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섬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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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마지막 섬

◎ 지은이 : 쥴퓌 리바넬리

◎ 옮긴이 : 오진혁

◎ 펴낸곳 : 호밀밭

◎ 2022년 11월 30일 초판1쇄, 299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이 글은 우리 일상에서의 작은 굴복들이 만들어낸 작은 원죄들에 관한 이야기다.

286쪽

단 한 문장만으로 이 책을 설명해야 한다면 나는 이것으로 하겠다. 똑바로 붙이지 못해서 쭈글쭈글해진 코팅필름같이 군데군데 우둘두툴한 표지부터가 암울한 결말을 의미하는 듯하다. 안개가 피어오르듯 서서히 증발하는 마지막 섬.

우연히 섬을 찾게 된 40가구가 섬 주민 전부였다.

섬은 평화로웠고, 섬 주민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내가 섬으로 왔을 땐 수많은 상처와 실망

그리고 큰 아픔을 경험한 뒤였다. 섬에서 너무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나는 그곳을 '마지막 섬'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렇다. 마지막 섬, 마지막 은신처,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자투리땅이 바로 그 섬이었다. 우리에게 단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이런 평화가 깨지지 않는 것이었다.

15쪽

재력가였던 한 사업가가 섬을 매입해 정착한 후 몇몇 지인들에게 별장을 짓도록 부추겼고 그결과 40가구가 정착. 그가 죽은 뒤 큰 아들에게 상속된 그 집을 1호로 부르면서 모든 사람은 번지수로 부르게 된다. 화자는 36호. 소설가는 7호.' 그 작은 섬에 있는 잣나무 숲,천연 수족관 같은 새파랗고 투명한 바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협만 그리고 순백의 유령처럼 쉬지 않고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에 대해 내가 이야기해봐야, 사람들은 기껏 관광지에서 파는 엽서 속 풍경 정도나 떠올리지 않을까.'(13쪽)

에덴동산, 파라다이스, 무릉도원, 이상향, 낙원과도 같은 이 섬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24호 노인이 심장마비로 죽은 뒤부터다. 생전 노인을 찾아보지도 않았던 그 아들이 집을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집을 산 이가 바로 전(前) 대통령, 오랫동안 계속된 철권통치 후 국민에게서 외면당하고, 혁명의회가 사임시켰던 전 대통령.

그는 섬이 무질서와 혼돈 속이라면서 그늘을 드리워주던 나무가지를 쳐내는 것을 시작으로, 섬을 관광지로 만들어야 된다면서 섬을 점유하고 있는 갈매기를 몰아내는 대학살극을 벌인다. 흥분한 갈매기들이 집 유리창에 돌진하고 사람들을 공격하자 이번엔 천적인 여우를 섬에 풀었고 그 결과는 뱀이 득실대는 섬으로 바뀌었다. 또, 뱀을 퇴치하고자 돈을 갹출해 전문가를 불렀으나 실패, 뱀의 천적인 갈매기를 위해서 이번엔 여우 사냥, 그러다 여우를 잡으려고 숲에 놓은 불이 섬을 홀랑 태우게 된다.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시스템을 무정부 상태라고 하죠.(66쪽)

-평등, 우애, 민주주의 … 이 모든 것들은 약자들이 만들어낸 헛소리일 뿐이야. 왜냐하면, 약자들이 살아가려면 이런 개념들이 필요하니까. 강자는 말일세, 오직 하나만 원하지. 더 강한 힘 말이야. (109쪽)

-갈매기가 어떻게 나를 이겼다는 거야? 당신들한테 일어난 모든 일은 당신들이 무능해서고, 그 소설가라는 패배주의자처럼 무정부주의를 추종했기 때문이야. (281쪽)

-이 섬에서 모든 결정은 민주주의적인 절차에 따라서 내린 거야. 다수가 무엇을 원하든 그대로 한 것뿐이야. 즉, 내린 결정에는 모든 주민의 동의가 있다는 의미야.(282쪽)

전 대통령의 이런 논리에 따라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걸 잊었던 주민들은 나중에서야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처음부터 반기를 들었던 소설가는 어디론가 끌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나머지 주민들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화자인 나는 사랑하는 라라를 보지 못하는 괴로움을 견디며, 처음부터 소설가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정신을 돌릴만한 일을 하려고 이 이야기를 썼노라고 한다.

-우리는 굴복해서 패배했다. 점차 수위를 높여가던 권력의 폭압이 얼마나 더 극에 달할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했기에 패배했다. 그 나무들이 잘려 나갔을 때, 그리고 구멍가게 아들이 얻어맞았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저항했어야 했다. (286쪽)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에서 쉬고 자유로운 옷차림으로 산책하고, 음악을 듣고, 그 섬에만 나는 피누스 피네아 라는 흥미로운 잣나무를 수확해서 공평하게 나눈 돈으로 신문, 우유 같은 필수품을 구매하는 평화로운 삶은 전 대통령이 섬을 관광지로 개발하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고 섬의 실질적 주인인 1호를 꼬드기고, 나중에는 섬에 대한 증여세와 부동산세가 미납이니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모두 쫓겨날 거라는 협박을 하면서 무너졌다.

전 대통령은 사관학교를 졸업, 진급하며 높은 계급까지 올라갔고 쿠데타로 행운을 잡아 대통령이 되었다. 누가 생각나는군. 심지어 발음도 똑같잖아. 전 대통령. 평행이론을 들먹이고 싶어진다고.

-어째서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사악한가에 대한 답이 이거야. 자기 내면에 있는 두려움! 자기가 저지른 살인들이 평생 그를 따라다닐 거고, 결국은 저주로 다가올 거야.도망치고 싶어서 찾아온 이 외딴섬에서조차 말이야.(166쪽)

-누가 먼저 시작했고, 누가 정당한지 같은 논리적 사고는 질식할 것 같은 공포와 증오 앞에서 모든 의미를 상실했다. 모두가 복수를 원했다. 공포는 증오를, 증오는 공포를 키우고 있었다. (191쪽)

갈매기의 공격으로 목수가 죽으면서 사람들은 패닉 상태가 되었다. 처음부터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일이 없었더라면, 갈매기를 죽이는 일이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건 모두에게 잊혔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영화에서 공포를 먹고 자라는 괴물이 바로 그것을 제대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1970년대에 제가 노래로 불렀던 메스레키 바바의

시를 보면 '늘면 늘었지 줄지 않네 / 억압은 서서히

서서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멋진 시구에 담긴 '서서히'에 주목해야 합니다. 모든 독재자는 초기에

자신의 이익을 마치 사회의 이익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지요. 처음에는 누구도 겁먹지 않게 조심합니다. 하지만 권력이 커지고 자신감이 충만해지면 이빨을 '서서히'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프랑스 혁명과 같은 격변을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민주적'인

방식으로 집권한 '선출된 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작가와의 질의응답> 중에서, 293쪽

이 섬의 주민들이 화자의 아내인 '라라'를 빼놓고 거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은 채 소설가나 목수, 구멍가게 주인 혹은 음악가 등등으로 불리는 것은 그저 집단 중 한 명, 무지한 백성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은 어제는 잊어버리고, 내일은 생각지 않습니다. 오로지 지금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집권자들과 언론이 이 '지금'을 조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됩니다.'(292쪽, 작가와의 질의응답 중에서)

안 보려고만 했던 나도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조작된 이야기 너머 진실을 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마지막 섬 신세가 될 수 있음을 아는데, 분명히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지는 이 기분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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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1-27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름으로는 분명 아닌데 한국인인 것 같은 기분이네요
배경이 한국이 아닐까 착각하게 만드는데요
이런 일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군요. 무서운 일이에요
조작된 사실 넘어 진실을 보려면...혼자의 힘으로는 힘들겠지요. 힘을 모으는 ‘연대‘가 필요하겠군요.
연약하지만 약하지만은 않은 그런 연대요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본 구절입니다^^

미류나무 2023-01-27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터키지만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 듯해요. 눈을 가리는 안개를 흩트러뜨리려면 혼자서는 어렵겠지요. 연대,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