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궁가
-윤제림
죽어서 공동묘지에 가 눕는다면
소리 좋은 이웃 하나 찾아가 눕겠네.
가가호호 주인을 물으며
자리 골라 눕겠네.
뉘 알리. 내, 송만갑씨 북채를 잡을지.
한성권번 춘심이
가야금 병창을 들을지.
‘고고천변일륜홍(皐皐天邊一輪紅)’ 귀를 모으면
생전 처음 뭍에 나온 별주부 모양으로
눈이 부시리.
봉분 위로 봄볕은 늘어지고
무덤을 둘러 붉은 꽃 흐드러진 날,
나이쯤은 진작 잊어버린,
아주 오래된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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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뒤에야 화장을 할 터이므로
내 동네 주민이 누가 될 것인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지금 당장은 아주 조용한 사람들로만 이웃이 되면 좋겠다.
낮에야 활동을 하든 조용히 엎드려있든 상관없지만
밤에 음악을 들을 땐 헤드폰을 사용하고,
걸을 때는 사뿐사뿐,
책장 넘기는 소리만 사락사락 나는 그런 이웃들만
내 곁에 있으면 참 좋겠다.
온갖 소리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 최고의 창문들은
여름내 나를 괴롭혔다.
새벽까지도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음은 물론이고
홍콩느와르 주인공이 되고 싶은 피 끊는 청춘들이
연기는 잊어버리고 속도에만 집착해서 내는 오토바이 굉음과,
술 취해도 집은 잘 찾아온다는 ‘귀소본능’ 이야
그들만의 자랑할 거리인지는 몰라도
크게 소리를 질러야 점수가 나오는 노래방기계에 익숙해져
음정박자도 안 맞는 노래로 내 귀를 마비시키기가 일쑤였으니
더위와 나만 찾아오는 일편단심 모기와 함께 소음들은
여름내 나를 괴롭힌 일등공신들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더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도 이제 슬슬 꼬리가 보인다.
수은주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처럼
돌아보면 시치미 뚝 떼고 딴 곳을 보고 있다가
다시 돌아서면 개미발자국만큼 움직여
눈 밝은 사람이나 알아차릴 만큼 내려가고 있지만
새벽녘에 이불을 끌어당기게 만드는 기분 좋은 서늘함으로
시력 안 좋은 나도 온도차를 느낄 수 있게 해주니
문을 닫고 잠을 청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가을이 되고 다시 봄이 올 때까지는
모두들 좋은 이웃이 될 테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