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와 크레이크 미친 아담 3부작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 책제목 : 오릭스와 크레이크

◎ 지은이 : 마거릿 애트우드

◎ 옮긴이 : 차은정

◎ 펴낸곳 : 민음사

◎ 2021년 7월 27일, 2판3쇄, 632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표지가 상당히 낯설고 삐딱한 이 책은 처음부터 친절할 생각이 없다. 인간 대부분이 멸종한 뒤 홀로 살아남은 지미('가증스러운 눈사람(히말라야에 산다고 전해지는 설인을 칭하는 티베트어 'metohkangmi'를 직역한 것.)---(중략) 지금은 이름을 짧게 줄였다. 이제는 그저 '눈사람'일 뿐이다. 20쪽)가 크레이크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이들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왜 그리 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중반 이후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저 인내심을 가지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동안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넘나드는 지미를 비틀거리지 않고 잘 따라가야만 한다.

-돼지구리의 장기는 인간 기부자의 개별 세포를 이용해 맞춤 제작되었고, 장기는 필요할 때까지 냉동 보관되었다. (45쪽)

-여자들이 나타날 때마다 눈사람은 깜짝 놀란다. 그들은 가장 짙은 검은색에서 희디흰 색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피부색을 지니고 있고, 키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그들 하나하나는 놀라울 만큼 균형을 갖추었다. 튼튼한 치아와 매끄러운 피부를 가지고 있다. 허리 주변에는 지방이 겹쳐져 있는 법이 없고, 붓기가 있는 부분도 없으며, 허벅지에 울룩불룩한 오렌지색 셀룰라이트도 없다. 체모도 없고, 덤불 같은 부분도 없다. 그들은 수정한 패션 사진 혹은 고가의 운동 프로그램 광고 모델처럼 보인다. (169쪽)

-"닭이야. 닭의 부위들이지. 이것에는 닭 가슴 부위만 있어. 닭 다리만 만들어 내는 것도 있어. 한 성장 단위당 열두 개의 닭 다리가 자라지."

"그런데 머리가 없잖아."

이제 지미는 개념을 파악했다. 어쨌건 그는 다중 장기 생산 돼지와 더불어 성장해 온 터였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쳤다. 그가 유년시절에 보았던 돼지구리는 적어도 온전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345쪽)

돼지와 너구리, 개와 늑대, 너구리와 스컹크를 조합한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합을 가진 생명체가 만들어지고 우리가 그렇게도 만들려고 애쓰는 완벽한 몸을 가진 인간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장기이식을 위해 세포증식이 가능한 동물이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다. 게다가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도 없이 닭가슴살이나 닭다리만 자라는 닭이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꿈꾸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그런 시대에 지미는 살고 있다.

-그를 그렇게 내몬 힘의 일부는 집요함이었다. 분노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불량품들 사이에 끼워 넣어졌으며, 그가 공부하고 있는 것은 정책 결정자들의 위치, 실세들의 위치에서 보자면 구태의연한 시간 낭비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뭐 그렇다면 쓸데없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거다. 그것의 승리자, 방어자, 보존자가 되는 거다. 모든 예술이 전적으로 무익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던가? 지미는 기억해 낼 수 없었지만, 누가 되었든 간에 그 사람은 정말 잘난 사람이었다. (332쪽)

지미는 사회에서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과학보다는 언어 쪽에 관심이 많아 낙오자로 여겨졌지만 그의 유일한 친구인 글렌(크레이크라 불리는)은 정반대로 탁월한 재능을 가진, 누구나 탐내는 인재였다. 그리고 지미가 사랑했던 오릭스 '그들이 처음으로 오릭스를 본 것은 바로 그 사이트에서였다. 그녀는 겨우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여덟 살 정도로 보였다. 당시 그녀가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 그들은 결코 알아낼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오릭스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름이 없었다. 포르노 사이트에 나오는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153쪽 를 크레이크 역시 사랑한다.

크레이크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파라디스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지미를 선택했고 그가 만든 '신인류(크레이크의 아이들)'을 제외한 인간들에게 주브 바이러스를 만들어 살포했는데 그것이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개발한 백신도 없어버린 크레이크는 지미 눈 앞에서 오릭스를 죽이고 그도 지미의 총에 맞아 죽는다. 이렇게 해서 홀로 남은 지미는 연구소 안에 남아 있던 크레이크의 아이들을 데리고 해안가로 이주한 뒤 그들을 위해 이런 신화를 만들어낸다.

크레이크는 해안에 있는 산호로 크레이크의 아이들의 뼈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망고로 그들의 몸을 만들었다. 반면 오릭스의 아이들은 오릭스가 낳은 거대한 알에서 부화했다. 사실 그녀는 두 개의 알을 더 낳았다. 하나는 동물과 새와 물고기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하나는 언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언어로 가득찬 알이 먼저 부화했다. 그때 크레이크의 아이들은 이미 창조된 상태였다. 그들은 배가 고파서 언어를 모두 먹어 치웠다. 두 번째 알이 부화했을 때에는 어떤 언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들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163쪽)

-애트우드는 자신의 디스토피아 소설 속에 묘사된 것들 중 비현실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역사적 전례를 지니고 있거나 현재 진행 중이거나 머지않은 미래에 성취될 개연성이 높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트우드가 『시녀이야기』와 『오릭스와 크레이크』는 공상과학 소설이 아닌 사변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애트우드는 『오릭스와 크레이크』를 집필하기에 앞서 동물 멸종, 생명공학, 기후 변화, 나노기술, 줄기 세포 연구, 노예제도, 비디오 게임, 바이오 테러 등 폭 넓은 분야에 대한 조사를 거쳤다. 이 같은 조사에 바탕을 둔 사변 소설은 역사성이나 지리적 측면에서 모호한 공상 과학 소설에 비해 훨씬 더 현실성과 시사성을 갖는다. (629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지미/눈사람이 보여주는 언어에 대한 천착은 인문학적 가치, 인간 상상력의 가치가 폄하되어 가는 체제에 대한 어설픈 도전이다. 또한 눈사람의 기억 감퇴와 더불어 하나하나 소멸해 가는 단어들은, 위기 상황에 놓인 수많은 희귀 언어의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631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자연주의자 M.T. 캘리와의 인터뷰에서 애트우드는 우리 시대가 처한 독특한 입지를 지적한다. 이전 시대 사람들 역시 오늘날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생물을 멸종시켰고 환경적 재앙을 야기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이전 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그것을 진보라고 맹목적으로 믿었다는 점이다. 반면 오늘날의 우리는 발전과 진보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전망과 위험성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다. 그 앎이 실천으로 나타날 것인가? (632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없어도 불편을 느끼지 않으며- 마치 동물처럼- ) 풀을 먹고 살아가는 신인류는 그를 신처럼 여기며, 크레이크를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대화 상대조차 없는 외로운 지미는 먹을 것도 구해야 하고, 이제는 야생동물이 되어 생명을 위협하는 돼지구리에게도 맞서야한다. 그리고 점점 사라져가는 단어들은 떠올리려 애쓰는 그를 보면서 요즘 대학에서조차 인문학부가 사라질 위협에 처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박식하다. 절망적인 단어. 그가 한때 안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은 모두 무엇이었는가? 그것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254쪽)

-어떤 문명이 먼지와 재로 변했을 때 남게 되는 것은 예술뿐이야. 그림, 언어, 음악. 상상력의 구조물들. 의미는, 다시 말해 인간의 의미는 그것들에 의해 규정되는 거야. 너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해.(287쪽)

마거릿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 중 1편인 <오릭스와 크레이크>는 이렇게 끝이 났다. 그는 과연 어떤 삶을 이어가게 될 것인지. 기다리고 있는 2, 3권의 표지 그림은 여전히 기괴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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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4-29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미가 살고있는 세상이 너무 무섭네요.
맞아요 맞아 우리 사피엔스종이 수많은 멸종을 야기 시켰죠
모르고도 하고 알고도 하고있고...
저도 요즘 읽고 있는 <사피엔스>에 온통 멸종에 대한 글이 가득합니다. 작가들이 하려는 말이 경각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지금이라도 대처하자는 그런 말인거 같아요.

wall612 2023-04-30 11:43   좋아요 1 | 수정 | 삭제 | URL
만약 지미처럼 저 세계에 대화 상대도 없이 홀로 남겨졌다면 어떨지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멸종되고 있는 수많은 동식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