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 - 무늬와 소재를 통해 살펴보는 색다른 역사 문화탐험
박영수 지음 / 내일아침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수많은 그림과 유물들을 보면서, '왜? 이동물이 여기에 있을까?'라는 물음이 생기곤했다. 그때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보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문화재 속에 그려진 동물들을 일목 요연하게 설명해 놓은 책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번해왔다. 문화재 속 동물들의 상징을 알 수 있다면, 그들과 대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차에 '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라는 책을 펼쳐들었다. 그렇다면,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동물에 새겨진 조상의 염원

  연인과 선물을 주고 받으며 우리는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는다. 우리 조상들은 연인에게 선물을 주는 마음으로, 일상의 장식과 그림에 자신의 소망을 담았다. 여성용 경대에를 비롯해서 노리개에 박쥐 무늬를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산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았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일상의 생활용품에서 궁중 장식무늬까지 동물 무늬를 장식했다. 다양한 동물들 하나하나에는 다양한 의미와 소망을 담았다. 섬세한 무늬의 용, 박쥐, 학 등의 동물들의 무늬를 그려 넣은 도공, 화사, 장인들의 노력을 생각하며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소원들을 상상하게 한다.

  조상들은 수많은 동물들을 섬세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그 특징을 파악해서 동물 문양을 세겨넣었다. 특정 동물의 문양을 그려 넣으면 그 동물과 같은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절대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꿩을 그려 넣어 꿩의 용맹함을 닮고 싶었고, 부부금슬 좋은 기러기를 그려 넣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지길 기원했다. 그뿐인가?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가져와, 그와 같은 일이 현실세계에서 다시 반복되길 기원했다. 문자도 '효'에 잉어를 그려 넣어 효자가 많아지길 기원했고,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는 개를 그려 넣으며, 충직해지기를 기원했다. 작은 생활도구에서 웅대한 궁궐건축에 의미와 뜻을 담는 조상의 모습이 개성없는 콘크리트 아파트가 즐비한 현대인의 생활공간과 차이를 드러낸다.

 

2. 동물에 대한 관념 변화

  작년 '미투'운동이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그때, 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구지가에 나오는 거북 머리는 남자의 성기를 뜻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가 부적절한 성적 표현을 수업시간에 했다고 징계를 받았다는 기사가 뉴스를 장식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거북이과 관련된 설명을 유심히 보았다.

 

  "여기에는 남성 우월적 사고가 숨어 있으니 거북 머리 모양의 구지봉은 남성 성기를 상징하며 여섯 아이 모두 남자라는데서 그 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71쪽)

 

  징계를 받은 국어교사의 수업내용은 정확히 근거가 있는 내용이었다. 사실 조상이 남긴 유물 유적 중에는 '성'과 관련 있는 상징들이 많이 있다. 기자석 처럼 남자의 성기를 모델로 돌을 쪼아 많들어 놓고, 다산을 기원하기도 했다. 심지어 안양의 삼막사에는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다. 남근석과 여근석을 만지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기도 했다. 이를 외설로 보아야할까? 고려 가요를 남녀 상렬지사로 내몰고, 고려가요 대다수를 없애버린 조선시대 성리학자의 우매함을 우리는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조상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것이 성추행일 수있을까? 사회는 개방되고, 대중문화 속에서 성적 표현이 지나칠 정도로 개방화된 현대사회에서, 성에 대한 언급 자체를 금기시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박쥐!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드라큘라백작을 떠올리며 몸서리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의 생각은 달랐다. 오복과 장수, 다산의 상징물이 박쥐였다. 추한 동물이 아니라, 복을 가져다주는 영물로 받아들여졌기에 신선도에도 박쥐가 등장한다. 신선로 손잡이와 여성용 경대에 박쥐가 장식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서운 동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기 싫은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 박영수는 '서양에서 들어온 이솝 우화와 드라큘라의 영향으로 박쥐를 오복의 상징보다는 불길한 동물로 여기는 까닭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리고는 '우리 옛 문화가 점점 더 멀어지는 세상이 안타깝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서양의 패권은 단순히 정치와 경제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관념에도 영향을 미치며 서구의 관념을 우리의 머릿속에 이식했다. 용에 대한 이미지 마져 바꿔 놓고 있지 않은가? 공룡을 닮은 서양의 용이 뱀처럼 생긴 우리의 용을 밀어 냈다. 어린이들이 많이보는 '뽀로로'의 드라곤은 더이상 뱀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서구의 입맛에 맞춰 만들어진 드라곤의 모습을 보면서 조상의 생각을 베어내고 서구의 관념을 이식하는 현실이 씁쓸해진다.

 

3. 동의하지 않아요.

  동물의 특성과 동물이름의 어원까지 섬세하게 조사해서 읽기 쉽게 서술한 저자 박영수의 노력에 감탄한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듯이, 박영수의 글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 몇가지를 살펴보자.

  삼족오는 동이족의 것일까? 저자 김영수는 삼족오를 동이족의 것, 용은 중국의 것이라 규정한다. 삼족오는 봉황의 시초가 되었는데, 봉황이 용보다 낮은 단계의 영물로 인식한 이유는 '동이족이 중국의 한족에게 밀리면서 마치 용보다 낮은 단계의 영물인 것 처럼 여겨진 것'이라 진단한다. 삼족오는 신석기 시대 중국의 양사오 문화, 한국의 고구려 고분 벽화, 일본의 건국 신화 등 동아시아 고대 문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상의 새이다. 한나라 벽화에도 등장하는 삼족오를 동이족의 것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저자가 삼족오를 동이족의 것으로 단정한 근거가 궁금하다.

  몇해전에 '천마도'를 '기린도'로 바꿔 불러야한다는 주장이 학계에 발표되었다. '천마도' 속의 천마를 적외선 촬영해서 자세히보면, 천마의 머리에 뿔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유사한 주장을 이 책에 소개된 '신라 도제 기마 인물상' 설명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말 이마의 양쪽 귀 사이에 뿔이 튀어나와 있다. 말은 원래 뿔 없는 동물이므로, 이 외뿔은 상상 동물인 해치의 상징을 요점만 따운 셈이다."(91쪽)

 

  저자 박영수의 주장데로 '말 이마의 양쪽 귀 사이'의 튀어나온 것은 뿔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KBS 역사 스페셜에서 천마도 속 동물이 말인지 기린인지를 다룬적이 있다. 북방 유목민족은 말머리의 털을 묶는 습성이 있다. 천마도 속의 뿔로 보이는 것은 뿔이 아니라 말의 털을 묶은 것이다. 이는 '신라 도제 기마 인물상' 속의 말에게도 적용된다. 물을 다루는 북방 유목민족의 습성을 이해한다면 '뿔'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청자 상감 운학문 술병'이라는 표현도 동의할 수 없는 표현이다. 정식명칭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靑磁象嵌雲鶴文梅甁)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한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선생이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던가? 문화재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과 유물이라 하더라도 그 의미를 모른다면, 아무 감흥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를 읽고, 그림 속과 유물 속의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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