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 - 외척과 환관의 국정 농단으로 400년 제국이 무너지다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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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사!!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삼국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삼국지를 읽으며 수십만의 군대가 서로 어우러져 진을 펼치고 용맹무쌍한 장수들이 지략을 펼치는 광활함에 매료되었다. 그에 비해서 우리의 역사는 좁은 영토에 유약한 문신들이 왕권을 견제하며 알콩달콩 싸우는 인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 삼국사기를 읽으며 매료된 이유도 고구려의 용맹함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도 이러한 역사가 있구나!! 성인이 되어 중국의 역사를 심도있게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강정만 교수의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당, 송, 명, 청 역대 황제 평전을 읽고 이제 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펼쳤다. 중국을 대표하는 한나라는 내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첫장을 장식한 것은 한고조 유방이다. 초한지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을 때도 받은 유방에 대한 인상은 공부잘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껄렁대는 형님 같다는 것이다. 공부에 관심이 없고 친구와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노는 스타일의 인간이다. 게다가 허풍도 쎄다. 여공을 만나기 위해서 돈도 없는자가 "축의금 일만냥을 내겠소"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러한 그가, 귀족 출신의 탁월한 지략을 갖춘 항우와 싸워 승리했다. 중국 문화의 원형을 탄생시킨 한나라를 건국했다. 

  우리 학부모는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원한다. 허풍도 쎄고, 친구와 어울리며 공부에 관심없는 유방이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혀 퇴학을 당했을 것이다. 태평세에는 공부잘하고 부모의 말씀을 잘듣는 모범생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부모님 세대의 법칙이 무너진 난세에는 모범생 보다는 자신의 법칙을 만드는 유방과 같은 인물이 난세를 평정한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난세일까? 아님, 태평세일까? 인공지능의 급성장, 기후위기,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의 붕괴!! 이것은 유방과 같은 인물을 필요로하는 난세의 증거가 아닐까?

  중국의 3대 악녀라하면 무측천, 여태후와 그리고 서태우를 말한다. 이중에서 여태후는 한고조 유방이 죽자 실질적으로 한나라를 통치한 여황제라할 수 있다. 정사에는 그녀를 악녀로 묘사하고 있다. 유방의 사랑을 받은 척부인을 팔다리를 자르고 두눈을 파내고 귀를 멀게하여 항아리에 담았다. 그리고 그 항아리를 돼지 우리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 혜제에게 척부인을 보여주며 사람돼지라 말했다. 충격을 받은 혜제는 정치에 뜻을 잃고 술독에 빠져 스스로를 붕괴시킨다. 이것이 여태후를 악녀로 기억하는 우리의 근거이다. 그런데, 여태후 집권시기에 백성의 삶은 좋았다. 대외관계도 비교적 평화로웠다. 남성중심의 역사관이 무측천과 여태후를 악녀로 만들지 않았을까? 백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능한 남성 황제보다는 평화로운 여태후의 시기가 더 좋았을 것이다.

  중국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읽으며 '왜 이리도 중국에는 못난 황제가 많은가?'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읽을 때, 너무도 많은 영산군과 철종을 합쳐 놓은 황제들을 보면서 명나라가 200년을 존속했던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중국 왕조들은 건국 후, 빠른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는 그 전성기가 오래가지 않고 빠른 쇄퇴기에 접어든다. 한왕조의 수명이 보통 2백년 정도이다. 한나라가 400년 동안 존속했다고는 하나, 이는 중간에 신나라의 등장을 빼고 전한과 후한을 합쳐서 만들어진 존속기간이다. 우리 나라의 왕조가 보통 500년 동안은 존속했다는 점을 본다면 중국의 역대 왕조는 단명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한나라의 못난 황제는 환관과 외척의 전횡을 막지 못했다. 외척을 끌어들여 환관을 제거하면 외척이 발호하고, 외척이 환관을 제거하려 선비들을 끌어들였다가 환관에게 제거당하는 '당고의화'가 벌어지기도 했다. 황제 곁에서 황제의가 주색잡기에 빠져들도록하거나, 방술사에 현혹되어 정사를 그릇치게 만들었다. 

  여기 황당한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한 영제 시기에 화재로 소실된 남궁을 중건하기 위해서 낙안태수 육강은 토지세를 징수하자고 상소를 올렸다. 그런데 환관들은 그가 망국의 군주를 예로 들어 영명한 황제를 비판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육강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간신히 육강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글귀 몇자를 꼬투리삼아 반대파를 죽이려하는 모습은 너무도 씁쓸하다. 

  물론, 이러한 일이 대한민국의 오늘에도 벌어지고 있다. 언론들이 야당 대표를 살해하려한 사건을 대서특필하기 보다는 목에 칼이 찔린 야당 대표를 헬기로 이송한 것을 트집잡아 특혜시비로 비화시켰다. 언론의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자본과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우리의 언론을 보면 그들이 한나라의 환관들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든다.

  그렇다고 한나라에 충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환제 시기 양기 일족을 멸족시킨 5후는 국정농단을 한다. 서선이 자신의 첩이 되길 거부하는 이승의 딸을 묶어 놓고 과녁으로 삼고 술을 마시며 화살을 쏘았다. 이에 황부가 서선을 주살했다. 결국 그는 문초를 받고 삭발을 당했으며 중노동을 해야했다. 제북국 승상 등연은 후람과 단규의 하인과 식객이 행인의 재물을 약탈하자 이들을 처단했다가 파직당했다. 황부와 등연과 같은 사람은 한나라를 떠받치는 3퍼센트의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 거대한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3퍼센트의 소금이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황제가 연이어 등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가 전한과 후한 각각 200년씩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 3퍼센트의 소금과 같은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1:1로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한개 성보다 작다. 중국은 23개의 성이 있다. 이렇게 거대한 중국을 한명의 황제가 다스렸다. 그는 절대권력을 쥐고 있었다. 현명한 황제가 등극했던 시기에 중국은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나라였다. 그러나 용렬한 황제가 집권하면 그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중원의 권력을 농단하려는 자들로 들끓었다. 중국 역사에는 현군보다는 암군이 많았다. 그 속에서 중국의 백성들은 고통을 받아야했다. 강력한 황제권을 가진 중국의 땅에 사는 백성의 삶보다는 군약신강의 우리 땅에 살았던 백성의 삶이 보다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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