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충격적인 첫 문장이다. 뒤를 이어,
'부적응하다'는 말은 품위가 떨어지는 추한 단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흐느적거리는 몸, 고정되지 않는 텅빈 눈길이라는 현실을 말해준다. '망가졌다'는 단어는 부적절할 테고, '불완전하다'는 단어 역시 그럴 것이다. 그만큼 이 두 범주는 폐기 처분해야 마땅할 쓸모없는 무언가를 연상시킨다. '부적응하다'는 말은 아이가 기능적인 틀(붙잡는 손, 걸어가는 다리)의 바깥에 존재하며, 다른 삶들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그 가장자리에 엄연히 자리 잡고 있음을 뜻한다. (9쪽)
아름답던 아이가 태어난지 석 달 뒤에 옹알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 울음, 미소, 찡그림, 한숨, 소스라침말고는 다른 반응이 없다는 것, 그리고 보지 못한다는 것과 목도 가누지 못하며 걸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부모의 마음을 감히 알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으리라. 그 무너지는 세상 속에 이 가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말해주는 화자는 특이하게도 집을 구성하고 있는 돌멩이들이다. 그들이 바라본 맏이와 누이와 막내의 이야기다.
섬세한 맏이는 부모보다 더 다정하게 아이를 보살펴주고, 부모가 아이를 위해 매번 정부와 싸우는 일을 본 뒤로 '어른이 되어서 장소에 상관없이 그 어떤 창구에도 다가갈 수 없었고, 서명을 하지도 못했고, 아무런 신청 용지도 작성할 수 없었다. 맏이는 자신의 신분증도, 계약도 갱신하지 않았으며, 단 1초라도 행정 업무를 보느니 차라리 벌금이나 추가 경비를 내는 편을 택 (56쪽)'하는 사람이 된다.
-그는 마음속으로 부적응한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맏이는 자기가 아이를 볼 수 없는 바로 그 순간에도 아이가 숨을 쉬고 있으며, 아이가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도 아파서 대응책을 만들어냈다. 그는 책 읽기를 완전히 그만두고 과학에 집중했다. 과학은 적어도 그를 아프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65쪽)
-그는 평온함을 잃었다. 그는 영영 멈추어 버린 어느 정지된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돌멩이가 되었는데, 이는 무감각해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참고 견디며 움직이지 않음, 날이 흐름에 따라 철저하게 똑같음을 뜻한다. (82쪽)
-맏이는 걱정하는 마음으로만 사랑할 수 있다. 그는 영원히 맏이다. (89쪽)
둘째인 누이는 맏이와는 반대로 아이를 혐오했다. 자신에게 신경 써주지 않는 부모 대신 할머니와 애정을 나누었으며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반항하느라 온 힘을 다 써버린다. 그러다가 아이의 죽음 이후 의지를 상실한 부모를 일으켜세우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아이는 모든 힘을 빨아들였다. 부모와 맏이의 모든 힘을. 부모는 상황에 맞섰고, 맏이는 녹아들어버렸다. 그녀에게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를 떠받쳐 줄 힘은 전혀 없었다. (94쪽)
-그는 탄생과 늙음 사이 어딘가에서 멈추어버린 그 둘 사이의 존재, 어떤 오류였다. 말하지 못하고 몸짓도 눈길도 없는 거추장스러운 존재. 그래서 무방비한 존재였다. 아이는 열려있었다. 그런 취약함이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95쪽)
-그로부터 시간이 오래 흘러 어른이 된 누이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었다. "어떤 아이가 아프면, 항상 다른 아이들도 잘 살펴야 해." (127쪽)
-치유되는 것은 곧 자신의 고통을 포기함을 뜻하는데, 아이는 바로 그 고통을 맏이의 마음속에 심어놓았다. 치유되는 것은 곧 흔적을 잃는 것, 아이를 영영 잃음을 뜻했다. 누이는 이제 관계가 서로 다른 형태를 띨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전쟁은 어떤 관계다. 슬픔도 그렇다. (159쪽)
아이의 죽음 이후 태어난 막내는 막연하게 아이를 그리워한다.
-막내는 죽은 아이의 그림자와 함께 태어났다. 그 그림자가 막내의 삶을 휘갑쳤다. 막내는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그 강요된 이중성에 반발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그것을 제 삶에 통합시켰다. 장애를 지닌 어느 아이가 앞서 태어났고 열 살까지 살았다. 없는 사람들도 역시 가족의 일원이었다. (173쪽)
-그녀는 삶이 그리웠다는 듯 삶을 한껏 끌어안고 있다고 막내는 생각했고, 누이가 사랑에 빠졌을 때에는 말을 하는 사이사이 침묵을 두었다. --(중략)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행이 닥칠 것을 두려워하지 ㅇ낳고도 사랑할 수 있고, 잃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어줄 수 있으며, 위험이 닥칠 것을 기다리면서 두 주먹을 꽉 쥔 채 살아서는 안된다, 라고 누이는 말했다. 바로 이것이 그 사랑이 내게 가르쳐준 것이고, 큰 오빠가 배우지 못한 것이라고. 오빠는 포기했으니까, 라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203쪽)
부활절 방학 중 어느 날 저녁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아픈 양을 들어 트럭에 싣는 일을 도와달라며 양치기가 찾아왔고, 그 양을 들어 옮기던 맏이는 그 양에게서 아이의 흔적을 찾는다. 막내는 한 번도 곁을 주지 않던 맏이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으며 어머니는 휴대전화로 그 모습을 찍는다.
-아버지가 아내에게 몸을 기울여 아무도 듣지 못하게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처 입은 아이 하나, 반항아 하나, 부적응한 아이 하나, 마법사 하나로군. 이만하게 잘 키웠네." 그들은 서로에게 미소를 지었다. (234쪽)
이제야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던 감정들이 사라지고 비로소 가족이 된 것 같은 모습이다. '막내는 마음속으로 아이를 '거의 나인 존재'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이 어떤 분신, 자기를 닮은 누군가라는 인상이 들었다. (184쪽)' 둘이지만 하나인 존재가 막내와 아이가 아닐까. 자신때문에 분열이 된 가족을 다시 묶어주려 환생한 듯한 느낌이다. 혹은 쌍생아 중 하나가 늦게 태어난 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등장인물 들에게 이름은 없다. 그저 맏이, 누이, 아이, 막내로만 불린다. 무수한 세월을 바람과 추위와 더위를 견뎌낸 돌멩이들에게 그들은 시간 속에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테니, 이름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 그들이 태어난 순서로만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