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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사진이나 영화, 혹은 텔레비전 광고에서 보여준 사막은 아름다웠다.
바람이 불면 그 손길이 간지러운 듯 몸을 뒤채 비틀린 허리 곡선을 보여주던 사막.
교태를 부린 그 모래들이 숨 막힐 거라는 상상은 해 본 적이 없다.
스치듯 보는 한 순간 풍경 감상이니 그렇기도 하지만
어린 왕자의 말처럼 사막은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걸
나는 열심히도 믿고 있었다.
뭔가에 대해 잘 모를 땐 남들이 하는 말에 신뢰를 보내기 마련이니까.
그런 상상 속 아름다운 사막이미지가 깨졌다.
완전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지는 않지만 모래를 공통분모로 가지는 이 공간
<모래의 여자> 덕분이다.
길앞잡이에 이끌려 도착한 사구. 그 앞에 동굴처럼 자리 잡은 집들.
다름으로 인해 독특한 풍경들로 눈길을 잡았던 그곳이 모래지옥일 줄은 남자는 몰랐다.
평범한 교사인 그는 공동의 이익에 눈 먼 마을 사람들 계략에 빠져
모래에 집이 파묻히지 않도록 열심히 퍼 올려야 하는 단순노동에 붙잡힌다.
생각 따위는 끼어들 새 없이 기계적으로 모래를 퍼서 담고 올리고 또다시 퍼서 담고 올리고
밤새 일하지만 다음날 또 그 만큼의 모래가 집을 덮치는 그 암담함.
게다가 우산을 펴고 밥을 먹어야 하고, 잘 때조차 얼굴에 수건을 덮어 보호해야 하는
악조건의 주거 공간. 모래 안에 자리 잡은 습기로 조금씩 죽어가는 집.
그런데도 도망갈 생각을 안 하고 그 삶에 만족하고 사는 여자와 동거.
그야말로 숨 막힌다.
하지만 그가 살고 있는 모습이 조금 더 험하다뿐이지 사는 건 다 마찬가지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출근하고 사람들과 간단히 어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세수하고 밥 먹고 자고.
이러는 동안 어떤 목표, 이를테면 그녀처럼 라디오를 갖고 싶다는 목표가 생기면
그걸 위해 힘든 일을 참아내는 식이다.‘목표’가 힘들다는 생각을 잠재우는 것.
감금으로 인해 자유를 빼앗긴 사람이라도 금방 어떤 유희를 찾아내 몰두하는 것으로
처지를 잊으려고 하고 실제로 잊은 듯 보이기도 한다.
화자인 나도 처음에는 탈출을 위해, 나중에는 그가 고안해낸 장치를 관찰하고
성공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느라 힘들다는 것을 잊고 산다.
망각이란 얼마나 고마운지.
자다가 수건이 흘러내려 금방이라도 모래가 눈으로, 코로, 입으로 들어와
기도가 막힐 것 같은 건조함과 푸석거림. 입안에 모래가 가득 고여 몇 번이고
물로 헹궈내도 까끌까끌한 게 남아 있을 것만 같은 묘사.
한 걸음이라도 옮기면 그대로 뜨거운 모래에 델 것만 같은 그 기막힌 묘사와
주인공의 감정이 내게 이입되어 읽는 동안 힘들었다. 정말 수작(秀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