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사 강의 (리커버 에디션) - 다른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박노자 지음 / 나무연필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트로츠키는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아버지가 소작농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본다. 트로츠키는 따스한 아버지가 왜? 소작농에게는 가혹하게 대하는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탐구한다. 트로츠키의 결론은 아버지가 가혹한 것이 아니라 체제가 아버지를 가혹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아버지를 소작농에게 잔인한자라고 매도하지 않고 러시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찾아내는 트로츠키의 모습이 경이롭다. 러시아 출신 박노자도 트로츠키와 비슷한 점이 많다. 유대인이며, 러시아 출신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나름의 신념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그 구조적 원인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도 트로츠키와 박노자가 닮은 점이다. 박노자가 본 '러시아 혁명사'는 무엇인가 다른점이 있으리라 기대된다. 박노자의 안내로 '러시아 혁명사'를 감상해보자. 


1. 성장은 폭력의 다른 이름인가?

  아직도 박정희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으면서도 개발도상국 시기의 고도성장을 기대하며 박정희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장"은 신의 은총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빠른 경제 성장은 박정희만 이룬 것이 아니다. 스탈린도 강력한 계획경제 정책을 통해서 미국과 세계 패권을 두고 자웅을 겨루는 국가로 소련을 만들었다. 스탈린은 빠른 공업화를 위해서 농촌을 희생했다. 농민들의 잉여를 수취하기 위해서 법률로 곡물 가격을 낮추는 적곡가 정책을 펼쳤고, 이를 통해서 농촌의 잉여를 산업에 투자했다. 농촌을 희생해서 공업화를 이루는 모습은 박정희의 개발정책과 너무도 유사하다. 박노자는 스탈린식의 적색 개발에서는 노동자에 대한 복지에 신경썼었면, 박정희의 백색 개발에서는 노동자의 복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지적한다.우리가 노동 3권을 보장받으며 노동운동을 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식민지를 희생시켜가면서 경제 개발을 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와는 달리 식민지가 없었던 주변부 국가들은 내부의 농민을 희생시켜 산업화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충직한 박정희의 추종자로 살다가신 아버지가 사실은 박정희의 백색 개발 정책의 희생자였었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스탈린 시기는 경제 성장과 함께 대규모의 숙청이 함께 이뤄졌다. 스탈린 시기를 암흑의 시기로 기억하고 혁명을 일으켜야하는 소련인들은 그 시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혁명을 꿈꾸기 보다는 출세의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고 박노자는 지적한다. 이것이 무슨 뚱단지 같은 말인가! 자신의 정적을 비롯해서 죄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총살시키거나 시베리아로 보낸 스탈린 집권기가 출세의 희망에 부풀어 있었던 시기라니! 박노자는 "스탈린 체제의 대량 총살은 대량 출세의 다른 이름이었"다라고 지적한다. 68만명의 간부가 숙청된다면 다른 68만명이 그 자리를 채우며 고속 승진의 기회를 잡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탈린의 후계자 니키타 후루쇼프가 노동자 출신으로 고속 성장한 것을 들 수 있다. 숙청과 고속 출세는 동전의 양면이었었다. 자신이 숙청당하지 않는다면 숙청의 열풍은 기회의 열풍이었다. 박정희 시대도 비슷할 것이다. 유신시절 유신 정우회는 대통령에게 잘보이면 국회의원이라는 떡을 얻어 먹을 수 있는 자리였다. 박정희 정권에게 잘보인다면 달콤한 떡고물들을 얻어 먹을 수 있다. 자신이 저임금 저곡가 정책의 희생작 아니고,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고 박정희 독재에 순응한다면, 아니 더 열심히 추종한다면 박정희 정권의 떡고물들을 핥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암흑기가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시기였다. 

 

  "성장이란 폭력의 다른 이름이었고, 폭력의 사회적 명분 또한 성장이었지요"

  "성장을 약속하는 보수적인 리더에게 몰표가 나오는 이유도 짐작 가능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표를 던지는 이들은 양극화의 희생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164쪽


  성장과 출세에는 필연적으로 폭력이 수반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이 있어야했다. 독재정권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고 일어서야한다. 성장과 출세라는 욕망은 참으로 대단하다. 자신의 몸이 타는줄도 모르고 불길로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인간은 성장과 출세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운다. 그리고 그 시기를 추억한다. 


2. 박노자는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는가?

  박노자의 그들을 읽어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찬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튜브 속의 외국인들이 한국을 대단한 나라인 것 처럼 찬양하지만, 박노자는 대한민국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그런 박노자가 아련하게 추억하는 시절이 있다. 소련 공산당 시절을 추억하는 부분에서 날카로운 비판보다는 그래도 그때는 추억이 있다며 비교적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물질적 풍요는 누리지 못했지만, 문화 공연을 볼 수 있었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며,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추억한다. 농촌의 공동체가 자신이 살던 도시에 살아 숨쉬고 있었기에 공동체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그는 추억한다. 

  박노자는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간다.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공산혁명'이라는 미련을 박노자는 벗어던지지 못한 듯한 인상을 이 책 곳곳에서 받는다. 프랑스의 공산당이 체제내에 안주하면서 혁명의 시기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가 편에서 노동자의 요구를 조정함으로써 혁명의 기회를 없애버렸다고 서술한다. 심지어 "한국을 비롯해서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21세기의 아시아에 또 다시 공산주의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지기 까지한다. 

 박노자가 대한민국 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읽으면 한국사회의 아푼 곳을 찔린듯, 움찔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박노자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지금 붕괴되어 없어진 공산사회가 아닌지 의문이들 때가 많다.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의 테러를 당하고 머리 수술을 받기 직전의 트로츠키가 한말이 있다. "궁극적인 차원에서 당은 올바르다."!! 트로츠키는 자신을 죽이려하는 스탈린의 당을 부정하지 못했다. 도그마에 갖혀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그는 눈뜬 장님있었다. 박노자가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치유할 대안으로 제시하는 공산주의라는 환상은 트로츠키가 벗어던지지 못했던 공산당에 대한 환상과 같은 것은 아닐까?

  중국 CCTV에서 만든 '대국굴기' 소련편에서 레닌은 이상적인 지도자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박노자는 "레닌은 작은 데서 성공했지만 큰데서 실패했습니다. 그는 권력을 잡았지만, 그가 꿈꾼 이상적인 사회는 만들지 못했습니다."라며 레닌에 대해서 냉철한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박노자는 한세기 동안 이뤄진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크기 때문일까? 아니면, 박노자가 어린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하고 싶은 욕망이 크기 때문일까?


  1914년 8월 4일 독일 의회에서 전시 공채 발행안 투표에서 독일 사민당은 단 2명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박노자는 이를 두고 "독일 사민당이 자국의 노동자를 도살장으로 내몬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쟁이라는 비상시에 "NO"를 외칠 것을 요구하는 박노자! 그러나 "NO"를 외칠 수 없는 나약한 우리들!! 박노자의 글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그리고 그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도록한다. '러시아 혁명사 강의'라는 책도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렇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벗어던지지 못한 박노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없다. 우리 사회를 정글 속 야만으로 내모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논리로 사용할 수는 있어도, 결코 우리 사회가 공산사회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점이 박노자와 내가 다른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 21인의 목소리
안세홍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군 '위안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은 조선인 피해여성을 떠올린다. 조선 출신이 가장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인만 피해자였던 것은 아니다.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고 현지에서 중국인 여성을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만들었다. 일제가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면서 동남아시아 일대의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등의 국가의 여성도 일본군 '위안부'로 피해를 입어야했다. 심지어는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던 네덜란드 출신의 여성도 일본군 '위안부'로서 고통을 당해야했다. 자칫 조선인 여성만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안세홍 작가의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라는 책은 커다란 의미가 있는 책이다. 겹겹사진전으로 유명한 그는 전세계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사진으로 그분들의 기록을 남기는 일을 하있다. 이 책을 통해서 그와 그의 책속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만나러 가보자. 


1. 깊게 패인 주름

  "국제법은 미성년의 경우 본인의 승낙 여부와 관계 없이 매춘업에 종사하는 것을 전면금지하고 있다."(48쪽) 그러나 일제는 미성년자를 동원했다.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피해자 분들은 13살~16살의 꽃다운 소녀들이었다.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가서 일본군의 성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한 이유는 그녀들이 임신할 염려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콘돔이 부족해지자 일본군은 성노예 여성을 동원할 때 임신이 되지 않는 여자를 끌고" 갔던 것이다. 일본군에게 상식과 인권을 바란다면 너무도 헛된 바램이었을까? 

  동티모르 베코 출시의 이네스는 일본군에 끌려가 밤에는 성폭력에 시달리고 낮에는 노역을 해야했다. 성폭력을 당한 그녀들에게 일본군은 춤과 노래를 부르도록했다. 도망치고 싶어도 부족장이 그녀들을 감시해서 도망칠수도 없었다. 부족장이라면 부족민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했지만, 부족장은 일본군에 협력하며 부족민을 짖밟는데 앞장섰다. 이네스는 성폭력을 당하고 일본군의 딸을 낳았으나 아이를 빼앗겼다. 그리고 그 딸의 생사도 알길이 없었다. 

  필리핀 팜팡가 출신의 루시아는 "항상 강간을 당하는 꿈"을 꾼다고 한다. 12살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서 성폭행을 당하고 온몸이 부서졌다. 너무도 가슴 아프고 분통터지는 이야기를 계속 읽기가 힘들었다. 얇고 사진이 많아 쉽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책을 덮고 잠시 머리를 식혀야했다.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사진속 여성들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은 그녀들이 살아온 과거를 말해주고 있었다. 주름에 새겨진 고통과 통한의 역사를 그냥 넘길 수 없어 다시 한번 사진속 여인들을 바라본다. 중국 아이난 출신의 왕즈펑의 모습은 울부짖는 듯한 표정이었다. 일제에 대한 원망과 하소연이 담겨 있으며, 침묵하는 일본과 외면하는 중국 정부에게 보내는 또다른 외침으로 보였다. 과연 우리는 그녀들의 외침에 귀기울이고 있는가?


2. 한숨과 탄식

  중국 하이난 출신의 황유량은 1941년에 13세의 나이로 일본군에 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2년간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살아돌아온 그녀를 주민들은 르번구냥(일본처녀)라며 무시했다. 일본군에게 피해를 입은 그녀가 마을 주민들에게 놀림을 받고 심지어는 그녀의 자녀들도 마을 주민들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결국 자녀들도 그녀를 탓했다. 가해자인 일본인들은 뻔뻔하게도 피해자인 그녀들을 창녀라고 몰아붙이고, 피해자들은 숨죽이며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니.... 한숨과 분통이 터져나온다. 

  더욱 문제인 것은 유교의 영향이 강한 한국에서는 그녀들을 화냥년이라며 무시했고, 이슬람의 영향력이 강한 인도네시아에서는 명예살인의 위험속에서 피해사실을 숨기며 숨죽여 살아야했다.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강자의 폭력에는 침묵하는 양아치 윤리를 강요하는 어이없는 현실이 우리의 현실이다. 미투 운동이 있기 전까지 우리 사회는 성폭력에 대해서 얼마나 야만적이었는가!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처벌을 받고, 피해자가 2차가해를 우려해서 숨죽여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었다. 

  중국 산시성 출신으로 13살 때 일본군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낸 런란어는 "난 이일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국 정부가 더문제에요."라고 울붑짖는다. 중국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우리 처럼 적극적으로 이슈화 시키지 않는다. 대국이라고 불리는 중국은 힘없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보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패권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한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굴림하는 양아치리더십으로는 세계의 패권을 가질 수 없음을 중국 정부는 알아야할 것이다. 


3. 회한과 끝없는 고통

  전라도 출신의 박차순 할머니에게 안세홍 작가가 무엇이 가장 갖고 싶냐고 물었다. 박차순 할머니는 "엄마! 갖...고...싶...다."라고 대답했다.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하면서 몸이 망가졌고 아기를 낳지 못해 양달을 데리고 사는 그녀에게 어머니와 같은 안식처는 없었다. 어머니의 따스한 품처럼 그녀를 따스하게 안아줄 안식처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그녀들에게 삶이 곧 전쟁이었다. 주변의 시선과 싸워야했으며, 뻔뻔하게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도 싸워야했다.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출신의 웨이사오란은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24세의 나이로 일본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딸을 살리기 위해서 일본군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살아돌아온 그녀는 딸을 잃고 일본군의 아이를 낳는다. 시댁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바로 죽이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을 낳자 농사짓는데 쓰겠다며 죽이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자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일본군을 닮았다고 멸시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들은 일본군을 닮았다는 비아냥을 들으며 직업도 얻지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야했다. 2010년 12월 일본 의회가 주최한 '위안부' 피해자 공청회에 참석한 아들은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그동안 하지 못한 울분을 토로했다. 일본군이 뿌린 불행의 씨앗은 대를 이어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필리핀 팜팡가 출신의 파우스트 고메즈는 12세의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2000년 '롤라스 컴패니아 성노예 생존자 그룹'에 들어가 해외 언론이 올 때마다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그저 우리가 싸우는 것을 위한 정의가 세워지길 바라요. 그리고 공식적인 보상과 사과를 원합니다." 정의가 세워지고 일본인들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그날을 고대하며 그녀는 삶의 마지막 힘을 다해서 일제와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녀들의 이러한 투쟁에 일본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 전쟁'이라고 부르면서,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로 부터 아시아 국가들을 해방시켰다는 망발을 한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의 여성을을 일본군의 성노예로 만들고 그 가족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고서 어찌 이런 망발을 한단말인가! 반성할줄 모르는 그들에게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필리핀 코레히도르 섬을 방문한 일본 여행객은 이곳에서 묵념을 하며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기 보다는 "자기네 일본군들이 명예롭게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것에 존경심을 표했다." 같은 역사를 겪었지만, 기억하는 것은 너무도 다르다. 일본은 그들이 행한 침략전쟁과 전쟁과정에서 그들이 벌인 만행을 가르치지 않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맞은 것을 빌리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며 기억하는 자를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가 아픈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만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픈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기 마련이다. 아프고 괴로울 수록 기억하자! 우리 자녀들에게 이 책을 권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을 움직이는 네 가지 힘
김봉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교 4학년 시기에 개설되었던 '미국사'를 수강하지 않았다. 임용고사에 미국사 문제가 몇문제나 나오겠나! 하는 얇팍한 생각이 나의 발등을 찍었다. 그해 임용고사 시험에 미국 독립선언서가 지문으로 나왔다. 미국 독립선언서와 프랑스 인권선언을 혼동한 나는 재수의 길을 밟아야했다. 오랜 동안 한국사를 가르치다가 작년 부터 세계사를 가르치게 되었다. 오랜만에 가르치는 세계사 과목이다보니 수업준비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제 각 나라에 대한 개설서들을 통독하며 보다 생동감 있는 세계사 수업을 모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미국사 전문가 김봉중 교수의 1'미국을 움직이는 네가지 힘'이라는 책 제목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미국의 어떠한 면을 나에게 보여줄까?


1. 미국의 정신, 프론티어! 

   미국 역사에서 변경이 아닌 곳이 없었다. 영국에서 배를 타고 아메리카로 첫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아메리카는 프론티어였다. 그리고 그 역사는 자신의 정착을 도와준 인디언들을 제압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아 새로운 국가 미국을 건설했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놀라은 사실은 식민지 정부가 인디언들과의 분쟁을 염려해서 서부로의 진출을 막은 것이 독립 전쟁의 한 원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온 그들은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찼다. 인디언들이 가진 땅을 빼앗아 부를 이루고 싶었고, 결국 그 걸림돌인 영국에게서 독립하여 서부개척에 나섰다. 그리고 미국은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아 더욱 살이 토실토실 올랐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황금에 눈이 멀었던 피사로가 동료를 살해하고 자신도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던데 반해서,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아메리카 대륙에 뿌리 내리게했다. 서부 개척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결과는 '비민주주의적'일지 몰라도 그 과정은 지극히 '민주적'"이었다.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정의 민주주의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굳건히 세우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서부개척과 함께 수많은 이민의 행렬이 짧은 기간에 미국으로 밀려들었다. 미국은 멕시코에서 땅을 빼앗고, 인디언에게 땅을 빼앗으면서 그 땅을 이민자들로 채웠다. 성공에 대한 욕망은 서부로의 이주를 자극했다. 짧은 기간의 급속한 변화가 혼란과 붕괴로 이어지는 모습을 우리는 역사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급속한 팽창과 변화가 다문화주의, 다원주의 정책이 뿌리내리게 했다. 이민 초기에 아일랜드인과 유대인에 대한 차별은 새로운 이민 행렬 속에서 사그러들었다. 심지어는 히스페닉계와 아시아계 이민 행렬이 늘어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과해 세계 인종의 전시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미국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성숙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안정된 다문화 사회로 안착한 것일까?


2. 흑백문제, 치유가 가능할까?

  백인들은 인디언에게서 빼앗은 토지를 흑인들로 하여금 경작하도록했다. 북부는 빠른 공업화를 하여지만, 남부는 넓은 농장을 흑인 노예들을 부려 경작했다. 남부 백인은 그들의 귀족 왕국을 만들었다. 남부의 백인왕국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흑인노예의 피와 땀이었다. 노예제를 반대하는 링컨의 당선은 남부의 백인왕국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결국, 남북전쟁은 필연적으로 발발할 수밖에 없었다. 남부의 백인왕국이 스스로의 기득권을 내려 놓을리 없었다. 

  전쟁에서 보여준 남부와 북부의 모습도 극명하게 차이가났다. 북부의 뉴욕에서 징집제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흑인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아까원 백인의 피를 흘릴 이유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반면, 남부는 물자가 부족해지자, 일반 시민들이 가정에서 쓰던 물품, 기타 금속제품을 헌납했다. 걷지 못하는 노인도 지원했다. 지원병이 너무도 많아서 지원자를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정신력에서 남부가 앞섰고, 물량면에서는 북부가 앞섰다.  

  결국, 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났다. 연방정부는 북부군을 남부에 10년 동안 주둔시키면서 남부를 북부화하려했다. 그러나 남부의 정신마져도 북부화하지는 못했다. 남부의 대학에서는 남부의 이장에서 역사를 연구한다. 남북전쟁은 남부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남부가 분연히 일어선 전쟁이며, 헌법에 보장된 노예라는 재산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남부 학자들의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자신들의 탄탄한 논리에 갖혀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는 자폐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시대 변화와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가치에 매몰되어 현실을 부정한다. 인간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계몽사상이 그들에게는 머나먼 나라의 꿈이야기인듯하다. 

  남부의 지지를 받은 민주당이 변하기 시작했다. 흑인들의 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루스벨트 대통령을 비롯해서, 트루먼, 케네디, 존슨 대통령들이 등장했다. 우리의 경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삼당합당을 하며 민자당으로 들어가자, 부산과 영남이 보수의 색채를 강하게 띈 것과는 달리, 미국은 민주당을 버리고 공화당을 선택했다. 남부는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전통과 문화를 지키려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미국 사회에서 흑백문제는 너무도 뿌리가 깊다. 그 해결책이 너무도 아득해보인다.


  갈등의 요소가 너무도 많은 미국이 왜? 분열되지 않고 세계 초강대국으로 굴림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파이가 크기 때문이라 말한다. 서부라는 풍부한 기회의 땅이 있으며,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힘이 있다. 그러나 중국이 부상하고, 코로나 19 펜데믹에 재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서 그 파이가 무한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 김봉중은 "21세기 중반쯤에 미국은 흑백으로 양분될 가능서잉 높다."라고 말했다. 흑인을 한편으로 하고 아시아계 소수민족과 히스패틱을 포함한 백인의 대립 전선이 형성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중국에 대한 협오감이 높아지면서 아시아 혐오범죄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전선은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흑인 VS 백인 VS 아시아계라는 대립전선이 형성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을 해본다. 미국은 모순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 모순을 극복하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있기에 미국의 밝은 미래에 한표를 던져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줌 인 러시아 - 경제연구소의 인문학자가 들려주는 러시아의 역사.문화.경제 이야기 줌 인 러시아 1
이대식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익숙함의 함정에 쉽게 빠진다. 자주 접하는 단어이기에 그 단어를 잘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웃국가에 대해서도 익숙함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에 대해서 잘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막상 러시아를 설명하려하면 그제서야 러시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줌 인 러시아'라는 책을 꺼내들었다. 익숙함의 함정에서 벗어나 러시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책장을 넘겼다. 첫장부터 유쾌했다. "끄라시바야"라는 말이 '아릅답다.'라는 뜻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웃음을 지었다. "스파시바"는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란다. 이 이야기를 하자, 일본어 선생님이 일본어 "케세끼"가 '결석'이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러시아는 이렇게 유쾌하게만 볼 수 있는 나라일까?


  말데비치가 그린 '검은 사각형'이라는 그림을 미술책에서 많이들 보았을 것이다. 흰바탕에 검은 사각형이 크게 그려져있는 그림을 보며 예술이라는 것이 단순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린 말데비치가 러시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림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시베리아가 펼쳐진 러시아라는 극한의 땅에서 탄생한 극단의 예술작품을 통해서 극단의 러시아를 만날 수 있었다. 

  러시아의 '맥심멀리즘'은 러시아의 역사와 정치 곳곳에서 펼쳐진다. 바실리 페로프의 '트로이카'라는 작품은 자신보다 무거운 물동이를 끌고가는 세소년 소녀들의 힘겨워하는 모습에서 극단의 러시아 사회와 마주하게 한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노동을 강요받았던 러이아! 1860년대 까지 농노제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농노제에서 해방되었지만, 엄청난 액수의 댓가를 지불해야만 했던 러시아의 민줄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겠는가! 특히 '트로이카'라는 작품의 중앙에 있는 소년의 경우, 가난과 배고픔으로 죽게 되고, 소년의 어머니는 자신의 전재산인 달걀 꾸러미를 가지고 와서 죽은 아들의 그림을 달라고 부탁한다. 이미 팔려버린 그림을 소년의 어머니가 마주하고는 울부짖으며 무릎 꿇는다. 가난과 고통의 '맥심멀리즘'을 잘 보여주는 '트로이카'는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한해에도 수십명의 제자가 졸업을 한다. 그리고 그 제자들 중에는 소식이 끊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연히 40~50대의 부인이 나에게 카카오톡스토리 친구신청을 해서 나를 당황케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내가 가르쳤던 제자가 20대의 꽃다운 나이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난하지만 착한 녀석이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힘든 시기를 지나서 이제는 꽃길을 가길 바랬는데 녀석은 먼저 저세상으로 갔다. 그때의 먹먹함이 '트로이카'라는 그림을 보면서 다시 떠올랐다. 

  러시아의 '맥시멀리즘'은 정치에서도 나타난다. 러시아는 전제 정치의 나라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강력한 전제 정치를 한 인물들이 많다. 이반 뇌제에서 시작하여 러시아를 서구화 시키려했던 표트르 대제, 철의 장막 소련을 장악한 스탈린, 강력한 러시아를 외치며 맹수를 때려잡는 영상을 일반에 공개한 푸틴 등등.... 그런데, 이들의 인기는 높다. 이반 뇌제 치하에서 모스크바 인구의 3분의 1이 감소했다. 러시아 전체인구 4분의 1이 감소했다. 그런데 이반 뇌제는 위기의 러시아를 중앙집권화했으며, 러시아의 영토를 확장시켰다. 이러한 모습은 스탈린과 푸틴의 시기에도 비슷하게 펼쳐진다. 강한 러시아의 모습을 보였지만, 그들의 지배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역사는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현실의 폭압보다는 강한 통치자가 강한 러시아를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러시아인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 바램이 사그러들지 않는다면, 러시아의 '맥시멀리즘'은 정치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극단의 '맥시멀리즘'에서 살아남는 법은 무엇일까? 러시의 대문호 솔제니친의 소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동물우리'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위해서는 솔제니친의 소설속 주인공이 했던 것처럼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최소한의 규율을 만들어야한다. 다시 말하자면 최소한의 원칙을 지켜야한다. 아무리 추워도 식사할 때 반드시 모자를 벗고 식사를 한다. 약간의 이익을 위해서 뇌물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늗다. 등등의 원칙은 스탈린이 우리를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 몰아 넣고 동물로 만들려 한다할지라도, 우리는 절대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다. 우리의 현실이 우리를 동물로 대하려해도 우리는 소박한 인간적 경계선을 그어놓고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 그것이 인간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줌 인 러시아'에는 러시아의 다양한 모습들이 소개되어있다. 미국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팔고, 이탈리아 황실 기마대에게 러시아 말을 팔겠다고 사기를 친 니콜라이 사빈이라는 희대의 사기꾼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사기를 치더라도 러시아의 '맥시멀리즘'이 작동한다. 이 책은 때로는 가슴 먹먹하게 만들기도하고 때로는 너무도 유쾌하게 만드는 러시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제 강대국으로 기지개를 펼치고 있는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골에서 자라서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는 시골이 싫었다. 답답했다. 무엇을 하려해도 할 수 없는 기회가 박탈된 곳이 시골이었다. 그래서 기어코 도시로 도시로 가려했다. 도시는 나에게 기회가 있는 곳이다. 그 기회는 대도시로 갈 수록 더 커진다. 수원에서 살았을 때, 나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사박물관의 특별전을 보러 갔고, 국립 중앙박물관 주변을 산책삼아 걸어보기도했다. 오페라와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축복의 장소가 도시였다. 다락방 '교사와 수업 사이'의 두번째 책으로 메트로폴리스를 선택했다. 책을 받아들고 650페이지라는 두께감이 무겁게 밀려왔다. 그러나 재미 있는 책이라면 두께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벤 윌슨이 한국의 도시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이 등장하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벤 윌슨은 송도 신도시를 최첨단 도시로 소개했으며, 도시 녹지를 복원하는 훌륭한 사례로 서울의 청개천을 소개했다. 송도 신도시는 어느 가정의 수도꼭지가 잠겨있지 않은지도 파악할 수 있는 도시라며 긍정적이기 보다는 다소 어두운 미래도시를 보는 듯이 서술했다. 반면 청개천 복원에 대해서는 도시 열섬효과를 낮추는 긍정적인 성과를 거둔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자원의 낭비를 막는 스마트한 도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전시행정의 대표적인 사례인 청채천 복원공사를 긍정적으로 소개한 것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청개천에 물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 모터를 돌려 한강물을 끌어들인다. 청개천 바닥은 흙이 아니라 돌이 깔려있다. 전형적인 인공하천이다. 이것을 어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도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기회의 장소라는 이미지와 함께 범죄와 공해라는 이미지가 같이 떠오른다. 도시라는 공동체는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만든 집합체이기에 기회도 있지만,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도 짙을 수밖에 없다. 벤 윌슨은 "도시에는 위생처리가 필요한 만큼 오물도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성인용품점, 도박장, 스트립쇼장 등등이 필요악임을 서술하고 있다. "도시는 유토피아인 동시에 디스토피아"이다. 그렇다면 디스토피아를 없앨 수는 없을까? 이를 없애려한다면 미국에서 제정한 금주법이 오히려 마피아 세력을 확대시킨 결과를 낳았듯이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강화시킬까?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없애려한 도시계획이 있었다. 지금의 파리를 만든 오스만의 도시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오스만의 도시계획에 대한 평가는 서로 대립적이다. 구불구불하고 도시의 오염물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 파리를 오스만은 방사선의 깔끔한 도시로 개혁했다. 파리의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없애 지금의 아름다운 파리를 만든 오스만의 도시계획을 비판할 이유가있을까? 그런데, 시인 샤를 발레트는 오스만을 "잔인한 파괴자"라고 말했다. 파리의 조그만 산들을 없앴다. 그 산에 있었던 유적들도 같이 없어졌다. 고풍스러운 파리는 획일적인 파리로 바뀌었다. 오스만의 도시계획은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많은 유물과 공동체가 파괴된 우리의 도시들과 비슷하다. 오스만에 대한 평가는 우리의 도시팽창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연결되어있다. 오스만의 도시계획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도시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인류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시도 많다. 그러나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 도시들이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다시 살아난다. 1945년 포로 수용소의 독일 장교는 "쾰른에는 여러번 분산 명령이 내려졌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한때 '집'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잡석 무더기로 되돌아 간다."고 했다. 자신의 도시, 삶의 터전에 대한 회귀 본능은 불가사의한 힘을 부러일으킨다. 죽음을 목도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삶의 터전인 도시로 회귀한다. 그래서 도시는 빠르게 재건된다. 

  불가능한 부활을 이룬 대표적 도시가 있다. 바르샤바가 바로 그 대표적 도시이다. 히틀러는 바르샤바를 철저히 파괴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도시 건물 하나하나를 파괴했고 사람들을 포로수용소로 이송했다. 그런데, 생명이 위태로운 그 순간에도 바르샤바인들은 도시가 파괴될 것을 예측하고 문서를 대조하고 역사적 건물도면을 남겨두었다. 이러한 도시 재건을 할 수있는 자료를 암호화하여 외부에 반출하거나, 수도원 혹은 포로 수용소에 숨겨두었다. 전쟁이 끝나자 도시를 재건하기기 위해서 바르샤바인들은 문서, 엽서, 사진, 도면, 그림등의 모든 자료를 수집해서 그들의 바르샤바를 재건했다. 생명이 위급한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삶의 터전을 기억해두고, 전쟁이 끝나자 예전 모습대로 재건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불가사의하면서도 경의감을 불러 일으킨다. 도시의 생명력은 강했다. 그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인간이었다. 


  도시의 삶에 젖어 있으면서도 인생의 말년은 시골에서 보내고 싶다. 그러나 나이가들수록 병들어가는 몸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큰병원 가까이에 살아야하기에 그 소망은 소망에 그칠 수밖에 없다. 도시는 디스토피아이면서 유토피아이기에 도시를 떠나고 싶지만 도시를 떠날 수없다. 전원생활이 아름다워보이는 것은 도시를 떠날 수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에 더욱 아름다워보일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