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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성 - 전복의 문학, 모더니티총서 14
로즈메리 잭슨 지음, 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일상생활에서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을 말할 때 대부분 환상적이라고 말한다. 기쁨과 슬픔의 편에서 이야기하자면 어느 정도 기쁨 편으로 기울고 있는 듯 하다. 보다 더 이해하기 어렵고 표현하기 힘든 상황에 닥치면 우리는 '엽기'라는 표현을 곧잘 쓰는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세에나 서구 쪽에는 엽기라는 어휘가 없는 모양이다. 나는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환상'과 '엽기'를 더블 침대 위에 누이고 싶다.

저자인 로즈메리 잭슨은 영국 여성으로 유럽문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은 대부분이 영미의 저작들이다. 드라큐라 백작이나 프랑켄슈타인 박사, 변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등 우리에게 낯익은 작품들에 관점이 모아지긴 하지만 생소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작품을 읽고 이론서를 읽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간극은 상당하다. 급한 대로 비디오를 빌려보는 것도 보다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우리는 환상문학이 황당무계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간주하고 무가치한 것 혹은 일회적인 유희를 위한 것쯤으로 치부해버리기 쉽다. 이러한 생각은 예술이 현실을 모방하거나 재현해야 한다는 미메시스 이론 혹은 리얼리즘의 시각에 경도된 탓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저자는 환상문학 역시 사회적 맥락 안에서 생산되고 사회적 맥락에 의해 결정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환상은 낯설고 새롭고 절대적으로 다른 어떤 것을 산출하기 위한 것으로 정의한다. 이런 관점으로 인해 종교적 도덕적 우화나 계몽적 의도를 띤 작품들은 순수 환상물에서 배제시킨다.

저자는 또한 환상이 상상력이나 욕망과 맺는 관련성에 주목하는고 있다. 특히 납량 특집물처럼 자주 대하는 드라큐라 백작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은 프로이트가 기뻐할 만큼 명쾌하게 그의 이론과 맞장구를 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플라톤 시대에 환상문학이 있었다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대중을 혼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그의 공화국에서 추방당했을지도 모르겠다. 환상문학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왜? 또는 무엇 때문에? 라는 의문사는 괄호치기 해 두어야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가 계속 잠을 잤으면 별일 없었을 것을 왜 깨어나서 벌레로 변했는지 물어오면 우리는 변신을 즐길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성모 마리아가 성관계도 없이 어떻게 임신을 했는지 죽었던 예수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과학적 의문 없이 종교인이 되듯 우리는 지평의 도약을 통해 환상물에 뛰어 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환상에 대해 정의하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의 말처럼 환상이라 불리는 어떤 추상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유사한 구조적 특성과 유사한 무의식적 욕망에 의해 산출되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영역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끝간데 없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한 현대에서 환상은 어쩌면 문학의 지향점이 될 수도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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