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역사에서 미래로 - 생생한 사진과 깊고 넓은 해석으로 경험하는 고구려 역사 현장 다큐멘터리
윤명철 지음, 윤명도 사진 / 참글세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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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남편은 고구려새입니다."라고 시작하는 시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고구려새"라고 부른다. 얼마나 고구려의 옛땅을 돌아 다녔는지, "날개뼈에 금이 가도 날아다니다가 뚝 부러져버렸습니다. / 기부스통 속에서 날개는 다시 살아났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얼마나 그의 고구려 사랑이 광기에 가까웠으면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그의 아내가 그를 위해서 '고구려새'라는 시를 지었겠는가? 그의 아내로서는 속상할 수도 있지만, 윤명철과 같은 학자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행운이라 생각한다. 고구려에 미쳐서, 고구려 연구에 한평생을 바치고 있는, '고구려새' 윤명철이 말하는 고구려의 역사를 만나보자.
                                        

1.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다.

  이 책은 다른 역사책과 달리 저자의 감상이 많이 묻어난다. 마치 자신이 살았던 아름다운 고향을 기억하며 떠나버린 사람과 퇴락해버린 오늘을 못내 아쉬워하하며 발길을 돌리는 고향떠난 이의 아픔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의 감상은 장군총과 고구려 산성을 보면서 느낀 소감을 표현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고구려 사랑이 남다르기에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남다르다. 그는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국사를 바라보고 있다.

  고구려는 어느 나라를 계승한 나라일까?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부여를 계승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윤명철은 고구려는 원조선과 부여를 계승한 나라라고 말한다. '다물'이라는 고구려말 자체가 원조선의 땅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고구려의 원조선(고조선) 계승의식을 주장하는 윤명철의 주장에는 자못 결기가 느껴진다.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을 '부족국가'에서 출발했다고 국민을 가르쳤던 시대'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원조선의 역사를 삼국시대와 단절해서 서술하는 한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을 서술하고나서, 고조선의 역사적 경험은 깡그리 무시되고, 다시 군장국가에서 연맹왕국으로 연맹왕국을 거쳐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윤명철의 지적은 아쉽게도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고조선과 삼국의 역사를 일맥상통하도록 서술하지 못하고 단절적으로 서술하는 배경에서는, 고조선을 당당한 국가로 인정하지 못하는 고루한 자들의 인식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조선을 실체적 국가로 보고, 한나라와 당당히 맞섰던 강력한 국가로 보면, '재야사학자' 혹은 '유사사학자'라 매도하는 현실에서 어찌 고조선과 삼국의 역사를 누적적으로 발전한 우리역사로 서술하겠는가?  

  그러나 윤명철은 다른다. 그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주몽을 단군의 아들이라 기록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고구려는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임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전률이 느껴졌다. 그는 동천왕 28년조 '왕검선인의 예터'라는 기록을 인용하며 평양의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외교적 중요성을 지적한다. 고구려가 원조선을 계승했다는 그의 주장을 읽어가며, 고구려가 평양성을 중요시하고, 장수왕시기에 평양천도를한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삼국사가기 동천왕 28년조에 편양을 왕검선인의 옛터 라고 서술한 이유를 떠올려 보았다. 이는 삼국사기를 서술한 김부식조차도 고구려의 원조선 계승의식을 모두 없애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장천 1호분 벽화에 신단수 아래의 곰이 그려져있다. 또한 각저총에는 곰과 호랑이가 그려져있기도하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구려인들이 단군신화에 대해서 이미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윤명철!! 그는 우리 역사를 단절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누적적! 발전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고구려를 중심에 둔 역사 인식은 삼국통일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졌다.

 

  "우리 민족은 대륙을 상실하고, 해양에 대한 군사적 정치적 주도권을 일부 빼앗김으로써 동아지중해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중핵조정역할 또한 빼앗겨버렸다. 만주 지역은 우리 민족사에서 멀어졌으며, 우리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거란 선비 말갈들으이 종족들은 그 후에 오히려 우리를 압박하는 존재로 변했다. 한편 일본 열도에서는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들과 신라계도 참여한 '일본'이라는 국가가 670년에 탄생했다. 싸우고 갈라진 형제는 남보다 못한 법이다."313쪽

 

   남한의 많은 학자들이 신라의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평가하기 위해서 당시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삼한일통'이라는 개념도 후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라 주장한다. 삼국이 통일 되었기에 '민족'이라는 개념이 나타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고조선과 삼국을 계승적 관계로 이해하지 않고 단절적으로 이해하는 그들에게는 삼국은 같은 동류의식을 가진 존재로 보기보다는 서로 다른 각각의 국가로 보일 수밖에 없다. 서구의 '민족'이라는 잣대로 우리 역사를 재단하려하니, 우리에게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서구와 동남아시아는 1민족 1국가라는 개념이 근대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한반도라는 비좁은 곳에서 오랜 동안 살아오면서 일찍부터 동류의식이 싹텄다. 우리에게 동류의식과 같은 맹아적 '민족'의식이 없었다면, 과연 외적의 침입에 대해서 자발적으로 '의병'을 일으켰던 역사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무조건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삼국통일을 하고 신라의 영토는 3배로 늘어났는가? 통일전의 신라의 영토와 통일 후의 신라의 영토를 비교하면 신라의 영토는 3배로 늘지 않았다. 백제를 병합하고, 고구려 땅의 일부를 흡수한 것 뿐이다. 한반도 북부와 광활한 만주벌판을 중국에게 내어주고, 그속에 살았던 고구려인도 넘겨주었다. '통일'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삼국의 땅과 백성을 모두 통합했어야했다. 통일이라고 보기에도 부족하며, 그로 인해서 '중핵조정역할'을 비롯한 너무도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싸우고 갈라진 형제는 남보다 못한 법이다."라는 윤명철의 말이 뼈를 때린다.

  고구려를 중심에 둔 역사서술은 발해를 거쳐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진다. 발해와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며, 조선은 고구려에 '반역'한 나라로 평가한다. 이러한 조선의 한계를 깨닫고 고구려를 다시 환생시킨 사람들이 있다. 윤명철은 그들을 '독립군들'이라 지적한다. 독립군을 가르칠 정신교육 교재를 집필하기 위해서, 독립운동가들은 고구려를 재발견하기 시작했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신 단재신채호 선생을 비롯해서, 발해사를 연구한 장도빈 선생은 독립군들의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주목했다. 대종교 또한 고조선을 비롯한 우리역사에 관심을 갖고 일제와 맞서 싸웠다. 우리에게 힘이 필요할때!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그때 고구려는 힘을 주었다. 고구려는 사라진 역사가 아니었다. 우리와 호흡하며, 우리에게 힘이 필요할 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우리곁에 살아 있다.

 

2. 돋보이는 윤명철의 역사관!!

  역사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역사관과 개성없는 서술에 실망할 때가 많다. 그런데 윤명철이 바라보는 역사는 달랐다.

  '동아지중해 중핵 역할'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보통의 학자들이 고구려를 철갑기병을 앞세워 땅을 넓힌 나라라고 바라본다. 육로교통보다 수로교통이 발달한 우리의 역사를 깡그리 잊어버리고, 육지를 중심으로한 역사인식을 하고 있는 학자들이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윤명철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를 육지와 연결시켜 '해륙사관'을 완성했다. 땟목을 타고 고구려가 항해했을 바닷길을 탐험하기도 했다. '해륙사관'은 바다 뿐만 아니라 '강'에도 주목한다. 윤명철은 만주일대를 '수륙적 시스템'으로 바라보았다. 배가 다닐 수 있는 60여개의 강에 주목하며, 육군이 출동할 때, 강상 수군이 강을 이용해서 보급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고구려는 모든 강들을 자국이 계획하고 건설할 교통망 속에 편재했다 주장한다. 국내성을 비롯해서, 평양성, 한성은 항구도시라 지적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라는 사료의 틀에 갖히지 않고, 실제 고구려의 땅을 밟으며 고구려의 역사를 찾으려 노력한 그였기에 남들이 보지 못한 고구려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남다른 그의 눈은 여타 학자들이 애써 무시하는 기록에도 주목한다. 5대 모본왕 49년 북평, 어양, 상곡, 태원 습격기사를 그는 부정하지 않는다. 이덕일의 지적에 의하면 강단 사학자들은 고구려 본기의 이 기록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측 기록에도 나오는 이러한 기록을 믿지 않는 강단사학자들을 이덕일은 '식민사학자'라 말하며 비판한다. 그런데, 윤명철은 이덕일의 비판을 빗겨가며, '기마군단' 즉 기병을 중심으로한 진출이라는 측면에서 해당 기록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걸어다니는 농경민족의 시각에서, 면을 중심으로 한 지배에 익숙한 기존사학자들의 해석에 구애받지 않았다. 고구려는 점과 선의 지배를 했으며, 빠른 기마전술을 구사했던 나라이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를 벗어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조선 세종 시기에 4군 6진을 개척하면서도 너무도 고난을 겪어야했는데, 4군 6진보다 몇십배는 많은 영토를 광개토태왕시기 단시일 내에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면을 지배하기 보다는 선과 점을 중심으로 지배체제를 구축했던 고구려의 점령방식 때문이 아닐까?

  연개소문을 당신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상당수의 학자들이 연개소문을 독재자로 평가한다. 그의 대당 강경책으로 인해서 고구려가 멸망했다고 주장한다. 윤명철의 평가는 어떠할까?

 

  "시대의 흐름과 고구려인들의 자유로운 기질이 연개소문이라는 인물과 그가 지향하는 적극적인 항전을 택한 것이다." 294쪽

 

  고구려 멸망의 원인을 연개소문 개인에게 돌리는 단순한 역사인식에서 벗어난 그의 시각이 다시한번 돋보인다. 연개소문이 죽인 영류왕은 고구려 1급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지도 '봉역도'를 당에게 바쳤으며, 전승기념물인 '경관'을 허물어뜨리고, 당나라 진대덕이 고구려를 정탐하도록 했다. 수나라 대군을 물리친 고건무의 모습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고구려 중심의 세계관과 중국중심의 세계관의 대결에서 고구려가 고개를 숙인다고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삼국이 하나로 통일 되지 못하고, 분열되어 외부의 적을 끌어들인 역사를 뼈아프게 생각한다. 만약 삼국통일이 이뤄졌더라면, 고구려는 당나라에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통일된 중국 대륙의 당나라와 분열된 한반도의 고구려의 싸움에서 당나라가 유리한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이러한 현실은 오늘날에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음을 윤명철은 지적하고 있다.

  윤명철!! 그는 우리의 눈으로 우리역사를 바라보는 몇안되는 역사학자이다. 윤명철은 중국의 시각! 서양의 시각! 미국의 시각! 심지어는 일본의 시각!으로 우리역사를 바라보는 자들과 차원이 다른 학자이다. 그는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자취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기존의 강단 사학자들이 그들의 독립운동을 인정하지만,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역사연구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던 것과 너무도 차이가 난다. 우리 역사학계의 태두인 두계 이병도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그를 '진정한 역사학자는 이러해야하는구나'라는 가르침을 주신 분이라고 찬양하는 학자들과 너무도 차이가 난다.

 

3. 윤명철이 던져준 화두들!!

  '지식인이란 당연한 것에 시비거는 자'라는 말이 있다. 윤명철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지나쳤던 일들에 질문을 던진다. 그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삼국사기'에는 적혀있지 않은데,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등장한 것은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증거라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다. 대학시절 서영수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노교수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먼 훗날, 누군가 의도적으로 내다버린 글귀를 찾아내 우리 역사 속에 살려낸 것이다." 302쪽

 

  이 글귀를 읽으며, '열하일기', '동국통감'에 적혀있는 글귀를 믿지 않은 이유가 과연 정당하지를 생각했다. 역사책을 편찬하면서 기존의 모든 서적들을 살펴보지는 못한다. 모든 비석들을 살펴보지는 못한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모든 역사책을 보았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생각이었다. 김부식이 당시에 있었던 삼국의 기록 모두를 '삼국사기'에 담지도 않았다. 윤명철의 지적은 나의 안일한 기존 관념에 비수를 꽃았다.

  "한국사 교과서에는 '광개토태왕'이라 하지 않고, 왜? '광개토대왕'이라 하지요?" 어느 학생의 질문이었다. 광개토태왕릉비에는 분명, '태왕'이라 적혀있지 않은가? 국사편찬 위원회에 질문을 했더니,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왕명을 적고 있습니다."라는 답년이 왔다. '삼국사기'보다 더 가치가 있고 정확한 광개토태왕에 대한 기록이 '광개토태왕릉비'아니던가? 그렇다면 '광개토태왕'이라 교과서를 서술해야하지 않을까? 윤명철은 '광개토대왕'이라 적지 않고 '광개토태왕'이라 적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고구려 부흥운동을 주도한 왕족 '고안승'을 '안승'이라고 서술한 현행교과서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윤명철은 '고안승'을 '안승'이라고 기록한 것은 '성을 뺀 하칭으로 기록'한 것이라 한탄한다. 지금도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고안승'을 '안승'이라 적고 있다. 교사의 설명이 없다면, 안승의 성이 '안'씨로 착각하기에 딱 좋다. 일부 EBS 강사는 안승이 백제 땅에서 부흥운동을 일으켰다며 신기하다는 듯이 설명하기도 한다. 고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에 투항한 사실을 알지 못하니, 엉뚱한 설명을 하는 일도 벌어진다.

  공자의 '정명'사상을 말하지 않더라도, 역사에서 정확한 명칭을 사용해야한다는 상식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광개토태왕'과 '고안승'에게 어울리는 정확한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지 물어본다.

  윤명철은 고구려의 후예인 고선지와 이정기에 대해서도 눈길을 돌린다. 헝가리 출신의 역사학자 오렐 스타인이 '카르타고의 '한니발',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뛰어 넘는 위대한 군인으로 고선지를 평가했다. 탈라스 전투의 영웅 '고선지'를 기억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강한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망국의 후예로서 누명을 쓰고 죽는 그에게 동정의 눈길을 던진다. 윤명철은 질문을 던진다. "그의 삶속에서 고구려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 대학에서 동양사 개론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고선지는 중국인이다."라고 단정하는 노교수의 말은 매정한 느낌마져 들지만,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는 '현종에게 충성'을 간직한채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덕일의 '장군과 제왕'이라는 책이 더오른다. 이덕일은 고선지와 이정기를 묶에서 '장군과 제왕'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다. 1권에서는 고선지를 2권에서는 이정기 일가를 다뤘다. 고선지가 당 현종의 장군으로서 억울한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면, 이정기를 고구려의 후예로서 당 조정과 맞서며 독립왕국을 건설했다. 이덕일의 탁월한 필력이 빛난 책이었다. 그렇다면, 고선지와 이정기는 자신이 고구려인이라고 생각했을까? 윤명철의 지적대로 그들은 고구려와 옷을 얼마나 입어보았을까? 한국계 미국인 골퍼가 LPGA에서 우승한 것을 보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열광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를 시키겠다고 언론에 밝혔다. 한국인 2세 3세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고선지에 대해서 씁쓸한 생각이든다. 고선지 보다는 이정기 일가에게서 고구려인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4. 동의하지 못하는 것들

  윤명철이라는 탁월한 역사가의 책을 읽으면서 못내 아쉬운 점이 몇개 발견됐다. 그중에는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몇가지를 살펴보자.

  윤명철은 장군총을 동명왕릉이라 주장한다. 장군총은 장수왕릉일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현실에서 윤명철의 주장은 다소 쌩뚱맞았다. 그는 평양천도 후에, 기존 기득권세력이 강력하게 자리잡은 국내성에 장수왕이 자신의 무덤을 만들리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단군신화와 주몽신화의 논리가 담긴 건축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윤명철의 주장에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가장 왕벽하고, 태왕릉보다 정교하게 건설된 장군총은 동명왕릉일 수 없다고 본다. 동명왕릉은 태왕릉보다 앞서 건설되었다고 본다면, 태왕릉 보다 건립시기가 늦을 것으로 추청되는 장군총은 동명왕릉일리 없다. 태왕릉 이후에 건설된 큰 규모의 무덤은 장수왕릉일 수밖에 없다. 그가 평양으로 천도하였지만, 이미 살아 있을때, 능을 건설했을 것으로 본다면, 죽어서 국내성에 묻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더욱이 국내성 세력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그는 국내성에 묻혀야했을 것이다.

  백제와 신라의 무덤에는 벽화가 없을까? 물론 신라에는 벽화가 없다. 그러나 백제의 무덤에는 벽화가 있었다. 공주 송산리 제6호분에는 사신도가 있으며,  능신리 동하총 석실분에는 사신도와 연화와 구름이 그려져있다. 비록 많이 훼손되어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백제와 신라 조차도 무덤안에 그림을 그려 놓지는 않았다.(242쪽)"는 윤명철의 지적을 명백한 오류이다.

   신라와 발해는 서로 대립만했을까? 윤명철은 "비록 유민들의 피눈물 바다에서 발해라는 새나라가 태어났으나, 그들은 신라와는 영원히 적대적인 관계를 가졌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발해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 신라와 발해는 교류를 했다고 적혀있다. 그 대표적인 근거가 '신라도'이다. 발해와 신라 사이에 길이 있었다는 사실은 두나라가 교류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어찌 옥의 티가 없는 책이 있겠는가? 윤명철의 주장에 일부는 동의하지 않고, 일부는 오류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역사관은 나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역사는 기억하는자의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중국의 동북공정이 맹위를 떨치고 있을때,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 후, 과연 우리는 고구려에 대해서 얼마나 더 알고 있을까? 한때의 관심이 일시에 지나가고 다시 고구려를 잊어버리지 않았는지 걱정이된다. 이러한 시기에 윤명철의 책을 읽는 것은 고구려를 다시 기억하는 길이된다. 기억하자! 잊지 말자! 영화 '암살'에서 영화속 주인공들은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암살'의 주인공들이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했던 애원은 고구려인들이 우리에게 하는 절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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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징조를 읽고 대처하는 45가지 방법 - 누군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
모리 모토사다 지음, 채수환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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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흉악범죄 뉴스가 TV에서 흘러나온다. 나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안전이 걱정된다. 범죄의 조짐을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다면, 큰불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범죄의 징조를 읽고 대처하는 45가지 방법'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을 읽으면, 범죄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과연 나의 기대에 부흥했을까?

 

1. 범죄자의 표적이 되지 마라!

  범죄자가 먹이감을 선택하는데 7초면 충분하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범죄자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행동과 마음가짐을 조심하라한다. 나도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으며, 시야를 확보하며 리듬감 있게 걸으라한다. 우발적인 범죄도 많지만, 범죄자는 주도면밀히 범죄를 준비한다. 범죄자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나도 범죄자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나의 일상에 대비해야겠다.

 

2. 범죄자의 수법은 마술사와 같다.

  마술사는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볼꺼리와 미녀를 무대에 등장시킨다.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마술을 성공시킨다. 범죄자도 마찬가지이다. 삿대질을 한다면, 삿대질하는 손만바라보면, 범죄자가하는 범죄행위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시야를 확보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이 있는 집에 돌아가겠다는 신념을 잃지 말아야한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거리를 확보하고, 가족을 생각하자. 나에게는 살아야할 이유가 있으니까....

 

3. 아쉬운점.

  이 책은 나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일으킬 수 있는 범죄자에게 대처하는 방법이 적혀있다. 그러나, 나가 기대했던 사기를 비롯한 금융범죄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주택 침입범죄를 예방하는 방법과 각종 사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이 적혀있지 않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낯선 범죄자를 만났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문답식으로 적혀있어 이해하기 쉬운 책이다. 특히 4지 선다형 객관신 문제를 자녀와 함께 묻고 답하면서 놀이하듯 공부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아주 작고 얇은 책이라 부담도 없다. 그러나, 일본인 모리 모토사다가 일본의 현실에 맞추어 쓰다보니, 2%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현실에 맞는 책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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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 - 무늬와 소재를 통해 살펴보는 색다른 역사 문화탐험
박영수 지음 / 내일아침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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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많은 그림과 유물들을 보면서, '왜? 이동물이 여기에 있을까?'라는 물음이 생기곤했다. 그때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보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문화재 속에 그려진 동물들을 일목 요연하게 설명해 놓은 책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번해왔다. 문화재 속 동물들의 상징을 알 수 있다면, 그들과 대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차에 '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라는 책을 펼쳐들었다. 그렇다면,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동물에 새겨진 조상의 염원

  연인과 선물을 주고 받으며 우리는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는다. 우리 조상들은 연인에게 선물을 주는 마음으로, 일상의 장식과 그림에 자신의 소망을 담았다. 여성용 경대에를 비롯해서 노리개에 박쥐 무늬를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산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았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일상의 생활용품에서 궁중 장식무늬까지 동물 무늬를 장식했다. 다양한 동물들 하나하나에는 다양한 의미와 소망을 담았다. 섬세한 무늬의 용, 박쥐, 학 등의 동물들의 무늬를 그려 넣은 도공, 화사, 장인들의 노력을 생각하며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소원들을 상상하게 한다.

  조상들은 수많은 동물들을 섬세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그 특징을 파악해서 동물 문양을 세겨넣었다. 특정 동물의 문양을 그려 넣으면 그 동물과 같은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절대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꿩을 그려 넣어 꿩의 용맹함을 닮고 싶었고, 부부금슬 좋은 기러기를 그려 넣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지길 기원했다. 그뿐인가?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가져와, 그와 같은 일이 현실세계에서 다시 반복되길 기원했다. 문자도 '효'에 잉어를 그려 넣어 효자가 많아지길 기원했고,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는 개를 그려 넣으며, 충직해지기를 기원했다. 작은 생활도구에서 웅대한 궁궐건축에 의미와 뜻을 담는 조상의 모습이 개성없는 콘크리트 아파트가 즐비한 현대인의 생활공간과 차이를 드러낸다.

 

2. 동물에 대한 관념 변화

  작년 '미투'운동이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그때, 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구지가에 나오는 거북 머리는 남자의 성기를 뜻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가 부적절한 성적 표현을 수업시간에 했다고 징계를 받았다는 기사가 뉴스를 장식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거북이과 관련된 설명을 유심히 보았다.

 

  "여기에는 남성 우월적 사고가 숨어 있으니 거북 머리 모양의 구지봉은 남성 성기를 상징하며 여섯 아이 모두 남자라는데서 그 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71쪽)

 

  징계를 받은 국어교사의 수업내용은 정확히 근거가 있는 내용이었다. 사실 조상이 남긴 유물 유적 중에는 '성'과 관련 있는 상징들이 많이 있다. 기자석 처럼 남자의 성기를 모델로 돌을 쪼아 많들어 놓고, 다산을 기원하기도 했다. 심지어 안양의 삼막사에는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다. 남근석과 여근석을 만지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기도 했다. 이를 외설로 보아야할까? 고려 가요를 남녀 상렬지사로 내몰고, 고려가요 대다수를 없애버린 조선시대 성리학자의 우매함을 우리는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조상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것이 성추행일 수있을까? 사회는 개방되고, 대중문화 속에서 성적 표현이 지나칠 정도로 개방화된 현대사회에서, 성에 대한 언급 자체를 금기시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박쥐!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드라큘라백작을 떠올리며 몸서리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의 생각은 달랐다. 오복과 장수, 다산의 상징물이 박쥐였다. 추한 동물이 아니라, 복을 가져다주는 영물로 받아들여졌기에 신선도에도 박쥐가 등장한다. 신선로 손잡이와 여성용 경대에 박쥐가 장식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서운 동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기 싫은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 박영수는 '서양에서 들어온 이솝 우화와 드라큘라의 영향으로 박쥐를 오복의 상징보다는 불길한 동물로 여기는 까닭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리고는 '우리 옛 문화가 점점 더 멀어지는 세상이 안타깝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서양의 패권은 단순히 정치와 경제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관념에도 영향을 미치며 서구의 관념을 우리의 머릿속에 이식했다. 용에 대한 이미지 마져 바꿔 놓고 있지 않은가? 공룡을 닮은 서양의 용이 뱀처럼 생긴 우리의 용을 밀어 냈다. 어린이들이 많이보는 '뽀로로'의 드라곤은 더이상 뱀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서구의 입맛에 맞춰 만들어진 드라곤의 모습을 보면서 조상의 생각을 베어내고 서구의 관념을 이식하는 현실이 씁쓸해진다.

 

3. 동의하지 않아요.

  동물의 특성과 동물이름의 어원까지 섬세하게 조사해서 읽기 쉽게 서술한 저자 박영수의 노력에 감탄한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듯이, 박영수의 글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 몇가지를 살펴보자.

  삼족오는 동이족의 것일까? 저자 김영수는 삼족오를 동이족의 것, 용은 중국의 것이라 규정한다. 삼족오는 봉황의 시초가 되었는데, 봉황이 용보다 낮은 단계의 영물로 인식한 이유는 '동이족이 중국의 한족에게 밀리면서 마치 용보다 낮은 단계의 영물인 것 처럼 여겨진 것'이라 진단한다. 삼족오는 신석기 시대 중국의 양사오 문화, 한국의 고구려 고분 벽화, 일본의 건국 신화 등 동아시아 고대 문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상의 새이다. 한나라 벽화에도 등장하는 삼족오를 동이족의 것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저자가 삼족오를 동이족의 것으로 단정한 근거가 궁금하다.

  몇해전에 '천마도'를 '기린도'로 바꿔 불러야한다는 주장이 학계에 발표되었다. '천마도' 속의 천마를 적외선 촬영해서 자세히보면, 천마의 머리에 뿔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유사한 주장을 이 책에 소개된 '신라 도제 기마 인물상' 설명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말 이마의 양쪽 귀 사이에 뿔이 튀어나와 있다. 말은 원래 뿔 없는 동물이므로, 이 외뿔은 상상 동물인 해치의 상징을 요점만 따운 셈이다."(91쪽)

 

  저자 박영수의 주장데로 '말 이마의 양쪽 귀 사이'의 튀어나온 것은 뿔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KBS 역사 스페셜에서 천마도 속 동물이 말인지 기린인지를 다룬적이 있다. 북방 유목민족은 말머리의 털을 묶는 습성이 있다. 천마도 속의 뿔로 보이는 것은 뿔이 아니라 말의 털을 묶은 것이다. 이는 '신라 도제 기마 인물상' 속의 말에게도 적용된다. 물을 다루는 북방 유목민족의 습성을 이해한다면 '뿔'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청자 상감 운학문 술병'이라는 표현도 동의할 수 없는 표현이다. 정식명칭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靑磁象嵌雲鶴文梅甁)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한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선생이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던가? 문화재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과 유물이라 하더라도 그 의미를 모른다면, 아무 감흥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를 읽고, 그림 속과 유물 속의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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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의 언어 - 촌철살인 이낙연에게 내공을 묻다
유종민 지음 / 타래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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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국회 대정부질문이 진행되고 나서 이낙연 총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야당국회의원들의 예의 없으면서도 조롱섞인 질문을 유연한 화술로 빗겨가간다. 심지어는 할말을 잃은 야당 국회의원들이 질문을 하다말고 "총리들어가세요."라고 말하며 항복한다. 이낙연! 그의 화술을 배우고 싶어졌다. 그의 촌철살인 내공을 배우고 싶었다. 나의 눈에 '총리의 언어'가 드러왔다. 이 책을 읽으면 이낙연 총리의 탁월한 화술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이 책은 이낙연 총리의 화술을 온전히 알려줄 수 있을까?

 

1. 중언부언은 이제 그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거슬렸던 것은 '중언부언'이었다. 읽었던 이야기를 또 읽어야한다는 것은 술주정꾼의 말을 듣는 것과 같았다. 술취한 아버지께서 자고 있는 나를 깨워 자신의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는 그것이 너무도 싫었다. 아버지의 술주정은 언제 끝날지 몰랐다. 어린시절, 술마시는 아버지가 싫었다. 농촌의 어른들은 너무도 술을 좋아했다. 힘든 농삿일을 술로 풀어버리는 모습이 과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총리의 언어'에는 어렸을 때, 술주정을 들어야했던 나의 괴로움을 다시 떠올릴 정도로 했던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었다. 그중 몇가지를 소개해보자. 이낙연 총리의 아들은 젊어서 뇌수술을 받아야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천주교 세례를 받는다. 이 이야기는 한번으로 족하다. 그런데 이것이 두번 이상 반복되어 서술되었다. 이낙연의 좌우명인 '근청원경(近聽遠見)'도 책에서 여러번 반복되었다. 열린 우리당 입당을 하지 않고 민주당에 남은 이유도 어머니의 전화 때문이라는 일화도 여러차례 반복되었다. 전남도지사 시절 별명이 '이주사'인 것도 만찬가지이다. '이낙연의 낮은 목소리', '농업은 죽지 않는다.'라는 책이 대변인실, 지방의원들에게 참고자료로 활용된다는 내용도 중복, 사복되고 있다. 이밖에도 셀수 없이 많은 일화들이 반복된다. 일화가 반복될 수록, 이 책에서 느껴지는 술주정꾼의 느낌도 더해졌다.

  단순히 중복, 삼복, 그 이상의 이야기가 반복된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라는 속담이 어느나라 것인지 아는가? 79쪽에는 중국 속담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121쪽에는 일본속담으로 적혀있다. 같은 저자가 쓴 책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이었다.

  "그는 계속 고사하다 2000년 16WW대 3선땐 3개가 됐고 4선땐 4개가 됐다."라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이부분을 읽으면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인터넷 글쓰기도 아닌데 독자가 알아볼 수 없는 글들을 아무런 설명없이 쓴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부족한 점들이 책속서 반복될까?  이낙연 총리의 화술이 인끼를 얻자, 이를 빨리 책으로 써야한다는 조바심이 만들어낸 촌극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복된 부분을 삭제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정제해서 보다 맛깔나는 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2. 인간 이낙연을 만나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예순을 넘기시면서부터 음식이 짜졌습니다. 어떤 때는 쓴맛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어머니께서도 곧 아시게 됐습니다. 한번은 저희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음식이 내가 먹어봐도 맛이 이상하다. 너희들도 멋없으면 먹지 마라.' 그 말슴을 하시는 순간의 어머니 얼굴은, 제가 본 어머니 얼굴 가운데서 가자 ㅇ외로운 얼굴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추억>, '큰아들 낙연이의 추억'중에서-

 

  이낙연이 쓴 '어머니의 추억'중 일부분은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나이든 노모를 생각하는 이낙연의 인간적 애틋함이 느껴졌다. 곧이어 나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몇일전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으며, 김치가 너무 짜다는 사실에 놀랐다. 고혈압이 있으신 어머니인데, 음식이 짜지고 있다. 건강진단에 혈압 조절이 되지 않는다는 의사의 소견이 적혀있었다. 음식이 짜진다는 것은, 혀의 '미뢰'라는 음식맛을 느끼는 세포가 죽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짠맛을 느끼지 못하니, 짠맛을 느끼기 위해서 소금을 더 넣을 수밖에 없다. 공자께서 말씀하지 않았던가! '부모의 나이는 알지 않으면 아니된다. 한편으로는 (오래 살아계신 것을)기뻐하고, 한편으로는 (부모가 나이들었음을) 두려워해야한다 (子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세월이 덧없이 지나감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3. 이낙연은 승천할 수 있을까?

  TV여론조사에서 이낙연 총리는 여권의 강력한 대선주자로 자리메김을 하고 있다. 이 책에 나와있는 정보를 근거로 추리해보자. 

  이낙연 총리는 '현장형 리더'라고 할 수 있다.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리더로서, 전남 도지사시절 그의 별명이 '이주사'였다. 주사는 6급 공무원이다. 그정도로 열심히 도전에 전념하고, 현장을 속속들이 찾아갔다. '내부자'라는 케이블 프로에서는 '밑에있는 사람들은 힘들어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휴일없이 일을 했다. 유능하면서 부지러한 그는 차기 대권 주자로서 매력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프로이센군의 격언이 생각나다. '유능하면서 게으른 사람은 탁월한 지도자 이다. 유능하면서  부지런한사람은 참모로 제격이다. 무능하면서 게으른 사람은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다. 무능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은 조직에 위해를 가하는 사람이다. 반드시 제거해야한다.' 이낙연 총리는 이중에서 탁월한 참모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잘 보좌하면서 국정의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 그의 부지런하면서도 꼼꼼한 문재인 대통령이 놓치기 쉬운 일들을 잘챙기며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유능한 참모일뿐 유능한 '대통령'은 될 수 없을까? 그것은 그의 손이 달렸다. 그가 새로운 대권후보로 진화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부하를 믿고 부하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기다려주는 유능하면서도 게으른 리더의 모습을 갖춘다면 그는 여의주를 얻어 승천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을 고수한다면, 그는 유능한 참모일 뿐이다.

  이낙연 총리가 유능한 '대통령'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 책 곳곳에 보인다. 몇가지 예를 살펴보자. 이 책에서 '섞어번개팅'이 여러 차례 소개되어 있다. 부처간 벽을 허물기 위해서 남녀, 부서, 지위고하를 뛰어 넘어 치킨집에서 만나는 그의 모습에서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의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았다. 학문이 융합되고, 지식이 새롭게 창조되는 시대에 부처간의 칸막이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도전을 감당할 수 없다. 이 벾을 허무는 일들을 그는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전남도지사 마지막날! 그는 팽목항을 방문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서 자신의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주면서 "총리가 돼도 이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을테니 언제든 전화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참다운 리더는 권력을 누리기 보다는 자신에게 권력을 준, 시민을 섬기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낙연은 그것을 갖췄다. 물론, 이낙연이 총리가 된 후, 유가족들이 이낙연 총리에게 전화를 했는지, 많약 했다면 이낙연 총리가 어떻게 응대했는지가 궁금하다.

 

 

  책을 읽으며, 중언부언하는 내용에 심한 불편함을 느꼈다. 리더로서의 이낙연의 화술의 비법을 얻고자 했던 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결어'를 읽으면서 저자 유종민에게 깜짝 놀랐다. 저자는 이낙연 총리의 '100원 택시' 정책을 이어받아 '100원 특강'을 하고자 했다. 최소인원 50명 이상일때 언제든지 불러주면 '총리의 언어'를 주제로 강의를 하겠단다. 그것도 1인당 100원이 아니라, 통틀어 100원에 강의를 한다고 한다.!! 이낙연 총리의 인품과 화술에 감화된 저자 유종민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을 한권내서 책의 인쇄보다는 강의료에 더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에서 유종민 저자의 이러한 포부는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이 중언 부언된 부분을 깔끔히 덜어내고 새롭게 출판된다면,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주제로 책을 읽고, 저자 유종민의 강의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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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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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니를 뽑기 위해서 치과 수술대에 누웠다. 전기톱 소리가 나의 귓가에서 울렸다. '내가 재채기를 하면 저 전기톱이 나의 입을 헤집어 놓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나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왼쪽 윗니와 아랫니를 빼고, 의사가 물었다. "나머지 두개도 하실거에요?" 내가 너무 떨었나보다. 그런데, 나는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일 후, 두려워하는 몸을 봐주지 않고, 나의 이성은 냉정하게 나머지 두개의 사랑니를 빼버렸다. 사랑니를 뽑는 경험은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때, 나의 머릿속에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도 사랑니를 뽑는 것이 이렇게 힘든데, 첨단 의료기기가 없었던 옛날 조상들은 어떻게 질병에 대처했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동내 축제에서 도서교환전에 나갔다가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에 이전에 내가 품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이 있을 것 같았다.

 

1. 까마득히 먼 옛날! 의료술의 민낯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선사시대 사람들이 현대인들보다 한가로운 삶을 살았다고 적혀있다. 문명의 발전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더욱 혹사시키고 있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읽으며, 스스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어버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문명의 발전이 인간을 불행하게하는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는 선사시대 인간의 평균나이는 15살 정도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죽음을 옆에 두고 살았다. 몇백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류의 평균나이는 40세였다. 여성의 평균 연령은 남자보다 더 낮았다. 출산을 하면서 많은 여성이 죽어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더러운 물질을 약으로 사용했다. 악마를 쫒아내기 위해서는 더러운 물질들이 특효약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러한 비극적인 모습은 잉카유적에서도 발견된다. 두개골에 구명이 뚫려있으며, 일부의 두개골은 뚫린 구멍이 아물기도 했다. 지금은 종영된 '호김심 천국'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는 뇌수술을 했다며, 잉카의 의료기술에 감탄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것은 뇌수술을 했다기 보다는 '악마를 몰아내기 위한 외과 수술'로 보아야한다고 사토 겐타로는 주장한다. 같은 사실을 의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보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서 다른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인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 어디엔가 존재한다고, 존재했었다고 믿길 원한다. 우리 현실을 비판하면서 북유럽을 이상향으로 말하기도하며, 미국을 이상향으로 말하기도한다. 그러나 북유럽과 미국도, 심지어는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많은 내부의 모순이 잠재하고 있다. 완벽한 이상향은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우리 머릿속의 이상향을 되돌아갈 수 없는 선사시대로 설정했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비판했다. 우리의 삶은 모순들로 둘러싸여있다. 천국은 어디에도 없다. 있다면, 우리의 관념속에 존재한다. 현실의 고통을 잊고, 희망을 찾아 내달리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엔가 이상향이 존재한다고, 존재했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이상향을 설정하는 행동이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동력일 때는 존재가치가 있다. 그러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피난처라면, 차라리 그러한 이상향은 부셔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2. 말라리아에 얽힌 아픈 추억

  '말라리아'라는 병명을 들었을 때, 열대지방에만 존재하는 병이기에 내가 걸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대 복무중에 갑자기 오한과 발열이 났다. 체온이 40도가 넘어갔다. 잠시 발작을 하더니, 이내 괜찬아졌다. 아픈 이유를 돌팔이 의사들은 알지 못했다. 결국 잦은 오한과 발열이 의심스러워서 정밀 검사를 받았고, 결국 말라리아 판정을 받았다. 군대생활을 병원에서 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병실에 갖혀 살면서 병원의 잔디밭을 내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했다. 몇평안되는 병실이 엄청난 감옥으로 다가왔다.

  '3장 인류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 말리리아 특효약, 퀴닌'을 읽으며, 말라리아의 위험성을 새롭게 알았다. 열대지방에서만 발생하는 질병으로, 약만 먹으면 쉽게 났는 병으로 알았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말라리아는 일찍이 소현세자를 죽이기도 했으며, 알렉산더 대왕도 말라리아로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말라리아는 열대지방에서만 발병하지 않는다. 캐나다나 핀란드 처럼 추운 지역에서도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더욱이 키넨 구조를 참고로 합성한 약물은 쉽게 내성이 생기는 무서운 병이다. 세계 3대 질병 중에 하나이기도하며, 아직은 인류가 쉽게 정복할 수 없다. 질병앞에 자만하지 말자! 말라리아의 고통을 몸소 경험했던 나에게는 외쳐본다.

 

3. 생명이 먼저인가? 돈이 먼저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자본(돈)'이다. 돈을 위해서 사기를 치고, 각종 범죄까지 서슴치 않는 세상이다. 돈에 속고 돈에 우는 세상이다. 이러한 잔혹한 이야기가 생명을 다루는 의학분야에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스러운 모습은 의학분야에서도 에외가 아니었다.

  19세기 이전까지만해도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살지 못한 이유를 아는가? 이유는 '산욕열'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이것이 위생 상태가 나빳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제멜바이스가 주장했고, 실증적으로 이를 입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의사들은 산모의 죽음이 위생상태가 나빴기 때문이라는 제멜바이스의 연구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사 자신의 부주의로 산모를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제멜바이스의 상사였던 클라인교수는 제멜바이스를 빈대학 종합병원에서 내쫓는다. 결국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제멜바이스는 정신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다. 산욕열을 예방하고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근대적인 위생환경을 보급할 기회를 야만적인 의사들이 거부해버렸다. 한 위대한 의사는 정신병에 걸려 쓸쓸히 죽어가야했다. 생명보다. 정의보다. 자신의 밥그릇을 위대하게 생각하는 그들에 의해서 제멜바이스는 죽어갔다. 그런데, 한국에는 제2의 제멜바이스가 없을까? 용기있는 내부 고발가 탄압받는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제멜바이스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꿔본다.

  약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만들까? 돈을 벌기 위해서 만들까? 아마도 둘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최대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옳은 일인가? 최대한 많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생명 모두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돈을 포기하고 생명을 살릴 것을 요구한다면 제약회사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제약회사 자체가 문을 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돈과 생명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사상 최초 에이즈 치료제 개발자는 미쓰야 박사이다. 그런데 버로스 웰컴사는 미쓰야 박사의 특허권을 낚아채 가버렸으며, 신약 값을 1년에 1만 달러로 책정했다. 가난한 사람은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많은 사람들이 치료약은 있으나 치료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비도덕적인 일도 불사하며, 터무니 없는 약값을 책정하여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제약회사의 모습을 보면서 환멸을 느낀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미쓰야 박사는 더 나은 신약을 개발하여 적절한 가격에 세상에 내놓았다. 미쓰야 박사는 에이즈에 걸리까봐 에이즈 치료제 개발 자체를 꺼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인류를 위해서 치료제 개발에 자신의 열정을 바쳤다. 그리고 혼자서 세가지나되는 에이즈 치료제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치료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하기도 했다. "에이즈 치료제 개발은 제약 기업에 주어진 사회적 책무로, 돈벌이를 생각하지 않고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라고 발하는 연구자들이 있기에 우리 삶은 살만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돈만으로는 살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4. 위험한 약품, 마취제

  뉴스에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의료사고가 종종 보도된다. 마취제는 안전할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은 환상이었다. 마취제를 만들기 위해서 일본의 하나오카 세슈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기도 했다. 쓰센산에 중독되어 어머니는 죽었으며, 아내는 실명했다. 그정도로 위험한 약제였다. 한편으로는 어머니와 아내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할 정도로 일본 여성의 지위는 낮았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는 이유는 일본 여성의 지위가 한국보다 낮기 때문이다. 부인이 남편을 "주인님(ご主人)"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문화이기에 자신의 부인을 생체실험의 도구로 삼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마취제는 지금도 위험한 약품으로 전문의가 다뤄야한다. 아직도 마취의 원리를 풀어내지 못했다고 하니, 마취제를 쉽게 생각했던 나의 오만이 한심하기가지했다. 수만건의 마취가 행해지지만 마취의 원리조차도 모른고 있다. 마취제를 가볍게 생각하는 순간, 의료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5. 준비된 자에게만 행운의 여신은 미소짓는다.

  페니실린이라는 약을 어디에서 추출한 것인지 안는가? 맞다. 푸른 곰팡이이다. 그런데, 플레밍이 연구소의 동료에게 푸른곰팡이가든 샬레를 보여주었으나 관심을 갖는 연구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푸른곰팡이의 가치를 알아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푸른곰팡이의 항균성과 그 값어치를 알아볼 수 있었던 플레밍이기에 그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어쩌면 플레밍 이전에 수많은 연구자가 푸른곰팡이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푸른 곰팡이의 가치를 알아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준비가 안되었기에 그 가치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리조팀발견이라는 디딤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물속의 살균효과를 알게된 플레밍은 이를 학회에 발표하지만, 특별한 해가 없는 몇몇 세균만 죽이는 리조팀은 약품으로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약품으로 상용화 가치가 없는 리조팀 발견은 푸른곰팡이를 알아볼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쓸모없어 보이는 발견이 커다란 발견의 디딤돌이 된 것이다. 리조팀은 큰 발견을 하기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준비하며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키우지 않는다면, 행운의 여신을 알아 볼수 없다. 그래, 실력을 키우며 준비하자. 그럴때만이 행운의 여신을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약들을 먹고 산다. 감기약부터 진통제, 각종 영양제를 먹으며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 우리가 먹는 일상의 약들을 개발하기 위해서 수 많은 과학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도전을 했다. 그러한 도전은 헛되지 않고 혁명적 변화를 만들었다. 선사시대 평균연령이 15살에 불과했던 인류는 이제 평균연령이 70세를 훌쩍 넘어가고 있다. 해서는 안되는 연구를 해서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는 과학자들이 영화속에서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속의 과학자들은 피나는 연구를 통해서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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