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 21인의 목소리
안세홍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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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은 조선인 피해여성을 떠올린다. 조선 출신이 가장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인만 피해자였던 것은 아니다.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고 현지에서 중국인 여성을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만들었다. 일제가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면서 동남아시아 일대의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등의 국가의 여성도 일본군 '위안부'로 피해를 입어야했다. 심지어는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던 네덜란드 출신의 여성도 일본군 '위안부'로서 고통을 당해야했다. 자칫 조선인 여성만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안세홍 작가의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라는 책은 커다란 의미가 있는 책이다. 겹겹사진전으로 유명한 그는 전세계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사진으로 그분들의 기록을 남기는 일을 하있다. 이 책을 통해서 그와 그의 책속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만나러 가보자. 


1. 깊게 패인 주름

  "국제법은 미성년의 경우 본인의 승낙 여부와 관계 없이 매춘업에 종사하는 것을 전면금지하고 있다."(48쪽) 그러나 일제는 미성년자를 동원했다.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피해자 분들은 13살~16살의 꽃다운 소녀들이었다.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가서 일본군의 성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한 이유는 그녀들이 임신할 염려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콘돔이 부족해지자 일본군은 성노예 여성을 동원할 때 임신이 되지 않는 여자를 끌고" 갔던 것이다. 일본군에게 상식과 인권을 바란다면 너무도 헛된 바램이었을까? 

  동티모르 베코 출시의 이네스는 일본군에 끌려가 밤에는 성폭력에 시달리고 낮에는 노역을 해야했다. 성폭력을 당한 그녀들에게 일본군은 춤과 노래를 부르도록했다. 도망치고 싶어도 부족장이 그녀들을 감시해서 도망칠수도 없었다. 부족장이라면 부족민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했지만, 부족장은 일본군에 협력하며 부족민을 짖밟는데 앞장섰다. 이네스는 성폭력을 당하고 일본군의 딸을 낳았으나 아이를 빼앗겼다. 그리고 그 딸의 생사도 알길이 없었다. 

  필리핀 팜팡가 출신의 루시아는 "항상 강간을 당하는 꿈"을 꾼다고 한다. 12살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서 성폭행을 당하고 온몸이 부서졌다. 너무도 가슴 아프고 분통터지는 이야기를 계속 읽기가 힘들었다. 얇고 사진이 많아 쉽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책을 덮고 잠시 머리를 식혀야했다.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사진속 여성들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은 그녀들이 살아온 과거를 말해주고 있었다. 주름에 새겨진 고통과 통한의 역사를 그냥 넘길 수 없어 다시 한번 사진속 여인들을 바라본다. 중국 아이난 출신의 왕즈펑의 모습은 울부짖는 듯한 표정이었다. 일제에 대한 원망과 하소연이 담겨 있으며, 침묵하는 일본과 외면하는 중국 정부에게 보내는 또다른 외침으로 보였다. 과연 우리는 그녀들의 외침에 귀기울이고 있는가?


2. 한숨과 탄식

  중국 하이난 출신의 황유량은 1941년에 13세의 나이로 일본군에 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2년간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살아돌아온 그녀를 주민들은 르번구냥(일본처녀)라며 무시했다. 일본군에게 피해를 입은 그녀가 마을 주민들에게 놀림을 받고 심지어는 그녀의 자녀들도 마을 주민들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결국 자녀들도 그녀를 탓했다. 가해자인 일본인들은 뻔뻔하게도 피해자인 그녀들을 창녀라고 몰아붙이고, 피해자들은 숨죽이며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니.... 한숨과 분통이 터져나온다. 

  더욱 문제인 것은 유교의 영향이 강한 한국에서는 그녀들을 화냥년이라며 무시했고, 이슬람의 영향력이 강한 인도네시아에서는 명예살인의 위험속에서 피해사실을 숨기며 숨죽여 살아야했다.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강자의 폭력에는 침묵하는 양아치 윤리를 강요하는 어이없는 현실이 우리의 현실이다. 미투 운동이 있기 전까지 우리 사회는 성폭력에 대해서 얼마나 야만적이었는가!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처벌을 받고, 피해자가 2차가해를 우려해서 숨죽여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었다. 

  중국 산시성 출신으로 13살 때 일본군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낸 런란어는 "난 이일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국 정부가 더문제에요."라고 울붑짖는다. 중국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우리 처럼 적극적으로 이슈화 시키지 않는다. 대국이라고 불리는 중국은 힘없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보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패권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한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굴림하는 양아치리더십으로는 세계의 패권을 가질 수 없음을 중국 정부는 알아야할 것이다. 


3. 회한과 끝없는 고통

  전라도 출신의 박차순 할머니에게 안세홍 작가가 무엇이 가장 갖고 싶냐고 물었다. 박차순 할머니는 "엄마! 갖...고...싶...다."라고 대답했다.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하면서 몸이 망가졌고 아기를 낳지 못해 양달을 데리고 사는 그녀에게 어머니와 같은 안식처는 없었다. 어머니의 따스한 품처럼 그녀를 따스하게 안아줄 안식처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그녀들에게 삶이 곧 전쟁이었다. 주변의 시선과 싸워야했으며, 뻔뻔하게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도 싸워야했다.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출신의 웨이사오란은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24세의 나이로 일본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딸을 살리기 위해서 일본군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살아돌아온 그녀는 딸을 잃고 일본군의 아이를 낳는다. 시댁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바로 죽이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을 낳자 농사짓는데 쓰겠다며 죽이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자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일본군을 닮았다고 멸시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들은 일본군을 닮았다는 비아냥을 들으며 직업도 얻지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야했다. 2010년 12월 일본 의회가 주최한 '위안부' 피해자 공청회에 참석한 아들은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그동안 하지 못한 울분을 토로했다. 일본군이 뿌린 불행의 씨앗은 대를 이어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필리핀 팜팡가 출신의 파우스트 고메즈는 12세의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2000년 '롤라스 컴패니아 성노예 생존자 그룹'에 들어가 해외 언론이 올 때마다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그저 우리가 싸우는 것을 위한 정의가 세워지길 바라요. 그리고 공식적인 보상과 사과를 원합니다." 정의가 세워지고 일본인들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그날을 고대하며 그녀는 삶의 마지막 힘을 다해서 일제와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녀들의 이러한 투쟁에 일본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 전쟁'이라고 부르면서,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로 부터 아시아 국가들을 해방시켰다는 망발을 한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의 여성을을 일본군의 성노예로 만들고 그 가족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고서 어찌 이런 망발을 한단말인가! 반성할줄 모르는 그들에게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필리핀 코레히도르 섬을 방문한 일본 여행객은 이곳에서 묵념을 하며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기 보다는 "자기네 일본군들이 명예롭게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것에 존경심을 표했다." 같은 역사를 겪었지만, 기억하는 것은 너무도 다르다. 일본은 그들이 행한 침략전쟁과 전쟁과정에서 그들이 벌인 만행을 가르치지 않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맞은 것을 빌리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며 기억하는 자를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가 아픈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만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픈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기 마련이다. 아프고 괴로울 수록 기억하자! 우리 자녀들에게 이 책을 권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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