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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ㅣ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읽다가 만난 문장이 있다. “소설가
김연수와 김중혁이 그의 고교 동창이다. 김연수가
도서관 타입이고 김중혁이 박물관 타입이라면 문태준은 마을회관 타입이다.” 문태준
시인에 관한 글에 나왔던 문장이다. 이
문장 외에도 소설가 김연수는 쓰기만 하면 상을 거머쥔다는 내용의 글이 있었는데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다. 이런
문장들을 접하고 김연수의 글을 하나도 읽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책꽂이를
뒤져보니 두 권의 책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청춘의
문장들』이다.
‘도서관
타입’이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책의
제목을 읽으면서 나는 교육의 혜택을 많이 누린 작가를 떠올렸다. 당연히 그런 작가가 젊은 시절에 만난 서구적이고 도회적인 문장들을 많이 접할 것으로 짐작했다. 장 그르니에, 까뮈, 움베르토 에코, 보르헤스 등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이
책에는 한시, 하이쿠
등이 내 생각을 배반하듯이 연두색 옷을 입고 문장 중간 중간에 흐릿하게 박혀 있었다. 잊고
있었던 이백, 두보, 이덕무, 바쇼
등을 오랜만에 만나는 기회였다. 물론
나머지 글들은 대략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군복무시절까지의 젊은 날에 관한 이야기가 메우고 있다. 처음
접하는 작가에 대한 친절한 안내 글이라고 해야 할까.
얽힌
매듭을 하나씩 풀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 소소한 매듭에 얽힌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 놓았다고 할 수 있겠다. 늦둥이로
태어났고 유난하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고,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으나 번역을 해보라는 어떤 시인의 권유로 성균관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일본만화
윤문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시인, 소설가, 대중음악
평론가 등의 이름이 따라 붙었다. 간추려 말하면 질풍노도,
우여곡절, 파란만장 같은 단어들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소설가의 청춘이 밋밋하리만큼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나는
그의 소설을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았지만 그는 대여섯 권의 소설을 쓴 유명한 소설가다. 소설가가
될 재목은 역시 다른 걸까? 그는
무던히도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청춘의
문장’이라
하니 그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한시와 친했던 것 같다. 나도
이백이니 두보니 하는 시인들을 교과서에서 접했지만 그들의 시를 따로 찾아본 기억이 없다. 단지
교과서에 실렸다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감동과
우수성을 강요당해야했기 때문이었을까? 엑기스처럼
뽑아놓은 그들의 시는 감동의 대상이 아니라 외우고 분석하고 기억 속에 저장해두어야 할 골칫거리에 더 가까웠다. 이덕무니
이옥이니 하는 조선조 사람들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된 듯하다.
한
조각 꽃이 져도 봄빛이 깎이거니
바람
불어 만 조각 흩어지니 시름 어이 견디리
스러지는
꽃잎 내 눈을 스치는 걸 바라보노라면
많이
상한 술이나마 머금는 일 마다하랴
두보의 곡강이수(曲江二首) 중 첫 번째
수다. 소설가 김연수의 청춘과
함께한 문장 중 하나다. 절대로 그럴 리 없지만 내가
청춘일 때 이런 문장들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한 잎 꽃이 지는 것에서
깎이는 봄빛을 읽을 수 있었을까? 만 조각 흩어지는 꽃잎을
보면서 좋은 시절 다 간다고 시름에 젖을 수 있었을까? 차마 견딜 수 없어 술에나
기대볼 줄 알았을까? 작가가 조숙한 건지 내가
지진아여서 인지 나는 황혼이 되어서야 이런 문장들을 겨우 느껴보게 된다. 적고보니 나는 소설가의
청춘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의 문장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소설가는 청춘과 문장 중 어디에다 무게중심을 두었을까? '청춘'과 '문장'사이에 모래알이 서걱이는 듯한 이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 아무렇거나 이 조숙했던 소설가의
작품에 신뢰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