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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 발전사전 - 자본주의의 세계화 흐름을 뒤집는 19가지 개념
볼프강 작스 외 지음, 이희재 옮김 / 아카이브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反자본 발전사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어휘들의 사전적 의미와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오용되고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의미들을 파헤친다. 제목이 시사 하는 바처럼 자본주의와 관련된 단어들 즉 발전, 환경, 평등, 시장, 진보, 기술, 과학, 환경, 생활수준, 인구 등등 19가지의 개념들에 대해 각기 다른 필자들이 글을 썼다. 이 책을 엮은 볼프강 작스의 글이 두 꼭지 있으니 총 17명의 필자가 있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반 일리히를 제외하면 모두 처음 대하는 필자들이다.

초판 서문에는 이 책이 결실을 맺게 된 과정이 적혀 있다. 그들은 모두 처지가 달랐으므로 며칠씩 혹은 몇 주씩 함께 모여 요리하고 여행하고 토론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모르는 것은 나누었고 아는 것은 겨루었’으며, ‘같이 헤맸고 같이 깨달음을 얻었다.’ 그들은 또 ‘비강단 지식인은 우정과 공동의 책임감을 빼면 시체라는 것을 체험’했으며 이렇게 나온 책은 이들의 ‘우정의 결실’이면서 ‘서로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밝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부분이다.

그들이 가장 먼저 파헤치는 단어는 ‘발전’이다. ‘발전’은 성장, 진화, 성숙 같은 단어들과 팔짱을 끼고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열등한 것에서 우월한 것으로, 나쁜 것에서 좋은 것으로 나아가는 행보를 늘 암시한다.’ ‘발전’이란 무조건 좋은 것, 그래서 누구나 온 힘을 다해 따라해야 하는 것 등 긍정적인 의미로 자신을 포장하므로, 어떤 ‘존재의 합당한 형태를 향해 움직인다는 변형’의 개념에서 점점 ‘완벽한 형태를 향해 움직’이는 것으로 개념이 진화했다. 그래서 ‘발전’은 ‘저발전’이라는 대상을 갖게 되고 이것은 어느 순간 ‘미개인’같은 개념과 동일시된다. 결과적으로 ‘발전‘이라는 단어는 경제중심 세계관의 패권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발전’이라는 말이 이렇게 원래의 의미와는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였다. 트루먼 대통령이 취임한 날 그가 천명한 발전 사업으로 인해 ‘저발전’이라는 말이 발명되었다. 1949년 1월 20일, 이날부터 세계 20억 인구는 ‘저발전’인이 되어 자신들이 가진 온갖 다양성을 버리고 저발전이라는 부끄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경험과 꿈에 속박 당하게 할 뿐만 아니라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절대빈곤’의 수준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발전’이라는 단어는 아무 여자나 집적대는 바람둥이와도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단어들은 ‘발전’과 관계 맺는다. ‘한 세계’라는 부분도 예외가 아니다. 고대인들은 하늘의 태양과 별을 바라보면서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고 여겼다. 그들에게 인간은 우연에 휘둘리는 지상의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영원불변의 천상과 관계 맺는 것에 관심을 쏟았다.

반면 과학이 발달(발전)하게 되자 현대인들은 지구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광막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을 바라본다. 그리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한 몸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이것은 세계를 하나의 동질적 공간으로 파악하게 만들면서 각 나라 고유의 관습과 문화를 서서히 증발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공간이 중심에 오는 사고는 일체성을 추구하게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관계 맺는 장소는 사라지게 만든다. 사이버, 인터넷, 트위터 등의 공간에서만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소를 자신의 뿌리로 여기면서 더 큰 공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점점 더 공간에 빼앗기고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아니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들을 뒤집어 그 속을 낱낱이 보여주는 저자들의 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생활수준’은 행복의 다양성을 줄이고, ‘사람’은 ‘인구’로 대체되었는데, 그것은 사람을 ‘규정된 확률로 만나서 짝짓기를 하는 번식 군집’으로 정의하면서 통제와 관리가 필요한 존재로 환원 시킨다. ‘요구’는 호모 사피엔스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의식과 감각을 갖지 못한 궁핍한 인간으로 탈바꿈 시키면서 새로운 종 ‘호모 미세라빌리스(궁핍한 인간)’를 탄생시킨다. 낙원으로 가는 비밀통로라고 여겼던 ‘기술’은 자연이 이룩해 놓은 것을 약탈하고 자연에, 제3세계에, 미래 세대에게 비용을 떠넘긴다. 이제 미래는 희망이 아니라 궁핍으로, 공포의 저장소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필자들이 이 글을 쓴 것이 내게 협박을 하거나 절망의 나락으로 집어던질 의도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던 모든 어휘들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다 보니 만약 내가 생의 역사를 써야한다면 그건 ‘교정의 역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쉽지 않은 내용에 분량이 주는 압박감으로 거의 탈진 상태다. 나는 ‘사전’을 이런 식으로 읽어본 적이 없다. ‘사전’에 대한 개념정의도 다시 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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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2-2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분량이 주는 압박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단순히 '분량'의 문제가 아니더군요. (처음에는 하루에 3개장만 읽자..생각했는데, 1개장 읽기도 꽤나 시간이 걸리더군요.) 내용이 진중하고, 680여쪽이라는 페이지보다는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잘 정리하신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반딧불이 2011-02-25 23:38   좋아요 0 | URL
읽고 정리하시느라 애 많이 쓰셨지요? 함께 소감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쁘네요. 좀 고단했지만 다음에는 어떤 책이 선정될지 리뷰 올리자마자 금방 또 궁금해지는 마음, 맥거핀님도 다르지 않으실것 같아요.

비로그인 2011-02-26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탈진 상태에 이르면서까지 읽고 써내신 글을 너무 쉽게 읽는 건 아닌가 싶어 부끄러워지네요. 잘 보았습니다. 주말엔 좀 푹 쉬시죠. 건강에도 유의하셔야죠^^

반딧불이 2011-02-26 01:30   좋아요 0 | URL
주말에 부산으로 강진으로의 일정이 잡혀있어서 미루어두었던 일을 한꺼번에 하느라 그래요.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지말자..뭐 이런 심보로 살다보니 이렇게 헐떠덕거리네요.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yrus 2011-02-28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사전이라는 타이틀과 어마어마한 분량 때문에 겁 먹었지만 차근차근히
읽게 되니깐 내용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은거 같았어요,, 뭐 몇몇 챕터의
내용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요,,^^;; 그래도 그동안 긍정적인 면만
바라보고 있었던 발전, 개발, 진보, 과학 등 주제의 또 다른 이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거 같아요.

반딧불이 2011-02-28 09:57   좋아요 0 | URL
서평단 도서로 저희가 공부를 참 많이 하지요? 시간적인 압박만 없다면 정말 금상첨화인데 말이에요. 한편 생각하면 날짜가 정해져 있으니까 읽지 그렇지 않으면 읽지도 않을것 같긴해요.

굿바이 2011-03-02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교정의 역사]라는 표현에서 잠시 쓰러졌습니다 :)
저도 책을 읽으면서, 제 머리속의 온갖 조잡함 개념들을 몽땅 교정하고 싶었거든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반딧불이 2011-03-02 11:31   좋아요 0 | URL
이미 교정하신것 같은데요. ㅋㅋ 늘 굿바이님의 재미있는 글, 다시 생각하게 리뷰 늘 잘 읽고 있습니다.

choi pranchesca 2011-04-09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상호 공감대를 형성 지금 병들어있는 인간의 내면적요소를 제거하는것이 지속발전틀이 되는것입 반자본에잇는사상을 읽으면 왜 인간이 살아야 하는가 발전론에 힘입어 살아가는 신자유주의 이념을 버리고 새로운 돌풍을 만들어야합니다
 
평전이란 무엇인가
<리영희평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리영희 평전을 읽는 것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읽는 것에 다름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한 나라의 운명이 개인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리영희 선생에게는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군부체제를 거쳐 소위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가 그가 거친 체제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아홉 번 연행당하고, 다섯 번 구치소에 가고, 세 번 재판을 받아 총 1012일의 감옥생활을 하고, 언론계에서 두 번 퇴직당하고, 교수직에서 두 번 해직 당’했다.

감옥살이를 하거나 퇴직, 해직을 당한 이유는 대부분 그가 쓴 글 때문이었고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읽은 그의 책 때문이었다. 전 노무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된 ‘부림사건’에도 리영희의 책이 들어있었다. 전두환 세력이 저항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학생운동을 정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엮어 넣은 부림사건은 ‘사건’ 없는 ‘사건’으로 알려져 있는데, 연루된 사람들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롯해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은 것이 문제된 것이다. 이외에도 『분단을 넘어서』, 『베트남 전쟁』『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등 지배자의 논리로 보았을 때 ‘의식화의 원흉’으로 불릴 만한 많은 저작과 편역서가 있다. 그가 과연 '의식화의 원흉'이었는지, '사상의 은사'였는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시대를 꿰뚫어보는 그의 이런 저작들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는 ‘노다지’라는 말이 생겨난 운산광산이 있는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났다. 노다지는 no touch에서 유래된 말이다. 다섯 살 때부터는 삭주군에서 자라게 되는데 그는 이미 유치원 때 한글과 일본어 기초를 다 깨쳤다고 한다. 서울로 유학해 경성공립학교, 해양대학을 나와 유엔군 연락장교로 군에 입대한다. 그는 통역장교로 전쟁이 끝난 후까지 7년 동안 군에 근무한다. ‘혐오스러운 국군 복무의 한 가지 선물’로 받은 영어실력으로 제대 후 그는 합동통신의 외신부기자를 시작으로 언론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기자라는 직업은 특히 정치부나 외신부 기자들은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시대였다. 하지만 그는 결혼 후 40년이 되어서야 온수가 나오는 집으로 처음 이사를 할만큼 궁핍했고 고정적으로 두 개 이상의 부업을 하면서 그 생활을 감내했다. 국군연합참모부의 ‘일일국제정세 분석보고’도 그 부업 중의 하나였다. 그러니까 리영희는 한글, 일본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실력에다가 세계정세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부업과 외신부기자를 겸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3·15 부정선거, 4· 19혁명, 5·16 쿠데타 등을 겪으면서 워싱턴포스터지, 뉴리퍼블릭지 등에 원고를 기고하여 한국의 실정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기자로 재직하는 동안 그는 특종 ‘사고’ 메이커였다. 또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알리고 참상을 고발하는가 하면 주한 미국감축에 관한 글, 중국 근대화 100년사 탐구, 친일 군상과 일본교과서 왜곡의 본질 등에 관해 정연한 논리를 폈다. 그런가 하면 한겨레신문을 창간하고 극우, 반공세력이 자신들의 영구집권을 위해 부당하게 과장하여 공포와 불안을 조성하자 그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라는 시론을 발표했다. 정리해보면 폭력과 권력에 맞서 그가 무기로 들고 있었던 것은 오직 붓 하나였던 셈이다.  

   
 

나의 글 쓰는 정신이랄까, 마음가짐이랄까 하는 것은 바로 루쉰의 그것이에요. 글 쓰는 기법, 문장의 아름다움, 속에서 타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때로는 정공법으로, 때로는 비유·은유·풍자· 해학·익살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세련된 문장작법을 그에게서 많이 배웠지요.

 
   

 루쉰을 글쓰기의 은사로 삼았다는 그의 생활신조는 Simple Life, High Thinking이다. 자신의 신념과 어긋남이 없이 일생을 살았다는 것을 이 평전은 말해주고 있다. 고은 시인은 리영희 선생의 회갑 기념 문집에

사상의 은사
시대의 선구자
60년대 70년대 80년대 대표적 지성
아 이 한반도의 살아있는 정신

얼음
우리들의 전위와 후방

이라고 썼다. 나는 고은 시인 특유의 오버 액션이 못마땅한 사람 중의 하나다. 때문에 이 평전을 읽지 않았다면 저 말도 오버라고 치부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이런 기우와는 달리 시인은 리영희 선생의 삶을 꿰뚫고 있었다. 

600여 쪽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글은 의외로 잘 읽혔다. 평전을 쓴 작가의 글보다 리영희 선생의 저작을 인용한 글의 부피가 더 많았기 때문이었을까? 작가가 리영희 선생의 평전을 쓰는 것이 아니라 리영희 선생이 작가를 끌고 가고 있는 느낌이 들정도로 인용이 많다. 어려운 이론에 기대지 않고 철저하게 현실에 바탕을 둔 논리적인 글쓰기 때문이었을까?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으면서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영희 선생의 다른 저작들도 찾아 읽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시 하게 된다.




사족 : 오탈자.

* 374쪽 : 리영희가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한국 정치 즉 정권 담당자를 저들의 이익에 맡은 자(맞는 자)를 ‘간택’했다는 데 있었다.

* 417쪽 : 그 사이에 한국에서는 정태기, 임재경, 임병주(이병주) 등이 해직기자들을....

* 422쪽 : 그 군대가 광주에서 감행한 학살과 여러 해를 듣고(두고) 자행한 수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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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1-02-24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그렇담 저는 이 책부터 읽어야겠어요!! 도서관에서 찾아봐야지,,어제 도서관 책 반납하는 날인데 아직도 반납하지 않고 있으면서,,^^;;
암튼 이 책을 먼저 찾아 읽고서 집에 있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어야지,,(꿈은 야무지다는,,^^;;)

반딧불이 2011-02-25 01:23   좋아요 0 | URL
좀 두껍기는 하지만 부담없이 읽으실 수 있으실거에요.
인용된 리영희선생의 글이 많아서 맛보기로도 충분하실거구요.

비로그인 2011-02-25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1학년 때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을 읽지 않았다고 선배에게 혼이 났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에는 필독서였더랬죠. 가방에 항상 넣어다니면서도 오랫동안 읽지 않고 버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모두들 그 이름을 들먹이는 탓에 잔뜩 주눅이 들었던 모양이에요. 반딧불이님 리뷰를 읽으니 그때 생각이 문득 나는군요^^

반딧불이 2011-02-25 01:22   좋아요 0 | URL
저희집에서도 아버지가 보자기에 싸서 지붕위 물탱크속에 매달아 놓았던 책이기도 해요. 짭새들이 늘 들락거려서요. 물론 저도 금서중의 하나였던 <꽃파는 처녀>를 몰래 읽었다가 혼찌검이 났었구요. 책읽으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cyrus 2011-02-28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리영희 선생의 인용문 덕분에 처음 접하는 선생의 사상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어나갔어요. 선생의 빈틈없는 논리성의 글이 아닌 평전을 통해서나마 외부적으로 선생의 사상을 접한 것도 있었지만 덕분에 충분히 선생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위의 반딧불이님의 답글을 보면서 궁금한거 생겼는데요,, <꽃파는 처녀>가 무슨
내용이길래 금서로 지정되었나요? 저는 처음 들어보는 책이네요.. 이런 것도 세대
차이인가 봅니다. ^^;;

반딧불이 2011-02-28 02:11   좋아요 0 | URL
ㅎㅎ 정말 세대차이 나네요. 저건 북한의 혁명가극을 책으로 만든거에요. 소설이 먼저인지 가극이 먼저인지 까지는 모르겠어요. 물론 저는 읽을 당시에는 그게 가극인지 뭔지도 모르고 읽었는데 슬픈 내용이었고, 왜 이런책이 금서가 되나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었어요. 아마 요즈음은 그냥 읽을 수 있지않을까요? 오래 잊고 지내서 아는 게 없네요.
 
완역 이옥전집 3 : 벌레들의 괴롭힘에 대하여 완역 이옥 전집 3
이옥 지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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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 전집 3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앞부분은 <백운필>, 뒷부분은 <연경>이라 이름 지었다. <백운필>은 그가 충군에서 해배된 이후 경기도 남양에서 탈고 했다고 한다. <백운필>은 새, 물고기, 짐승, 벌레, 꽃, 곡식, 과일, 채소. 나무, 풀 등에 관한 글이고 <연경>은 담배에 관한 글이다. <백운필>은 거의 박물지라 할만하다. 이옥은 서문에 해당하는 소서(小敍)에 이 글을 어쩔 수 없이 썼다고 밝혀두었다.

그가 있던 백운은 궁벽한 곳으로 사람도 없고 딱히 할 일도 없고 별로 즐기지도 않은 모양이지만 심심풀이 삼을 놀이기구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손으로 혀를 대신하여 이글을 적었는데 또 무엇을 적을 것인가를 두고 깊이 생각한 듯하다.

하늘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사람들이 천문을 공부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천문을 공부하는 자는 재앙을 입게 마련이라 그것을 할 수 없고,  땅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지리를 아는 자는 남에게 부림을 당하니 그도 할 수 없고 사람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남에 대해 얘기를 하자니 남들 역시 자기 얘기를 할 듯하고 문장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만 문장을 우리가 추켜올리거나 폄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또한 얘기할 수 없다. 귀신 이야기도 조정의 이야기도 석가나 노자 얘기도 할 수가 없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또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그가 택한 것이 짐승, 물고기, 꽃, 곡식, 과일 등이다.

동식물의 생태를 면밀히 관찰하여 그것을 인간사에 빗대어 사람을 관찰하는 표본으로 삼았다. 생물도감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여기에 이옥의 생각이 적확한 언어로 더해지니 스스로를 경금자라 칭했던 그의 뜻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오뉴월의 벌레들>이라는 글은 오뉴월 무덥고 후덥지근한 방 안으로, 몸으로 달려드는 벌레들을 살피다 적은 것이다. 천지에 생명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모두 벌레이고 그 중의 대표가 사람이라, 이 사람의 면면을 뭇 곤충과 비교했다.

작은 산 무성한 계수나무 숲속에 깃들어 만승의 천자에 대해서도 오만하고, 청색 자색의 인끈을 지닌 공경을 업신여겨 돌아보려고 하지 않으며 스스로 그 한 몸을 깨끗이 하는 자를 달관의 안목으로 보면 곧 일개 반딧불이다.


고관대작의 집에 잔약한 객이 실세한 자를 등지고 권세 있는 자를 쫓아, 이익이 있는 곳을 백방으로 뚫으려 시도하여 달콤한 것을 핥고 빨기를 혹 남에게 뒤질까 저어하는 자를 달관의 안목으로 보면 곧 일개 파리이다.


감사와 수령처럼 뿔 나팔을 불고 아기(깃발)를 뽐내며 남의 뼈를 깎고 피를 약탈하여 그 백성을 파리하게 하고 제 배를 불리는 자를 달관의 안목으로 보면 곧 일개 모기이다.

이옥의 관찰에 의하면 이백년 전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글 곳곳에 보이는데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그의 생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글쓰기 형식이다. 상추쌈에 관한 글에서는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이고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생생한 묘사, 밤길에 만난 반디와 모기가 상대방의 흠을 잡아 서로를 공격하는데 사용한 인용과 대화체 형식. 들은 이야기를 실감나게 옮겨 적는 방법 등 참고할 것이 참으로 많다.

‘담배의 경전’이라는 뜻을 가진 <연경>에는 그의 벽이 잘 나타나 있다. 담배 재배방법에서부터 유래와 성질, 담배의 쓰임, 담배 피울 때 쓰는 도구, 맛있게 피우는 방법, 귀격, 복격, 묘격, 염격, 진격 등 담배의 품격까지 다루었다. 그가 적어놓은 담배 피우기 좋을 때를 보면 ‘달빛 아래에서 좋고, 눈 속에서 좋고, 빗속에서 좋고, 꽃 아래에서 좋고, 물가에서 좋고, 누각 위에서 좋고, 길가는 중에 좋고, 배 안에서 좋고, 배갯 머리에서 좋고, 변소에서 좋고, 홀로 앉아 있을 때 좋고, 벗을 마주 대할 때 좋고, 책을 볼 대 좋고, 바둑을 둘 때 좋고, 붓을 잡았을 때 좋고, 차를 달일 때 좋다.’ 담배가 맛있을 때를 보면 또 이와는 다른 많은 상황들이 전개되는데 참으로 담배를 맛나게 피웠을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내가 담배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공동경비구역>이라는 영화에서 송강호가 담배피우는 모습을 보고 난 후였다. 바람 부는 벌판에서 그가 피우는 담배가 어찌나 맛있어보이던지....... 내가 그려보는 이옥의 모습은 송강호와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다. 그러나 담배 피우는 모습만큼은 닮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왠지 그들과 함께 있으면 담배를 아주 맛있게 피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옥전집을 아껴가며 읽었다. 마무리를 지었다는 편안함보다 아쉬움이 남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전작을 읽으면서 이런 아쉬움이 싫어서 마지막 <명암>에 관한 리뷰만은 쓰지 않았다.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아쉬움으로 늘 소세키를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읽을 책이 넘쳐나므로 다시 보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옥의 책을 다시보기 위해 마무리를 지었다. 지난 2010년에 만난 책들 중에서 가장 아끼고 오래 마음줄 수 있는 책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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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10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를 맛있게 피운다'는 표현 오랜만에 듣네요.
요즘은 담배가 맛있다는 말은... 영 눈치가 보여서요 ㅋㅋ
눈 올 때나 비 올 때 혹은 안개가 자욱이 꼈을 때, 습도가 높아서 그런가 이럴 때 담배 맛이 좀 깊게 느껴지긴 하지만... 썩 권장할 일은 아니라서, 이쯤 해둬야겠네요ㅋㅋ^^

반딧불이 2011-02-10 11:52   좋아요 0 | URL
담배가 요즘처럼 이렇게 발붙일 곳이 없을정도로 밀려날 일은 아닌듯해요. 술집이 있듯이 담배집이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습도가 높은 날 담배맛을 음미해봐야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2-11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여라도 남편이 볼까 무서운 리뷰와 후와님의 댓글이에요.
글에서 맛이 느껴지기도 하는 걸 보면, 저도 조심해야 하는 건가요~?^^

반딧불이 2011-02-11 22:56   좋아요 0 | URL
ㅋㅋ 담배가 문제군요. 담배맛도 글맛도 앞으로 조심해야겠는걸요.

blanca 2011-02-14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이 리뷰 왜이리 맛나요? 담배 관련해서 저는 거기에 커피를 넣어 봤어요. 나쓰메 소세키의 <명암>이 그렇게 좋으셨어요? 리뷰를 조르면 반딧불이님의 그 아끼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걸까요?^^;;

반딧불이 2011-02-14 14:48   좋아요 0 | URL
명암이 좋았다기보다는 소세키가 좋았다고 봐야죠. 마지막 작품이 명암이었는데 마무리를 짓고나면 다시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남겨두었다는거죠. 매듭을 지어야 또 다른 인연이 올테니까..써야겠죠?

이렇게 흐린날은 뜸을 좀 오래 들여서 쓴 커피를 마셔요. 입안에 남는 쓴맛이 시간이 지나면서 고소한 맛으로 바뀌어 한결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넙치 2011-02-17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구마구 읽고 싶게 리뷰를 쓰셨쎄요.2권 건너뛰고 3권부터 읽어야겠어요.^^;

반딧불이 2011-02-17 11:18   좋아요 0 | URL
넙치님!! 어쩌죠.. 저는 2권이 훨씬 좋았는데요~
 
史記本紀 까치동양학 22
사마천 지음 / 까치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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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본기


본기 12권은 제왕의 기록이다. 말 그대로라면 총 12명의 제왕이 등장하는 셈이다.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의 우임금까지에는 완벽한 인간형이 등장한다. 권력다툼이 없고 적도 사랑으로 끌어안으며 임금은 세습되지 않았다. 가장 재미있는 인물은 순임금이다. 순에게는 고수라는 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는 맹인이다. 후처가 낳은 아들을 편애해서 항상 순을 죽일 궁리만 한다. 창고에 올라가 벽을 바르게 하고는 아래서 불을 지르고 우물을 파게 시키고는 흙을 퍼부어 구멍을 막아버린다. 지붕에서 순은 삿갓을 낙하산처럼 사용하여 목숨을 지키고 우물을 팔 때는 몰래 파놓은 다른 길로 도망쳐 나온다. 이렇게 당하고도 복수는커녕 화를 내지도 않는다.

주본기에서 부터 무모한 왕들이 등장하며 악의 축을 이룬다. 익히 알고 있는 진시황제와 여태후가 가장 악랄한 왕은 아니었을까. 죽는다는 말을 가장 싫어했던 진시황제는 그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실제 인물의 크기로 만든 인형들을 줄 세웠고 자동으로 발사되는 화살, 수은이 흐르는 강, 도롱뇽의 기름으로 양초를 만들어 오랫동안 꺼지지 않도록 한 등불 등을 설치하여 일반인들의 근접을 막았다. 그는 자신의 업적을 찬양하는 비를 세우며 온 나라를 순시했는데 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그의 신하였던 이사는 황제가 외지에서 서거하자 그 사실을 비밀로 하고 상을 치르지 않았다. 여름날 시체를 옮기니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을 터 시황제의 아들 호해와 이사, 조고 등은 시체를 소금에 절이인다. 그리고 절여말리 고기를 함께 수레에 실어 어물냄새와 시신 썩는 냄새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했다. 중국을 통일하고 호령하던 황제의 종말이다.

여태후는 유방의 아내였다. 유방은 항우와의 싸움에서 갖은 수를 다 써서 이긴다. 한나라의 고조가 된 유방은 본색을 드러내 주색을 즐기게 된다. 그는 여태후를 제쳐놓고 척부인과 그의 아들을 총애했다. 유방 사후 여태후는 이 척부인의 눈을 뽑고 귀를 잘라 불태우고 사지를 절단하여 몸둥이만 남은 것을 돼지우리에 넣어 인간돼지라 부른다. 저 많은 신체형을 가하면서 한가지 씩 형벌을 가할 때마다 죽지 않도록 치료를 병행 했다한다. 도대체 여태후는 이런 행동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사마천은 여태후 본기 뒤에 태사공의 이름으로 ‘고후가 여성으로서 황제의 직권을 대행하여 모든 정치가 방 안에서 이루어졌지만 천하가 태평하고 안락했다. 형벌을 가하는 일도 드물었으며 죄인도 드물었다. 백성들이 농삿일에 힘을 쓰니 의식은 나날이 풍족해졌다.’고 덧붙여 두었다. 여태후는 척부인 한 사람을 본보기로 삼아 나라의 평정을 유지했다는 말인가?

본기의 클라이맥스라 할 부분은 책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항우본기이다. 항우가 등장하는 시간은 5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내게는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갓 서른 정도였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항우와 유방의 인물비교에서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넘어가기로 하자. 항우가 스스로를 서초패왕이라 불렀지만 그 당시 초나라는 남초, 북초, 동초, 서초 등의 구분이 있었으니 초나라를 제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마천은 항우를 본기에 그것도 가장 한 가운데에 스펙터클한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항우본기에는 사실 항우에 관한 이야기보다 유방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다.

한고조 이후의 여태후본기, 효문본기, 효경본기, 효무본기는 모두 한(漢 )나라 제왕의 기록이다. 본기의 대부분을 漢代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사마천은 어떤 의도로 이렇게 漢代의 비중을 많이 둔 것일까? 본기와 세가, 열전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며 읽다보니 손이 바쁘고 진도가 안 나간다. 하지만 본기나 세가를 따로따로 읽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재미가 배가 된다. 제1참고서로 필수였던 고우영의 <십팔사략>은 잠시 접어두었다. 십팔사략없이 책을 읽으면서 고우영의 가치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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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2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치에서 나온 <사기본기>도 읽어보면 좋을거 같아요. 사실 저는 <사기본기>가
민음사 김원중 교수 번역본만 나온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반딧불이님은 요즘에는
<사기본기>에 푹 빠지셨군요. 까치 <사기본기>는 권수가 많은걸로 알고 있는데
꼭 완독하시길 바라요 ^^ 저도 틈틈이 <사기열전>을 읽어봐야겠어요

반딧불이 2011-01-28 23:30   좋아요 0 | URL
민음사판이 너무 두껍고 무거워서 이것으로 선택했어요. 제가 본기가 12권이라써서 책이 12권이라는 것으로 이해하셨나보네요? 까치에서 나온 사기는 본기가 한권, 세가가 2권으로 되어있어요. 책은 한권인데 그 안에 12명의 제왕을 다루어서 다들 권1, 권2..라고 부르더라구요. 참고하시라고....

파고세운닥나무 2011-01-29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원중 번역의 을유문화사판으로 읽었어요. 이 책은 절판됐는데, 같은 역자의 번역판이 민음사에서 새로 나왔더군요.
아무래도 사마천으로 하여금 '발분지서'를 짓게 만든 장본인이 한무제이니 근거리의 역사를 깊이 다루지 않았을까 하네요.

반딧불이 2011-01-29 13:51   좋아요 0 | URL
말씀듣고보니 너무 뻔한걸 궁금해했네요. 잠깐 사마천이 한나라 사람이라는걸 깜빡했어요~ 끙
 
<진보집권플랜>을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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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를 알게 된 건 아마도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은지 오래 되어서 별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의 수려한 외모에 시선을 빼앗기며 대체 누군고 하는 의문이 생겼던 듯하다. 그러나 궁금증은 텔레비전을 끄는 순간 사라졌다. 잘생긴 남자들이 있어봐야 다 화중지병이니 크게 마음 쓰지도 않았다. 책을 읽는데 자꾸만 그의 얼굴이 나온다. 그의 외모보다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싶은데 말이다. 조국 교수의 얼굴은 크게 클로즈업되어 있는데 오연호 기자는 등을 보여주거나 옆모습이고 상대적으로 크기도 작다. 이런 의도적인 사진배치가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내게는 좀 거슬린다. 이건 왜일까?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에 사는 사람은 그 누구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 애교 있는 정치행위(?)로 보여서일까?

에둘러가지 말자. 요즈음 이 책에 대한 얘기가 지나치게 많다. 트위터에 조국 교수를 팔로우 해놓은 탓일까? 이 책에 대한 반응과 그 반응에 대한 저자의 반응까지 한꺼번에 보기 때문일까? 연이어 나오는 그의 다른 책들 때문일까?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 때문일까? 그 이유야 어떠하든 폭설과 맹추위가 우리의 생활에 깊이 관여하듯이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정치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이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그 까닭은 4대강 사업, 삼성문제, 서울대 폐지, 반값등록금, 무상의료, 무상급식, 통일, 괴물 검찰, 출산파업 등 사회곳곳의 문제들을 책 한권으로 거칠게나마 훑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목인 ‘진보집권플랜’이 모든 것을 얘기해주고 있지만 이 책은 차기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집권하기 위해 공약으로 내세워야할 그리고 실천해야할 사항들이 각 분야별로 다루어지고 있다. 저런 공약들, 플랜들 다 환영한다. 어쨌든 졸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학자금융자를 받았고 빚쟁이가 되어버린 내겐 너무나 유혹적인 플랜들이다.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즉 정치전문가가 나누는 정치 이야기이니 정치에 관해 내가 덧붙이는건 뱀발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말만 하자.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그가 적절한 곳에 인용하고 있는 시인의 이름이었다. 윌리엄 블레이크, 로버트 프루스트 등의 외국 시인뿐만 아니라 이상, 정희성, 이원규 등 우리나라 시인들의 이름과 시가 인용되고 있었다. 사실 번역되어 나온 외국의 과학 서적이나 사회 정치서적을 보면서 내가 가장 부러웠던 부분이 이렇게 적재적소에 시가 인용되는 것이었다. 과학도들이 그들의 이론에 시를 인용하거나 문학적 표현까지 곁들이면 내게는 그들이 기계를 다루는 기계적 인간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꽤 괜찮은 학자로 보이기도 했다.

두 번째 눈에 띈 것은 그가 개념정리를 정확하게 하고 논의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좌파-우파는 빨갱이 콤플렉스를 활용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니까 그보다는 수구·보수 대 진보·개혁이라는 구분법을 사용했다. 법학자이기 때문인지 원래 성정이 그러한지 분명하고 깔끔해보였다. 그러나 이런 그가 ‘출산파업’이라는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아이를 낳는 일이 여성의 직업이 되었나? 그리고 또 언제부터 여성이 파업을 하게 되었나? 언론에 떠도는 말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고 해도, 좀 양보해서 인구감소의 심각성을 실감나게 표현한 말이라고 해도, 정치적 용어는 정확하게 정의하시는 분이 어째서 대한민국의 전 여성을 대리모로 몰아가나 싶었다.

또 삼성 P&A의 3교대근무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그것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해고를 하지 않고 너도 나도 윈윈 하자는 의도는 알겠다. 그러나 3교대를 하면 작업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정부분 급여도 줄어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급여가 조금 줄어들어도 이것을 감수하고 참여할 때 상생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면 굳이 이 내용을 말하지 않아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름대로 나는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얼마 전 읽엇던 마이클 샌델의 <왜 도덕인가?>가 자주 떠올렸다. 그는 정치철학자로 하버드대 교수다. 그는 보수와 진보의 정책들을, 과거와 현재의 정책들을 비교분석하고 있었다. 과거의 정책이 낳은 결과를 분석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보다 도덕적이기 위해서는 어때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그런 질문을 던짐으로써 다음세대를 짊어질 청년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셈이었다.

조국은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그는 정치인보다 학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겠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당장 내년에 치를 대선이나 총선에서 집권해야하는 진보의 집권플랜도 중요하겠지만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바람직한 시민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을 수립할 것인가 하는 거시적 안목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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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1-01-27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트위터에서 조국 교수를 팔로우하고 있지요.
아직은 이 분의 진가를 잘 알지 못하겠어요. 법학자로서 이 분이 쓴 책들을 우선 찾아볼 계획이랍니다.
서평 잘 봤습니다^^

반딧불이 2011-01-27 17:23   좋아요 0 | URL
저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에요. 책 한권 읽고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지요. 기회가 되는대로 저도 좀 관심가져보려구요.

blanca 2011-01-27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엄친아드라구요. 그런데 이런게 태생적 한계도 될 수 있다는 걸 본인이 알고 있다는 내용을 인터뷰에서 본 것 같아요. 가장 우파적일 수 있는 여건에서 진보를 택하고 표방하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했었어요. 이 책을 언젠가 꼭 읽어 봐야겠어요. 반딧불이님,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반딧불이 2011-01-28 11:49   좋아요 0 | URL
속이야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보기엔 부족한게 없으신 분 같아요. 블랑카님 말씀처럼 용기도 있어뵈구요.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제가 너무 완벽한 인간을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