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 중국 특강 - 하버드 석학들의 36가지 질문,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묻다
하버드대학 중국연구소 지음, 이은주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국제 정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종종 국제정치를 평론한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에서 정치학을 배웠을 뿐이라 미국 중심의 국제정치라는 시각에서 국제정치를 바라본다. 아무리 유명한 대학을 나왔을 지라도 그의 시각이 특정국가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는 외눈박이 평론가에 지나지 않는다. '하버드대학 중국 특강'이라는 책을 집어들면서 미국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나의 기대를 충족 시켰을까?


1. 외눈박이 평론가

  미국인의 시선에서 중국을 바라보니, 그들의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첫째, 역사를 목적론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아시아 여러나라들이 도달해야할 최종 목표를 서구의 사회라는 그들의 선입견이 짖게 묻어난다. 아서 클라인만이 쓴 '고령화와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있을까'라는 주제의 글에서 그는 중국이 "정치적 자유화가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 지금도 그러한 생각에 변화가 없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의 대답은 어떠할까? 

  중국인들은 서구의 민주주의를 비웃는다. 선거를 통해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고, 실력 이하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 놓고는 탄핵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민주주보다 중국의 공산당 일당 독재를 더 좋은 제도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중국 공산당은 철저한 교육을 통해서 당원들의 실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능력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배출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중국이 서구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낭만적 생각을 지금도 고수하는 학자들은 드물다. 최첨단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해서 축구경기장 안에 있는 지명수배범을 단시간 내에 찾아내는 것이 중국이다.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중국 공산당 일당 독재를 더욱 견고하게 하고 있는 것이 지금 중국의 현실이다. 글쎄, 중국 경제가 붕괴하여 민중 혁명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이상, 경제 발전이 민주화로 이어진다는 서구의 발전 단계론적 시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둘째, 중국의 독자성을 보지 못하고 소련의 하수인으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페리는 '중국 공산 정권은 정당성이 있는가'라는 글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이념과 정치제도의 뿌리가 전부 소련에 있는데 정작 소련은 혁명 전 중국의 모습과 닮은 점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엘리자베스 페리는 중국 공산당이 대장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련과 연락이 두절되었고, 서구식 도시 폭동 전술을 버리고, 광대한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전술로 노선을 바꾼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오쩌둥은 무조건 마르크스-레닌 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의 현실에 맞도록 이를 변형시켰다. 그랬기 때문에 광대한 중국 대륙을 차지할 수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이념과 정치제도의 뿌리가 전부 소련에 있"다는 주장은 중국의 독자성을 무시하고, 소련에 종속된 국가로 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은 북한을 소련의 괴뢰정권으로 보는 시각과 닮아 있다. 서구의 시각에서 혹은, 적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차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바라보기에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 어느 나라이든 외부의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일 때에 자신에 맞도록 제도를 변형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킬 수 없다. 그러하기에 중국의 모든 이념과 정치 제도의 뿌리가 소련일 수는 없다. 또한 소련의 상황이 혁명 전 중국의 모습과 닮을 필요도 없다. 미국의 학자는 중국을 바라볼 때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바라보려 노력해야한다. 

  셋째, 동아시아인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에즈라 보겔은 '중일 관계는 개선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글에서 일본이나 중국이 "영토 그자체로는 별 가치도 없는 섬이" 양국간의 가장 큰 갈등 요소라고 지적했다. '댜오위섬/센카쿠열도'의 가치와 그 섬에 얽힌 역사적 의미를 미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댜오위섬/센카쿠열도' 근해에 묻혀 있는 자원과 청일 전쟁 이후 굴욕적으로 '댜오위섬/센카쿠열도'를 청나라가 일본에 넘겨 주어야했는지를 기억한다면 절대 '별 가치도 없는 섬'일수가없다. 

  타인의 뼈를 애는 고통보다 나의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세계 최강 천조국에서 중국과 일본이 '댜오위섬/센카쿠열도'이라는 작은 섬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 우수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작지만 큰 섬이 '댜오위섬/센카쿠열도'이다.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일본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일본은 중국인들에게 가했던 '난징 대학살'로 대표되는 만행을 반성하지도 않으며 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고 볼 수 없다. 

  넷째, 중국인의 내면일 이해못한다. 엘리자베스 페리는 '중국 공산 정권은 정당성이 있는가'라는 글에서 시진핑 정부가 추진하는 반부패 운동의 핵심 설계자이자 집행자인 왕치산이 "중국 공산당의 합법성(정당성)은 역사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는 인심(민심)의 향배에 따라 결정된 것이자 인민의 선택이기도하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인인 그의 입장에서는 베버가 말한 전통, 카리스마, 합리성을 들먹이며 정권의 정당성을 논해야하는데 왕치산을 베버의 이론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서구의 이론에 입각한 설명이 아니면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서구중심주의에 물들어 있는 서구인의 귀에 왕치산의 논리가 논리적인 설명으로 들릴리가 없다. 

  서구인들이 기독교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죽어서 신의 심판을 두려원한다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인들은 역사를 두려워한다. 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선비들에게 역사에 오명을 남기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는가를 중시여기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를 새로 쓰는 일들이 흔하다. 우리 나라도 보수 정권이 역사 교과서를 자기 입맛데로 다시 쓰려했기에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지 않은까!

  중국을 연구하는 전문가라는 사람이 중국인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해서 '역사적 정당성'이라는 개념으로 공산당 정권의 권위를 설명하려는 "발상 자체가 매우 흥미"롭고 "본질적으로 매우 모호한 개념"이라고 표현한 것은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미국 학자라는 한계는 이책 곳곳에 묻어있다. 하버대학 페어뱅크 중국연구소의 탁월한 학자들도 서구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씁쓸하다. 


2. 중국 예외주의

  "중국인의 피속에는 남을 침략하는 유전자가 없다."는 시진핑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국의 역사를 살피지 않고, 한국의 역사만 살펴보아도 이 말의 허구를 잘 증명할 수 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무수히 고구려를 침략한 기록을 시진핑과 중국인은 모르고 있는 것인가? 

  만약 '중국인의 피소게는 남을 침략하는 유전자가 없다.'는 말이 맞다면, 중국이 타이완을 무력 침공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또한 중국이 티벳을 점령하고 티벳 문화를 파괴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어야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레파토리는 힘이 약한 우리 민족만 사용하는 수사라고 생각했다. 힘이 없어서 타국을 침략하기 보다는 타국의 침략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던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미화하기 위해서 만든 구호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중원을 호령하며 세상의 중심이라 자칭한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자부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하다. 

  우리 민족은 타 민족과 다르다는 관념은 자신들을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믿게했다. 재미 있는 것은 이러한 '중국 예외주의'는 중국인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예외주의' 신봉자도 있으니 말이다. '중국 예외주의'를 신봉하는 자와 '미국 예외주의'를 신봉하는사람일수록 외교적 강경 노선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미국 예외주의를 신봉하는 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군국주의적 성향이 더 높다고 한다. 자신은, 자기 나라는 타인(타국)과 다르다는 관념이 타인에게 보다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 혹은 우리 나라가 예외적인 존재라는 독선적 관념을 갖기 보다는 보편적 인간으로 우리 모두를 바라볼 수 있어야 너그러움이 생길 수 있다. 너그러움이 생겨야 폭력을 줄일 수 있다. 그러한 너그러움은 '전랑'외교를 포용외교로 바꿀 수있다. 지금 중국을 세계 여러 나라는 두려워하지만 존경하지 않는다. 진정한 패권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 여러 나라에게 두려움만 주어서는 안된다. 유학에 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섬기는 '사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큰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고 보살피는 '사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해야한다. 

  어쩌면 중국 정부가 티벳을 비롯해서, 신장.위그루 자치지역에서 소수민족의 문화를 말살하려고 하는 모습도 '중국 예외주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일본 처럼 단일 민족을 만들고 싶어하는 중국이 '한족 예외주의'에서 벗어나 소수민족의 '위대한 문화 유산'을 잘 보존하고 그들과 조화를 이루는 길을 걷기 소망해본다. 


  이 책에는 사드가 "한국의 안보 상황에 별 보템이 되지 않는다."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보수파는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사드를 설치해야한다고 괴변을 늘어 놓았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석학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대와 남한 내 공격 표적의 거리가 너무 짧아 사드는 북한에서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국익보다는 미국의 국익에 매몰되어 국민을 속이고 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하는 협잡꾼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협잡꾼들은 박근혜 정권 시기보다 더 활개를 치고 있다. 남중국해 문제로 국제 상설 중재 재판소에서 승리한 필리핀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 친미일변도의 외교술을 펼치기 보다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현란한 외교술을 펼치는 것을 우리 정부도 배워야할 것이다. 중국관한 미국 석학의 글을 엮은 책을 읽으면서도 암울한 우리의 외교 상황을 떠올리며 걱정하는 것은 나도 한국인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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