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 데이트, 쇼핑, 놀이에서 전쟁과 부자 되기까지 숨기고 싶었던 인간 본성에 대한 모든 것
앨런 S. 밀러.가나자와 사토시 지음, 박완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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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은 1면년전 석기 시대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 최적화된 뇌를 가지고 21세를 살아간다. 우리가 본능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이시기에 만들어진것이다. 이것이 진화심리학의 기본전제이다. 인간행동의 근원을 무의식에서 찾은 프로이드와는 달리, 인간은 백지 서판(Tabula rasa)이 아니며, 인간은 이미 형성된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는 '사바나 원칙'을 전제하고난 이후에 인간의 행동을 설명한다. 인간을 동물과 다른 존재로 보지 않는 진화심리학은 우리를 불편하게한다. 인간행동의 근원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조금의 불편함을 참고 책을 읽어보자.

 

1. 진실에 직면하라.

  "진화 심리학은 성차별을 합리화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자연주의적 오류'와 '도덕주의적 오류'를 집고 넘어간다. 자연스러운 것이 곧 좋은 것이라는 '자연주의적 오류'는 남성은 아프리카 사바나지역에서 투쟁을 통해서 사랑을 쟁취했기에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르는 폭력적 행동은 정당하다는 오류를 낳는다. 반면, 바람직한 모습이 바로 사물이 존재하는 모습이라는 '도덕주의적 오류'는 남녀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똑같이 대할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보수주의자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저지르고, 진보주의자는 '도덕주의적 오류'를 저지른다. 나 자신도 '도덕주의적 오류'와 '자연주의적 오류'를 왔다 갔다하면서 많은 오류를 범했다. 나의 참된 마음을 바로 보아야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모두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도덕주의적 오류'와 '자연주의적 오류'를 끌어와서 자신의 논리를 강화시킨다. 인간은 백지 서판(Tabula rasa)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아야한다. 그럴때만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인간이 문명에 위협을 주는 요소를 억제할 수있다. 이것이 우리가 진화심리학을 읽어야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밖에도 이책에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들을 무참히도 깨부순다. 1854년 워싱턴 주지사가 두워미시 인디언 부족 대표인 시에틀 추장을 만나 "감동적인 연설"을 한다. "어떻게 하늘과 땅을 사고 팔수 있나?"라고 반문하며, "땅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연설은 인디언들이 자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주는 감동적인 연설이다. 그러나, 이 감동적인 연설은 백인 드라마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연설이었다. 인디언도 생존을 위해서 자연을 이용했다. "환경보호"는 산업화 이후에 자연을 인간이 파괴하면서 생겨난 관념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을 다를 수 있다는 근거로 "교사용 지도서"에까지 소개된 마가렛 미드와 사모아제도의 이야기도 사실은 거짓이라 이 책은 주장한다. 1923년 3월 13일 미드는 잘못된 인터뷰자료를 채집했고, 1928년 '사모아의 성년'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해서 페미니스트의 환영을 받는다. 그러나, 1988년 5월 2일 여든 여섯살이된 파푸아는 사모아 정부관료에게 '마가렛미드에게한 청소년들의 성적 행동에 관한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였음을 말한다.이들 이야기들의 진실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이 비슷하며, 이 전제를 인정해야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음을 진화심리학은 말한다.  

 

2. 진화심리학에 깃든 프로이드의 모습

  프로이드의 제자들이 프로이드를 떠난 이유는 인간의 모든 행동의 근본을 '성적 에너지'로 보았기 때문이다. 동물과 다른 인간의 고귀함이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는 무시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진화심리학은 프로이드보다 한발자국 더나아간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사바나 지역에서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만들어진 본성으로 파악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예외도 없다. 이러한 진화심리학의 설명은 우리를 불편하게 함과 동시에, 달리 이해되지 않았던 인간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남자는 결혼해야 철이든다."라는 말고, "남자는 결혼해야 돈을 모은다."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내의 주변에서 만이하는 이러한 말들이 사실은 사실이 근거한 말이었다. 범죄자가 결혼하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과학자의 경우 결혼을 하면 연구성과가 떨어진다. 이를 진화 심리학으로 설명하면, 번식에 성공한 남성이 목적달성을 했기에 '범죄'와 '연구'에 흥미를 잃었기 대문이라 설명한다. 남성은 기본적으로 부와 권력을 획득하여 많은 짝짓기를 하려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범죄도 서슴치 않는 설명이 좀 불편한가? 다음 설명은 어떠한가?

  세계 곳곳에서 자녀의 성을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는 이유를 아는가? Mommy's baby, Daddy's Maybe라는 말이 있다. 어머니는 아기가 자신의 자녀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버지는 DNA상 자신의 자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세계 곳곳의 약 10%의 어버지는 유전적으로 자신의 자식이 아닌 자식을 친자식으로 알고 기르고 있다.(미국 10%~20%, 독일 9%~17%, 멕시코 10%~14%) 오쟁이를 당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남성에게 아내는 아기가 아빠를 닮았다는 확신을 주어야한다. 그리고 아빠의 성을 따름으로서 확신을 배가 시킨다. 그래야만, 아버지는 아기에 대한 투자를 함으로써 아기의 생존률이 높아진다. 그존의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던 일들이 말끔이 설명된다.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을 가진 느낌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보자. 오쟁이를 당할 수 있는 남성은, 자신이 오쟁이를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때, 어떻게 변할까? 이 책에서는 '의붓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위험스런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함께사는 부모가 둘다 생물학적 친부모가 아닌 유아와 아동은 생물학적 친부모 모두와 함게 지내는 경우에 비해 가족 내에서 상해를 입거나 살해될 가능성이 무려 40배에서 100배나 높은 현실'을 지적한다. 신문지상에서 흔히보는 의붓아버지의 딸 성폭행과 학대, 그리고 살해가 진화 심리학의 눈으로보면,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인간은 윤리나 도덕으로 제어가 되지 않는 본능이 살아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3. 진화심리학으로 인생의 지혜를 얻다.

  모로코의 물레이 이스마일 황제는 1042명의 자녀를 두었다. 700명의 사내아이와 324명의 여자아이를 두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너무도 많은 자녀를 두었기에 중간에 자녀를 세다가 말았다는 사실이다. 남자는 권력과 부의 유무에 따라 자녀를 많이 둘수도 있으며, 한명도 가질수 없을 수도 있다. 냉혹한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의 생존경쟁 속에서 번식의 기회를 잡기 위한 숫컷의 혈투가 시작된다. 이를 위해서 숫컷은 폭력과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숫컷의 본능은 전쟁에 나가 목숨을 바치기도하고, 전쟁터에서 상대편 여성을 성폭행하는 잔인한 모습을 드러내기도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인정하고 현실을 바라보면, 그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남자에게 일부일처제가 유리할까? 일부다처제가 유리할까? 남자들은 자신이 거느릴 수많은 여성을 생각하며 일부다처제가 남성에게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경제적, 사회적 부와 지위가 높은 매력적인 몇몇의 남성들이 많은 수의 부인을 차지하고, 다수의 남성은 결혼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번식을 할 수없는 숫컷들은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내게된다. 저자는 이슬람국가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많은 이유를 일부다처제에서 찾고 있다. 자신의 바램과 현실을 착각하는 다수의 남성들은 일부일처제가 다수의 남성들에게 유리한 고마운 결혼제도임을 모르고 있다. 어쩌면일부일처제는 사회의 폭력을 막기위해서 고안된 가장 소중한 발명품일지도 모른다.

  진화심리학은 좋은 상대를 구하는 지혜를 주기도한다. 남성은 가임능력이 우수한 여성을 얻기 위해서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 여성을 찾는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단기적 짝짓기를 할경우에는 매력적인 남성을 고르지만, 장기적인 짝짓기를 할 때는 자산과 지위가 높은 사람을 선택한다. 이것은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본능이라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윤리적 잣대로 비난한다. 빌게이츠가 대학 강연에서 대학생들에게 "현실은 공평하지 않다. 우선 이를 인정하라"라고 말했다. 우리의 본능은 도덕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를 인정하자. '도덕주의적 오류'에 빠져 본능을 비난하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올바른 대안을 얻을 수 없다. 차가운 머리에 따뜻한 가슴으로 현실을 살아가자. 물론, 현명한 남성과 여성은 본능을 뛰어 넘는 안목을 가질 것이다. 장기적 행복을 위해서 그녀(혹은 남성)의 성격과 인성을 볼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따져볼 것이다. 그것이 자신과 자녀의 행복을 결정할 테니까.... 

 '잘생긴 남자는 형편없는 남편'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씨앗을 뿌리며 자손을 번식시키고는 육아를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매력적인 여성은 단기적 상대보다는 장기적 상대를 두려 노력한다. 그렇다면, 매력적인 여성을 얻기 위해서 남성은 여성에게 어떠한 선물을 해야할까?

 

 "비열한 남자와 좋은 아빠를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받는 구혼선물은 호사스러울 뿐아니라 본질적인 가치가 깃들어 있지 않아야한다."-142쪽

 

  놀랍게도 장자에서 말하는 '무용의용(無用之用)'을 여성을 바라고 있다. 여성이 다이몬드와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호사스러울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가치가 깃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용적 가치를 중시 여기는 나의 사고가 여성에게는 맞지 않는 생각일수 있었다. 여성의 장기적인 짝짓기를 위한 고차원적인 전략을 아는 미처 몰랐었다.

  진화 심리학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괴롭힘에도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브라운은 여자가 노동력에 합류하기 훨씬 전에 남자가 서로에게 그렇게 학대하고, 위협하고, 체면을 떨어뜨리는 처우를 해왔다고 지적한다. 남자가 여자를 이런식으로 괴롭히는 것은, 여자를 남자와 다르게 대해서가 아니라 바로 정반대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성을 남성과 똑같이 대해달라는 패미니스트의 주장은 진화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같음을 강조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로운 문명사회를 이룰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사회가 덜 폭력적이고 보다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4. 동의할 수 없는 것들

  진화심리학이 기존의 사회과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사건들을 새로운 시작각으로 깔끔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모든 인간의 행동을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다. 진화심리학이 설명하는 몇몇 주장은 도의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첫째, '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살해할까?'라는 의문에 명확한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 이책의 저자는 라이트가 진화심리학이 설명하지 못한 목록에 이 주제가 올라가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생물학적 친부가 아니기에 의붓자식을 죽인다고 저자는 결론 내린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족집단자살은 친부가 친자식을 죽이고 자살한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본다면, 자신은 죽더라도 자녀는 살려두는 것이 자신의 DNA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자녀를 죽이는 한국의 가족집단자살은 진화심리학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둘째, '제눈에 안경은 없다.'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처음본 외국 인물을 보고 매력적인 이성을 선택하는 것이 공통된다는 점을 들어, '제눈에 안경'은 없다고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더 나가서 대중매체에 의해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의적으로 설정하고 퍼뜨린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그러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비만한 양귀비를 떠올린다면, '제눈에 안경은 없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현대의 미녀들는 너무도 다른 모습의 미녀들이 과거에 존재했다. 동시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동일한 미의 기준이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적으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와 미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진화심리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눈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다.  인간은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지대에서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 해왔던 행동을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행하고 있다. 인간은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행하던 폭력적인 모습을 줄이려 도덕과 윤리라는 눈에 보이지 않은 이데올로기로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고 문명을 했다. 서양 중세시대에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고 부정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인간을 움직이는 힘을 무의식과 인간의 욕망이라는 사실을 긍정하게된다. 윤리, 도덕과 인간의 욕망의 조화를 통해서 인류는 문명사회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 인류의 과제이다.

  사바나 초원지대에 알맞게 진화한 우리의 두뇌는 인간의 본능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조절하며 1만년을 살아왔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빠른 변화라는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했다. 빠른 변화에 잘 적응하는 두뇌는 생존할 것이고, 적응하지 못하는 두뇌는 도태될 것이다. 자연에 적응하는 자가 생존해왔듯이, 21세기에 적응하는 자만이 자손을 남길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우리는 과연 그 과제를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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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전쟁사의 재조명
이덕일 지음 / 만권당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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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독립운동은 교육에 집중된 것으로 타국과 비교하기가 힘든 특별한 사례이다.' '세계 독립의 역사'를 쓴 알파고 시나씨의 말이다. 우리의 독립 운동사가 무장투쟁이 아닌, 교육운동에 지나치게 치중했다는 주장 자체가 동의하기 힘들었다. 청산리 대첩부터 1930년대 한국 독립군의 대전자령전투와 조선의용대의 태항산 전투를 알파고 시나씨는 알지 못하나 보다. 우리의 항일 무장투쟁사는 지나치게 일반에게 알려져 있지 않으며, 학생들도 공부하기 힘들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덕일이 '한국 독립전쟁사의 재조명'이라는 책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리고 책장을 넘겼다. 이덕일은 나의 기대에 부흥해주는 책을 내주었을까?

 

1. 강자의 정의만이 정의인 세상

  "유전무죄 무전유죄" 1988년 10월 16일 지강헌이 일가족을 인질로 잡고 언론에 한말이다. 감옥을 탈옥한 지강헌의 한국 사법체계,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부조리함을 알리며, 자신의 한맺힌 가슴을 열어 보이고 싶었나보다. 지강헌의 절규는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은 동아시아 근현대사에서도 목도된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는 전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이뤄졌다. 유럽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나치 전범에 대한 강력한 응징이었다. 그러나 극동군사재판에서는 제대로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동양의 히틀러인 히로이토를 살려주고 일본의 통치 협조를 받아내는 거래를 맥아더는 해낸다. 백인만을 위한 정의가 실현되는 장면이다. 미국의 이익앞에 약자의 정의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아니,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에반해 일제에 의해서 백인 포로를 감시했던 한국인 B, C급 전범들은 가혹한 처벌이 이어졌다. 극동군사재판에서 중요시여겨진 것은 백인에게 가해진 고통이었다. 약자인 아시아인의 고통에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 힘없는 정의는 정의일 수 없다는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이덕일은 이 무거운 주제를 서론 '식민사관 재등장의 역사적 배경'에서 담담하게 서술했다. 이 책은 제1부 아나키즘 독립전쟁사와 제2부 한국 독립전쟁사의 몇 장면 보다 서론이 강력한 인상을 주는 책이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친일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여러 이유중에 하나를 이덕일은 서론에서 말해주고 있었다.

 

2. 조선인 아나키스트의 불꽃같은 삶

  아나키즘하면 '의열단'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덕일은 이회영과 이상룡 선생을 떠올린다. 그는 석주 이상룡 선생의 사상을 조명하면서 아나키즘에 관심을 갖는다. 석주 이상룡 선생이 만든 자치조직 경학사와 부민단은 상호부조의 아나키즘의 이상사회와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다. 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다. 이덕일은 서구 사상의 맹목적 수용이라는 관점에서 이상룡 선생의 사상을 바라보지 않느다. 아나키즘의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동양의 고전에서 강조하는 대동사상과 유사점이 많다. 동양 고전 사상에 바탕을 둔 이상룡 선생의 생각이 서양의 아나키즘과 일치했기에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다고 이덕일은 보고 있다. 즉, 서양의 사상을 우리 동양 사상을 기반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장점은 흡수하되 단점은 단점대로 인식하고 비판했던 이상룡 선생의 사상은 '대학'에 " 好而知其惡하며, (고로 이지기악하며), 惡而知其美者가 (악이지기미자가) 天下에 鮮矣니라"라는 말이 있다. '좋아하지만 그 나쁜 점을 알고, 싫어하지만 그 아름다운 점을 아는자가 천하에 드물다.'라는 뜻이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서양의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서양사상에 매몰되어 서양사상의 노예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탄탄한 사상적 기반 위에서 서양사상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였다.

  서양사상을 자신의 주체적 관점에서 소화해서 받아들인 사람은 이상룡 선생뿐만 아니라 이회영 선생이라는 분도 있다. 특히 '양명학의 대동사회가 아나키스트들이 추구하는 이상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도 일방적 서구문물의 수용을 추구하기 보다는 우리 내부의 사상적 기반위에서 서구의 사상을 수용했다. 사상의 변화는 어느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내적 성찰과 교류를 통해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양명학과 아나키즘의 관계에 주목한 이덕일의 주장은 탁월했다.

 

3. 독립운동사의 몇장면

  이덕일은 '한국 독립전쟁사의 몇 장면'이라는 주제로 5가지 주제를 소개하고 있다. '독립 전쟁사'라는 말보다는 '독립운동사'라고 하는 것이 더 합당했다. 우리 독립운동사의 몇장면을 보며 들었던 단상을 적어본다.

  첫째, 높아져가는 고종에 대한 실망감!! 을 들수 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고종이 새벽까지 잔치를 벌이며 놀다가 새벽 4시~7시경에 침소에 들어갔다는 기록을 보고 반신반의했다. 설마, 아무리 망국의 왕이라 할지라도 이정도이기까지 했겠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덕일은 정환덕의 '남가몽'을 인용해서, "고종이 침소에서 낮 12시 전후에 나오니 백관의 조회는 하지 않아도 저절로 끝나버린다."라는 문장을 소개하며 고종의 자질부족을 지적했다. '매천야록'뿐만 아니라 정환덕의 '남가몽'에서도 고종의 모습이 확인된 것이다. 고종에 대한 실망감은 분노로 이어졌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수신도 제대로 못하는 존재가, 어찌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겠는가!

  둘째, 아관파천의 목적을 어떻게 파학해야할까? 이덕일은 황현의 '매천야록'을 인용하며 "헌정에 속박되는 것을 싫어했기 대문"에 입헌 정치 체제 수립을 막기 위해 아관파천을 단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일제가 조선을 이때 보호국으로 만들려했으며, 고종은 을미사변 이후, 자신도 일제에 의해서 암살당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선교사가 가져온 통조림으로 연명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아관파천은 일제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보아야하지 않을까? 고종을 일방적으로 자질이 부족한 왕으로 평가하려는 이덕일의 주장에는 동조하기가 힘들다. 고종도 일제에 저항하며 왕조를 유지하려 노력한 인물이다.

  셋째,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덕일의 주장에 따르면, 전력상 일본은 청나라를 따라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일제가 청나라를 이길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덕일은 일본의 치밀한 전략과 반드시 이기겠다는 결의를 일본승리의 원천으로 꼽는다. 패배주의에 휩싸인 늙은 제국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존재에게도 어이없는 도주를 일삼는다. 반면, 일제는 정신병적 광기에 휩싸여 돌격앞으로를 감행한다. 전체주의의 광풍에 휩싸인 일제의 모습은 두렵기까지하다.

 

 

  이책은 이덕일이 여러 논문을 묶어 책으로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서론, 본론, 결론의 서술구조가 논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들게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이덕일 특유의 필력이 살아있다. 술술 읽히는 쉬운 문장들과 다음 페이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그의 필력이 살아 있다. 그럼에도 제목이 '한국 독립전쟁사의 재조명'임에도 불구하고 항일 무장투쟁사에 대한 서술이 없고, 아나키스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사의 몇몇 장면을 소개한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덕일이 우리의 항일 무장투쟁사를 정리한 책을 펴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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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보급판 문고본) -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틱낫한 지음, 최수민 옮김 / 명진출판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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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나는 일이 많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우리의 사법부에게서 느끼는 분노에서부터,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에게 받는 화가 너무도 많다. 화를 내면서도 화가 나를 갈가 먹고 있다는 생각을 끊임 없이 한다. 내가 읽은 심리학 책에서는 화를 내지 말라고 말들한다. 그렇지만, 화가 났을 때,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칠게 타인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고서도 나의 화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심리학 책에게 얻지 못한 해결책을 불교에게서 얻고 싶었다. 서가를 거닐다가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라는 부재도 마음에 들었다. 틱낫한 스님은 화를 어떻게 다스리라 조언해줄까?

 

1. 화가 들어있는 음식을 먹지 말라!

  틱낫한 스님은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음식을 통해서 화를 먹지 말것을 당부한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서 화를 먹을 뿐만이 아니라 눈과 귀와 의식을 통해서도 화를 우리 몸에 받아들인다."-19쪽, 틱낫한

 

  공장식 사육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현대의 축산시설에서 자라난 동물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빠른 생육과 질병예방을 위해서 각종 생장촉진제와 항생재를 맞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고기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나의 몸상태를 교란시키고 과도한 생장촉진제와 항생재를 섭취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뿐이 아니다. 과자를 비롯한 음료수에는 각종 합성첨가물들이 들어있다. 바나나맛 우유에 바나나는 들어있지 않고, 대부분 바나나맛을 내는 첨가재가 들어있다. 이러한 음식을 먹고 건강한 내모습을 바란다면 지난친 욕심일 것이다. 라틴어 아식스(ASICS)라는 말이 있다. 상표이름으로 유명한데요. 원 뜻은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아니마 사나 인 꼬르 뽀레 싸노 Animus Sanus In Corpore Sano)"라는 뜻이다. 화를 다스리고 싶다면, 나의 몸에 화를 담아서는 안된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듯다는 말은 나의 몸에 화를 담지 않아야 화가 없는 정신이 깃들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단지 먹는 것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영상매체를 비롯해서 귀를 어지럽히는 더러운 말들과 더러운 잡념들을 물리쳐야한다. 바람이 부는데 깃발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랄수 없는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화를 다스릴 수 있는 조건을 먼저 갖출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2. 어머니가 아기를 대하듯이 화를 대하라

  화를 내고 나서 마음이 찝찝할때가 많다. 그때 화를 내는 것은 부적절했다는 것을 화를 내고 나서야 깨닫는다. 화를 떨어내고 싶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다. 화를 내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화를 내는 나에게 틱낫한 스님은 어머니가 아기를 대하듯이 화를 대하라고 한다.

 

  "아기가 우는 것은 무엇인가가 불편하고 고통스러워서일 것이고, 그래서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어한다."-37쪽

  "화는 우리의 정신적 구성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장이나 신장을 돌보듯이 우리의 화를 돌보아야한다."-68쪽

 

  '화'와 '나'를 분리시키고, '화'를 없애버려야하는 구성물로 보아왔던 나에게, 틱낫한 스님은 화는 내 마음속의 우는 아기라고 말한다. 버리려해도 버릴 수 없는 화라는 아기를 탓해보았자, 화는 더욱 강하게 울뿐이다. 나의 내면에서 화가 나는 이유는 나의 몸안에 울고 있는 어린 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중받지 못해 상처받고 아파하는 아기가 사랑으로 감싸앉아 달라며 울고 있었다. 어른 몸에 깃든 어린 아기는 울부짓는다. 따뜻하게 안아 달라고.... 그런데, 나는 그러하지 않았다. 왜면하고 나의 몸속에서 내 쫒으려했다. 그럴수록 그 아이는 더욱 강하게 울어댄다.

  틱낫한 스님은 '화'도 우리의 정신적 구성물이라 지적한다. 화를 배척하기 보다는 끌어안으라 당부한다. 울고 있는 내면의 아기를 포용하고 내면 아기와 화해해야한다. 화를 다스리는 두번째 단계는 화를 나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울고 있는 내면 아이와 화해하고 사랑스럽게 안아주는 일이다.

 

3. 호흡과 미소와 보행명상을 의식적으로 실천하라.

  내면 아이와 화해하고 사랑스럽게 안아주었다면,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할까? 틱낫한 스님은 보행명상을 권한다.

 

  "호흡과 미소와 보행명상을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몸에 익히면 5분이나 10분이나 15분 안에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다."-41쪽

  "10분이나 15분쯤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고 걸음 걸이를 자각하면 그 사람은 응징이 아니라 도움을 받아야할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44쪽

 

  유발 하라리도 '비파사나'라는 걸으면서 명상하는 수행을 한다. 1년에 한달정도 '비파사나'를 하면 놀라운 집중력을 갖을 수 있고, 아침을 명상으로 시작한다고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불교의 명상 수행방법은 집중력을 높이는데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화를 다스릴 때도 큰 도움을 준다. 하기사, 화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할 수도 없기에 불교의 명상법은 불교신자 뿐만 아니라, 화가 범람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화에 집중할 수록 화는 더욱 치밀어 오른다. 화를 다스리기 위해서 화를 아기처럼 대하고, 호흡과 미소 보행을 하며 명상을 하면 화에게 나의 정신을 빼앗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보행을 한다는 것은 뇌과학적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산책을 하면 세라토닌이 분비되어 집중력을 높이고 머리를 맑게해준다. 단순히 앉아서 명상하는 것보다는 걸어다니면서 상처받은 나의 내면아기를 보살피는 것이 효과가 높다는 생각이든다.

  틱낫한 스님은 '화내는 것도 습관'이라 말한다. 그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 호흡과 미소 보행을 하며, 내면 아기와 대화하자. 우리 모습은 어린 시절 부모와 주변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살기 힘들었던 부모는 우리에게 많은 공감과 배려를 배풀어주지 못했다. 나의 주변인들은 나에게 수많은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친 부모들 밑에서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화는 대물림된다. 시대의 아픔이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고, 그 상처는 자녀들에게 대물림된다.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어떻게 보듬느냐가 우리의 현재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그 치유의 방법을 말해주고 있다.

 

4. 자각하라!

  호흡과 미소 보행을 하면서 우리는 화를 자각할 수 있다. 틱낫한 스님은 자각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화는 꽃과도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화의 본성을, 다시말해서 화가 일어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각의 에너지로 화를 감싸안는 법을 배우고 나면, 화라는 꽃이 봉오리를 터뜨리게 된다."-33쪽

  "마음속에 들어 있는 고통의 올가미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자각의 에너지로 그것들을 감싸안고 변화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178쪽

 

  정신분석학에서 '직면'을 강조한다. 자신의 상처를 회피하기 보다는 그 상처를 '직면'할때 치유는 시작된다. 틱낫한 스님은 정신과 의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치유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화를 회피하기 보다는 꽃을 대하듯이 화를 자각하고 감싸안으면 화가 일어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 꽃을 감싸 앉듯이 화를 감싸 안자. 꽃봉오리가 터지듯이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될 수 있도록 말이다. 나의 몸을 느끼고 사랑하는 것에서 진정한 사랑은 시작된다. 나 자신을 자각하며 상처받은 꽃은 치유의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다.

 

 

5. 공감과 연민하자.

  화를 다스리는 가장 높은 단계는 공감과 연민이다. 틱낫한 스님은 나를 화내게 한 사람을 화로 앙갚음하기 보다는 이해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내가 남의 마음을 아프게하면 그 사람은 더욱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함으로써 위안을 얻으려 할 것이다. .....  어느쪽도 앙갚음을 반복해서는 안된다."-27쪽

   "내게 화내는 사람의 말을 경청하라"-103쪽

  "상대방이 가진 나쁜 씨앗보다는 좋은 씨앗을 보아라"-81쪽

 

  '연민의 정'을 가지고 화내는 사람의 말을 경청하라는 틱낫한 스님의 말은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나의 경험상 학생들이 격앙되었을 때 먼저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말하도록 한다. 학생들의 말을 끝까지 듣고나서 내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학생들도 나의 말을 경청한다. '연민의 정'은 강력한 무기이다.

  '상대방이 가진 좋은 씨앗을 보라'는 틱낫한 스님의 말은 최성혜박사의 감정코칭이라는 연수에서 배운 내용과 유사하다. 상대방의 장점을 20개를 작성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나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불교철학이 현대 심리학과 서로 상통하는 모습을 이 책에서 다시한번 볼 수 있다.

  틱낫한 스님은 단순히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서 더 나가서, 나를 화가나게한 자에게 선물을 주라고 말한다.

 

  "화가 났을때 .... 그에게 선물을 주면 그에 대한 미움이 가라앉고 화가 풀리며 마음이 너그러워진다."-132쪽

 

  이 조언은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성현의 말씀은 서로 상통하는 것이 있다는 점을 여기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러나, 틱낫한 스님의 조언이 100%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당당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오히려 화를 내는 내가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상대가 비굴한자라면, 어떠한가? 내가 화를 내지 않으면 그는 더욱더 나를 만만히 보고 나를 무시할 것이다. 비굴한 학생들을 대할때도 마찬가지이다. 강하고 엄격한 선생님에게는 납짝 엎드려있다가도, 유하고 만만한 선생님에게는 날뛰며 떠드는 학생이 있다. 이들에게 연민과 관용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그뿐인가? 사회적 갑질을 하는자에게, 버닝썬 사태를 비롯한 국정농단 세력에게 관용이 과연 힘을 발휘할까? 그들을 용서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더 많은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고, 국민을 짓밟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해와 연민'은 나약한 감정이 아닐까? 틱낫한 스님은 당당히 아니라고 말한다.

 

  "이해와 연민은 나약하고 비겁한 감정이 아니다."-148쪽

 

  조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신을 역사에 던졌던 수많은 사람들은 복수의 감정만으로 불의에 대적하지 않았다. 아니, 복수의 감정만으로는 자신의 한평생을 정의에 바칠수 없다. 그들에게는 '약자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이었다. 조국을 짓밟는 일제에 대항해서 조선의 민초를 살리겠다는 약자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민주주의를 짓밟으며 자신의 왕국을 만들려는 독재자에게 항거하는 민주화 투사에게는 나라에 대한 사랑과 시민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연민과 이해'는 불의에 대항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해준다.

  틱낫한 스님의 '이해와 연민'은 조건이 필요하다. 상대가 비굴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나라를 팔아 먹는 큰도둑이 아니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이해와 연민'이 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물론 나의 마음을 치유하는데도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약자를 짓밟는 싸이코패스들에게는 정의의 단죄가 필요하다. 불의에 관대한 것은 악을 자라게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만 있는 병이 있다. '화병'이라는 병명은 세계에도 알려진 한국만의 독특한 병이다.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시대에 불교가 여인들에 의해서 신봉되었던 이유도 그녀들의 '화'를 치유해주는 방법을 불교는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우리는 누구나 관세음보살이 되어야한다.'라고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와 보살은 어쩌면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도달해야하는 이상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의 고통과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다리기 보다, 내가 고통을 이겨내고 문제를 해결해야되듯이, 부처를 기다리기 보다는 우리가 부처가 되어야한다. 팃낫한 스님은 '비가 내릴때 우리는 햇빛이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분노와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렇다. 현실이 비관적이라할지라도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희망은 그 자리에 있다. 우리가 발견못할 뿐이다. 우리가 화에 지배당하지 않고,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감싸안으며, 내면아이가 활짝 웃게할 수 있는 비결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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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가 2019-06-07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를 잘 승화시킨다면 삶에 대한 열정이 아닐는지...

강나루 2019-06-07 16:43   좋아요 0 | URL
그래요
화를 승화시키면 열정이 될수도 있을것같아요

붕붕툐툐 2019-06-07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권을 다 읽은 듯한 깔끔한 정리 감사합니다. 저도 명상을 하는데, 확실히 화에 효과가 있어요~ 좀 전에 바나나우유를 사먹고 싶은 충동을 참았는데 잘했다 싶습니다:)

강나루 2019-06-07 16: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두 짬짬이 명상을해보려 합니다

민트 2020-03-27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혹시 역사선생님이신가요?
 
조선 최대 갑부 역관 표정있는 역사 1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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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조선을 배경으로한 사극을 보면서 농민과 천민에 감정이입하기 하기보다는 양반과 왕들에게 감정이입한다. 분명 조선전기 양반은 기껏해야 2~3%밖에 되지 않았으며, 16세기 노비의 비율은 60%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우리 대부분은 양반의 후예이기 보다는 노비의 후예일 가능성이 더 많다. 자신을 고귀한 신분의 후예로 만들고 싶어하는 대중들의 바램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을의 입장에서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대중들이 현실을 떠나 사극에서나마 갑이어야 괴로운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양반이라는 지배층의 역사를 다루지 않는다. 그렇다고 농민과 노비의 삶을 다루지도 않는다. 우리가 사극을 보면서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역관의 삶을 다루고 있다. 역관의 삶을 들여다보자.

 

1. 공무역과 사무역의 최전선에 역관이 서다.

  '나랏말쌈이 중괵에 다라'라는 세종대왕의 말씀처럼, 중국과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역관은 중국과 우리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했다. 역관은 단순한 가교역할만 한 것이 아니다. 두나라 사이에서 무역을 했다. 역관의 활약은 조선에서 두드러졌다. 고려와는 달리 사농공상의 직업관을 가진 조선에서 역관을 사대부에 비해서 낯춰보았지만, 역관은 그러한 천대에 굴하지 않고 사무역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덕일은 책의 시작을 허생전에서 시작한다. 허생에게 차용증도 쓰지 않고 1만냥을 단숨에 빌려준 '변승업'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8포 무역으로 대표되는 역관들의 무역은 많은 이익을 통해서 역관들은 많은 이익을 남겼다. 그러나, 8포무역이 매번 큰이익을 준것은 아니다. 중국 채류기간이 정해져 있는 약점을 알고 있는 중국상인의 농간으로 많은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새로운 경쟁자로 상인이 등장하기도 했다. 많이들 알고 있듯이, '상도'의 주인공 임상옥은 중국상인들의 담합을 깨부수고, 인삼무역에서 10배의 이익을 얻었다. 역관과 상인들의 눈부신 활약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아닌, 사대부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상업은 규제의 대상이었다.

  청나라와 일본이 직교역을 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은 청과 일본 간의 중개무역의 이점이 사라진다. 그로인해서 일본 은의 조선 유입이 차단된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조선의 지배층은 강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업을 규제하려고만했다. 세계 정세 변화를 직시하지 못하고, 좁은 한반도에 갖혀서 구시대적인 방책만을 강구하는 조선의 지배층을 바라보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고, 조선이 근대화에 실패한 것은 일찍부터 세계의 흐름에 눈뜬 일본과, 세계 정세에 깜깜했던 조선의 모습에 그 근본적 원인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반문해본다. 과연 우리는 그 때의 조선과 얼마나 달라졌는가?

 

2. 조선이 염초를 수입해야했던 이유는?

  우리는 최무선이 화약을 개발했다고 배웠다. 화약만드는 기술은 조선세종시기를 전후해서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조선은 화약만드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다시 총력을 기울인다. 더 나아가 화약의 원료인 염초를 중국에서 수입하려 필사의 노력을 한다. 어찌된 일일까? 최무선이 이원엑 배운 염초제조 방법인 '자초법'을 200년의 평화시기가 도래하자 조선은 잊어버린다. 1급 군사기밀을 평화시기가 도래한다고 잃어버리다니! 말이되는가? 그러나 사실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문약해졌다. 성리학적 논쟁에는 탁월했을지라도, 나라를 지키는데는 무능했다.

  잃어버린 자초법을 다시 알아내기 위해서 역관들이 필사의 노력을 한다. 서천군보 임몽이 해상 자취법을 알아냈다. 그런데, '선조실록'을 쓴 사관은 임몽에게 동반실직을 하사한 것을 비난한다. '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었으나 천만 사람의 마음을 저하시켰'다고 비판한다. 한사람은 해상 자취법을 알아낸 임몽이고, 천만 사람은 옹졸한 조선의 사대부들이다. 나라를 위해서 공을 세웠으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상을 주어야함을 그들의 옹졸함은 용납하지 않았다.

 

3. 중인은 신분적 한계 때문에 조선왕조에 등을 돌렸다?

  '혈의 누'를 쓴 이인직은 대표적인 친일파이다. 러일전쟁시기 일본인 통역관이었으며, 이완용의 비서이기도 했다. 중인들은 신분적 한계 때문에 출세의 길이 막혔고, 때로는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서 조선왕조 몰락에 기여했다는 설명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과연 중인들 모두가 그러했을까?

  그러하지 않았다. 그들은 양반지배층들이 무능한 모습을 보일때, 앞장서서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했다. 청의 사신 목극등이 백두산의 경계를 정할대, 박권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백두산에 오르지 못하도록 한다. 박권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백두산에 올랐어야했다. 그러나 박권은 오르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역관 김지남과 아들 김경문 부자는 박권을 대신해서 조선의 이익을 지키려 노력했다. 문약한 조선의 사대부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을 금지 못하지만, 사대부의 문약함을 조선의 역관이 대신 매우고 있는 모습이 흐믓함을 느낀다.

  여관들은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지 보다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유년필독'으로 유명한 사학자 현채가 역관출신이었다. 일제에 아부하며 일제의 작위를 받고 은사금을 받은 일부 양반들에 비하면, 역관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할 수 있다.

 

  이 책은 기존의 이덕일이 써왔던 책들과는 다른 서술형태를 띄고 있다. 즉, 평전형식 혹은 역사평설 형식의 책이라기 보다는 일종에 논문을 대중을 위해서 풀어써 놓은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반의 그늘에 가리어 제대로 조명 못한 들의 삶이 이 책을 통해서 빛나 보인다. 소설을 읽는 듯한 박진감을 선보이는 이덕일의 평전형식의 책들에 비한다면, 책을 읽는 박진감을 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우리가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우리 조선의 다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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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테사 모리스 스즈키 지음, 서미석 옮김 / 현실문화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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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인생의 지혜를 얻기 위함이라 말하겠다. 인생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 역사, 철학, 심리학을 비롯해서, 부족한 나의 지혜를 채워줄 책들을 읽고 있다. 지혜를 채워줄 책들을 고를 때, 팟캐스트나 서평, 책제목을 보고 책을 고른다.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라는 책은 책제목을 보고 선택한 책이다. 북한 역사에 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나에게, 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북한의 역사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 나름대로 재미있는 북한의 역사를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놓치지 않았다. 1장 하얼빈과 후난을 시작해서, 2장 장춘과 선양을 거처 3장 랴오양과 첸산을 지날 때가지도 북한의 역사에 대해서 테사 모리스 스즈키의 탁월한 시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권근의 시를 인용할 뿐만 아니라,  화엄경의 "바다 한가운데에 금강산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옛날 옛적부터 모든 보살들은 그곳에 멈추어 살게 되었다."라는 구절을 인용할 때는 테사 모리스 스즈키의 한국사 뿐만 아니라, 불교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에 대해서 감탄을 했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보다 먼저 금강산을 여행한, 캠프의 기행문의 오류를 지적하기도한 그녀이기에 그녀에 대한 믿음은 굳건했다.

  그런데, 4장을 읽어 내려가는데도 저자는 선양과 단둥에 대한 이야기만 줄기차게 서술하고 있었다. '언제 북한에 들어가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북한의 역사를, 하다못해, 북한 주민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고대했지만, 북한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본 것은 7장 '새로운 예루살렘 : 평양'에서부터였다. 그런데, 8장과 9장10장은 남한에 대한 기행이었다. 북한에 대한 깊이 있는 서술은 5장과 6장 11장 12장을 포함한다해도, 12장 중에서 5장밖에 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 근현대사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고민을 살펴보기에는 너무 피상적인 북한에 대한 인상들 뿐이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인생은 "사기를 당했다.!!"라는 절망뿐이었다. 나의 기대와 책의 내용의 불일치 속에서 깊은 배신감이 들었다. 책제목을 '금강산을 가는 길'이라고 정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책의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고, 책을 읽으면서 독자가 기대하는 것과도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라는 제목 때문에 책의 내용과 제목이 일치하지 않으며,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더구나, '북한 근현대사'라는 제목은 대학교 수업에서나 사용하는 개설서의 냄새가 나기에 독자로부터 외면받기 딱좋다.  출판사 편집자들에게 부탁한다. 제목을 믿고 책을 선택했으나, 책의 내용과 제목의 불일치로 배신감을 느끼는 독자가 없도록 배려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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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5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5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