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객의 맛있는 인생>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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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객의 맛있는 인생 - 소소한 맛을 따라 세상을 유랑하는
김용철 글 사진 / 청림출판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이 세상 사람들을 목숨 걸고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과 아무 거나 먹을 거리만 되면 먹는 사람, 적당히 맛을 지니고 있어야 먹는 사람으로 대분류를 한다면 나는 세 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차가 없어 기동성이 떨어지는 탓도 있겠지만 그런 걸 찾아다닐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일들 - 예를 들어 책을 읽거나 공상에 빠지거나 음악을 듣는 등-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하기도 하거니와, 적당히 먹을 만한 음식이면 만족할 줄 아는 덜 떨어진 미각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맛집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을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원천리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는 중이라는 방증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그저 기획회의에서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은 탓일까? 아무튼 그렇다고 해도 관심 없는 이야기에는 가차없이 등을 돌리는 차가운 시청자들임을 감안할 때 역시 음식을 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늦가을 해돋이를 본답시고 밤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갔을 때 일이다. 밤새 잔뜩 오그리고 불편한 좌석에서 잠을 잔 탓에 해돋이는 뒷전이고 삐걱거리는 몸을 데우려고 밥집을 찾아 다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순두부집. 입구에는 '000 방송국 소개 맛집''00신문 소개 맛집'이라는 간판이 요란했다. 웬만하니까 소개도 하고 그러지 않았겠어?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그닥 까다롭지 않은 내 식성에도 짜증이 솟구칠만한 음식이 나왔다. 밥통에 오래 둔 탓에 군둥내가 나는 밥과 멀겋기만 한 순두부, 젓가락이 갈 만한 마땅한 반찬이 없던 밥상이지만 소리지르는 위장을 위하여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악몽같은 순간은 '맛집'이라는 단어와 결부되어 그 뒤부터 맛집이라 쓰인 곳은 일부러 피해다니곤 했기 때문에 사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도 시큰둥한 마음이 들었다. 저자도 지적했듯 요즘 많은 블로거들이 음식사진을 올리고 간단한 설명이나 느낌을 곁들이는 것이 유행인지라 뭐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많이 달랐다. 사진만 덩그러니 올려놓은 사진전이 아니라 시화전에 가깝다. 사진이 먼저가 아니라 글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맛집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주었는데 맛집을 찾아가는 여정도 그렇거니와 음식에 대한 애착이 상당한 작가인 지라 꾸미지 않은 그대로를 보여주는 사진과 오감이 제대로 묻어나는 설명, 개인적인 호불호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글, 전화번호와 주소까지 명시되어 있어 다음에 그곳에 들를 일이 있다면 꼭 가봐야지 하고 수첩에 적어놓은 곳만 해도 무려 10군데나 된다. 맛집 기피증이 있는 나로서는 대단한 발전이라고 하겠다.
우선 가까운 차이나타운에 가서 자장면에다 만두를 먹어 보고, 삼성역 남가스시에서 스시를 한두 개쯤 먹어보고, 구룡포 철규 분식에 가서 찐빵을 , 지난 여름에 가려다 실패한 울진에 가서 대게를, 곡성 능이버섯도 맛봐야지. 간장게장이나 회, 젓갈류들은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먹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그곳에 가게 된다면 친절한 작가의 조언을 따라 먹어볼 생각이다. 여태까지 풍경만 즐기는 여행을 했는데 이젠 맛까지 탐하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작가가 그랬듯 나도 소원해본다. 부디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서 맛이 달라지는 그런 슬픈 일은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