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의사 1
마르탱 뱅클레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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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삭스가 돌아왔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의사,

<아름다운 의사 삭스>의 그가 돌아왔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아니, 돌아왔다는 표현보다는

그의 어린 시절을 다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의사 삭스>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브뤼노가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엘 들어가고

거기서 만난 다른 친구들

바질 블룸, 크리스토프 그레, 앙드레 소랄과 함께 엮어가는

청춘의 노래 같은 것이다.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뭔가 대단히 부족하다.

겉표지에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에 비견될

모험소설이라는 문구로 유혹을 하지만

이런 표현은 너무 식상하다.

거기에 꿰어 맞추다보면 많은 걸 잃는다.

의사가 되려는 이들에게, 혹은 치료자가 될 사람들에게

사람을 치료한다는 행위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 사람의 시선을 옮겨가면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하려던 말은 이렇게 요약이 되는 것이다.


치료하는 법.

그것은 환자의 입술을 보고, 환자의 살을 손으로 만지고,

환자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환자의 몸 위에 내 몸을 올려놓음으로써 배운다는 것을..


아직도 의사에 불신감이 가득한 나로서는

이런 부분들도 꽤나 좋았지만

더욱 내 시선을 붙든 건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그들도 역시 사람이었던 터라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으리라.

특히나 브뤼노와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었던 샤를로트

그들의 사랑이 가슴 아파서 읽다가

잠깐씩 책장을 덮어두고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해피앤딩이 아니어도 굉장히 부러운 그들의 사랑.


이 책은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든다.

<아름다운 의사 삭스>에서 그랬듯이

화자가 많이 등장을 하는데

각자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아주 세심하게 들려준다. 마르탱 뱅클레르 화법이다.

의사가 되려는, 혹은 간호사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모두 읽으라고 권해주고 싶은 그런 책이다.

이런 의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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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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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아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여자들을 보면

부럽기보다는 측은한 심정으로 보곤 했다

아무리 사랑스런 아이들일지라도 그녀들이 겪을 피곤함이

아이들의 수에 정비례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섯째 아이는 그런 면에서 제목에서부터 거부감이 묻어났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남들과는 사뭇 다른 고지식함을 갖고 있는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직장 파티에서 만나 첫눈에

서로가 자신의 짝임을 알아본다.

그리고 넓은 집과 많은 아이들을 낳음으로 해서 고전적인 가정을

만드는 꿈을 같이 꾼다.


호텔만큼이나 넓은 집을 소유하게 되고 그들 부부가

아이제작소라 부르는 침실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태어나고

각지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은 휴가 때면 이 집으로 몰려들어

북적거리며 집안을 활기로 채운다.


그들이 꿈꾸던 단란한 행복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았지만

항상 너무 이르게 생각되는 해리엇의 다음 임신은

다섯째 아이에서 절정을 이르게 되고 임신을 안 순간부터

태어날 때까지도 해리엇을 괴롭힌 벤이 태어나는 순간

평화는 깨어지고 만다.


작은 도깨비, 괴물로 보이는 외모와 억센 힘은 가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모든 이의 판단아래 보호소로 보내지지만

해리엇은 결국 벤을 다시 데려오고 그 대가로 다른 가족들은

이 울타리를 벗어나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택한다.

빙하시대의 유전자가 우리에게도 내려온다는 인류학자의 글과

한 어머니가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는 이 책은

음침하다.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소유한 손질되지 않은 겨울 정원을

연상시키는 듯 황량함이 감돈다.

벤처럼 우리가 원하지 않는 유전자가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

더이상은 우리가 꿈꾸는 것은 없을 거라는 섬뜩한 경고!


우리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성실한 가장,

순진하고 명랑하고 밝은, 순종적인 아이들로 가득한

가정을 바라지만 이 바람이 언제나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가족은 가족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다섯째 아이는 벤처럼 광포한 유전자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개인주의는

언제든 다섯째 아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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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사랑에 빠지다
페터 회 지음, 황보석 옮김 / 청미래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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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회는 덴마크 작가인데 내가 아주 독특하게 느꼈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쓴 사람이다.

새 책 코너에서 이 사람 이름만 보고 너무 반가워서

얼른 집어들었다.


나는 원래 마음에 드는 작가가 생기면

그 사람 작품을 몽땅 읽어보고 싶어지는데

그러다가도 한 작품이 삐꺽하고 걸리면

또 그걸로 끝이다.

어쨌든 아직까지 페터 회는 내 목록에서 유효하다.

에라스무스는 원숭이 이름이다.

정확하게 묘사를 하자면 고릴라에 가까운 몸이지만

여기서는 원숭이라 칭하니 나도 따라갈밖에..

외딴 섬에서 포획당한 원숭이 에라스무스는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인간 다음 종족 정도로 묘사가 되는데

잡혀온 에라스무스를 풀어주려던 마들렌느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나참..


내가 아무리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이거야 원..음,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이 안 나오는 상황이다.


킹콩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혹성탈출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영화 같은 영상미가 느껴지는 책이다.

재미있다.

옮긴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굉장한 걸 품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그런 게 안 느껴졌다.

원래 놓치는 부분들이 많은 나지만

이번엔 그 의견에 공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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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먼의 천국
마이클 커닝햄 지음, 김홍엽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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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휘트먼은 어렸을 때 위인전 안에서 만난 시인이다.

특별한 시가 생각난다기보다는 그의 멋진 하얀 수염만이

유독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여기 이 책 안에서는 어디에서건 그의 시가 반짝인다.


이 책은 각각 다른 시대를 이야기하는 3부작이다.

-1부 기계 안에서-

때로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가 생각나는

회색으로 가득 찬 세계

형이 기계에게 희생당한 후 학교를 그만두고 대신 공장에 나가

부모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린 루카스.

형의 약혼자였던 캐더린을 사랑하는 루카스


죽은 자들과 함께 산다고 느꼈던 루카스는 기계가 그들을

삼켜버릴 것을 짐작하고 캐더린을 재봉틀이 가득한 그 공장에서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손을 일부러 기계 속에 넣어 으깨버린다.

아이를 가진 캐더린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희망을 갖고 싶은

산업혁명 직후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

캐더린이 일하던 공장에서 불이 나 불꽃처럼 창문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광경은 얼핏 전태일을 떠올리게 된다.

혹사당하는 노동자들이여.


-2부 어린이들의 십자군-

화재가 발생했던 공장들은 이제 뉴욕 대학이 되었다.

어린 아이가 경찰서로 전화를 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어른들을 껴안고 폭발한다.

충분히 사랑하게 되었을 때 죽일 수 있는, 훈련된 십자군들

휘트먼이 존재하던 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아무도 찾지 않는 버림받은 아이들

테러리스트를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은

버림받은 그 아이와 길을 떠나는 캣.


-3부 아름다움처럼-

150년 후 지구에서 인조인간인 사이먼이 도마뱀인 우주인 카타린과

죽음을 위한 짧은 여행을 하면서 겪는 일들을 그렸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전혀 연관이 없으면서도

휘트먼의 시와 '흰 색 사발'이 연결 통로가 된다.

휘트먼의 시로 이야기하는 루카스와 어린 십자군들과

인조인간인 사이먼.

형의 약혼자인 캐더린에게 주고 싶어서 루카스가

먹을 것을 사는 대신 선택했던 흰 사발은

캐더린에 의해서 다시 돈으로 바뀌어지고

그 사발은 2부에서 캣이 남자친구인 사이먼을 위해 사고

그 사발은 3부에서 사이먼의 돈으로 루크가 사서 엄마를 위해

우주로 가지고 가버리는 물건이다.


사이먼은 루크가 가지고 가는 그 흰 사발을

다음 세기의 어느 시기엔가 다른 행성에서

선반에 얹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발은 그 시대를 전부 관찰한 눈 쯤으로 보자.


우리는 흔히 유물을 통해 그 시대를 짐작하게 되는데

같은 사발이 계속 다른 시대에 나타난다는 건

어느 시대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뜻은 아닐런지.

혹은 인생무상.

휘트먼의 시는 의외로 어려운 모양이다.

자유를 노래한 시인으로 알고 있었는데

주인공들이 내뱉는 시들은 하나같이 해독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글쓴이에게 내가 감탄하는 부분은

휘트먼의 시를 강물로 흐르게 만들고

그 흐름을 따라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연결했다는 점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이야기.

전체적인 연결은 약간 삐걱거리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책이다.


참, 그런데 왜 미래를 그리면서 일본의 이미지가 강할까?

<뉴로맨서>에서도 그렇더니만 여기서도

미래에서 엔화가 쓰여지고 기모노 입은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미래에 일본이 강국이 된다는 암시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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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로알드 달 지음, 권민정 옮김 / 강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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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동화작가이다.


영화로도 유명해진 <찰리와 초컬릿 공장> <마틸다>이외에도

<아북거, 아북거><창문닦이 삼총사><제임스와 슈퍼복숭아>

열거하자면 입 아프다.


조금의 여유가 있었던 점심 시간을 이용해 서점에 들렀다.

신간 코너를 쭉 돌아가는데 이 책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아니지, 로알드 달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내용은 볼 것도 없이 집어 들고 나왔다.


처음엔 장편소설인 줄 알고 반가워했는데

사실 이 책 안에는 일곱 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중 하나는 로알드 달이 어떻게 해서 작가가 되었는가에

대한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섞여 있어서 횡재한 기분이다.

동화가 그렇듯 이 책도 제목 그대로

기상천외한 이야기들 투성이다.

너무 재미있다고 하면 다 될 듯.


역시 로알드 달이야..하는 소리가 새어나오고야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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