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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역대 황제 평전 -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는 발전할 수 없다 ㅣ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20년 6월
평점 :
'빠른 전성기, 전성기 이후 빠른 쇠퇴기'! 중국사의 특징이다. 이러한 중국사의 특징은 당제국에도 여실히 나타난다. 당고조 이연이 당제국을 건설하고, 당태종 이세민이 당제국을 강성대국으로 만든다. 그러나 측천무후가 유약한 당고종 이치를 대신하여 정권을 잡고 제국을 통치한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식도 죽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측천무후 이후, 위황후가 측천무후처럼 황제가 되고 싶은 꿈을 실현하려했다. 이를 극복하고 황제가 된 사람이 당현종 이륭기이다. 그러나 안사의 난 이후의 당제국은 측천무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급격히 쇠퇴한다.
측천무후는 어떠한 여인인가? 당태종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당태종이 죽고 감업사에서 비구니로 살아야했던 그녀는 당태종의 아들 당고종 이치에 의해서 다시 황궁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치의 마음을 빼앗아 황후가 된다. 황후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딸 안정사공주를 죽이고 이를 황후가 했다고 누명을 씌운다. 그리고 똑똑한 아들을 패위하거나 죽인다. 마침내 주나라를 세워 황제가 된다. 측천무후를 유교적 관념에 사로잡힌 사대부들은 악녀로 본다. 그러나, 측천무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세력을 등용하고 백성들의 생활이 평온했다는 점을 들어 그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남총을 두어 자신의 성적 쾌락을 즐기고 권력을 위해서 자식을 가차없이 죽인 그녀를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당태종 이세민은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형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다. 명영락제는 정난의 변을 일으켜 조카를 죽이고 집권했다. 조선 태종 이방원은 1,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제를 죽이고 권력을 잡았다. 조선 세조도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권력을 잡았다. 명분이 있는 사람이 권력을 잡아야하는가? 실력이 있는 자가 권력을 잡아야하는가? 측천무후를 악녀로 평가한다면, 형제를 죽인 당태종도 악인으로 평가해야한다. 당태종을 성군으로 평가한다면, 그녀도 성군으로 평가해야하지 않을까?
측천무후는 단순히 힘만으로 권력을 유지시킨 것이 아니다. '건언십이사'를 당고종 이치의 명으로 반포했다. 여덟번째 조항에 '왕공이하의 관리들은 모두 '노자'를 공부해야한다.'는 조항이 있다. 남존여비 사상에 물든 유가를 대신해서 유연한 노장사상으로 사상적으로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했다. 노련한 그녀의 통치술에 감탄을 한다. 측천무후! 그녀는 힘과 폭력만으로 사람을 겁박해서 통치하는 그런 수준 낮은 정치가가 아니었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당나라의 집권자들은 다시는 측천무후와 같은 여성이 등장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반성하지 않았다. 통치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있기에 측천무후가 등장할 수 있었는지 반성하고 시스템을 보완했어야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 측천무후 밑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숨죽여 살아야했던 당중종은 고통스러운 시기를 같이 보낸 위황후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위황후의 딸 안락공주가 조서 작성 및 반포에 참여하도록 했다. 제2의 측천무후가 만들어지도록 방조한 당중종은 결국 그녀들에게 독살당한다. 당중종은 불행한 역사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실에 뛰어드는 용기가 없는 당중종과 같은 황제가 연이어서 등장했다. 태평공주에게 짖눌린 예종 이단, 장황후와 환관 이보국에 짖눌린 숙종 이형, 이보국, 정원진, 어조은 등의 환관에 국정을 농락 당한 태종 이예 등등..... 안사의 난 이후의 당나라 황제들은 측천무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환관과 부인에게 황제의 위엄을 세우지 못하고 짖눌려살아간다. 쇠퇴해가는 당을 중흥으로 이끌 것 같았던 당무종 이염은 신선이 되고자 단약을 먹고 중독 증세를 보이며 33세의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안사의 난 이후 용렬한 황제가 연이어서 등극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나라는 289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중국대륙에서 건재했다. 용렬한 황제가 연이어 등극했음에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유교 사상에 깊이 심취한 관료 조직에 그 힘이 있지않을까? 효와 충을 핵심 가치로하는 유교 사상으로 무장한 관료 조직이 있기에 용렬한 황제가 연이어 등극해도 당제국은 망하지 않고 289년을 버티었다. 탄탄한 유교적 관료 조직이 있기에 탁월한 황제가 등극하면 대외팽창을 하며 전성기를 구가한다. 용렬한 황제가 등극한다할지라도 탁월한 유교적 관료 조직이 있기에 안사의 난이라는 커다란 충격 속에서도 나라가 무너지지 않았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임진왜란 때 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야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조선 전기의 역동적인 모습이 조선후기에는 많이 사그라든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 당나라와 명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 후기 조선은 망해야할 정도의 나라는 아니다. 강력한 황제권을 누리는 청나라 황제가 '군약신강(君弱臣強)'의 나라라고 조선을 일컬었다. 군약 신강의 나라이기에 용렬한 왕이 등장하는 나라를 당치는 예가 적지 않은가? 중국 당나라와 명나라의 역사를 공부한 자라면 신권에 의해서 왕권이 견제되는 조선의 정치시스템을 함부로 평가절하할 수 없다. '당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읽는 시간은 중국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역사를 재평가해보는 귀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