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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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니를 뽑기 위해서 치과 수술대에 누웠다. 전기톱 소리가 나의 귓가에서 울렸다. '내가 재채기를 하면 저 전기톱이 나의 입을 헤집어 놓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나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왼쪽 윗니와 아랫니를 빼고, 의사가 물었다. "나머지 두개도 하실거에요?" 내가 너무 떨었나보다. 그런데, 나는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일 후, 두려워하는 몸을 봐주지 않고, 나의 이성은 냉정하게 나머지 두개의 사랑니를 빼버렸다. 사랑니를 뽑는 경험은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때, 나의 머릿속에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도 사랑니를 뽑는 것이 이렇게 힘든데, 첨단 의료기기가 없었던 옛날 조상들은 어떻게 질병에 대처했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동내 축제에서 도서교환전에 나갔다가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에 이전에 내가 품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이 있을 것 같았다.

 

1. 까마득히 먼 옛날! 의료술의 민낯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선사시대 사람들이 현대인들보다 한가로운 삶을 살았다고 적혀있다. 문명의 발전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더욱 혹사시키고 있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읽으며, 스스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어버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문명의 발전이 인간을 불행하게하는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는 선사시대 인간의 평균나이는 15살 정도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죽음을 옆에 두고 살았다. 몇백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류의 평균나이는 40세였다. 여성의 평균 연령은 남자보다 더 낮았다. 출산을 하면서 많은 여성이 죽어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더러운 물질을 약으로 사용했다. 악마를 쫒아내기 위해서는 더러운 물질들이 특효약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러한 비극적인 모습은 잉카유적에서도 발견된다. 두개골에 구명이 뚫려있으며, 일부의 두개골은 뚫린 구멍이 아물기도 했다. 지금은 종영된 '호김심 천국'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는 뇌수술을 했다며, 잉카의 의료기술에 감탄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것은 뇌수술을 했다기 보다는 '악마를 몰아내기 위한 외과 수술'로 보아야한다고 사토 겐타로는 주장한다. 같은 사실을 의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보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서 다른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인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 어디엔가 존재한다고, 존재했었다고 믿길 원한다. 우리 현실을 비판하면서 북유럽을 이상향으로 말하기도하며, 미국을 이상향으로 말하기도한다. 그러나 북유럽과 미국도, 심지어는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많은 내부의 모순이 잠재하고 있다. 완벽한 이상향은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우리 머릿속의 이상향을 되돌아갈 수 없는 선사시대로 설정했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비판했다. 우리의 삶은 모순들로 둘러싸여있다. 천국은 어디에도 없다. 있다면, 우리의 관념속에 존재한다. 현실의 고통을 잊고, 희망을 찾아 내달리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엔가 이상향이 존재한다고, 존재했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이상향을 설정하는 행동이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동력일 때는 존재가치가 있다. 그러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피난처라면, 차라리 그러한 이상향은 부셔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2. 말라리아에 얽힌 아픈 추억

  '말라리아'라는 병명을 들었을 때, 열대지방에만 존재하는 병이기에 내가 걸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대 복무중에 갑자기 오한과 발열이 났다. 체온이 40도가 넘어갔다. 잠시 발작을 하더니, 이내 괜찬아졌다. 아픈 이유를 돌팔이 의사들은 알지 못했다. 결국 잦은 오한과 발열이 의심스러워서 정밀 검사를 받았고, 결국 말라리아 판정을 받았다. 군대생활을 병원에서 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병실에 갖혀 살면서 병원의 잔디밭을 내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했다. 몇평안되는 병실이 엄청난 감옥으로 다가왔다.

  '3장 인류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 말리리아 특효약, 퀴닌'을 읽으며, 말라리아의 위험성을 새롭게 알았다. 열대지방에서만 발생하는 질병으로, 약만 먹으면 쉽게 났는 병으로 알았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말라리아는 일찍이 소현세자를 죽이기도 했으며, 알렉산더 대왕도 말라리아로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말라리아는 열대지방에서만 발병하지 않는다. 캐나다나 핀란드 처럼 추운 지역에서도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더욱이 키넨 구조를 참고로 합성한 약물은 쉽게 내성이 생기는 무서운 병이다. 세계 3대 질병 중에 하나이기도하며, 아직은 인류가 쉽게 정복할 수 없다. 질병앞에 자만하지 말자! 말라리아의 고통을 몸소 경험했던 나에게는 외쳐본다.

 

3. 생명이 먼저인가? 돈이 먼저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자본(돈)'이다. 돈을 위해서 사기를 치고, 각종 범죄까지 서슴치 않는 세상이다. 돈에 속고 돈에 우는 세상이다. 이러한 잔혹한 이야기가 생명을 다루는 의학분야에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스러운 모습은 의학분야에서도 에외가 아니었다.

  19세기 이전까지만해도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살지 못한 이유를 아는가? 이유는 '산욕열'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이것이 위생 상태가 나빳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제멜바이스가 주장했고, 실증적으로 이를 입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의사들은 산모의 죽음이 위생상태가 나빴기 때문이라는 제멜바이스의 연구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사 자신의 부주의로 산모를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제멜바이스의 상사였던 클라인교수는 제멜바이스를 빈대학 종합병원에서 내쫓는다. 결국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제멜바이스는 정신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다. 산욕열을 예방하고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근대적인 위생환경을 보급할 기회를 야만적인 의사들이 거부해버렸다. 한 위대한 의사는 정신병에 걸려 쓸쓸히 죽어가야했다. 생명보다. 정의보다. 자신의 밥그릇을 위대하게 생각하는 그들에 의해서 제멜바이스는 죽어갔다. 그런데, 한국에는 제2의 제멜바이스가 없을까? 용기있는 내부 고발가 탄압받는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제멜바이스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꿔본다.

  약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만들까? 돈을 벌기 위해서 만들까? 아마도 둘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최대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옳은 일인가? 최대한 많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생명 모두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돈을 포기하고 생명을 살릴 것을 요구한다면 제약회사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제약회사 자체가 문을 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돈과 생명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사상 최초 에이즈 치료제 개발자는 미쓰야 박사이다. 그런데 버로스 웰컴사는 미쓰야 박사의 특허권을 낚아채 가버렸으며, 신약 값을 1년에 1만 달러로 책정했다. 가난한 사람은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많은 사람들이 치료약은 있으나 치료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비도덕적인 일도 불사하며, 터무니 없는 약값을 책정하여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제약회사의 모습을 보면서 환멸을 느낀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미쓰야 박사는 더 나은 신약을 개발하여 적절한 가격에 세상에 내놓았다. 미쓰야 박사는 에이즈에 걸리까봐 에이즈 치료제 개발 자체를 꺼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인류를 위해서 치료제 개발에 자신의 열정을 바쳤다. 그리고 혼자서 세가지나되는 에이즈 치료제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치료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하기도 했다. "에이즈 치료제 개발은 제약 기업에 주어진 사회적 책무로, 돈벌이를 생각하지 않고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라고 발하는 연구자들이 있기에 우리 삶은 살만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돈만으로는 살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4. 위험한 약품, 마취제

  뉴스에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의료사고가 종종 보도된다. 마취제는 안전할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은 환상이었다. 마취제를 만들기 위해서 일본의 하나오카 세슈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기도 했다. 쓰센산에 중독되어 어머니는 죽었으며, 아내는 실명했다. 그정도로 위험한 약제였다. 한편으로는 어머니와 아내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할 정도로 일본 여성의 지위는 낮았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는 이유는 일본 여성의 지위가 한국보다 낮기 때문이다. 부인이 남편을 "주인님(ご主人)"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문화이기에 자신의 부인을 생체실험의 도구로 삼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마취제는 지금도 위험한 약품으로 전문의가 다뤄야한다. 아직도 마취의 원리를 풀어내지 못했다고 하니, 마취제를 쉽게 생각했던 나의 오만이 한심하기가지했다. 수만건의 마취가 행해지지만 마취의 원리조차도 모른고 있다. 마취제를 가볍게 생각하는 순간, 의료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5. 준비된 자에게만 행운의 여신은 미소짓는다.

  페니실린이라는 약을 어디에서 추출한 것인지 안는가? 맞다. 푸른 곰팡이이다. 그런데, 플레밍이 연구소의 동료에게 푸른곰팡이가든 샬레를 보여주었으나 관심을 갖는 연구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푸른곰팡이의 가치를 알아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푸른곰팡이의 항균성과 그 값어치를 알아볼 수 있었던 플레밍이기에 그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어쩌면 플레밍 이전에 수많은 연구자가 푸른곰팡이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푸른 곰팡이의 가치를 알아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준비가 안되었기에 그 가치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리조팀발견이라는 디딤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물속의 살균효과를 알게된 플레밍은 이를 학회에 발표하지만, 특별한 해가 없는 몇몇 세균만 죽이는 리조팀은 약품으로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약품으로 상용화 가치가 없는 리조팀 발견은 푸른곰팡이를 알아볼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쓸모없어 보이는 발견이 커다란 발견의 디딤돌이 된 것이다. 리조팀은 큰 발견을 하기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준비하며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키우지 않는다면, 행운의 여신을 알아 볼수 없다. 그래, 실력을 키우며 준비하자. 그럴때만이 행운의 여신을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약들을 먹고 산다. 감기약부터 진통제, 각종 영양제를 먹으며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 우리가 먹는 일상의 약들을 개발하기 위해서 수 많은 과학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도전을 했다. 그러한 도전은 헛되지 않고 혁명적 변화를 만들었다. 선사시대 평균연령이 15살에 불과했던 인류는 이제 평균연령이 70세를 훌쩍 넘어가고 있다. 해서는 안되는 연구를 해서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는 과학자들이 영화속에서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속의 과학자들은 피나는 연구를 통해서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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