 병, 특히 우울증은 대부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것인데, 달랑 그 사람의 삶의 지향성만 어루만져 보았자 관계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현실에서의 삶의 변화 가능성은 그리 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92쪽)
다음은 사소한 일상의 습관들 속에 속살을 감추고 있는 우울증의 양상(105쪽)이란다.
몇개나 해당되는지 체크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실없다 싶을 정도로 잘 웃는다,
늘 양보한다, 따스하게 남을 배려하며 보살핀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못한다,
손해 보고라도 공존을 꾀한다,
급기야 자기를 베어 남을 살리는 자기 파괴적 희생을 감수한다,
경쟁 국면에서 물러선다,
직장생활에서 언제나 일 많은 곳에 배치된다,
꼭 못된 상사를 만나 고생한다,
사고를 자주 당한다,
상대방(연인)의 약점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심각할 정도로 숫기가 없다,
거절당할까 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거나 그냥 침묵한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노력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 때문에 좌절한다,
좋은 기회를 놓치는 징크스가 있다,
아무리 푹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무력하다,
목표를 성취했을 때 이상하게 허망해진다,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 때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상대가 떠날지 모른다는 걱정에 휘말린다,
등등...
어찌되었건, 좋은 수필 한편을 읽은 느낌이다.
본인이 겪은 기록이어서 전해져 오는 깨달음도 남다르다.
하지만, 우울증 치료로서의 한방치료...갈 길이 멀다.
본인의 경험을 환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환자들의 무조건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는 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또 한번의 상담만으로 완치된 걸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좋은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서민적 접근이라고 하기엔, 환자와의 상담시간과 비용의 문제도 환자 입장에서는 간과할 수 없다.
부수적으로 금액이나 보험 수가의 문제도 있다.
우리주변의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질환이니, 문턱을 낮추고 금액의 형평성을 맞추는 문제를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울증이란, 자가 치료나 가족 치료가 가능한게 아니다.
다만 '우울증이 이런 것이다' 하는 본인의 경험이 우러난 예가 자세히 나와 있어, 미루어 보고 접근하기 쉬울 뿐이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 다르듯, 우울증의 증상이나 발현도 다 다른데...치료법이나 약 따위는 너무 뭉뚱그려 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독자의 범위를 상담자로 봐야 할지, 피상담자로 봐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 책을 이렇게 끝내서는 훌륭한 한의사 한명을 홍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