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건강실록 - 역사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는
고대원 외 지음 / 트로이목마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는 종합학문이다.'라는 말을 대학 선배에게 들었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치학, 경제학을 비롯해서 다양한 분야의 방대한 지식이 필요함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치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고, 경제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의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함을 깨닫은 책이 있다. 이덕일의 '조선왕 독살사건'이 바로 그 문제작이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더 이상 역사학 만으로는 진실에 다가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조성왕조 건강실록'을 꺼내들었다. '조선왕조 건강실록'은 우리에게 역사를 어떻게 달리보는 방법을 제공해줄까?

 

1. 이덕일의 '조선왕 독살 사건'에 대적하다.

  조선시대 전공 학자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책이 있다. 바로 이덕일의 '조선왕 독살 사건'이라는 두권짜리 책이다. 조선왕조사를 전공한 학자들의 강연에서 "어떤 학자는 조선의 왕들 모두가 독살된 것처럼 쓴 책이 있다."라고 비꼬곤했다. 마치, 현대사를 전공한 학자들이 브르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발발과 기원'이라는 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모습을 이덕일의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럼, 이덕일의 '조선왕 독살사건'과 '조선왕조 건강실록'의 차이점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두책은 대비점이 많다. 이덕일은 '조선왕조 실록'을 근거로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 반면, '조선왕조 건강실록'은 '조선왕조 실록'보다 자세하고, 보다 진실에 한걸음 더 다가간 '승정원 일기'에 근거해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덕일이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다양한 사료들을 근거로 자신만의 논리를 전개했다면, 방성해 원장을 비롯한 9명의 한의학자분들은 한의학이라는 의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보다 정확한 '승정원 일기'에 근거하고 있으며, 한의학에 전문가라는 점에서 '조선왕조 건강실록'은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탁월한 필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역사관을 전개하는 이덕일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덕일이 '조선왕 독살 사건'에서 독살당한 인물로 지목한 '소현세자'와 '효종'은 독살당하지 않았다고 황지혜와 박주영 한의사는 주장한다. 특히, 소현세자의 경우, 소현세자의 병명은 학질이 아니라, '혈액순환 장애로 인한 혈관염'이 그의 병이라 주장한다. 소현세자는 이형익에 의해서 독살된 것이 아니라, '혈액순환 장애로 인한 혈관염'으로 죽은 것이라 한다. 타국에서 고대 인질 생활에서 얻은 고통과 질명이 '혈액순환 쟁애로 인한 혈관염이라는 병을 가져왔고 그를 저 세상으로 끌고 갔다는 것이다. 효종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덕일은 효종이 앞으로 10년은 더 살 수 있다고 스스로 말했으며, 관우가 휘두르는 청룡언월도를 휘두른 강건한 왕이 신가귀의 침을 맞고 출혈과다로 쇼크사한 것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박주영 한의사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효종은 건강한 왕이 아니었음을 승정원일기를 근거로 말한다. 당료병을 앓고 있었던 효종은 혈관이 얇아 졌으며, 출혈이 있을 경우, 피가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이를 알지 못하고 신가귀가 침으로 종기를 다스렸고, '당뇨병성 미세혈관병증'으로 인한 출혈과다로 효종은 죽었다. 일종의 의료사고였다.

  이 책에는 한편의 글을 쓰고 그 근거가 되는 다양한 참고문헌이 적혀있다. 이미 승정원일기를 근거로 조선시대 왕들의 사인을 밝혀보려는 다양한 논문이 있었다는 점에 무척놀라웠다. 하나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어야한다. 만약, 이덕일의 책만 보았다면, 조선의 왕들이 모두 독살되었다는 믿음을 유지하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승정원 일기'라는 새로운 자료를 근거로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눈으로 바라본 역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그래서 역사는 종합학문이다.  

 

2. 산자를 위한 '예', 죽은자를 위한 '예'

  만인지상의 지존의 자리에서 천하를 호령하는 존재, 조선의 왕!! 그러나 그러한 왕들도 한낫 병마와 싸우는 나약한 왕들이었다. 조선후기 왕들중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많은 여인들을 울렸고, 많은 신하들의 목숨을 거두어 들였던 '숙종'도 병마와 싸우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숙종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 해수병, 위장병, 통풍 등등 참으로 많은 병들이 숙종을 괴롭혔다. 말년에는 앞이 보이지 않아,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기 까지 했다. 그의 아버지 현종 또한 병약한 왕으로 집권시기 내내 병마와 싸워야했다. 어디 그뿐이랴! 숙종의 아들 영조는 자신의 대머리에 검은 머리카락이 돋아난다고 기뻐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들도 병마 앞에서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조선후기 왕들이 유독 병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 최고의 의료혜택을 받으며, 좋은 음식을 먹은 그들이 이렇게 병약하다는 사실은 너무도 아이러니하다. 나는 그 이유를 성리학에서 찾고 싶다. 성리학국가인 조선은 조선의 왕들에게 무예보다는 학문을 공부하고 토론하도록 강요했다. 조선전기 세종이 강조하던 '강무'를 조선후기에는 실시하지 않았다. '강무'는 일종의 군사훈련이다. 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서, 사냥을 겸한 군사훈련을 했다. 그러나 성리학으로 무장한 조선의 신하들은 '강무'를 행하는 조선의 왕들을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강무'로 인해서 백성이 괴롭고, 왕이 공부는 하지 않고 사냥이나 한다고 매도했다. 그결과, 조선의 왕들은 운동부족에 시달렸다. 이러한 운동부족은 인조 이전, 평균 자셔의 수가 12명에서 인조이후, 6명으로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 책의 저자 하동림은 조선의 출산율 저하원인을 운동부족하나만을 꼽지 않는다. 왕비의 출산력 저하, 유교적 종법질서가 굳어지면서 처첩관념이 심화되었고, 이에 따라서 후궁수가 감소, 제례기간이 길어짐으로써, 왕의 금욕기간이 길어짐, 잦은 출산으로 왕비의 건강이 악화되고 이에 따라 자녀의 건강이 나빠져 유아사망률이 높어졌다. 등등.... 다양한 원인을 조선 후기 출산율 저하원인으로 꼽는다. 그중에서 유교적 종법질서가 굳어지면서 처첩관념이 심화되어 후궁수가 감소한 것과, 제례 기간에 왕의 금욕 기간이 길어진 것은 성리학이 교조화되면서 나타난 조선후기만의 모습이다. 또한, 조선의 왕들 중에서 문종과 인종의 경우, 부모의 상례를 극진히 치르다가 병이 악화되었다. 공자도 즐겁데 음란하지 말며, 슬퍼하지만,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樂而不淫 哀而不傷)라고 하지 않았던가! 인간을 위한 예절이 오히려 산사람을 죽게 만드는 모습이 조선 후기에 많이 보인다. 조선 후기 성리학은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학문이 아니었다.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예는 죽은자를 위한 예가 되어서 조선 왕실을 몰락의 길로 이끌고 있었다.

 

3. 인조와 영조,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다.

  무능한 인물 혹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인물이 지존의 자리에 있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물론, 우리는 그러한 일을 이미 겪었다. 503호에 계신 그분뿐만 아니라, 조선의 왕들중에서도 무능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임금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휘두른 칼날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안겨주었다.

  조선의 왕들을 통털어 가장 용렬한 왕을 꼽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인조를 꼽는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했지만, 그는 조선을 이끌 능력도 없었으며,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조선의 앞길을 밝힐 혜안도 없었다. 저자 김동율 한의사는 인조를 '정신질환자'라고 진단한다. 단순히 인조를 비판하기 위해서 한말이 아니다. 삼전도의 치욕을 겪고 나서, 그는 '심신증'을 앓고 있었다. 피해망상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그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지존의 자리에 앉아 수많은 백성들이 여진족의 말밝굽 아래 신음하게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다. 자신의 아들 소현세자의 가족을 죽여버렸다. 못난 자가, 지존의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들뿐만 아니라, 그의 가장 가까운 가족들도 상처를 입어야했다. 더더욱 황당했던 것은 50대의 나이에 10대의 아내를 맞이하고 나서는 첫날밤만 보내고 다시는 '장렬왕후'를 찾지 않았다. '장렬왕후'는 얼마나 큰 고통과 외로움에 시달렸을까?

  능력은 있었지만,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왕 때문에 가족이 상처를 받은 경우도 있다. 바로 '영조'이다. 영조도 자신의 부인을 첫날밤에 소박 놓았다. 영조가 정성왕후에게 "손이 참 곱다."며 칭찬을 했는데, 정성왕후가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그렇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이유였다. 무술이의 아들이 자신을 비하했다고 영조는 오해한 것이다. 무술이의 딸이라는 컴플랙스에 휩싸여 평생 주변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를 받았던 영조였다. 결국, 정성왕후는 66세의 나이로 '검은 피를 한 요강이나 토하면서'사망했다. 이를 지켜본 혜경궁 홍씨는 "어려서부터 쌓인 것이 다 나온 것 같다."고 말한다. 한평생 가슴 속 응어리가 피로 쏟아져나온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영조는 자신의 아들을 직접 죽였다. 영조!! 영조와 사도세자의 불행은 잘못된 자식사랑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의 표지에 "영조가 사도세자를 미워했던 이유는 뚱뚱해서였다.!"라고 적혀있다. 글쎄??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이 뚱뚱해도 예뻐보인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미워한 이유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자신의 '아바타'가 되어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무인 기질이 강한 사도세자의 모습을 보면서, 문인 기질이 강하지 않은 것에 화를 냈다. 자식의 긍정적인 부분을 긍정적으로 보았더라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조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들상을 만들고 아들이 그 틀에 맞지 않다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스카이케슬'은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다. 조선의 왕조차도 자신의 아들이 자신이 만든 틀대로 자라지 않자, 이를 못견뎌했다. 참새에게 독수리가 되라고 요구하는 못난 영조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길 바란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인간이 강력한 권력을 갖는다면, 너무도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안겨준다. 영조와 인조는 우리에게 권력자가 이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반면교사이다.

 

5. 만약, 그랬다면, 장희빈은 살았을까?

  "이때 나라면 어떤 선택을 내리겠는가? 장희빈처럼 다시 옛날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 무리한 방법을 써서 결국 파멸에 이를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힘없는 궁녀보다는 훨씬 높은 정1품 희빈의 자리에 만족하면서 남은 인생을 자식과 함께 편안히 살 것인가?"- 160쪽 (방성혜)

 

  한의사이자, 여인으로서 장희빈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묻는 글귀가 애절하다. 장희빈이 정1품의 자리에 만족하였더라면, 비참하게 죽지 않고 비교적 안락한 삶을 살아갔을 것이라는 방성혜 원장의 주장에 과연 동의할 수 있었을까? 한의사로서 탁월한 한의학적 지식으로 역사를 분석했지만, 역사학과 권력의 냉혹함을 바라보기에는 한계가 있어보인다. 권력은 냉혹하다. 숙종은 인현왕후와 장희빈에 휘둘린 것이 아니라, 왕권강화를 위해서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이용한 것이다. 인현왕후의 뒤에는 서인이 있었고, 장희빈 뒤에는 남인이 있었다. 남인이 몰락한 후, 더 이상 그녀를 지켜줄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들도 자신의 목숨과 세자라는 지위를 지키기에도 힘이 부족했다. 이때, 숙종은 왕권강화를 위해서 장희빈의 목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인현왕후를 죽이기 위해서 무녀를 궁궐에 끌어들였다는 사실은 하나의 핑게꺼리에 지나지 않았다. 왕비를 저주한 일은 조선 전기에도 있었던 일이다. 왕비를 저주했다고 목숨까지 거두는 것은 왕권강화를 위한 숙종의 강력한 의지가 없었더라면 이뤄질 수 없었던 일이다. 더욱이 그녀는 세자의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장희빈의 선택을 묻기 전에, 그녀가 처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역사적 판단을 올바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숙종도 노론세력도 장희빈이 살아있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권력은 피도 눈물도 없다.

 

  비아그라가 개발되고 나서 한의사들이 힘들어졌다는 말이 있다. 양의학과 중의학이 하나로 융합된 중국에 비해서, 한국에는 한의학과 양의학이 서로 대립하며 평행선을 긋고 있다. 한의학에 대한 신뢰를 갖지 않는 사람도 꾀있다. 특히 양의사들은 한의학을 미신 취급을 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한의학을 무시하는 의대생을 보기도 했다.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되자, 동의보감에 있는 '투명인간이 되는 법'을 소개하며, 동의보감은 무신을 모아놓은 종합 서적인 것처럼 비난히기도 했다. 그러나, 한의학은 양의학이 못하는 일을 해내기도 했다. 개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를 뽑아낼 수 있었던 것도 한의학 덕분이었다. 독일에서는 21세기 신약을 한의학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 너무 멀리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 아기를 잘낳게 해주는 한약이 있다는 말에 무척 놀랐다.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는 달생산, 불수산, 궁귀탕이 바로 그것이다. 궁중에서 왕족들이 효험을 보았던 한약들을 우리는 무지로 인해서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산업 분야들이 기본적인 수준에 머물러있다면 단 한 분야, 의학은 예외이다. 중국 의학의 기본을 잘 적용하면서도 중국보다 훨씬 우수한 수준에 도달했다. 중국의 북경에서도 꼬레의 의학서적이 인쇄되는데 꼬레에서도 가장 유명한 '동의보감'이다."

 

  1874년 '꼬레의 교회 역사'에 기록한 달레 신분의 지적을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입 매일 철학 - 일상의 무기가 되어줄 20가지 생각 도구들
황진규 지음 / 지식너머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싶다면, 철학책을 읽어라! 한해 한해 나이를 먹으면서 철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현실과는 상관 없는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만하는 학문이 '철학'이라 생각했던 적이있다. 그러나 세월은 나에게 나이를 주었고, 더 많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당연한 일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삶을 살아가면서 느릿느릿 깨달았다. 거북이보다 느리게 깨닫는 나에게 철학책은 어려운 책이었다. 도올 김용옥, 강신주 라는 철학자를 만나면서 철학을 쉽게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의 책을 읽으며 인생의 지혜를 깨닫는 속도가 조금은 나아졌다. 그리고 팟캐스트 '철학 한입(철학흥신소)'를 통해서, 황진규라는 철학자를 만났다. 철학에 빠져 7년 동안 다닌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철학에 빠져사는 그는, 니체, 푸코, 칸트.... 무척이나 어려운 철학자들의 말들을 쉽게 설명해주었다. 황진규의 책을 읽으며, 인생의 지혜를 깨다는 행운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한입 매일 철학'이라는 책을 펼쳤다. 철학이라는 '지혜의 학문'을 안내해줄 황진규의 '한입 매일 철학'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나의 삶을 철학하다.

  철학책을 읽는 이유는 철학으로 부터 인생의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한입 매일 철학'은 어려운 철학자들의 이론만을 나열하기 보다, 철학자들의 말을 빌러 나의 삶을 반추하게 해준다. 그 몇가지를 살펴보자.

  나는 미셸 푸코를 좋아한다. 물론, 그의 책은 어렵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읽는 이유는 그의 책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혜안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다음 글도 그러한 글귀중에 하나이다.

 

  "19세기 정치적 권리에서 발생한 가장 대대적인 변화 중 하나는 바로 주권의 이 오래된 권리, 즉 죽게 만들거나 살게 내버려두는 권리가 새로운 다른 권리에 의해 대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보완됐다는 것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중략) 즉,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권력이 된 것이죠. 그러니까 주권의 권리란 죽게 만들거나 살게 내버려 두는 권리입니다. 그런 뒤에 새로운 권리가, 즉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권리가 정착하게 됩니다."-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323쪽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고문)' 방법에서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감시, 훈육)'으로 억압의 방법이 정교화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고문, 체벌)' 방법의 기억이 많다. 특히,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방법을 많이 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몸으로 학습되어 교사가 되고 나서 학생들을 지도할때 많이 사용했다.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방법이 얼마나 비교육적인지는 교사로 성숙되어 가면서 깨달았다. 지금 나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면,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과거 폭력적인 방법으로 훈육되어온 나는, 또다른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요즘은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방법은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 사회가 성숙되었기에 체벌과 같은 폭력적인 방법의 훈육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반면,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감시, 훈육)' 방법의 교육은 강하게 남아있다. 아직도 교복과 두발을 학생통제의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학교가 많다. 야간 자율학습 참여율을 중요시하며, 담임 교사를 쪼는 교장들이 있다 학생을 감시하고 통제해야한다는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관리자들에 의해서 학교현장은 아직도 참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나의 자녀들을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방식의 교육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임용고사를 준비하던 시절, 임용고사에 합격하면 연애도 결혼도 쉽게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임용고사에 합격하고, 교사로 발령받고 나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연애와 결혼이었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주변의 많은 분들이 "결혼하라", "결혼은 언제하냐"고 묻기 시작했다. 수많은 소개팅을 하고 데이트를 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데이트를 하면서 여성을 리드하는 일이었다. 약속장소를 물색하고, 사전 답사를 가서, 데이트 코스를 결정한다. 계획된 장소에 계획된 일정에 따라서 여성을 리드하지 못하고 버벅되다가는 여성에게 퇴자를 맞기 쉽상이다. 여성에게 결정권을 주고, 여성이 스스로 원하는 데이트 코스를 가도록 하는 '민주적'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여성들은 '민주적' 데이트를 원치 않았다. 왜? 내가 만난 여성들은 그들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는 '민주적 데이트'를 싫어할까? 남자에게 리드 당하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여성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자 황진규는 라캉의 철학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황진규는 남자는 대체로 강박증적이며, 여성은 대체로 히스테리적이라고 규정했다. 강박증자는 "내 맘데로 할꺼야!"라는 구호를 외치는 반면, 히스테리 환자는 "네 맘대로 해"라는 구호를 외친다. 상당수의 남성과 여성이 강박증적이며,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민주적 데이트'는 설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강박증자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했다. 치밀한 계획과 사전답사를 했고, 계획이 치밀해질 수록 데이트가 귀찮아졌다.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까지 혼자살아야했을 것이다. 이제는 변해야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이미 젊은 세대는 변했는지도.... 여성도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고, 원하는 데이트를 남성에게 요구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더 나아가서 남성과 여성이 서로가 원하는 데이트를 당당히 대화를 통해서 찾아가야한다. 강박증적 남성과 히스테리적 여성이 지배하는 한국사회는 변화해야한다.

  초임 교사에 발령 받았을 때, 교무부장님은 자상하게 학교일을 알려주셨다. 너무도 자상하셨고, 친절히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셨다. 교무부장에서 밀려나 짐을 꾸리는 부장님을 도와드리며 쓸쓸한 그분의 뒷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런데, 너무도 자상한 그분이 신봉하는 신문은 조선일보이며, 가장 믿는 언론인은 조갑재였다. 정치 이야기를 하면 수구 정당을 지지하는 그분과 말싸움에 가까운 대화를 하곤 했다. 대화가 불가능한 그분이 너무도 자상한 그분이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흄이 "절대불변의 진리나 법칙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의 믿음이 있을 뿐이고, 인간은 그 믿음에 기대어 살아간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대화를 할 수 없는 존재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저자 황진규는 비트겐 슈타인의 '언어게임'이라는 이론을 소개하며, 대화할 수 없는 존재와의 대화방법을 제시한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더라도 지역적 문화적 연령적 창이에 따라서 다른 언어규칙을 사용한다. 따라서 진정한 대화를 위해서는 자신의 규칙을 버리고 상대방의 규칙으로 들어가야하다. 교무부장님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북녘땅에 지주로 살다가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땅을 빼앗기로 남으로 내려와야했던 그분의 가정사를 알고 공감해야한다. 친일파보다 공산당을 싫하는 지주의 심정을 이해해야한다. 그러하기에 진정한 대화는 사랑하는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황진규는 말한다. 그렇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려할때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 상대가 미워질 때 대화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삶을 철학하려 할때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상대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세상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진정한 철학, 진정한 삶은 이뤄질 수 없다.

  시골에 내려가 어머니를 보았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손을 떠시며, 불안한 목소리로 말하신다.

  "손이... 안떨려고 하는데도, 손이 떨린다."

  불안한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심각성을 깨달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대학병원에 갔다. 어머니는 파킨슨병을 앓고 계셨다. 급히 파킨슨병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치매'는 병명이 아니라는 사실도 이때 알았다. '치매'는 증상일뿐 병명이 아니다.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헌틴텅 무드병 등의 다양한 병들이 심각해지면, '치매'라는 증상이 나타난다. 어머니가 손을 떠는 이유는 파킨슨병을 앓고 계셨기 때문이다.  공자께서 '부모의 나이는 알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으로는 오래사신 것을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나이드셨음을 두려워해야한다.(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저자 황진규는 "자기의식은 기억이기에, '나'는 내가 가진 기억의 총합이다. 그게 바로 자아이고 '나'다."라고 말한다.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에게 자아란 없다. 자아를 잃어가는 노인을 보면서 가족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에 우리의 안타까움은 더욱 커져간다. 인간은 기억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같은 기억,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리고 자아를 만들어 간다. 오래 사는 것보다는 자아를 잃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연히, 팟캐스트를 듣가다가 한 개그우먼의 말이 귀에 거슬렸다. "이번 주제는 '이번생은 글렀어'입니다."라는 개그우먼의 말은 '이번생은 글렀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고 다음생을 기약하라'라는 말로 들렸다. 천박한 개그우먼의 말이 한동아 귓가를 맴돌았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리셋하길 원한다. 이에 대해서 저자 황진규는 '삶을 리셋하기 보다 삶의 아장스망을 바꿔보자'라고 제안한다. 들뢰즈가 사용한 아장스망은 '배치'라고 번역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생의 모든 것의 관계를 재배치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비단 눈에 보이는 것만을 재배치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재배치할 수도 있다. 돈을 인생의 일순위에 배치했다면, 이번에는 사랑을 인생의 일순위에 재배치할 수도 있다. 새롭게 아장스망을 한다면, 삶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어리석게 '이번생을 글렀으니, 목숨을 끊고 다음생을 기약하리라'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사람은 다음생에서도 이번생의 오류를 반복할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곳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 척박한 황무지를 탓하기 보다는 금이 이 황무지를 옥토로 변화시키자.

 

2. 주인으로 살수 있는 방법을 철학하다.

  '다상담',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라는 강신주의 책에서 강조하는 말은 '주인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거머쥐지 못한 우리가 주인으로 살기란 너무도 힘들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철학자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주인으로 살라했을까?

  마르크스는 주인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가 달라지면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다."-143쪽

  변혁을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켜야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아리스토켈레스보다 감동적인 마르크스의 말에 눈물이난다. 내가 상관으로 모시는 존재를 상관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와 사회적 관계를 단절시킬 각오를하며 산다면 나는 나의 상관의 노예가 될 수 없다. 사표를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라는 강신주의 말이 이해된다.  당신과의 사회적 관계를 벗어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결기를 갖지 못한다면, 주인으로 살 수 없다. 주인으로 살려면 사회적 관계를 달리할 수있는, 때로는 사회적 관계를 단절할 결기가 필요하다.

  니체라는 철학자는 주인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 제시했을까? 저자 황진규는 니체의 '힘의 의지'를 당연시하지 않고 그 의도(꿍궁이)에 의문을 던질 때 '우리가 세상에 휘둘린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에게 휘둘린'다고 말한다. 즉, 나를 억압하려는 사회구조, 국가, 회사 상관의 의도를 파악하라는 말이다. '힘의 의지'는 '힘 싸움으로써의 관계 맺음'의 결과다. 우리가 '힘의 의지'에 순응한다면 히틀러가 독일인들 위에 굴림하며 유럽을 전쟁의 수렁텅이에 몰아 넣었듯이, 권력자는 우리를 암흑의 수렁텅이에 몰아 넣을 것이다. 반면 우리가 그들의 '힘의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들의 꿍꿍이를 파악하고 저항한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촛불 혁명'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수동적으로 나에게 주인으로서의 지위가 주어지기를 바라기 보다는 능동적으로 주인이 되려 노력이 필요하다. 그 에너지를 우리는 '주인의식'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인으로 살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는 '인정투쟁' 때문이다. SNS에 집착하는 이유도, 외모에 집착하는 이유도 황진규가 지적했듯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구 때문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길 원하는 이유는 태생부터 부모라는 존재에 의존해서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원초적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주인으로 살고자 한다면,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기 보다는 내 자신의 양심에 귀기울여야한다. 나의 양심과 나의 욕구에 귀기울일때 우리는 타인에 휘둘리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혼자서만 살 수는 없다. 저자 황진규는 "기쁨을 주는 타자는 악작같이 찾아나서야한다. 동시에 슬픔을 주는 타자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애써야한다."고 충고한다. 기쁨을 주는 타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여야한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기쁨을 주는 유쾌한 존재라면, 내주변에는 유쾌한 사람이 모일 것이다. 그리고 나의 주변 사람들도 유쾌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슬픔을 주는 타자도 기쁨을 주는 존재로 바뀌지 않을까?

  저자 황진규는 '브리콜뢰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계획은 우리의 믿음 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브리콜뢰르는 '손재주꾼'이나 '맥가이버'로 번역할 수 있다. 철저히 계획된 준비물을 토대로 필요한 물건을 만들기 보다는 주어진 것들로부터 필요한 것을 만드는 것이 바로 '브리콜뢰르'이다. 브리콜뢰르에 계획은 필요없다. 계획을 신봉하며 계획된 데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당황하며 급속히 무너지는 '일본인'과 임기응변에 강하지만 계획성은 다소 부족한 '한국인'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황진규는 '브리콜뢰르'를 강조하며 계획의 불필요성을 강조하지만, 나는 계획과 무계획을 자유롭게 횡단하며 째즈와 같은 삶을 제안한다. 계획성과 무계획성을 횡단하며 아무리 촘촘한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갈 때, 우리는 자유로운 주인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언어의 구조에 주목하자. 소쉬르의 말을 살펴보자.

  "언어라는 구조에 의해 인간은 결정된다."

  "생각이 언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생각을 만든다."

  "하나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하나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제가 우리에게 말과 글을 빼앗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언어라는 구조에 의해서 우리가 결정된다면, 언어라는 구조를 바꾼다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된다.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인간 혹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독재정권이 '보도지침'을 내려서, '교통비 인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하고 '교통비 현실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한 이유도 언어를 지배하기 위함이었다. 권력자가 파놉티콘을 만들어 우리를 일망감시하려한다면, 우리는 역파놉티콘으로 그들을 주시해야한다. 모두가 중앙에 있는 권력자를 감시한다면, 파놉티콘은 다수의 감시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을 읽으면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철학과 만나는 길이 너무도 어렵다. 난해한 글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 의미를 깨닫는 일이 보통의 노력이 없이는 얻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 황진규 덕분에 나는 철학자들의 글들 사이를 비교적 쉽게 헤집고 다니며 깨달음의 보석들을 발견했다. 그중에 하나가 흄의 말이다. 

  "인과관계는 근본적으로 논증 불가능하다."-69쪽

  어제 태양이 떠오른다고 내일도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을 법칙이라 할 수 있을까? 어제 떠오른 태양이 내일 떠오르는 것을 담보하지 못한다. 태양이 50억년 이후에는 수소를 다태우고 백색외성이 되어서 수축하거나 폭발할 것이라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 태양이 떠오를 수 없다. 법칙은 한정된 조건의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태양이 존재하고, 지구가 태양주위를 공전하면서 자전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철학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일들에 의문을 품는다. 당연한 일들에 의문을 던지며 나의 고정관념을 철저하게 파괴한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나의 사고도 좁은 알을 깨고 드넓은 세상으로 나온다. 그래서 철학책을 읽는 맛이 난다. 함께 철학의 품에서 뛰어 놀지 않으련가?

 

ps. 나의 가슴에 남는 몇줄을 적어본다.

"감성이 없으면 대상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성이 없으면 대상은 절대로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지성이 없는 감성은 맹목적이고, 감성이 없는 지석은 공허하다."-칸트 95쪽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며 또한 노예여야만 한다."-흄, 79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5-01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나루 2019-05-02 05: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삶이 오래 될 수록 생각이 많아지네요

2019-09-12 0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나루 2019-09-12 06:15   좋아요 1 | URL
팟빵앱을 다운받으신후 ‘철학흥신소‘를 검색하세요
팟캐스트 이름이 변경 되었어요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 - 인도사로 본 한국사회
이광수 지음 / 이후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조선인에게 일본혼을 심어줘야 하다. 그렇지 않고 조선인의 민족적 반항심이 타오르게 된다면 이는 큰일이므로 영구적이며 근본적인 사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곧 조선인의 심리연구이며 역사연구이다."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말이다. 역사가 핵무기보다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라는 이광수의 책은 인도사를 바라보는 통찰력으로 한국사의 아픈 곳을 꿰뚫어 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가 서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만들어진 인도'라는 사실에 놀라고, 인도의 다르면서도 비슷한 한국의 모습에서 다시한번 놀란다. 책장을 읽으며, 연신 핵폭탄을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인도에 대해서 한국 사회에 대해서 고민했다. 인도사학자 이광수가 전해준 충격을 함께 나눠보자.

 

1. 만들어지는 역사

 '역사는 과거의 객관적인 사실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번 지나간 역사는 똑같이 재현될 수 없다. 과거 사실을 카메라로 똑 같이 찍어 놓지 않는 이상 과거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 설혹 카메라로 과거 사실을 찍는다 하더라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이 어떠한 관점에서 사실들을 찍고 편집하는가에 따라서 과거 사실은 새롭게 창조된다. 인도의 역사도 역사의 재창조, 재해석 작업이 끊임 없이 진행되었다. 자신들에 의해서,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된 인도사는 인도인의 마음을 올가 메고 있다.

  인도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많은 사람들이 '힌두교'를 떠올릴 것이다. 저자 이광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힌두교를 설명하면서 '피자 효과'를 언급한다. 신혼여행을 로마로 갔을 때 맛보았던 담백한 이탈리아 피자는 다시 미국으로 전해져서 미국식 피자로 다시 태어났다. 이탈리아의 번화한 중심상점에는 미국식 피자가 즐비했다. 반면, 전통 이탈리아 피자를 먹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서민들이 살고 있는 골목을 찾아가야했다. 이탈리아를 점령한 '미국식 피자' 처럼, 인도의 힌두교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한번 굴절되었다. 그리고 초강대국 미국에 의해서 왜곡되었고, 다시 인도가 이를 역수입하면서 '미국식 힌두교'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힌두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그 속에는 서로 상반된 주장과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불살생과 소숭배, 정신적 안정의 추구를 핵심으로하는 힌두교만이 서구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되었고, 이를 힌두교의 전부라 믿는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인도의 슬픈 현실은 우리에게도 찾아볼 수 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라는 이미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서구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신경쓰며, 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한국의 이미지를 통해서 한국의 것을 찾는 어리석음을 우리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려할 때, 강력한 제국즤의의 군화발에 짓밟혔던 약소국들!! 그들은 스스로의 문화를 고민해볼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많은 고유문화들이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사라졌다. 타국의 시선이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에 대한 다른 선입견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인도는 종교의 나라이다.' 혹은 '인도는 종교 때문에 서로를 죽이기도 한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중세 인도에 침입한 무슬림들이 인도의 사원을 약탈했으며, 이것이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저자 이광수는 정면 반박한다. 소미나타 사원 약탈 사건을 살펴보면, 무슬림의 기록에는 대대적인 약탈 사건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힌두인들의 기록에는 그러한 기록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우상을 파괴했다는 자랑꺼리로 소미나타 사원 약탈을 과장했을 것이라는 것이 최근의 연구성과라 이광수는 주장한다. 그런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인도를 식민지배하면서 종교로 분할 통치하려했고, 서구 역사학자들은 충실히 제국주의자의 의도에 복종했다. 이슬람인들만의 기록을 토대로 힌두와 무슬림의 대립은 필연적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역사는 현재 인도를 종교 분쟁의 사회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서 마들어진 역사의 족쇄는 다시 인도인들을 분열과 대립의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서울 수 있다. 역사라는 무기를 수구세력이 잘알고 있었다. 뉴라이트세력들은 뉴라이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만들었으며, 국정 한국사교과서를 만들려했다. 친일파 중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분열과 대립, 좌절과 노예근성을 심어주려했던 그들의 노력은 다행스럽게도 촛불혁명으로 좌절되었다. 수구세력이 역사라는 무기의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던 시기에, 진보라는 사람들은 역사에 무관심했다. 역사를 수능 선택과목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우리의 역사를 말하는 것을 쇼비니즘적인 생각으로 몰아붙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해야할 때에 역사라는 배타적 민족의식을 기르는 과목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는 인상을 주었다. 역사는 평화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될 수도 있으나, 세상을 아마게돈으로 몰고갈 수 있는 핵무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할 것이다.

 500년 후,  '전두환은 평화주의자다.'라는 기록을 학생들이 배우게 된다는 상상을 당신은 해보았는가? 저자 이광수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와 비슷한 일이 인도사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쇼카왕은 인도 대륙을 정복하고 전쟁의 비극을 깨닫는다. 그리고 평화주의자가 되었다고 많은 이들이 믿고 배우고 가르치고 있다. 만약 아쇼카가 평화주의자라면 깔링가 정복 후, 15만 명의 포로를 풀어주었어야했다. 그러나 아쇼카는 15만 포로를 풀어주지 않았다. 그가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더 이상 추가적인 대외 팽창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뿐이다. 대외팽창보다는 충분히 팽창된 영토를 안정적으로 다스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제대로된 사료 비판을 하지 않고, 아쇼카가 남긴 글들만 그대로 믿는다면, 전두환이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반포한 글들을 그대로 진실로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러한 이광수의 지적은 나의 머리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사료비판!! 이는 깨어있는 사람이 되기위한, 깨어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 요소였다. 아쇼카가 만들어 놓은 아쇼카식 역사를 바로보지 못한다면, 500년 후, '전두환은 평화주의자다.'라는 왜곡된 역사를 우리 후손들이 배우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

 

2. 인도사를 통해본 한국의 민낯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저자 이광수의 날카로운 인도사에 대한 통찰에 놀라고, 그의 한국사에 대한 송곳 같은 비판에 아파한다.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인도를 바라보았다. 그러한 잘못은 우리가 우리를 바라볼 때도 반복된다. 진정한 자아를 찾이 못한 인도와 한국의 모습은 너무도 닮아 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도와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자.

  '네루왕조'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네루를 비롯해서 그의 딸인 인디라 간디, 인디라 간디의 큰아들 라지브 간디로 이어지는 네루 혈통들이 인도의 수상직을 역임했다. 네루의 후광을 등에 업고 검증보다는 혈통을 중요시하는 전근대적인 모습은 한국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버지 박정희가 18년 동안 철권통치를 했다. 그리고 박근혜는 정치를 시작한지 18년만에 18대 대통령이 되었다. 인간은 왜이리도 어리석을까? 한 나라를 이끌 지도자라면, 혈통보다는 능력을 보아야한다는 진리를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무당에게 연설문을 수정받고, 세월호 7시간 동안 머리 올리기에 정신없었던 지도자를 아직도 추종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박근혜 통치시기, 국민은 좌와 우로 분열되었다. 박근혜는 한국인 모두의 대통령이기 보다는 보수의 대통령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Divide and rule(분할하여 통치하라)"의 통치방식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하면서 사용한 방식이다. 힌두와 무슬림을 분리하여 인도인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물론, 일제가 문화통치시기 친일파를 양성하여 우리민족을 분열시키려했던 것과 같은 방법이다. 사회를 하나로 통합해야하는 것이 지도자의 의무일 터인데, 자신의 권력을 쥐려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비열한 통치는 인도와 한국에서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학습지를 만들지 않아, 인터넷에 보면, 나보다 더 잘만드는 사람들이 많은데뭐!" "SKY 나온 애들이 나보다 잘하잔아. 그네들을 믿어"라는 말을 젊은 시절에 선배 교사로부터 들었다. SKY 출신이라면 주눅부터 드는 나약한 선배교사!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선배교사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SKY는 최고"라는 신화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으며, 나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을 내재화하고, 한국사회의 주인으로 살기보다는 노예로 살려는 자들이 우리주변에는 너무도 많다. 한편, 한국사회의 "SKY 출신"이라는 신화는 다시 수구 신문에 의해서 합리화되고 있다. 수구신문은 한국사회의 평화와 자주를 싫어한다. 일본자위대의 위협비행을 수구신문은 일본의 편에서 일본의 입장을 대변한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제한을 일본의 입장에서 변호한다.

   이러한 모습을 인도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브라만 세력을 약화시키려했던 아쇼카왕의 노력은 그가 죽자 실패로 끝났다. 결국, 브라만과 왕은 타협한다. 브라만은 현실 세계의 왕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댓가로 브라만은 경제적 풍요를 누린다. 브라만은 자신의 특권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신화'를 만들고, 그 신화에 자신을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왕의 족보에 삽입해준다. 견고한 브라만의 '신화'는 현대 인도사회 속에서도 살아남아 있다. 다른면서도 비슷한 인도와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씁슬함을 감출 수 없다.

  인도농민의 자살 쓰나미가 밀려왔다. 2006년 한해 동안 1만 7060명의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국적 농업회사의 횡포속에 나약한 농민들은 죽음의 길을 택했다. 개방화 신자유주의의 높은 파고를 헤쳐나가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농민의 모습은 한국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더이상 농민의 죽음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지는 못한다. 개방화 속에 농촌에는 젊은이가 없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래다. 농촌은 공동화되고 있다. 인도보다 더 심각한 농촌문제를 보면서 사라지는 농촌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괴롭다.

  저자 이광수는 냉철하게 인도역사를 읽어내려간다. 인도 고대사를 전공한 그가 인도의 현대사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꿰뚫어보고 있다는 점에서 연신 감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우리는 우리를 제대로 보고 있었던 것일까?

 

3. 과연 그럴까?

  날카로운 이광수의 글들을 읽으면서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저자 이광수와 나의 역사관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어찌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이광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살펴보자.

  첫째, 굽타 시대를 '고대 인도의 황금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인가? 저자 이광수는 굽타시대 브라만을 5.18 후 전두환을 위해서 기도한 목사들에 비유한다. '마누법전'에 브라만의 특권을 합리화하는 내용이 있다는 내용은 카스트에 저항하는 조짐이 빈발했다는 반증이라 주장한다. 이시기 발달한 언어학과 천문학은 신을 위한 것들이라 주장하며, '고대 인도의 황금기'라고 보기 보다는 '브라만 문화의 황금기'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라 주장한다. 이광수는 브라만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다는 생각이든다. 문학, 천문학, 언어학이 신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발전했다면 그것은 인도문화의 한부분이다. 따라서 그 가치를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고대의 문화들은 지배층의 문화가 아니었던가? 그리스로마의 문화도 수많은 노예 노동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진배층의 문화였다. 중세의 성당들도 농노들의 경제력을 찾취해서 만들어진 기념물들이었다. 조선 세종시대의 문화도, 조선의 농민들을 수탈해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 문화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는 않는다. 그시대 그 사회의 생산력의 한계가 분명히 있었기에 그것 나름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둘째, 민족주의는 반역일까? 저자 이광수는 "민족주의가 강할 수록 다른 의제는 위축된다."라고 주장한다. 민족주의 담론만이 지배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비타민C를 과다 섭취할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민족주의의 과다는 분명 심각한 문제를 유발시킨다. 그러나, 인간이 생존하는데 비타민C가 필요하듯이, 인류가 생존하는데 민족주의는 필요하다. 이광수가 지적하듯이 거대한 인도가 작은 나라 영국의 식민지가 된 것은 인도인에게 '민족'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했듯이, 사피엔스가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을 박멸하고 지구별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상상의 공동체를 믿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강력한 '민족'이라는 무기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파괴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을 보호하는 안전망이 될 수도 있다. 서구의 강대국들은 민족주의라는 무기를 선업혁명과 결합시켜 대외 팽창의 에너지로 활용했다. 그들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수입했다. 저항적 민족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히틀러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경험한 서구는 민족주의를 반역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서구의 이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학자들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한국도 서구와 같이 원초적 민족의식이 없었다고 규정한다. 사실 유럽은 근대에 국민국가가 만들어졌다. 그러니 민족이라는 원초적 개념이 근대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부터 '삼한일통'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타민족을 지배하면서 팽창해간 역사가 아니기에, 좁은 한반도에서 동류의식을 키워갔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왕을 버리고 일본군에게 세금을 바치면 될텐데도, 조선의 백성들은 왜군에 맞서 싸웠다. 못난 지배층을 버리지 않고 피눈물을 흘리며 이땅을 지켜낸 민초들을 보면서 묻는다. '무엇이 당신들을 싸우게 만들었냐고?' 왜군이 이해못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일본에서는 성의 주인이 바뀐 것은 백성들에게 세금낼 대상이 바뀐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조선의 백성들을 달랐다. 원초적 민족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땅을 지켜올 수있고, 통일을 이끌수 있는 원동력이 '민족'에 있다. 민족이라는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고, 민족주의에 가려 의제화되지 못하는 의제를 발굴한다면, 민족주의는 반역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한 이념과 사상은 존재할 수 없기에 '민족'을 수선해서 인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셋째, 변혁인가! 안정인가! 저자 이광수는 말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사회에서 방치되어 있는 계층이 이렇게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나라는 없다. 총기가 난무하는 5.18때도 전당포 한 곳 털리지 않았고, 전국에서 백만명이 모여 촛불을 밝히면서도 사건 사고 한건 터지지 않았다."라는 글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박노자가 '평화적인 방법만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쓴적이 있다. 그들에 눈에는 한국인들이 평화적인 방법만을 고수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평화적 3.1운동에서 평화적 촛불집회가 이상해보일 수도 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일제의 식민지배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냉정한 비판도 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무장투쟁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안정이 사회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알고 있지 않은가?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명예혁명을 비롯한 정치적 사회적 변혁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는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국가의 에너지를 국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소비했다. 영국과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영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연기에 있었다. 평화적 방법을 통해서 정권을 교체시킨 우리의 저력은 비판의 대상이기 보다는 타국이 배워야할 교본이 아닐까?

  저자 이광수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나와 관점이 다를 뿐이다. 그의 탁월한 시선을 따라가며 그의 주장에 반문을 던지는 경험 자체가 나로서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실 이광수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겨울의 세계사 연수에서였다. 인도사의 권위자를 만나 인도사에 대한 편견을 수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으며, 인도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우리 사회와 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주제는 '인도는 왜 매국노가 없을까?'라는 주제였다. 세계사 연수에서는 한국에서는 매국노가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인도는 그러하지 않았다고 규정한다. 이 책에서는 여기에 "인도에서는 대영제국의 지배에 찬성하는 이들이 존재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식민지배를 했지만, 한국에서는 친일 세력이 존재의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식민지배를 했다."라고 말한다. 한국사의 맥락에서 인도사를 이해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오류들! 인도사는 인도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함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인도사와 한국사를 비교함으로서, 그 대비를 통해서 한국사를 분명히 알게되기도 했다. 그래서 일국사를 뛰어넘어 세계사의 시각에서 한국사를 바라보자는 말이 설득력을 얻나보다.

  부처는 자신을 신으로 신봉하라 말하지 않았다. 그져 먼저 깨달은 사람일 뿐이다.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철저히 부정했고, 한곳에 머무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불교는 부처의 말을 어기고 불교 교단을 형성했다. 인도에서 불교가 융성할 수록 불교의 퇴보는 시작되었다. 발전이 퇴보로 이어져 인도사회에서 불교가 힌두교에 포섭되었다. 서구의 일직선적, 단선적 발전 사관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인도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는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화두를 던져준다. 사고의 확장을 바라는 독자, 인도사를 바로보는 것을 뛰어넘어 한국사를 꿰뚫어보고 싶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ps.  이책을 사랑하는 관점에서 오류 몇가지를 지적한다. 인도사 전공자이다보니, 한국사에 대한 설명에서 오류가 몇가지 보인다.

144쪽 "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거란족이 함께 만든 나라"라는 표현은 '거란족'을 '말갈족'으로 수정해야한다. 거란족은 발해를 멸망시킨 족속이다.

157쪽 "5세기경 고구려에서는 차별을 기초로한 율령적 신분제가 나타났다. " 고구려는 4세기 소수림왕때 율령이 반포되었다. 5세기를 4세기로 수정해야한다.

265쪽 "쇄국"이라는 용어는 "통상수교 거부정책"으로 수정해야한다. 한국사 용어가 바뀌었다.

75쪽 "항일 독립군에 가담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왕조의 복원을 주장했다. 그들이 꿈꾼 것은 평등사회건설이 아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라는 서술은 매우 잘못된 표현이다. 물론 왕정복구를 추구한 세력이 있었다. 그러나 3.1운동 이후, 공화정으로 대세가 바뀌었다. 3.1운동의 결과 민주공화정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부분은 반드시 수정되어야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BI 행동의 심리학 - 말보다 정직한 7가지 몸의 단서
조 내버로 & 마빈 칼린스 지음, 박정길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유난히도 눈치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읽고, 재빠르게 대처해야하는데 그러질 못한다고 핀잔을 많이 듣는다. 핀잔을 가장 많이 주는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는 나의 아내이다. 포카페이스를 못하며, 돌려서 말을 못한다. 상대방이 돌려서 하는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상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상대를 진실하게 대해야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눈치없는 나의 단점을 보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행동 심리학 서적을 뒤지다가, 'FBI 행동의 심리학'을 집어들었다. 전직 'FBI' 대적첩보 특별 수사관 조 내버로가 쓴 책이라는 말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1. 행동의 심리학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가?

  전직 FBI 조 내버로의 글은 25년 동안의 경력에 근거하고 있기에 믿음이 갔다. 그러나, 학문적 근거가 있는 말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었다. 조 내버로는 나의 의구심을 미리 예상한 듯하다. 그는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인간을 지키는 3단계 생존 매커니즘'을 제시한다. 정지(Freeze), 도망(Flight), 투쟁(Fight)은 인간이 위험에 처했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 발휘했던 행동들이다. 이 생존의 기술들은 오랜 진화의 시간을 거쳐 현생인류에게 내재화되었다. 특히 우리의 변연계는 우리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우리몸을 움직인다. 말과 표정에서는 거짓말을 하고 있을 지라도, 발과 몸짓은 진실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생존 전략을 우선적으로 써야할까? 조 내버로는 '가급적 투쟁반응을 자제해야한다.'고 조언한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공격적인 전략을 쓸 경우 감정이 혼란스러워지면서 위협적인 상황을 냉철하고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 말한다. 맞는 말이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학생보다 먼저 흥분하는 경우이다. 그럴경우, 사건은 제대로 수습되지 않는다. 나00 교감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먼저 흥분하거나 화를 내면 지는거야!" 맞는 말이었다. 학생이 어떠한 불손한 말을 할지라도 먼저 화를 내서는 안된다. 항상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대응해야한다. 항상 상벌점 규정과 징계규정, 학교 교칙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학생 반발시에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대답해야한다. 권위적으로 응박질러서 생활지도가 되는 시기는 먼옛날 옛적일이었다. 흥분한 변연계를 잠재우고, 냉철한 전두엽을 활용해서 냉철하게 일처리를 해야함을 알게된 나에게, 조 내버로의 조언은 행동의 심리학이 상당히 실용적인 책임을 확신케했다.

 

2. 작은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호텔에 묵고 있는 조 내버로에게 호텔 주인이 부탁했다. 자신의 보안대원이 완벽한데 무언가가 빠진것 같으니 이를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 내버로의 해결책은 '손을 뒤로하고 턱을 올리라'는 것이었다. 너무도 작은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위엄이 부족했던 보안대원들에게 상당한 위엄을 주었으니 말이다.

  그렇다. 작은 차이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우리 주변에서 권위가 필요한 공간과 친절함이 필요한 공간이 있다. 공간의 변화에 따라서 공간에 알맞은 손동작, 제스춰를 한다면 나는 공간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 교실에서 나의 손동작과 발동작을 어찌해야하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 힌트를 이 책에서 찾았다. 학부모와 상담할때, 학생과 상담할때, 관리자를 비롯한 동료교사와 대화하면서 그들에게 나는 어떠한 제스춰를 해야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에서 어떠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지 고민했다. 책을 읽으면서, '넛지'가 생각났다. 강압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계입 '넛지'!! 나의 행동 하나 하나는 하나의 '넛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도를 읽고 이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3. 행동의 심리학에 오류는 없는가?

  '등뒤에 팔을 두는 태도는 '왕의 자세'로 불리며,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의미를 전달한다.'라는 설명을 당신은 동의하는가?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 앞으로 구부정한 자세로 걷는 걸음걸이를 교정하기 위해서 '왕의 자세'를 한다. 뒷짐을 지고 걸으면서, 나의 자세를 교정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보고, '왕의 자세'를 하고 있다며,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뭐라 변명해야할까? 행동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동읽기들은 절대적이라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제한된 정보나 한가지 관찰에 근거해 누군가에게 거짓말 쟁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도록 조심하라"(261쪽)

 

  책을 끝맺으며 조 내버로는 얇팍한 지식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오만을 경계하라 당부한다. 우리말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다. 비언어적 행동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대처하기 위한 참고자료일 뿐이다. 절대적 경전이 아니다. '왕의 자세'가 나에게는 자세 교정을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거드름을 나타내는 표시일 수 있다. 행동 심리학을 절대적 좌표로 이해하기 보다는 삶에 지혜를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부표로 삼아야할 것이다. 진실을 알기 힘들때, 행동 심리학을 떠올리자, 그리고 힌트를 얻자.

 

  '상대가 이러한 행동을 하면, 그는 이러한 심리이다.'라는 법칙화된 절대적 진리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읽었던 '행동의 심리학'은 절대적 진리를 찾기 보다는 '대인관계를 풍부하게 해줄 지식을 얻게 되었다.'는 기쁨을 가지고 참고 자료로 활용하라 한다. 그렇다. 비언어적 행동의 노예가 되기 보다는 비언어적 행동의 주인이 되어야한다. 나의 인간관계를 도와주는 참고자료이며, 갈피를 못잡는 나에게 경계선을 알려주는 부표로 '행동 심리학'을 활용해야겠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항해를 도와주는 별자리 처럼 '행동 심리학'을 대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리학으로 풀어낸 고려 왕 34인의 이야기
석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역사학에도 심리학을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고려시대사 강의를 듣던중, 문철영 교수가 던졌던 화두였다. 역사학은 딱딱하고, 대중의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고민이 깊어가던 시기였다.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라 생각했던 역사가, 재미없고 딱딱한 학자들만의 이야기 남아 있는 현실은 너무도 안타깝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심리학과 역사학을 접목시킨다면, 역사속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그러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고, 역사학의 재미는 배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감돌았다. 드디어 심리학의 눈으로 역사적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본 책을 만났다. '심리학으로 풀어낸 고려왕34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문종을 재발견하다.

  고려시대,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장수왕시기, 백제는 근초고왕시기, 신라는 진흥왕 시기, 발해는 선왕시기, 조선은 세종대왕 혹은 영정조시기를 전성기로 생각한다. 그러나, 고려의 전성기는 언제였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한국사 교과서를 펼쳐보자. 태조왕건이 나라를 세우고 광종과 성종 치세에 국가 기틀을 잡다가, 거란과 여진의 침략을 물리치지만, 몽골의 오랜 침략 속에서 결국 굴복한다. 그 굴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공민왕이 노력했지만, 결국 고려의 혼란은 수습되지 않고 조선왕조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고려는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혼란기에 접어들었다는 인상을 주는 서술이다.

  사실 고려왕조의 전성기는 문종시기였다. 조선 세종이 셋째이듯이, 문종도 셋째로서 왕위를 계승했다. 문종시기 학문은 발전했고, 여진족은 고려에 복속되었다. 고려의 기미주로 편성된 여진족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백성들의 삶도 편안해졌다. 학문이 발전하고, 정치가 밝아졌으며, 국제 정세도 고려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종시기 역사에 대해서 교과서에서는 서술이 안되고 있다. 조선에 비해서 너무도 홀대받는 고려의 모습을 바라보며, 혹시! 식민사학의 그늘이 고려에 드리워졌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유독 고려에 대한 차별 대우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망상일까?

  문종치세를 재발견하고, 교과서 서술의 문제점가지 생각한 것은 이 책에서 문종의 심리를 분석하며 문종치세의 업적을 제시한 부분을 읽으면서부터이다. 다른 고려사 관련 책들에서 발견하지 못한 보석을 '심리학으로 풀어낸 고려왕 34인의 이야기'에서 발견했다.

 

2. 마음속에 어린 아이가 울고 있는 궁예

  드라마 '태조왕건'이 한창 방영되던 시기!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태조 왕건'인지, '궁예'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왕건보다 궁예라는 캐릭터가 주는 강렬함은 많은 시청자들을 텔레비젼앞으로 모이게 했다. 마치, 중국의 초패왕 항우와 한고조 유방의 싸움을 보면서, 승리한 한고조 유방보다, 패배한 초패왕 항우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언더도그 효과(underdog effect)' 즉, 어려운 환경에서 악전 고투를 하거나, 게임에서 지고 있는 자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기대심리가 작동했을 것이다. 궁예는 왕족이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한쪽 눈까지 잃었다. 반면, 왕건은 송악의 호족 출신이다. 아버지에게 살해라는 위기에 빠져 악전고투하는 궁예를 자신에게 투영하며 사회적 밑바닥에 있는 인물이 승리하길 바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건의 승리로 결말이 지어질 것을 알고 있다. 결말을 알면서도 궁예를 마음속에서 버리지 못한 것은 궁예에 대한 미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궁예가 승리하기를 바랐지만, 궁예는 왕건을 넘어서기에는 너무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 러레노어 테어는 '유아시절의 외상은 잊히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런 경험을 지닌 사람들의 일상은 단조롭고 냉혹한 면이 있으므로 잘 관찰하면 외상의 유무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궁예의 가슴속에서 커다란 상처가 있다. 그 내면에는 '버림받은 아이' 궁예가 울고 있었다. 결국,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지 못한 궁예는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간다. 관심법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부인과 자식도 죽인다. 

  주디스 루이스 허먼은 "자신에게 일어난 상처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으나, 회복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한쪽 눈을 잃고, 힘든 삶을 살아야했던 것은 궁예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 아이'를 달래고, 스스로를 치유할 의무는 궁예 자신에게 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궁예는 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도 수많은 궁예가 있다. '울고있는 내면아이'를 달래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아이를 달랠 줄도 모른다. 그렇다면, '울고 있는 내면아이'를 달래고 치유하는 의무를 사회가 나눠 수행할 수는 없을까? 생애전환기 검사를 하듯, 정신과 진료를 받고, 내면 아이를 치유하는 시스템을 우리도 갖길 바란다.

 

3. 절대지존! 그러나 나약한 인간! 

  전통시대! 제왕은 절대지존이다. 그 누구도 감히 그를 무시할 수 없다. 한생명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해서일까? 고려의 왕들중에는 자신의 막강한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많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이들 왕의 묘호앞에는 '왕'자가 붙는다. 원나라 황제에게 충성하라는 의미이다. 고려의 왕은  고려에서는 절대지존의 자리에 있지만, 원나라 황제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들이다.  자신의 부인 제국대장공주에게 매까지 맞은 나약한 충렬왕! 아버지와 아들이 왕위를 두고 경쟁했던, 충렬왕과 충선왕! 자신의 아들까지 죽이고,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도 조카를 세자로 삼아 아들을 견제했던 충선왕!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체장애자로 모함받은 충숙왕! 부왕의 첩과 외숙모를 겁탈하며 향락에 빠져 살다가 타국에서 죽은 충혜왕! 어린나이에 죽은 충목왕과 충정왕! 이들의 삶은 애잔한 느낌까지 든다. 그들은 몽골과 몽골출신 부인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야했다. 그리고 고려 백성에게는 한없이 강한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얼마나 한심했으면, 제국대장공주가 사냥을 즐기는 충렬왕에게 사냥을 하지 말고 백성을 돌보라했겠는가?

 

  "자신이 기대는 대상에게 비굴해질수록 자신에게 기대는 사람의 단점을 들춰내고 더 모멸하는 것이다. 이는 의존할수밖에 없는 자신의 객관적이고 명시적인 열등 상태를 극단의 주관적 우월감으로 표출하면서 억압 에너지를 해소하려는 행동이다."(261쪽)

 

  강자에게 비굴한 사람은 자신보다 약한자에게 강해진다. 자신의 삶에 당당한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강한자에게 기대어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고려왕들의 모습은 백성들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백성들이 고통을 받더라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도! 힘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권력을 지키는 것도 버거웠을 테니까...... 타인의 힘에 의지한 정치는 충혜왕의 폐륜적인 모습으로 극에 달한다. 당당한 주인으로 살지 못하면, 그 고통은 대를 이어 유전된다.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 자녀들도 주인으로 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타인에 의존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왕은 비단, 원간섭기에만 있지 않았다. 수동의존형 왕 '인종'도 그러했다. 처음에는 이자겸에 의존해서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했고, 이자겸을 제거하고 나서는 묘청에 기대어 정치를 하려했다. 결국에는 김부식을 비롯한 문벌귀족에게 기대어 권력을 유지하게 되었고, 경계선 성격을 지닌 의종 시기에 무신정변이 발발하여 고려왕의 권력은 무너진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정치를 하지 못하는 왕은 그 권력을 쥘 자격이 없다. 절대자를 추종하는 맹목적 신도처럼 그들은 나약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권력은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게 된다. 인종의 나약한 자아는 경계선 성격을 지닌 인종으로 이어졌고, 자신이 관심의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마치 트럼프처럼! 

  권력을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없는 왕들에게 통치를 받고 있는 백성들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왕조시대! 제왕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어떠한 제왕을 만났는가에 따라서 백성의 삶이 많이 달라진다. 무당에게 의사결정을 맡기며 푸른집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두었기에 우리가 겪어야했던 고통을 생각한다면, 고려시대 백성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4. 상처받은 자들! 상처를 치유할 방법은 없는가?

  제왕에서 평민까지, 아니 노비까지! 사람은 나약한 존재이다. 사랑을 갈구하며 부모라는 존재의 그늘 속에서 살아야한다. 어른이 되면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다시 자신의 삶을 옥죄게 된다. 하인츠 코헛은 "전능한 줄 알았던 부모가 능력의 한계가 있고 자신의 이상과 기대에도 못미치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고 했다. 그리고 이것을 건강한 자아상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최적의 좌절"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제왕의 아들에게는 "최적의 좌절"을 해줄 아버지가 부재한 경우가 많다. 아버지의 한마디에 만백성의 생명이 달렸기에 그들의 도덕성 발달은 좌절될 위험이 상존한다.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을 비롯한  대기업 자녀들의 갑질은 "최적의 좌절"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제왕들의 자녀와 비슷한 모습일 것이다. 그나마, 제왕의 자녀들은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많은 스승과 신하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기업에는 제왕의 자녀를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스승과 신하들'이 있는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부모라는 존재에 의해서! 강한 힘을 가진 어른이라는 존재에 의해서! 불의의 사고에 의해서! 힘쎈 친구에 의해서 겪게된 고통을 치유할 방법은 없을까?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치유의 방법을 살펴보자.

 

  "트라우마를 말살하기 보다 그것과 더불어 살며 그 트라우마를 발전과 성숙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방법까지 익혔을 때 마침내 내면의 상처가 완치된다."

 

  '상처를 받은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지만, 상처를 치유할 의무는 나에게 있다'는 말처럼, 트라우마를 겪은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지만, 그 트라우마를 치유할 의무는 나에게 있다. 트라우마를 없애려하기 보다는 트라우마와 더불어 살며 그 트라우마를 발전의 발판으로 삼으라! 성숙된 인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 또한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했다. 그리고 그 왕따의 그늘은 나의 삶을 그늘지게했다. 나는 과연 트라우마와 더불어 살며, 그 트라우마를 발전과 성숙의 원천으로 사용했는지 자문해본다. 내가 고등학교 교사로 살고 있는 것도 그 트라우마를 성숙의 원천으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때론 초등학교 시절의 일들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미병의 상태'! 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병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우리 조상들은 강조했다. '위생가설'에 따라서 병균을 없애면 인간이 건강해질 것이라고 서양의학자들은 말했다. 그리고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항생제 남발은 우리에게 유익한 유산균들도 죽였다. 무균실에서 자란 아이는 오히려 면역력이 낮아져 질병에 시달리기 쉬워진다. 병을 없애기 보다는 병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 즉 미병의 지혜를 터득할 시간이 왔다.

   정신분석학자 로버트 존슨은 그림자를 대하는 원칙을 "우선 직면해서 수용하고, 그다음으로 함께 가볍게 춤을 추는 것이다."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이때 "내가 주체가 되어 그림자와 춤을 춰야지 그림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로버트 존슨도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려하기 보다는 아픔을 직면하고 주인이되어 아픔과 가볍게 춤을 추라했다. 어린시절, 나를 괴롭혔던 '친구'라는 괴물들을 직면하고 그들이준 상처와 가볍게 춤을 추어야겠다. 나의 내면에서 울고있는 아이를 달래며 내면아이와도 함께 춤을 추어야겠다. 그리고 나의 내면아이를 끌어 안겠다. 눈물을 흘리며.....

 

  "(윌리엄 제임스) 삶이 변화되기를 원하면 이유나 변명을 달지 말고 열정적으로 살라.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

 

  그래, 나의 내면아이를 끌어안고 이제 열정적으로 살아가자! 지금 당장! 행동이 변해야 삶이 변하고 인생이 변한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쉬운 '이유나 변명을 달지 말고 열정적으로 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열정적으로 살자!!

 

5. '옥의 티'를 찾아서

  이 책의 저자 '석산'은 자신의 본명을 밝히지 않고 있다. 자신의 전공도, 자신의 출신 대학도 책에는 적혀있지 않다. 아마도 경제분야를 전공한 다방면에 박식한 사람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심리학과 고려사에 대한 상당한 실력이 있음을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그러나 '석산'의 책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몇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첫째, 동북9성의 위치능 어디일까? 어린시절, 동북구성의 위치를 천리장성밖의 함경도 지역으로 배웠다. 그러나 이 설은 일본인 학자의 주장이며, 우리학자들은 길주설과 두만강 유역설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 영토를 축소시키려는 일본인 학자의 설을 궂이 적었어야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길주설과 두만강 유역설을 소개해주었다면 이 책이 더욱 빛났을 것이다.

  둘째, 광종은 숭유억불책을 썼는가? 이 책에는 "신정왕후 황보씨의 딸이 노골적으로 숭유억불 정책을 편 광종의 아내였다."라고 적고 있다. 광종은 최승로의 시무28조에도 나오듯이 말년에 불사를 많이 일으킨 왕이다. 광종이 숭유억불책을 썼다는 말은 수정해야한다.

  셋째, 충선왕은 원나라가 좋아서 고려에 안왔을까? 이 책에서는 "충선왕은 어릴때 부터 원나라생활에 젖어 있던 터라 고려보다 원을 더 가깝게 여겼다."라고 적고 있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다. 그러나 충선왕이 연경에서 전지정치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원나라 생활에 젖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의 정치변동에 따라서 왕권의 향배가 달라지는 고려의 뼈아픈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부분까지 지적해주었다면, 이 책이 더 빛났을 것이다.

  작지만, 아쉬운 '옥의 티'를 잘 닦아 준다면, 이 책은 더없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세상이 혼란스러울 수록 절대적 카리스마로 혼돈을 잠재울 영웅을 기대린다." 바로 '알파형 리더'를 기대한다. 전통시대! 그러한 알파형 리더가 나타나길 바라며 '제왕'이라는 존재를 만백성들은 우러러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왕'들도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알파형 리더'가 나타나기를 바라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어 삶을 개척해나갈 때만이, 참다운 주인으로 살수있다.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들은 신화를 만들어 낸다. "집단 무의식에서는 신화의 진위가 중요하지 않다. 그 의미와 지향하는 바가 중요한 것이다." 신념은 집단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다. '알파형 리더'를 바라는 잘못된 심리는 잘못된 집단 무의식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잘못된 집단 무의식은 '제2의 박정희'와 '제2의 히틀러'를 만들어 낸다. 우리사회는 과연 그러하지 않는지, 우리는 스스로 주인으로 살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이 책은 묻고 있다. 34명의 고려왕의 심리를 해부함으로써 그들을 저 높은 좌대에서 끌어 내어 우리 곁에 다가서게 했다. 그리고 묻는다. 민주주의 시대! 우리는 주인으로서 살고 있으며, 주인으로 살 준비개 되어 있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