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 - 인도사로 본 한국사회
이광수 지음 / 이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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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에게 일본혼을 심어줘야 하다. 그렇지 않고 조선인의 민족적 반항심이 타오르게 된다면 이는 큰일이므로 영구적이며 근본적인 사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곧 조선인의 심리연구이며 역사연구이다."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말이다. 역사가 핵무기보다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라는 이광수의 책은 인도사를 바라보는 통찰력으로 한국사의 아픈 곳을 꿰뚫어 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가 서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만들어진 인도'라는 사실에 놀라고, 인도의 다르면서도 비슷한 한국의 모습에서 다시한번 놀란다. 책장을 읽으며, 연신 핵폭탄을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인도에 대해서 한국 사회에 대해서 고민했다. 인도사학자 이광수가 전해준 충격을 함께 나눠보자.

 

1. 만들어지는 역사

 '역사는 과거의 객관적인 사실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번 지나간 역사는 똑같이 재현될 수 없다. 과거 사실을 카메라로 똑 같이 찍어 놓지 않는 이상 과거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 설혹 카메라로 과거 사실을 찍는다 하더라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이 어떠한 관점에서 사실들을 찍고 편집하는가에 따라서 과거 사실은 새롭게 창조된다. 인도의 역사도 역사의 재창조, 재해석 작업이 끊임 없이 진행되었다. 자신들에 의해서,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된 인도사는 인도인의 마음을 올가 메고 있다.

  인도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많은 사람들이 '힌두교'를 떠올릴 것이다. 저자 이광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힌두교를 설명하면서 '피자 효과'를 언급한다. 신혼여행을 로마로 갔을 때 맛보았던 담백한 이탈리아 피자는 다시 미국으로 전해져서 미국식 피자로 다시 태어났다. 이탈리아의 번화한 중심상점에는 미국식 피자가 즐비했다. 반면, 전통 이탈리아 피자를 먹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서민들이 살고 있는 골목을 찾아가야했다. 이탈리아를 점령한 '미국식 피자' 처럼, 인도의 힌두교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한번 굴절되었다. 그리고 초강대국 미국에 의해서 왜곡되었고, 다시 인도가 이를 역수입하면서 '미국식 힌두교'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힌두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그 속에는 서로 상반된 주장과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불살생과 소숭배, 정신적 안정의 추구를 핵심으로하는 힌두교만이 서구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되었고, 이를 힌두교의 전부라 믿는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인도의 슬픈 현실은 우리에게도 찾아볼 수 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라는 이미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서구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신경쓰며, 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한국의 이미지를 통해서 한국의 것을 찾는 어리석음을 우리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려할 때, 강력한 제국즤의의 군화발에 짓밟혔던 약소국들!! 그들은 스스로의 문화를 고민해볼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많은 고유문화들이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사라졌다. 타국의 시선이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에 대한 다른 선입견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인도는 종교의 나라이다.' 혹은 '인도는 종교 때문에 서로를 죽이기도 한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중세 인도에 침입한 무슬림들이 인도의 사원을 약탈했으며, 이것이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저자 이광수는 정면 반박한다. 소미나타 사원 약탈 사건을 살펴보면, 무슬림의 기록에는 대대적인 약탈 사건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힌두인들의 기록에는 그러한 기록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우상을 파괴했다는 자랑꺼리로 소미나타 사원 약탈을 과장했을 것이라는 것이 최근의 연구성과라 이광수는 주장한다. 그런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인도를 식민지배하면서 종교로 분할 통치하려했고, 서구 역사학자들은 충실히 제국주의자의 의도에 복종했다. 이슬람인들만의 기록을 토대로 힌두와 무슬림의 대립은 필연적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역사는 현재 인도를 종교 분쟁의 사회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서 마들어진 역사의 족쇄는 다시 인도인들을 분열과 대립의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서울 수 있다. 역사라는 무기를 수구세력이 잘알고 있었다. 뉴라이트세력들은 뉴라이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만들었으며, 국정 한국사교과서를 만들려했다. 친일파 중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분열과 대립, 좌절과 노예근성을 심어주려했던 그들의 노력은 다행스럽게도 촛불혁명으로 좌절되었다. 수구세력이 역사라는 무기의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던 시기에, 진보라는 사람들은 역사에 무관심했다. 역사를 수능 선택과목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우리의 역사를 말하는 것을 쇼비니즘적인 생각으로 몰아붙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해야할 때에 역사라는 배타적 민족의식을 기르는 과목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는 인상을 주었다. 역사는 평화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될 수도 있으나, 세상을 아마게돈으로 몰고갈 수 있는 핵무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할 것이다.

 500년 후,  '전두환은 평화주의자다.'라는 기록을 학생들이 배우게 된다는 상상을 당신은 해보았는가? 저자 이광수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와 비슷한 일이 인도사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쇼카왕은 인도 대륙을 정복하고 전쟁의 비극을 깨닫는다. 그리고 평화주의자가 되었다고 많은 이들이 믿고 배우고 가르치고 있다. 만약 아쇼카가 평화주의자라면 깔링가 정복 후, 15만 명의 포로를 풀어주었어야했다. 그러나 아쇼카는 15만 포로를 풀어주지 않았다. 그가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더 이상 추가적인 대외 팽창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뿐이다. 대외팽창보다는 충분히 팽창된 영토를 안정적으로 다스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제대로된 사료 비판을 하지 않고, 아쇼카가 남긴 글들만 그대로 믿는다면, 전두환이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반포한 글들을 그대로 진실로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러한 이광수의 지적은 나의 머리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사료비판!! 이는 깨어있는 사람이 되기위한, 깨어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 요소였다. 아쇼카가 만들어 놓은 아쇼카식 역사를 바로보지 못한다면, 500년 후, '전두환은 평화주의자다.'라는 왜곡된 역사를 우리 후손들이 배우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

 

2. 인도사를 통해본 한국의 민낯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저자 이광수의 날카로운 인도사에 대한 통찰에 놀라고, 그의 한국사에 대한 송곳 같은 비판에 아파한다.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인도를 바라보았다. 그러한 잘못은 우리가 우리를 바라볼 때도 반복된다. 진정한 자아를 찾이 못한 인도와 한국의 모습은 너무도 닮아 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도와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자.

  '네루왕조'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네루를 비롯해서 그의 딸인 인디라 간디, 인디라 간디의 큰아들 라지브 간디로 이어지는 네루 혈통들이 인도의 수상직을 역임했다. 네루의 후광을 등에 업고 검증보다는 혈통을 중요시하는 전근대적인 모습은 한국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버지 박정희가 18년 동안 철권통치를 했다. 그리고 박근혜는 정치를 시작한지 18년만에 18대 대통령이 되었다. 인간은 왜이리도 어리석을까? 한 나라를 이끌 지도자라면, 혈통보다는 능력을 보아야한다는 진리를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무당에게 연설문을 수정받고, 세월호 7시간 동안 머리 올리기에 정신없었던 지도자를 아직도 추종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박근혜 통치시기, 국민은 좌와 우로 분열되었다. 박근혜는 한국인 모두의 대통령이기 보다는 보수의 대통령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Divide and rule(분할하여 통치하라)"의 통치방식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하면서 사용한 방식이다. 힌두와 무슬림을 분리하여 인도인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물론, 일제가 문화통치시기 친일파를 양성하여 우리민족을 분열시키려했던 것과 같은 방법이다. 사회를 하나로 통합해야하는 것이 지도자의 의무일 터인데, 자신의 권력을 쥐려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비열한 통치는 인도와 한국에서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학습지를 만들지 않아, 인터넷에 보면, 나보다 더 잘만드는 사람들이 많은데뭐!" "SKY 나온 애들이 나보다 잘하잔아. 그네들을 믿어"라는 말을 젊은 시절에 선배 교사로부터 들었다. SKY 출신이라면 주눅부터 드는 나약한 선배교사!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선배교사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SKY는 최고"라는 신화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으며, 나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을 내재화하고, 한국사회의 주인으로 살기보다는 노예로 살려는 자들이 우리주변에는 너무도 많다. 한편, 한국사회의 "SKY 출신"이라는 신화는 다시 수구 신문에 의해서 합리화되고 있다. 수구신문은 한국사회의 평화와 자주를 싫어한다. 일본자위대의 위협비행을 수구신문은 일본의 편에서 일본의 입장을 대변한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제한을 일본의 입장에서 변호한다.

   이러한 모습을 인도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브라만 세력을 약화시키려했던 아쇼카왕의 노력은 그가 죽자 실패로 끝났다. 결국, 브라만과 왕은 타협한다. 브라만은 현실 세계의 왕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댓가로 브라만은 경제적 풍요를 누린다. 브라만은 자신의 특권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신화'를 만들고, 그 신화에 자신을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왕의 족보에 삽입해준다. 견고한 브라만의 '신화'는 현대 인도사회 속에서도 살아남아 있다. 다른면서도 비슷한 인도와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씁슬함을 감출 수 없다.

  인도농민의 자살 쓰나미가 밀려왔다. 2006년 한해 동안 1만 7060명의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국적 농업회사의 횡포속에 나약한 농민들은 죽음의 길을 택했다. 개방화 신자유주의의 높은 파고를 헤쳐나가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농민의 모습은 한국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더이상 농민의 죽음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지는 못한다. 개방화 속에 농촌에는 젊은이가 없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래다. 농촌은 공동화되고 있다. 인도보다 더 심각한 농촌문제를 보면서 사라지는 농촌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괴롭다.

  저자 이광수는 냉철하게 인도역사를 읽어내려간다. 인도 고대사를 전공한 그가 인도의 현대사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꿰뚫어보고 있다는 점에서 연신 감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우리는 우리를 제대로 보고 있었던 것일까?

 

3. 과연 그럴까?

  날카로운 이광수의 글들을 읽으면서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저자 이광수와 나의 역사관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어찌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이광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살펴보자.

  첫째, 굽타 시대를 '고대 인도의 황금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인가? 저자 이광수는 굽타시대 브라만을 5.18 후 전두환을 위해서 기도한 목사들에 비유한다. '마누법전'에 브라만의 특권을 합리화하는 내용이 있다는 내용은 카스트에 저항하는 조짐이 빈발했다는 반증이라 주장한다. 이시기 발달한 언어학과 천문학은 신을 위한 것들이라 주장하며, '고대 인도의 황금기'라고 보기 보다는 '브라만 문화의 황금기'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라 주장한다. 이광수는 브라만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다는 생각이든다. 문학, 천문학, 언어학이 신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발전했다면 그것은 인도문화의 한부분이다. 따라서 그 가치를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고대의 문화들은 지배층의 문화가 아니었던가? 그리스로마의 문화도 수많은 노예 노동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진배층의 문화였다. 중세의 성당들도 농노들의 경제력을 찾취해서 만들어진 기념물들이었다. 조선 세종시대의 문화도, 조선의 농민들을 수탈해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 문화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는 않는다. 그시대 그 사회의 생산력의 한계가 분명히 있었기에 그것 나름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둘째, 민족주의는 반역일까? 저자 이광수는 "민족주의가 강할 수록 다른 의제는 위축된다."라고 주장한다. 민족주의 담론만이 지배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비타민C를 과다 섭취할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민족주의의 과다는 분명 심각한 문제를 유발시킨다. 그러나, 인간이 생존하는데 비타민C가 필요하듯이, 인류가 생존하는데 민족주의는 필요하다. 이광수가 지적하듯이 거대한 인도가 작은 나라 영국의 식민지가 된 것은 인도인에게 '민족'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했듯이, 사피엔스가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을 박멸하고 지구별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상상의 공동체를 믿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강력한 '민족'이라는 무기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파괴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을 보호하는 안전망이 될 수도 있다. 서구의 강대국들은 민족주의라는 무기를 선업혁명과 결합시켜 대외 팽창의 에너지로 활용했다. 그들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수입했다. 저항적 민족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히틀러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경험한 서구는 민족주의를 반역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서구의 이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학자들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한국도 서구와 같이 원초적 민족의식이 없었다고 규정한다. 사실 유럽은 근대에 국민국가가 만들어졌다. 그러니 민족이라는 원초적 개념이 근대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부터 '삼한일통'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타민족을 지배하면서 팽창해간 역사가 아니기에, 좁은 한반도에서 동류의식을 키워갔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왕을 버리고 일본군에게 세금을 바치면 될텐데도, 조선의 백성들은 왜군에 맞서 싸웠다. 못난 지배층을 버리지 않고 피눈물을 흘리며 이땅을 지켜낸 민초들을 보면서 묻는다. '무엇이 당신들을 싸우게 만들었냐고?' 왜군이 이해못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일본에서는 성의 주인이 바뀐 것은 백성들에게 세금낼 대상이 바뀐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조선의 백성들을 달랐다. 원초적 민족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땅을 지켜올 수있고, 통일을 이끌수 있는 원동력이 '민족'에 있다. 민족이라는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고, 민족주의에 가려 의제화되지 못하는 의제를 발굴한다면, 민족주의는 반역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한 이념과 사상은 존재할 수 없기에 '민족'을 수선해서 인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셋째, 변혁인가! 안정인가! 저자 이광수는 말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사회에서 방치되어 있는 계층이 이렇게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나라는 없다. 총기가 난무하는 5.18때도 전당포 한 곳 털리지 않았고, 전국에서 백만명이 모여 촛불을 밝히면서도 사건 사고 한건 터지지 않았다."라는 글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박노자가 '평화적인 방법만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쓴적이 있다. 그들에 눈에는 한국인들이 평화적인 방법만을 고수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평화적 3.1운동에서 평화적 촛불집회가 이상해보일 수도 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일제의 식민지배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냉정한 비판도 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무장투쟁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안정이 사회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알고 있지 않은가?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명예혁명을 비롯한 정치적 사회적 변혁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는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국가의 에너지를 국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소비했다. 영국과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영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연기에 있었다. 평화적 방법을 통해서 정권을 교체시킨 우리의 저력은 비판의 대상이기 보다는 타국이 배워야할 교본이 아닐까?

  저자 이광수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나와 관점이 다를 뿐이다. 그의 탁월한 시선을 따라가며 그의 주장에 반문을 던지는 경험 자체가 나로서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실 이광수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겨울의 세계사 연수에서였다. 인도사의 권위자를 만나 인도사에 대한 편견을 수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으며, 인도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우리 사회와 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주제는 '인도는 왜 매국노가 없을까?'라는 주제였다. 세계사 연수에서는 한국에서는 매국노가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인도는 그러하지 않았다고 규정한다. 이 책에서는 여기에 "인도에서는 대영제국의 지배에 찬성하는 이들이 존재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식민지배를 했지만, 한국에서는 친일 세력이 존재의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식민지배를 했다."라고 말한다. 한국사의 맥락에서 인도사를 이해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오류들! 인도사는 인도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함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인도사와 한국사를 비교함으로서, 그 대비를 통해서 한국사를 분명히 알게되기도 했다. 그래서 일국사를 뛰어넘어 세계사의 시각에서 한국사를 바라보자는 말이 설득력을 얻나보다.

  부처는 자신을 신으로 신봉하라 말하지 않았다. 그져 먼저 깨달은 사람일 뿐이다.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철저히 부정했고, 한곳에 머무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불교는 부처의 말을 어기고 불교 교단을 형성했다. 인도에서 불교가 융성할 수록 불교의 퇴보는 시작되었다. 발전이 퇴보로 이어져 인도사회에서 불교가 힌두교에 포섭되었다. 서구의 일직선적, 단선적 발전 사관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인도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는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화두를 던져준다. 사고의 확장을 바라는 독자, 인도사를 바로보는 것을 뛰어넘어 한국사를 꿰뚫어보고 싶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ps.  이책을 사랑하는 관점에서 오류 몇가지를 지적한다. 인도사 전공자이다보니, 한국사에 대한 설명에서 오류가 몇가지 보인다.

144쪽 "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거란족이 함께 만든 나라"라는 표현은 '거란족'을 '말갈족'으로 수정해야한다. 거란족은 발해를 멸망시킨 족속이다.

157쪽 "5세기경 고구려에서는 차별을 기초로한 율령적 신분제가 나타났다. " 고구려는 4세기 소수림왕때 율령이 반포되었다. 5세기를 4세기로 수정해야한다.

265쪽 "쇄국"이라는 용어는 "통상수교 거부정책"으로 수정해야한다. 한국사 용어가 바뀌었다.

75쪽 "항일 독립군에 가담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왕조의 복원을 주장했다. 그들이 꿈꾼 것은 평등사회건설이 아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라는 서술은 매우 잘못된 표현이다. 물론 왕정복구를 추구한 세력이 있었다. 그러나 3.1운동 이후, 공화정으로 대세가 바뀌었다. 3.1운동의 결과 민주공화정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부분은 반드시 수정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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