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후 두 시, 소제동, 딸기 향 ㅣ 문학동네 청소년 82
정재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평점 :
내가 SF를 좋아하는 이유를 각 잡고 앉아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저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그 이야기가 현실에서 지지고 볶는 거에서 탈출해서 조금 색달랐으면 좋겠고, 그러다보니 판타지처럼 특별한 이야기가 좋았을 뿐이다. 그런 연장선에서 판타지와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긴 해도 S(Science )와는 거리가 먼 내가 SF까지 좋아하게 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전문적인 과학 얘기로 들어가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듬성듬성 아는 단어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그게 이야기를 빛바래게 만들지는 않으니 그게 또 희한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SF작품은 거의 본 적이 없다는 걸 실토해야겠다. 생각나는 작가가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참인데 문학동네 블로그에 이 작품이 떴다. 간단한 소개들이 나를 자극했다. 오 그렇단 말이지?
「삑, 구식 로봇입니다」, 「열네 살에 연락할게」, 「나의 반려 별」, 「착륙하는 법은 아직」, 「너의 노래를 듣고 싶어」, 「소제동에 과일 트럭이 오면 오후 두 시래」 이렇게 6편이 실려있는데 책을 받아드는 순간 표지에 실망하고 말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만화풍 표지다.
탐탁치 않은 마음으로 들여다본 첫 작품에서 솔직히 놀랐다는 것도 밝혀야겠다. '산이가 스스로 개척한 자신의 직업은 '반려체 컨설턴트'다. 의뢰인들의 반려 동·식물, 반려 로봇, 애착 인형 등을 꾸미거나 돌봄으로써 의뢰인과 반려체의 관계 유지 및 개선, 발전에 도움을 주는 일인데, 실제로 하는 업무는 매우 다양하다. <삑, 구식 로봇입니다>, 12쪽' 친구 찬비가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나가는 바람에 그의 반려 로봇 '아나투'를 돌봐주는 일을 맡은 산이의 이야기인데 소재의 신박함에 눈이 번쩍 뜨였다.
우주선과 로봇을 다른 천체로 보내는 이벤트에 당첨된 시라가 어렵게 산 로봇들 도,레, 미를 우주에 보내놓고도 그들과 연락할 프로그램을 살 수 없어 열네 살에 연락한다고 약속해버린 <열네 살에 연락할게>, 우주 캐릭터 설정을 도와주는 컨설턴트인 주랑이 장래희망과 관련된 컨설팅을 꾸며내는 과정이 재미있는 <나의 반려 별>, 세상이 망한 뒤 우주선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착륙하는 법은 아직>, 아무도 듣지 못하는 노래를 부르며 정착할 곳을 찾아 우주를 떠도는 <너의 노래를 듣고 싶어>, 개인 맞춤형 인공지능 에이전트 마음 벗이 당연한 시대에 진짜 딸기가 오는 오후 두 시 트럭을 기다리는 하리 이야기 <소제동에 과일 트럭이 오면 오후 두 시래>
느낌을 말하자면 딱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를 읽을 때와 비슷했다. 소재의 신선함에 감탄했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도 나쁘진 않았는데 특히 <삑, 구식 로봇입니다>와 <소제동에 과일 트럭이 오면 오후 두 시래>이 두 작품은 완성도 면에서도 좋았다. 다만, 나머지 작품들은 착륙하는 법을 아직 못 배운 우주선같았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