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학파와 엠마뉘엘 라뒤리
몽타이유 - 중세말 남프랑스 어느 마을 사람들의 삶, 역사도서관 005 역사도서관 5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 지음, 유희수 옮김 / 길(도서출판)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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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의 랑그독 지방은 알비 카타리즘, 카타르파에 감염되었다. 1208년 알비파 이단에 대한 십자군 전쟁이 있었고 카타르파 최후의 보루였던 몽세귀르 성이 함락된 뒤에 이단재판이 맹위를 떨쳤다. ‘약속된 탈선의 땅’이라 불리는 이 지역에는 그 뒤에도 끈질기게 이단이 창궐한다. 도시에서 쫓긴 이단들은 이곳 산골 농민세계로 퇴각해 생존의 땅을 얻었다. 그러나 교황청은 이단자들을 좇아 이곳에 새로운 교구를 신설하고 재판을 통한 이단척결공세를 퍼붓는다.

파미에 지방에 새로 부임한 자크 푸르니에 주교는 이단 심문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 인물이었다. 그는 카타르파 이단을 색출하거나 가톨릭 교리에 어긋난 일탈행위를 색출하기 위해 이단재판관의 공격, 가택수색, 일제점거 등 모든 일을 불사했다. 특히 그는 250여명의 마을주민들을 장시간에 걸쳐 모조리 심문했다. 그는 이것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 심문 내용은 카타르파에 대한 추적을 넘어 이 마을 사람들의 삶과 농민문화 등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 우리는 확대경으로 땀구멍을 들여다보듯 피레네 산 해발 1300미터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한 마을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자크 푸르니에의 재판기록에 등장하는 가타르파 이단은 교황을 첫 번째 악마 즉 마왕으로 불렀고 프랑스 국왕을 두 번째, 파미에 주교를 세 번째, 카르카손 재판관을 네 번째 악마로 불렀다. 이러한 호칭은 당시 98%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앙시앙 레짐기 프랑스 사회의 제3신분이었던 시민, 노동자, 농민들의 권력층에 대한 성향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증가하는 십일조에 대한 부담, 입으로 진리를 외치면서도 비대하게 살진 성직자들을 악마로 규정했던 것이다.

랑그독 지방의 사람들은 재판소의 이단 색출에 쫓기면서도 피에를 클레르그 본당신부를 중심으로 ‘완덕자’ 혹은 ‘선한 사람들’이라 불리는 카타르파의 모임을 꾸준히 가졌다. 이들은 식사를 하거나 양을 치거나 길을 오가며 대부분 구전으로 포교활동을 했다. 가난한 농민과 양치기들이 대부분이었던 그들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결혼도 집안끼리 했고, 귀족이라 해도 산간마을 귀족의 상대적 빈곤 때문에 귀족과 비귀족 간의 갈등도 하찮았다. 이단자로서 쫓기는 신세였으므로 정주보다는 이동목축을 하는 양치기 직업이 많았다. 

 양치기들은 열악한 생활을 했지만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으며 영주제로부터 자유로웠고 심지어는 결혼까지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랑그독 지방의 농민 대부분은 글도 몰랐고 촌수를 헤아릴 줄도 모를 정도로 무지했다. 그들은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수평적으로 동물과 인간 속에서 윤회를 하고 수직적으로 맨 마지막인 저승으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구원은 최고의 가치였고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에 제3자가 개입하면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교리는 별 특별한 것이 없다. 고기는 먹지 말고 생선만을 먹을 것, 결혼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과 할 것,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금욕할 것, 십일조라는 강제적 개념과는 달리 선을 이해하는 사람과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정도였다. 그러나 교리가 그대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


본당신부 피에르 클레르그는 달변과 권력과 협박을 이용해 마을의 모든 여성들과 자유로운 성관계를 가졌다. 언니와 동생, 엄마와 딸, 늙은이와 젊은이, 미혼녀와 유부녀 등 신분과 나이와 결혼 여부를 가리지 않았고 장소 또한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자식은 낳지 않았고 이 모든 행위에 대해 더없이 당당했다. 피해자들도 그에게 나쁜 감정을 갖지 않았고 암묵적으로 용인되기까지 했다. 그는 오히려 아내를 두지 않고서 연애행각을 벌여 독신을 유지하고 재산을 축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은 착한 아들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교회에서 치르는 결혼식을 ‘세속적 사치’라고 혹독하게 비난했다.

양치기들은 주인과 한 집에서 생활하면서 양치기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집안의 막일은 도맡아 했고 여주인의 정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피레네 산맥을 넘나들며 이동목축을 했던 유능한 양치기 피레네 모리 역시 자신의 가난에 대해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난을 이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부에 대한 반감이 있었지만 그것은 세속적 부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성직자들의 부에 대한 반감이었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교황권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었다.

특별한 교리도 없고 위계적이고 강력한 집단을 형성하지도 못한 알비 카타리즘이 민중의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세속귀족 즉 영주나 귀족에 저항하기 보다는 교회의 재산을 비난했다. 성직자가 토지 세력으로 군림했고 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십일조에 대한 의무를 강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몽타이유 사람들이 증오했던 것은 사악한 부자인 성직자들과 탁발 수도사들의 흉측한 비곗덩어리였던 것이다. 성직자의 지배와 십일조 징수에 반대하는 이들의 저항은 카타르파에서 칼뱅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단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프랑스 아날학파3세를 이끈 역사가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에게 몽타이유는 예외적 공간이었다. 그는 이 예외적 공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주목했고, 이 예외를 역사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 같다. 재판기록으로 남아있던 몽타이유 지역의 카타르파 이단의 심문기록이 라뒤리에 의해 중세의 한 마을사람들의 삶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사료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재생산되는 것을 확인했다. 예외가 보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몽타이유』를 통해 보편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가 세가와 열전을 통해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경험했던 것처럼 미시사가 동반되지 않은 거시사를생각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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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양제국주의가 쪼갠 인간과 환경
    from 파란여우의 뻥 Magazine 2011-05-03 21:11 
     날씨가 계속 좋다. 고비사막으로부터 유입된 황사가 누런 대기를 장악했지만 모종을 내기에는 습도와 기온이 최상이다. 올해는 고추를 적게 심고 옥수수와 단호박을 주작물로 정했다. 그러나 달력을 5월로 넘기면서도 밭에 로타리를 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농사에는 때가 있다. 일찍 심는다고 수확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절기에 따라 농사를 짓는다. 절기는 기온과 강수량에 따라 정해진 것이다. 또한 연작을 하면 토질은 물론이고 수확량이 급감하는 작물..
 
 
알케 2011-05-03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타리..천년이 넘는 영지주의 전통의 계승자들.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카타리와 보고밀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 중이어서 반가운 마음에 ㅎㅎ

반딧불이 2011-05-03 22:53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공부를 하고 계시네요. 그런데 이거 제가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쓴 거 아닌가 싶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11-05-03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시사에서는 랑그도크를 대단히 중시하는 것 같아요.카타르 교도에 대해서는 십자군 전쟁 때 기독교도들이 이슬람교도 뿐이 아니라 같은 기독교 소수종파에 대해서도 숙청을 가했다는 사실이 대단히 기억에 남더군요.라뒤리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어본 사람이 많을텐데 직접 읽어보셨다니 멋집니다.

반딧불이 2011-05-03 22:57   좋아요 0 | URL
랑그독 지방이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도 나오더라구요. 당시의 가톨릭교도들 입장에서 보면 암세포나 다름없는 지역이었을 거 같아요.

라뒤리를 저도 처음 접했는데요. 아날학파에 대해 별로 아는게 없는 탓인지 단지 미시사 학자에 대한 견해라면 저는 긴즈부르크가 더 매력있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05-05 15:04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치즈와 구더기> 덕에 일반독자에겐 긴즈부르크가 더 익숙하죠.아날학파에 대한 책을 보면 마르크 블로흐와 함께 페르낭 브로델과 엠마누엘 라뒤리를 늘 선두에 놓더라구요.라뒤리 책은 요 몇년 간 우리나라에도 번역되기 시작하고 있고요.

반딧불이 2011-05-05 23:07   좋아요 0 | URL
아날학파도 1,2,3세대가 서로 지향점이 다르더라구요. 저는 물론 3세대 먼저 접했지만 차차 접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쉽싸리 2011-05-04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로쟈님 소개글, 파란여우님 글, 반딧불이님의 <치즈와 구더기> 리뷰까지 읽었어요. 눈과 마음이 호강했어요. 눈은 혹사인가? ㅎㅎ
특히 중세에 관한 미시사 연구가 한국엔 없는것 같아요. 그래선지 서양의 미시사 관련 책들을 보면 일단 흥미로워요.

반딧불이 2011-05-04 12:43   좋아요 0 | URL
아이고..쉽싸리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이건 완전 셋트메뉴같아요. 두분께 감사드려야겠는데요. 쉽싸리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중세에 대해서 저는 그저 '암흑기'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 어둠 속에서도 자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배울게 많더라구요.

양철나무꾼 2011-05-04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미시사적인 대목에서, 장르소설 얘길해서 그렇지만...'수도원의 죽음'의 연장을 보는 것 같았어요~^^

반딧불이 2011-05-04 12:52   좋아요 0 | URL
도입부분이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나름 재미있어요. 양철댁님 말씀을 듣고보니 이단심판에 대한 추적 자체가 라뒤리의 의도는 아니었는데 저는 마치 추리소설처럼 읽은 것 같아요.

루쉰P 2011-05-1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시사적 세계사만 보는 습관이 있어서 미시사에 대한 부분은 그냥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독서 성향이 있는데 반딧불이님의 리뷰를 보니 왕 반성이 되네요. 이런 류의 책으로 저는 '반역의 책'을 재미나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부류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전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과 '책과 혁명'을 읽었는데 그 책들도 이런 미시사 역사 분류에 속하는 건가요? 좀 따분하기는 하더라구요. 헤헤 아직도 독서력이 부족합니당~~

반딧불이 2011-05-14 02:45   좋아요 0 | URL
저도 역사 공부한지가 얼마되지 않아서 아는게 별로 없어요. 다만 미시사쪽으로 알려진 책들이 <고양이 대학살>, <치즈와 구더기>, <몽따이유>, <마르탱 게르의 귀향>, <야생정신 길들이기> 같은 책들이 있는걸로 알고 있어요.
<반역의 책>은 잘 모르겠구요. <책과 혁명>은 읽지는 못했지만 저자인 로버트 단턴이 미시사학자인 걸로 알고 있네요.

저도 미천하지만 거시사와 미시사를 함께 보는 것이 역사를 제대로 아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구요.

루쉰P 2011-05-15 08:08   좋아요 0 | URL
하여튼 뭘 하나 공부하려고 해도 제대로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듯 해요. <반역의 책>은 중국 청나라 시대 때 명나라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소문이 어느 시골 마을에서 들리고 있다는 얘기에 청 황제가 그 동네에서 소문의 근원이 되는 책을 찾아내라고 지시해 그 책을 찾아 그 얘기를 퍼 트린 사람들을 추적, 추적하는 내용인데 ^^ 마치 지금 증권사 찌라시의 근원을 찾아내서 없애버리려고 했던 것처럼 청 황제가 얘기는 있는데 한 사람이 없는 상황 속에서 대 분투하는 내용이에요. 역사서 인데도 불구하고 웃으며 읽은 기억이 있어요. ^^ 청 황제가 고생하는 게 웃겨서요. ㅋㅋ

로버트 단턴이 미시학자가 맞군요. <책과 혁명>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원동력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란 책을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봤기 때문이다라는 학설을 단턴이 그 시대 서점들의 금서 목록을 조사하며 무엇을 읽었는가를 세심하게 분석한 결과 저 학설이 맞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제시하는 책인데 좀 지루한 감이 있어요. ㅋㅋ

반딧불이 2011-05-15 13:34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엔 두 권 모두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릴케 현상 2011-05-18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언제나... 무진장 공부 열씸히 하시네요^^ 숙제 하다가 잠깐 마실 왔습니다. 기회 되면 저도 독서의 기쁨을 누려 보고 싶네요

반딧불이 2011-05-19 00:57   좋아요 0 | URL
제가 할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요. 힛~. 이시간까지 숙제하시는 산책님이야말로 정말 열심히 하시는거죠.

루쉰P 2011-06-10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시사를 연구하시다가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히실 줄 알았습니다. ^^ 너무 축하드리고 알사탕이 반딧불이님의 미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ㅋ

반딧불이 2011-06-11 12:01   좋아요 0 | URL
크..연구는요 무슨. 재미삼이 읽는건데요. 알사탕으로 바뀐뒤부터 이상하게 잘 안써먹게 되더라구요. 한때 오만원씩 받았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무슨 계를 탄 것같아 보고싶은 책을 몰아서 사곤 뿌듯해 하곤 했는데 말이에요. 루신P님도 축하드려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 1881 함께 읽는 교양 9
조슈아 아바바넬.제프 스위머 지음, 유자화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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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겨울 옷가지를 정리하다가 나는 이미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겨우내 서랍 속에서 함께 산 좀벌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내 옷을 갈아 먹으면서 겨울을 난 모양이다. 그것도 폴리에스테르가 섞인 것은 하나도 안 건드리고 백퍼센트 울 제품의 비싼 옷들만을 갉아 먹었다. 찢어진 그물처럼 여기저기 구멍을 내 놓아서 버린 것이 태반이지만 정말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것은 아플리케라도 해야겠다고 골라 두었다.

청소기를 최고 흡입력으로 돌려서 서랍 속을 훑어내고 옷가지들은 햇볕에 널어 말렸다. 난리를 한바탕 치르고 나니 제 풀에 지쳐 소파 위에 나가 떨어졌다. 소파 위를 뒹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인간도 벌레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땅을 후벼 파고 흐르는 물을 막고 자연의 모든 것들을 착취하고 끊임없이 종족을 번식하고.......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어떤 벌레보다도 더 악질의 변종 바이러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옷 좀 몇 개 갉아먹은 것이 뭐가 그리 대수냐 하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좀벌레에게 너그러워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칸칸이 쟁여 넣은 좀약은 치울 수가 없었다.

빈대, 이, 집 먼지 진드기, 모낭진드기와 옴 진드기, 서양 좀벌레와 집게벌레, 파리, 개미, 바퀴벌레, 흰개미, 벼룩과 흡혈진드기, 의류해충과 부엌해충 등이 이 책에 당당하게 활보하고 다니는 것들이다. 어느 것 하나도 낯선 것이 없다. 생물학적 지식과는 전혀 무관하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몸에는 많은 균들이 살고 있다. 당연히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불, 카펫, 소파, 침대 등에도 균이 있을 것 아닌가. 무좀에 걸린 사람은 무좀균을 키우고 있고, 감기에 걸린 사람은 감기 바이러스와 동거 하고 있는 것이다. 집 먼지 진드기를 박멸한다고 수시로 의료팀을 방불케 하는 청소 팀이 다녀가고 탈탈 털어 햇볕에 말려도 어차피 그것들을 전멸 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저자의 말처럼 그것들을 박멸하려다 인간이 먼저 박멸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끔 내 몸에 균이 침입해와 내 몸을 괴롭힐 때, 고열이 나고 목이 아프고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할 만큼 아플 때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빈대, 이, 파리, 개미,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질 때 아마도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할 지도 모르겠다.

드물지만 책을 읽고 나서 짜증이 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누군가 권해서 읽었는데 도대체 왜 권했는지 알 수 없을 때, 내용이 턱없이 부실 할 때, 도무지 이 글을 왜 썼는지 의도를 알 수 없을 때, 종이 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으로 농락당했다는 느낌이 들 때, 같은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 때 등 등.......

이 책은 이 모든 조건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갖추었다. 거기다 호화 양장본이다. 벌레를 유난스레 싫어하거나 천적처럼 여기지 않는 나도 이 책을 보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벌레들의 특정 부위를 현미경으로 극대화 시켜 보는 이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왜 이 책이 인문 사회분야로 분류되는지도 모르겠다.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라고 버젓이 부제를 달고 있는데 말이다. 제목도 부제도 장난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는 외로운 영혼을 달래는 속삭임같다.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 아니다. 인간을 숙주로 삼아 살고 있는 벌레들의 적나라하지만 지극히 간략한 보고서다. 

이 책에서 내가 새롭게 발견한 정보는 세 가지다. 첫째, 파리가 뒤로도 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곤충 중의 하나라는 것. 둘째, 빈대의 수정 방법이다. 암컷 빈대의 몸에는 생식기 개구부가 없어서 수컷이 암컷의 배를 갈라 벌리고 그 안에 정자를 넣는다는 것, 곤충학자들은 이것을 외상성 수정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암컷 사마귀가 교미 후에 수컷 사마귀를 머리부터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느꼈던 종족 보존의 잔인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셋째, 벼룩의 점프 능력이다. 벼룩은 제 키보다 150배 높이 뛸 수 있고 수평으로는 80배 더 멀리 뛸 수 있단다. 엄청난 능력이다. 이 능력의 비밀은 다리에 담겨 있는 레시틴이라는 탄성 단백질이란다. 벼룩의 키를 0.5 센티미터라고 가정한다면 75센티미터를 뛰어 오르고 40센티를 멀리 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봐야 내 허리아래서 놀잖아 생각하다가 인간과 비교해보니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이다. 내가 만약 탄성단백질을 가졌다면 나는 24000센티미터 그러니까 240미터를 높이 뛰기 할 수 있고 12960센티미터 그러니까 129.6미터를 멀리 뛰기 할 수 있다. 엄청난 능력이긴 하다. 레시틴을 연구하다가 자신의 몸으로 생체실험을 하고는 지구밖으로 튀쳐나간 인간이 있을 것만 같다. 또 내가 혼자서 너무 멀리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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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4-2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증나는 책을 끝까지 지속해서 읽고 나간다는 것도 굉장한 힘이죠. ㅋ

항상 느끼는거지만 읽은 책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최대한 양서(?)만을 골라 읽으려 노력 중이에요. 리뷰도 꼼꼼히 보구요.

근데 반딧불이님처럼 먼저 길을 가보고 이 길이 아니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분이 계셔서 그런 오류를 벗어나 좀 더 이 부족한 시간 아껴서 책을 읽어서 다행이라 여겨요.

주례사 비평이라고 하던가(?) 책들에 마구잡이로 달려 있는 칭찬 일색의 글들은 신뢰가 떨어져 더 이상 믿지를 못하죠. 차라리 이렇게 서재의 리뷰들이 더 신뢰감을 팍팍 줍니다. ^^

반딧불이 2011-04-22 00:26   좋아요 0 | URL
수정하는 동안 벌써 읽으셨군요. 안 읽고 리뷰를 쓸 수는 없어서 꾸역꾸역 읽었네요. 루쉰P님의 시간을 좀 벌어드렸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루쉰P 2011-04-23 09:52   좋아요 0 | URL
헤헤 제가 1등으로 읽은 듯, 그래도 다 읽고 리뷰 쓰신 것은 대단하죠. 전 마음에 안 들면 아예 읽어 버리지도 않는 냉정한 면이 있습니다. -.- 시간 완전 벌어 주셨삼. ㅋㅋㅋ 감사해요.

쉽싸리 2011-04-2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과학'분야 책으로 선정된듯 합니다.
과학이라고해도 너무 넓죠. 벌레,곤충에 대한 얘기가 자연과학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요. 서평단의 한계일수도 있겠구요. ^^
서평단은 계속하시는지요?

반딧불이 2011-04-22 10:03   좋아요 0 | URL
서평단의 한계라고 말씀하시니 좀 위로가 됩니다. 한계는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저도 분야를 갈아탈까 하다가 이번 서평단은 지원하지 않았어요.

blanca 2011-04-2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데 리뷰가 재미있어요. 벼룩의 점프능력 정말 죽음이네요. 그런데 순간 너무 징그러워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제목 한번 기발합니다.^^

반딧불이 2011-04-22 21:11   좋아요 0 | URL
책얘기 쓸게 없으니까 주절주절 제 얘기만 늘어놓았는걸요.
기발한 것까진 좋았는데 저는 책가지고 장난하는 건 정말 싫어요.

비로그인 2011-04-2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럼 제가 끙끙 앓고 있는 동안에도 최소한 혼자는 아니었던 거로군요. 감기 바이러스가 저랑 함께하고 있었으니 말예요.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 괜찮아지는데요ㅎㅎ 게다가 이렇게 재미있는 리뷰를 여전히 볼 수 있으니 살아 있다는 거 그거 괜찮은 거 확실하네요^^

반딧불이 2011-04-22 21:13   좋아요 0 | URL
얼마나 외로웠으면 바이러스와 동침한다고 생각을 했겠어요. 그래도 동침하니까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긴 합디다. 나를 이렇게 달뜨게 하는게 또 어디있으랴..고마워했죠.머. 제 경험을 후와님께 강요해서 죄송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4-2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벌레가 너무 싫어요.
그런데 '가정용 곤충'이란 살가운 단어로 불리워도 되는거래요?^^

전 벌레에 관한 얘기들만 언급돼도 소름 돋고, 가려워서 긁적여요.
아웅~ㅠ.ㅠ
호화 양장본이란 말에 또 혼자 상상하고 북북 대고 앉아있습니다~

반딧불이 2011-04-22 21:16   좋아요 0 | URL
저도 벌레 싫어요.~ 특히 다리 없는 벌레는 딱 질색이에요.
책장을 넘기다가 확대된 벌레의 성기, 집게를 맞딱뜨리면 나도 모르게 외면하게 되더라구요.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가 벌레의 눈과 제 눈이 딱 마주칠 땐 포스트잇으로 가리고 봤어요!

교고쿠도 2011-04-24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좀 별로였어요. 서평단으로 뽑힌 책들이 다 마음에 들지는 않는듯 합니다. 끄악! 이런 혐오스러운 벌레 확대사진 따위! ㅋ
게다가 양장본이면서도 장정 부분이 약해서, 제가 책을 굉장히 소중히 다룸에도 불구하고 사진 몇 장 찍다 보니 장정 부분이 갈라져 버렸어요.

반딧불이 2011-04-24 16:39   좋아요 0 | URL
서평단으로 활동하면서 책 내용도 그렇지만 책이 주는 느낌도 참 다양하다는 걸 느꼈어요.
위의 여러가지 못마땅한 것에다가 불량 제본까지 보태야겠군요. ㅋㅋ

반딧불이 2011-04-24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4세기 프랑스 사람들에겐 서로의 '이'를 잡아주는 것이 초보적인 위생 관리와 애정의 표현방식이 결합된 몸짓이었다는군...<몽타이유> 281

원숭이들이 서로 이 잡아 주는 모습과 다르지 않구나.
 
<대칭>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대칭 -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 승산의 대칭 시리즈 4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안기연 옮김 / 승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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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학과 수학자에 관한 책은 처음이다. 수학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숫자와 끝없이 씨름을 해야 하는 것 밖에 없다. 중학교 때인가 음의 정수, 양의 정수, 유리수의 혼합셈 문제를 풀 때 늘 부호를 빼먹어서 답이 틀렸던 기억, 어찌어찌 풀기는 했는데 답이 0이었을 때의 그 허무함, 소금물의 농도도 먹어보고 구하는 것이 빠를 듯싶었고 시간과 거리, 속도 등을 배울 때는 내 지능이 두 자리 수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었다. 도형은 특히 싫었다. 점대칭 선대칭이 내가 아는 대칭의 전부다. 중학교 때부터 싫어진 수학에 오답을 제출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런 수학을 아름답게 여기고 여기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있다. 책은 쉽지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내가 만약 저렇게 오답만을 제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수학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으니 책이 주인을 잘못 만난 셈이다.

책 속에는 자연에 숨겨진 모든 대칭의 패턴을 목록화하겠다는 야심에 가득한 모험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주사위, 불가사리, 에셔의 그림, 알람브라 궁전의 17가지 대칭 등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얼마전 플르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읽으며 루비콘 강에 이르렀던 카이사르가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한 말을 마주쳤을 때 나는 새삼스럽게 깜짝 놀랐었다. 주사위가 이미 기원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주사위 게임은 그리스 군대가 트로이를 포위 공격하는 동안 시간을 보내기 위해 팔라메데스가 고안했다고 한다. 로마 군인들은 주사위게임을 너무나 즐긴 나머지 그 전쟁중에도 무거운 주사위판을 등에 짊어지고 다녔다고 한다. 알고보니 주사위의 모양도 아주 다양하다. 그러나 완벽한 대칭 다면체는 다섯 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알람브라 궁전에 있는 17개의 패턴을 찾아나선 작가를 따라다니는 일은 흥미진진했다. 선회대칭이니 반사대칭이니 미끄럼대칭이니 하는 전문 용어는 몰라도 좋았다. 60도를 돌리든, 120도를 돌리든, 90도를 돌리든 점을 중심으로 하든 회전축을 중심으로 하든 아무상관없이도 재미있을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더욱 재미있었던 것은 보르헤스에 대한 저자의 언급이었다. 그는 보르헤스를 수학자들의 작가라고 한다. '그의 단편 소설들은 마치 수학 증명처럼 무리없이 엮어진 아이디어들로 정교하게 구성된다. 각각의 단계는 정밀함과 빈틈없는 논리를 갖추면서도, 놀라운 반전과 풍자로 가득하다'니...믿을 수 없다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왜 보르헤스의 책이 잘 안 읽히는지 여기에 해답이 있는 듯하다.  

이 책 중에 아마도 내가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소수를 가지고 하는 수학적 농담이었던 것 같다. 증류소 방문을 마치고 미니어쳐 술병을 주자 알콜도수가 30퍼센트에 불과하고 게다가 소수도 아니라는 사실이 수치스럽다는 말을 농담으로 하는 수학자나 그말을 듣자  술병들을 홱 치워버리고는 한참 있다가 새로운 병들을 가지고 나타나서는 '43퍼센트입니다. 제 생각에는 소수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주인이나 못말리는 수학에 미친자이지만 한편 귀여운 구석이 있다. 

우리의 생활에 퍼져있는 다양한 수학적 요소들을 찾아낸 설명을 듣노라면 수학을 떠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 파리 라빌레트 공원의 라제오드, 신 개선문 등의 건축 뿐만 아니라 일본의 가부키, 쇤베르크와 바흐, 모짜르트의 음악, 현대무용 등 그 범위를 제한 할 수 없다. 이런 재미와는 별개로 5차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논문을 과학원에 제출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26세에 요절한 닐스 아벨, 그의 뒤를 이어 신체적 자유를 박탈당한 감옥에서 5차 방정식에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고 자신의 논문을 완성했지만 복잡한 사랑게임의 논리와 규칙을 파악하지 못해 가슴에 총을 맞고 죽은 갈루아의 이야기는 가슴아팠다. '스무살에 죽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모든 용기가 필요하지'라고 했던 그의 말에 가슴이 뻐근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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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28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은 영국 수학자 하디의 <어느 수학자의 변명>이 떠오르네요. 어릴 때 교회에 가면 너무 지겨워 성가대가 부르는 찬송가의 음의 길이를 숫자화해서 인수분해하는 놀이를 즐겼다는 대목이 나오거든요. 그러면서 신동 소리깨나 들었던 수학자들은 대부분 어릴 때 그런 놀이를 즐겼다고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일반인과는 뇌구조가 다른 것 같아요^^

반딧불이 2011-03-28 01:15   좋아요 0 | URL
후와님께서는 수학관련 책을 많이 보시는 것 같아요. 혹시 후와님도 음의 길이를 숫자화하거나 자연에 숨겨진 대칭을 찾느라 거리를 헤매시는 건 아니에요?

비로그인 2011-03-28 01:19   좋아요 0 | URL
제게 맘 상한 일이 있으시다면 차라리 욕을 하세요. 그런 숭악한 말씀은 마시고요 ㅋㅋ^^

반딧불이 2011-03-28 01:26   좋아요 0 | URL
아유. 깜짝이야. 내일쯤에나 오실줄 알았더니.... 욕은 그만두고 한 대 때려주고 싶은데욧! ㅋㅋ

양철나무꾼 2011-03-28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신간평가단 도서인줄 알고...님의 리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전 신간평가단이랑 상관없이 이 책을 가지고 있는데...무려 읽기도 했는데,
난해하고 넘 어려웠어요~ㅠ.ㅠ

제 자신이 문과적 성향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실은 이과였거든요.
그래서 수학 잘하는 친구들 종종 봤거든요.
그런 외려 그 친구들 정신세계 유니크 하더라구요~
독특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하고~^^

반딧불이 2011-03-28 09:37   좋아요 0 | URL
저라고 안어려웠겠습니까? 다만 가끔 난해한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해야하느니..하면서 이차방정식도 풀어보고 대칭축도 찾아보고 했죠. 머.

저 역시 문과적 성향이라고 찰떡같이 믿고 있는데 아무래도 아닌듯 싶습니다. 그동안 제가 알던 수학과는 달리 추상적인 것을 구상으로 풀어내려는 수학자들의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cyrus 2011-03-28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에서 그나마 재미있게 읽은게 알함브라 궁전 이야기에요, 나머지 내용들은
수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것들이라서,, 그냥 대충 읽었어요,, ^^;;

반딧불이 2011-03-28 09:39   좋아요 0 | URL
서평이 마감날짜가 지났는데도 절반이 안올라오는걸 보면 누구라도 그러셨을 것 같은데요.
 
<도스또예프스키 평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병익.권영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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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스토예프스키는 여덟 명의 아이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가 열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열여덟 살 되던 해 피살당했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 적지는 않았겠지만 넉넉한 환경은 아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28세 때 뻬뜨라세프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8년의 징역을 언도받았다. 훗날 황제에 의해 ‘4년 징역, 그 후엔 사병으로 복역’으로 감형되었지만 이 때문에 그는 추방되어 족쇄를 차고 수용소에서 4년을 지냈다. 이런 형을 받게된 사건의 근본적인 성격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고 군법회이 공식문서도 하찮은 점만 지루하게 강조될 뿐 뚜렷한 증거도 없는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이 사건에 대해서는 어조나 내용이 자주 바뀌기는 마찬가지여서 후세의 궁금증을 더할 뿐이다. 그러나 이 경험은 <죽음의 집의 기록>으로 남았고 <죄와 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가 감옥을 나와 남은 형기를 병사로 근무하게 되었을 때 세관의 하급관리였던 이사예프의 부인과 사랑에 빠졌다. 이것은 그에게 첫사랑이었으며 그녀의 남편이 술 때문에 죽자 마리야 드미뜨리예브나 이사예프와 결혼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나이는 36세였다. 그러나 그녀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아들 하나를 남겨 의붓아버지로 만들고는 폐렴으로 사망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가 운영하던 잡지에 단편을 발표했던 뽈리나 수슬로바와 한 때 사랑했으나 결혼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43세에 첫 번 째 아내를 잃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46세에 당시 속기사였던 스무 살의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스니뜨끼나와 재혼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평생 동안 도스토예프스키의 성숙한 동반자였다. 낭비벽도 심하고, 룰렛에 대한 열정으로 도박에 자주 빠졌으며 값나가는 물건들을 전당포에 맡길 만큼 생활은 곤궁했다. 거기다가 때때로 심각한 지경의 간질 발작까지 일으켰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모든 상황을 나이에 맞지 않게 이해하고 포용하며 도스토예프스키가 작업에만 몰두 할 수 있게 빚을 내어 외국으로 도피하는 모험을 강행하기도 했다.  

그들은 첫 딸 소피를 낳은 지 석 달 만에 감기로 잃었고 후에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었다.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넉넉하지는 않아도 경제적인 안정을 주었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안나에게 심리적으로다 상당히 의존했던 듯싶다. 도스토예프스키는 60세에 폐의 동맥이 터져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의 죽음은 문학적 명성이 절정기에 다다랐을 때였다. 3만 명에 이르는 조객이 줄을 이었고 저녁이 되어도 무덤 주위의 군중들은 흩어질 줄 몰랐다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벨린스키, 네끄라소프, 뚜르게네프 등 쟁쟁한 인물들과 동시대를 살았다. 특히 뚜르게네프와는 태생도 작품의 성향도 지향하는 바도 서로 달랐지만 여러 가지 인연이 닿아있기도 하다. 그들은 러시아 문학사에서 도스토예프스키와 뚜르게네프 논쟁으로도 유명해졌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창작활동을 시작할 무렵 러시아의 소설은 센티멘털 소설, 괴기소설, 자연주의 소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센티멘털 소설과 괴기소설에서 많은 것을 빌려왔지만 특히 고골에 의해 창시된 자연주의적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그가 등장하자 새로운 고골이라는 평가가 따랐으니 말이다.

E.H. 카의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몇 안 되는 평전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우선은 작가가 역사학자라는 점이 가장 도드라진다. 대상에 대한 냉정할만큼의 객관적 거리확보는 여기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또 도스스토예프스키 작품에 대한 평전이라할만큼 그의 작품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 것이 다른 평전들과 가장 다른 점이다. 저자는 주제별로 작품에 대한 분석을 해두었는데 이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는데 크게 도움이 될것이다.  

E.H. 카의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은 박홍규의 카프카 평전처럼 자신이 쓰는 대상에 대해 손가락이 오그라들 만큼 살갑게 굴지 않는다. 카의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은 리영희 평전처럼 자신이 쓰고자 하는 대상의 글 인용으로 절반 이상을 채우지 않는다. 카의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은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처럼 박진감 넘치거나 살아움직이게 그리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생활과 작품과의 관계를 추적하는데 유용하다. 카의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은 고모리 요이치의 나는 소세키로소이다와 형식면에서 가장 유사하다.  E.H.카는 역사학자이고 고모리 요이치는 일문학자다. E.H.카는 영국인으로서 러시아인을 다루었고 고모리 요이치는 일본인으로서 일본인을 다룬것이 이들의 차이일 것이다. 평전이 다루는 인물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면 이 책은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평전이 인물이나 작품에 대해 비평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 그 또한 이 책은 그 책무를 다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 번역하신 분들은 신뢰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어와 서술어의 문장호응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읽는데 두 번 이상 꼼꼼히 읽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더러 보인다. 오탈자도 당연히 없을 리 없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외래어의 표기다. 도스또예프스키로 하던지 도스토예프스키로 하던지 출판업계에서 통일해 주었으며 좋겠다. 리뷰마감에 쫓겨 아직 찾아보지 못했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시들로프스키가 내가 '낯설게 하기'라는 말로 기억하고 있는 쉬클로프스키인가도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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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3-2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저 마지막에서 두번째 대목에서 저는 추천 도서 목록을 막 주워 담아요. 빅홍규의 카프카 평전이 눈에 뜨이네요. 관심있었던 책, 친절하고 정갈한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반딧불이 2011-03-27 23:38   좋아요 0 | URL
아이고 블랑카님 어째서 하필이면 그 책입니까. 도서관에서 먼저 일별하시기 바래요. 오문과 비문과 난무하는 오탈자로 박홍규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책입니다.

2011-04-04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03-28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전에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몇 권을 읽어서 다행이지 평전치고는 재미가
조금 없었던거 같아요,,,^^;; 그나마 도박벽에 대한 내용은 읽어볼만했을뿐이구요,,
어느 역사학자가 말하길 E.H. 카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게 만드는 역사 주제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체는 무미건조하다고 평한 적이 있어요,,
제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카의 서술 자체에 우러나오는 무미건조함에
매끄럽지 않은 번역까지 더해져서 읽는데 쉽지 않았던거 같습니다. ^^;;

반딧불이 2011-03-28 09:51   좋아요 0 | URL
저도 읽을 때는 사이러스님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었는데요. 다시 생각해보니 평전이란 이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객관적인 거리 유지, 작품과 작가와의 유기적인 관계 등은 나무랄 때가 없지 않나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을 즐겁게 읽지 못한 것은 순전히 번역때문이라고 매도하고 있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3-31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인으로서 소련인을 다루었다...도스토예프스키로서는 자신을 소련인이라고 표기한 반딧불이 님께 항의할 것 같은데요.

반딧불이 2011-03-31 00:38   좋아요 0 | URL
하하.. 정말 그럴 것 같은데요. 얼른 바꾸겠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루쉰P 2011-04-04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모리 요이치의 '나는 소세키로 소이다'가 혹시 번역돼 있나요?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네요. 후반부의 평전에 대한 평가에 대해 좋은 부분이 많아서 좋았네요. ^^ 저도 꽤나 평전을 좋아하는데 이번 평전은 정말 무미건조하고 객관적으로 모든 자료를 가지고 그를 분석하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최대한의 추측은 삼가하구요. 사람은 100% 완벽하게 다시 재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알 수 없는 일이라 항상 생각해요. 한 30~40%만 재생해 내도 훌륭한 평전일 것 같다고 홀로 생각하는데 제가 이상한가요? ㅋㅋㅋ

반딧불이 2011-04-05 12:34   좋아요 0 | URL
그럼요. 당연히 번역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냥 평전을 읽을 때는 글쓴이가 어떤 관점을 취하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읽어요. 똑같은 사람에 대한 평전도 쓰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E.H.카처럼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주는게 좋죠. 나머지 판단은 제 몫이니까요.

루쉰P 2011-04-05 12:5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제 몫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좀 어려운 부분인 것 같기도 해요. 하기사 세상사도 제 멋대로 판단하며 사는데 왠지 평전이라고 하면 마치 사람을 박제해서 전시해 놓듯이 저 사람은 위대하니 저래야 한다거나 라는 등의 고정된 선입관으로 볼려고 하는 정답 찾는 듯한 평전 읽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제 자신을 보더라도 어느 때는 변태적 일정도로 욕망에 차 있고 어느 때는 봄의 여운을 느끼며 여유로운 사람이 돼 있고 하는 등...어려워요.^^ 하도 학교 다닐 때 정답 찾는 교육만 받아서 그런지 정답이 없는 것이 세상사고 사람도 그러한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뇌구조가 못 되는 것이 한탄스러워요. ㅋㅋ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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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플루타르코스의 『비교열전』은 23쌍의 그리스 로마 영웅의 일생을 기술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이 책에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영웅 5명, 로마의 영웅 5명 총 10명의 모습을 실었다. 플루타르코스가 알렉산드로스 전에서 밝혀 두었듯이 그가 쓰려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전기이다. 때문에 수천 명이 전사한 전투나 전쟁장비 같은 이야기보다 한 인물의 우연한 발언이나 농담 같은 사소한 일들에 더 비중을 두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영웅’이라 불리는 ‘인간’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영웅’에 대한 현대의 사전적 의미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지혜와 재능과 용맹이 영웅의 세 가지 조건처럼 여겨진다. 이것은 플루타르코스가 다룬 그리스 로마의 영웅 열 명 모두에게서 찾아 볼 수 있었다. 때로는 지혜가 때로는 재능이 또 때로는 용맹이 돋보이기는 했지만 어느 한 사람도 그것이 결여되어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영웅의 현대적 의미를 기원전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해도 될지는 의문이다. 키케로는 그의 책에서 지혜, 정의, 용기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우리가 소위 '영웅'이라 칭하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더 부각되는 모습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영웅의 조건을 ‘탁월함’이라 부른다. ‘탁월함’은 완벽함과는 구별되어야 하며 미덕 혹은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하면서도 빼어난 자질이라 하는 편이 더 가깝겠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탁월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탁월함은 평상시에 잘 연마했다가 필요한 때에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두장이에게는 구두장이만의 탁월함이 있고 달리기 선수에게는 그만의 탁월함이 있는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러한 탁월함을 그리스인에게서는 의사와 키잡이에 비유하고 로마인에게서는 운동선수에 비유하여 그리고 있다.

그리스의 영웅 다섯 명 중에서 나는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매력 있게 느껴졌고 로마의 영웅들 중에서는 안토니우스였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참으로 멋지게 그려졌던 솔론이 이 영웅전에서는 빛을 잃었다. 대신 뤼쿠르고스가 돋보였다. 그는 왕들에 의한 참주제와 원로들에 의한 과두제, 백성에 의한 민주제 등을 혼합한 혼합정체를 만들었다. 토지를 재분배하고 부에 대한 욕망을 근절하기 위해 공동식사제도를 도입했다. 그가 돈에 대한 가치를 평가절하하기 위해 철제 돈만을 사용하게 한 것은 웃음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는 또 법을 성문화하지 않았다. ‘성문법이란 거미줄과 같은 것이어서 약하고 작은 것이 걸려들면 붙잡을 수 있어도 힘 있고 돈 있는 자가 걸려들면 갈기갈기 찢어진다.’고 한 아나카르시스의 말이 그 이유인 듯싶다. 그리스의 영웅들에게서는 참으로 많은 제도와 정책들이 만들어진다. 어떤 사람의 권세가 압도적이어서 민주주의의 평등과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지면 그들은 10년 동안 도편추방하여 그의 명성과 권위를 훼손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처벌의 수단이 아니었다. 오히려 탁월한 자들을 비하하기 좋아하고 그렇게 특권을 박탈하고 한풀이를 함으로써 시민들의 시기심을 달래게 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레오니다스 등을 스승으로 삼았던 알렉산드로스는 빼어난 외모와 자기 절제, 섬세한 심성 등이 돋보였다. 고열에 시달리다가 갈증이 나서 포도주를 마시고는 정신착란에 빠져 헛소리를 하다 죽었다고도 하고 또 독살설도 있는데 그 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알 수도 없고 어떻게 죽었는지가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그의 죽음이 아까운 것만은 사실이다.

로마의 영웅 다섯 명 즉 마르쿠스 카토, 티베리우스 그락쿠스, 가이유스 크라쿠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에게서 탁월함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이미 플루타르코스의 검증을 거쳤으니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여전히 커다란 울림으로 남아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든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같은 수많은 명언들을 남기고 삼두동맹, 갈리아전쟁, 역법개혁 등 서양사에 큰 영향력을 끼쳤지만 끝내 암살당하고 만 카이사르가 아니다.  

그런가 하면 역자로부터 ‘탁월한 자질과 유리한 조건을 살리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다가 무비유환의 삶을 살다 간 반면교사’라는 소리를 듣지만 제2차 삼두정치를 성립했고 동방원정을 했던 안토니우스도 아니다. 그것은 이런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정복한 클레오파트라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가 드넓은 영토를 정복했다면 클레오파트라는 두 정복 왕을 정복한 셈이다. 과연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 플루타르코스가 기술한  그리스 로마 영웅 23쌍 중에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여성의 이름은 없는 듯하다. 영웅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당시에 여성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최소 9개 국어를 구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플푸타르코스에 의하면 그녀는 자신의 혀를 여러줄의 현악기처럼 다루었다고 한다. 그녀는 또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기 위해 엄격한 식이요법으로 체중을 줄이기도 하고 안토니우스가 다가오면 황홀하다는 듯 쳐다보고 떠나가면 괴로워 기절할 것 같은 모습을 지어보였다고 한다. 그녀는 미모뿐만 아니라 매력과 자기 절제, 정치적 술수까지 모조리 갖추었던 듯하다. 옥타비아누스의 개선행렬을 장식하는 전리품으로 사용될 수 없어 자신의 죽음마저도 아름답게 치장할 줄 알았던 여자. 순간의 기지는 말할 것도 없고 교활함까지도 사랑스러운 이런 여자를 어떻게 남자로서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내가 그리스 로마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한탄했다. 이 매력적인 영웅들을 유혹하느라 일생을 탕진하더라도 아깝지 않을 듯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를 읽고 당시에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같다. 카이사르가 신념과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면 안토니우스는 흥분과 격정이 꿈틀거리는 감정의 원초적 공간으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카이사르가 위험을 무릅쓰고 권력과 통치를 추구 했다면 안토니우스는 사랑을 좇았다. 카이사르가 공적인 제도 수립 등에 힘썼다면 안토니우스는 ‘모방 수 없는 생활인의 동아리’, ‘죽음을 함께 하기로 한 동아리’같은 사적인 놀이도 즐겼다. 카이사르가 생김새와는 다르게 지도자의 면모로 묵직한 모습이라면 안토니우스는 스스로를 조롱거리로 만들어 즐기기까지 하는 경박하지만 귀여운 모습을 지녔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은 죽음이다. 카이사르의 권력에 대한 지나친 야심은 암살을 부르고 안토니우스의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집착은 자살을 소환한다. 카이사르는 예기치 않은 죽음이 가장 훌륭한 죽음이라고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죽었다. 안토니우스는 자신이 누렸던 온갖 행운을 생각하며 세상에서 최고의 명성과 권력을 누리다가 죽는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플루타르코스의 말대로 운명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가치있게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던 당시의 사람들을 지금의 우리와 비교해보게 된다.  

플루타르코스가 인물들을 그려낼 때 단지 영웅적인 모습만을 그리는 것은. 비교열전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들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탁월함과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는 결점까지 모두 보여준다. 영웅들이 남긴 수많은 명언들과 플루타르코스의 수사학이 빚어내는 이 책은 말의 향연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플루타르코스의 화려한 문장이 페르시안 카펫처럼 펼쳐진다. 당시의 시민들이 글을 몰랐기 때문에 정치가들에게 웅변술은 생명이었을 것이므로 끊임없이 웅변술을 갈고 닦았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이 플루타르코스의 수사학인지 당시 그리스 로마인들의 수사학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 영웅들의 웅변은 다분히 철학적이고 도덕 교과서 같은 반면 로마의 영웅들에게서는 민중의 영향력이 보이고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그리스인들이 신탁에 의존하며 신을 숭배했다면, 로마인들은 실존인물들을 신격화하며 그들을 숭배했다. 각각의 인물들을 살피노라면 물질문명은 극한까지 발달했지만 인간의 본성은 병아리 눈물만큼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족, 3월 15일이 알렉산드로스인지 안토니우스인지가 헷갈리지만 둘중의 한사람이 죽은 날이었던 것같은데... 어디서 봤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저주받은 기억력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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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치 2011-03-15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레오파트라는 모든 일에 올인하는 스타일이었나봐요.ㅎㅎ;;
읽고 싶게 리뷰를 쓰셨어요.^^

반딧불이 2011-03-15 13:17   좋아요 0 | URL
네..그런것 같죠? 참으로 열정적이었던 여자 같아요. 정복왕을 정복하려면 저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참에 클레오파트라에게서 좋은 것 뿐만 아니라 나쁜 것까지도 다 배우려구요.~

맥거핀 2011-03-15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웅의 신화가 사라져버린 우리들의 세계에 영웅전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향수만은 아니겠지요. 왜곡된 영웅화나 영웅화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만이 남아있는 이 시대에 영웅전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케해보는 글입니다.
그러나저러나 옛날 분들 글 참 잘써요. 글쓰기에 어찌 그렇게 힘이 있는지..

반딧불이 2011-03-16 11:04   좋아요 0 | URL
'비교열전'이 '영웅전'이라는 제목으로 둔갑한 걸 보면 우리나라의 출판성향이랄까 하는 것도 읽혀지는 것 같아요. 당시 사람들은 '도편추방'이라는 제도를 통해 개인이 영웅화되는 걸 경계했으니까 말이에요. 굳이 영웅이라는 말을 사용해야한다면 당시 사람들의 영웅은 자기절제에서 영웅이었다고 봐야할 것 같았어요. 현대인들에게 특히 정치가들에게 강력하게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훌륭한 문장때문에 저는 이 책을 거의 글쓰기와 상상력의 독본으로 읽은 셈이 되었어요.

감은빛 2011-03-2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심하게 축약된 책이었던 것 같구요.
클레오파트라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9개 국어를 구사했다니 대단하네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반딧불이 2011-03-25 13:40   좋아요 0 | URL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클레오파트라가 아름다웠던것 같지는 않지만 같은 여자인 제가 매료될만큼 매력덩어리였던 것 같아요. 저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를 준비해놓았답니다. 여러줄의 현악기같은 클레오파트라의 혀를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연주하는지 맛보려구요.

starover 2011-04-22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꼭 읽어봐야 할 이야기로서, 그의 영웅전이 찬사받는 이유는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모든 인간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저자는 '영웅들'을 통해서 드러냈기 때문이죠.

반딧불이 2011-04-22 21:1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이프리트님.
영웅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저는 이 세상을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아 부끄럽고 즐겁고...그랬습니다.

kampfwagen 2021-08-2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 15일에 사망한 인물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입니다.

반딧불이 2021-08-24 19:5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