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먼의 천국
마이클 커닝햄 지음, 김홍엽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월트 휘트먼은 어렸을 때 위인전 안에서 만난 시인이다.

특별한 시가 생각난다기보다는 그의 멋진 하얀 수염만이

유독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여기 이 책 안에서는 어디에서건 그의 시가 반짝인다.


이 책은 각각 다른 시대를 이야기하는 3부작이다.

-1부 기계 안에서-

때로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가 생각나는

회색으로 가득 찬 세계

형이 기계에게 희생당한 후 학교를 그만두고 대신 공장에 나가

부모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린 루카스.

형의 약혼자였던 캐더린을 사랑하는 루카스


죽은 자들과 함께 산다고 느꼈던 루카스는 기계가 그들을

삼켜버릴 것을 짐작하고 캐더린을 재봉틀이 가득한 그 공장에서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손을 일부러 기계 속에 넣어 으깨버린다.

아이를 가진 캐더린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희망을 갖고 싶은

산업혁명 직후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

캐더린이 일하던 공장에서 불이 나 불꽃처럼 창문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광경은 얼핏 전태일을 떠올리게 된다.

혹사당하는 노동자들이여.


-2부 어린이들의 십자군-

화재가 발생했던 공장들은 이제 뉴욕 대학이 되었다.

어린 아이가 경찰서로 전화를 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어른들을 껴안고 폭발한다.

충분히 사랑하게 되었을 때 죽일 수 있는, 훈련된 십자군들

휘트먼이 존재하던 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아무도 찾지 않는 버림받은 아이들

테러리스트를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은

버림받은 그 아이와 길을 떠나는 캣.


-3부 아름다움처럼-

150년 후 지구에서 인조인간인 사이먼이 도마뱀인 우주인 카타린과

죽음을 위한 짧은 여행을 하면서 겪는 일들을 그렸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전혀 연관이 없으면서도

휘트먼의 시와 '흰 색 사발'이 연결 통로가 된다.

휘트먼의 시로 이야기하는 루카스와 어린 십자군들과

인조인간인 사이먼.

형의 약혼자인 캐더린에게 주고 싶어서 루카스가

먹을 것을 사는 대신 선택했던 흰 사발은

캐더린에 의해서 다시 돈으로 바뀌어지고

그 사발은 2부에서 캣이 남자친구인 사이먼을 위해 사고

그 사발은 3부에서 사이먼의 돈으로 루크가 사서 엄마를 위해

우주로 가지고 가버리는 물건이다.


사이먼은 루크가 가지고 가는 그 흰 사발을

다음 세기의 어느 시기엔가 다른 행성에서

선반에 얹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발은 그 시대를 전부 관찰한 눈 쯤으로 보자.


우리는 흔히 유물을 통해 그 시대를 짐작하게 되는데

같은 사발이 계속 다른 시대에 나타난다는 건

어느 시대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뜻은 아닐런지.

혹은 인생무상.

휘트먼의 시는 의외로 어려운 모양이다.

자유를 노래한 시인으로 알고 있었는데

주인공들이 내뱉는 시들은 하나같이 해독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글쓴이에게 내가 감탄하는 부분은

휘트먼의 시를 강물로 흐르게 만들고

그 흐름을 따라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연결했다는 점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이야기.

전체적인 연결은 약간 삐걱거리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책이다.


참, 그런데 왜 미래를 그리면서 일본의 이미지가 강할까?

<뉴로맨서>에서도 그렇더니만 여기서도

미래에서 엔화가 쓰여지고 기모노 입은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미래에 일본이 강국이 된다는 암시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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