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도 지지 않고 시 그림이 되다 1
미야자와 겐지 지음, 곽수진 그림, 이지은 옮김 / 언제나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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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바탕으로 그림책, 혹은 에세이집이 탄생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과 욕심 없는 마음으로

결코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음 짓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내 잇속을 따지지 않고

사람들을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가 있다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다면 가서 볏짐을 날라 주고

남족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가서 두려움을 달래주고

북쪽에 다툼이나 소송이 있다면 의미없는 일이니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고

추운 여름이면 걱정하며 걷고

모두에게 바보라 불려도, 칭찬에도 미움에도 휘둘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

서른일곱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훌륭한 작가 미야자와 겐지.

생전엔 단 두 권 ≪주문 많은 요리점≫과 시집인≪봄과 수라≫만 출판되었지만

그뒤 겐지 동생이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수첩을 발견해 많은 유작이 발표되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첼로 켜는 고슈>도 그 수첩에 있었고,

이 시 또한 그가 죽기 2년 전에 써 놓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린 곽수진은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2019 볼로냐 국제도서전 사일런트북 콘테스트 대상,

2020 월드 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 롱리스트 아티스트에 뽑히고

2021 영국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후보에 올랐단다.

(상들은 잘 모르지만 그림을 보니 좋은 작가인 줄은 알겠다. )

그의 그림들과 미야자와 겐지의 시가 너무나 잘 어울려서

읽고 또 앞으로 돌아가 한 번 더 읽고 또 돌아가고..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특히,



이 그림은 너무 좋다.

지칠 때 한 번씩 들여다보면 좋을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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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 -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 60주년 기념 작품집
다비드 칼리 외 19인 지음, 알료샤 블라우 그림, 슈테파니 옌트겐스 엮음, 김경연 옮김 / 사계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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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 다비드 칼리 외 19인 지음, 사계절 펴냄


이 책은 독일 아동청소년문학상 6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 수상자 및 후보자였던 세계 각국 작가들의 작품을 엮어놓은 것이다. 협회장인 주자네 헬레네 베커 박사는 ‘성인 중계자가 없이는 문학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에’모두들 있는 힘을 다한다고 밝혔다. 동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다들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새겨져 있다.’고도 했는데 이 역시 동감이다.

<우리, 그리고 동물> 등 20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이 책은 보물섬과도 같다. 아는 작가라고 해봐야 기껏 페터 헤르틀링, 미리암 프레슬러밖에 없지만 모르는 작가면 또 어떠랴.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된 것이 기쁨이고 이런 뛰어난 작품을 한 책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또한 기쁨이다.

이 작품집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아름다운 동화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누이가 읽어준 책을 누군가가 읽기를 바라서 나무마다 우편함을 매달고 그 안에 책을 넣어둔다는 다비드 칼리의 <우편함을 심은 남자>, 손님을 맞는 태도가 다른 동물을 등장시켜 재미를 주는 톤 텔레헨의 <손님>, 파르동봉봉이라는 사탕가게를 열고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사탕을 나누어주는 호이 씨 이야기를 그린 마르야레나 렘브케의 <파르동 봉봉> 등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많이 투영된 것으로, 감각이 예민한 내가 여섯 번째 감각으로 다른 이의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마을 주변 부랑자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타미 셈-토브의 <나의 여섯 번째 감각> 이나, 난쟁이 거북이인 보일레가 우연한 기회에 그들을 괴롭히던 거대 여왕 라우테를 외계인의 비행선에 태우게 되어 자유와 행복을 찾는다는 이바 프로하스코바의 <보일레와 자연법칙>, 난민 문제를 다룬 로버트 폴 웨스턴의 <분노의 땅>, 제니 롭슨의 <태양은 여전히 거기 있다>, 로세 라게르크란츠의 <나의 벚나무>, 이네스 갈란드의 <켑의 열매>, 페터 헤르틀링의 <폐쇄된 문>, 마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가슴이 먹먹해지는 키르스텐 보이에의 <나, 운이 좋지 않아?> 등이 있다.

세 번째는 아름다운 마음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동화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사랑을 잃어버린 후 작은 사람이 되어 구두 상자 속에 살았다는 유타 리히터의 <한때 난 구두 상자에서 살았다>, 회색 씨와 파랑 부인의 일상 속을 들여다보며 잔잔하게 미소짓게 되는 미리암 프레슬러의 <회색 씨와 파랑 부인>, 죽음을 앞둔 증조할아버지에게 그의 소원대로 백살 기념 뷔페상을 차려주는 손녀의 따뜻한 이야기를 다룬 수잔 크렐러의 <백살> 등이다.

여기 묘사된 것을 마음속에 그려 보려면, 자세히 살펴보고 상상의 힘을 동원해야 한다. 독일의 스무고개 놀이 ’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처럼 말이다.’

엮은이의 말 중에서 (8쪽)

그들의 이야기 속에 들어가 두어 시간을 행복하게 보냈다. 내가 본보고 상상한 것들을 다시 여기 옮기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작정이다. 누구든 그 안에 들어가 자신만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책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집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책들도 세상으로 나가 여행을 해야 한다. 바람에 흩어지는 낟알들처럼. -우편함을 심은 남자 중(29쪽)’이 문장들 때문인데, 내 책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아도 이런 마음은 생기지 않는 걸 보니 나는 아직 멀었다. 조금 더 내 욕심을 채운 뒤에 생각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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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바보 상수리 큰숲 2
이미영 지음, 송효정 그림 / 상수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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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 든 이후로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니 꽤나 오랜 시간 명절을 싫어한 셈이다. 그 싫음의 요건을 충족하게 만들어준 건 당연히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치러야 하는 고단함이 으뜸이고, 두 번째 요인은 그리 모여 앉아 딱히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멍하게 앉아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하는 그 순간이다.

 

 세대별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아무리 달라도 가장 어른이신 아버지, 어머니의 취향에 따라 함께 볼 수 있는 건 명절이면 빼놓지 않고 중계해주던 씨름판! 덩치 큰 남자들이 팬티만 입고 나와서 모래판에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늘 봐도 심심하기 짝이 없는 그 경기를 왜 좋아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엄마 바보>라는 제목이나 표지 그림만 봐서는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 이 책은 그렇게 뜨악하게 씨름판을 바라보는 내 표정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혼녀에다가 애까지 딸린 엄마를 사랑하는 공 기사 아저씨가 씨름을 했던 사람이라는 걸 아는 순간 어린 봄이가 그랬던 것처럼 ‘왜 하필 씨름이야?’ 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났으며, 짤막짤막하게 끊어지는 문장도 괜히 거슬려서 이걸 끝까지 읽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하지만 <미순이>에서 작가가 보여준 ‘울면서 웃기기’ 신공을 기억하는 터라 참고 조금만 더 읽어보기로 했다. 봄이가 사춘기를 겪으며 힘들어하는 걸 알면서도 특별히 이래라저래라 참견하지 않고 그 많은 음식들을 우적우적 먹어대곤 돌아가는 그 특이한 공 기사 아저씨가 은평 구민 체육대회에서 씨름을 할 때 나도 모르게 텔레비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 속으로 빠져들었다. 씨름판을 말로 전달하는 그 순간이 영상보다도 생생하게 다가온 건 독특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봄이가 경수보다 멋진 새로운 남자 친구를 만나고 무작정 싫기만 했던 공 기사 아저씨를 아빠처럼 의지하게 되었을 때는 내가 공 기사 아저씨와 연애를 하는 엄마가 된 것처럼 뿌듯해졌다.

 

 캐릭터를 분명하게 살리는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가슴이 나오지 않아서 고민인 사춘기 소녀 봄이와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 배달 일을 하는 공 기사라는 등장인물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책은 거창한 걸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옆 집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기만 하면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랑’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기만 할 뿐 공 기사처럼 이래라저래라 교훈을 늘어놓지 않는 게 참 좋다. 게다가 점점 늘어가는 이혼 문제와 편부, 편모 아래 자라는 아이들 문제를 어둡게 풀어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똑 같은 생활은 아니지만 모두들 제 나름으로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춘기 청소년들이나 그에 못지않게 사는 게 재미없는 어른들이 한 번쯤 읽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처럼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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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을 전하는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1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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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이 10개였다면 10개 모두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동화를 만났다.

<봉쥬르, 뚜르>에서도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펼쳐 나를 놀라게 하더니

이 책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또다른 매력을 지녀서 반갑고 부럽다.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을 다루면서 선봉에 섰던 전봉준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은 채

열세 살 보부상 아들인 아이를 앞세워 그 많은 이야기를 뭉뚱그려 말하고 있는데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안에 동학농민운동이 다 들어있다.

 

북한산 암자에서 노스님께 받은 서찰을 전라도에 전하러 가는 아버지.

'아주 중요한 서찰이다. 한 사람을 구하고 때로는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는

말씀만을 남기고 수원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에 아이는 서찰을 전하기로 한다.

서찰에는 아이가 모르는 10개 한자가 씌어져 있고 아이는 그 내용을 알기 위해

값을 치러가면서 조심스럽게 두 글자씩 물어보는 영리함을 보인다.

 

북한산 암자 근처 샘에서 마신 물이 발휘한 영험함으로 노래에 약이 깃든 아이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댓가로 잠자리를 제공받거나 옷을 받아가며

조금씩 서찰주인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드디어 서찰주인을 만난 그 자리에서 아이는 그간의 고단함과 아버지 생각에

왈칵 눈물을 흘리는데 나도 주책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역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간 만화로 된 역사책을 권해줬었는데

이렇게 감동을 주는 동화로 만나는 역사이야기가 많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본디 배움이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진짜 제 것이 되는 것이니라.'

한자를 알려주던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면서 두 자에 한 냥씩 가로챌 땐

얄밉기도 했지만 사실 맞는 말이다. 이런 수고로움이라도 있어야 약올라서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법이다. 배움에는 그만큼 정성이 깃들여야 한다는 말과 같다.

재미있는 동화를 읽는 수고 한 번으로 역사를 훤히 알 수 있는데다 감동까지 함께 받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니 영리한 아이들이여, 모두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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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나무 위의 눈동자 동화 보물창고 36
윌로 데이비스 로버츠 지음, 임문성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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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다니는 책을 보고 아이들이 한 마디씩 했다.

"무서워요."

"재미 없을 것 같아요."

"제목이 뭐 그래요?"

어른들은 좀 약은 편이어서 무슨무슨 수상작이거나, 유명 작가가 쓴 책이거나,

알 만한 사람이 추천글을 남기거나, 재미있다고 입소문이 나거나 하면

기꺼이 읽어볼 테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읽어볼 의지를 갖지 않는 이상

이런 책을 잡지는 않는다. 그러니 첫인상으로는 실패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롭이 사는 집과 칼로웨이 부인이 사는 바로 옆집,

그 사이에 교집합처럼 존재하는 체리나무가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숨막히게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큰누나의 결혼식으로 정신이 없는 틈에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는 롭은

자신의 은신처 체리나무에서 엿보게 된 살인사건으로 생명에 위협까지 느끼게 된다.

범인이라고 해봐야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뻔한 인물들인데도

결코 지루하거나 흥미가 떨어지지 않은다는 데 이 책의 매력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루팡이나 셜록 홈즈가 활약하는 추리소설밖에 없어서

어른들이나 느낄 수 있는 많은 감정들을 이해 못하고 대충 넘어간

부분들도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11살짜리 주인공 롭이 범인을 추리해가는 이런 책들이 그때도 있었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추리소설에 빠질 수 있었을 텐데.

요즘을 살고 있는 아이들은 이런 책들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게

축복이라는 걸 알기나 할까?

결핍이 없으면 풍요롭다는 걸 인지할 수 없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롭이 사라졌던 그 짧은 순간에 가족들이 느꼈던 결핍도 비슷할 것 같다.

 

롭과 같은 나이인 4학년 아이들이라면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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