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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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플루타르코스의 『비교열전』은 23쌍의 그리스 로마 영웅의 일생을 기술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이 책에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영웅 5명, 로마의 영웅 5명 총 10명의 모습을 실었다. 플루타르코스가 알렉산드로스 전에서 밝혀 두었듯이 그가 쓰려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전기이다. 때문에 수천 명이 전사한 전투나 전쟁장비 같은 이야기보다 한 인물의 우연한 발언이나 농담 같은 사소한 일들에 더 비중을 두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영웅’이라 불리는 ‘인간’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영웅’에 대한 현대의 사전적 의미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지혜와 재능과 용맹이 영웅의 세 가지 조건처럼 여겨진다. 이것은 플루타르코스가 다룬 그리스 로마의 영웅 열 명 모두에게서 찾아 볼 수 있었다. 때로는 지혜가 때로는 재능이 또 때로는 용맹이 돋보이기는 했지만 어느 한 사람도 그것이 결여되어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영웅의 현대적 의미를 기원전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해도 될지는 의문이다. 키케로는 그의 책에서 지혜, 정의, 용기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우리가 소위 '영웅'이라 칭하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더 부각되는 모습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영웅의 조건을 ‘탁월함’이라 부른다. ‘탁월함’은 완벽함과는 구별되어야 하며 미덕 혹은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하면서도 빼어난 자질이라 하는 편이 더 가깝겠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탁월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탁월함은 평상시에 잘 연마했다가 필요한 때에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두장이에게는 구두장이만의 탁월함이 있고 달리기 선수에게는 그만의 탁월함이 있는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러한 탁월함을 그리스인에게서는 의사와 키잡이에 비유하고 로마인에게서는 운동선수에 비유하여 그리고 있다.

그리스의 영웅 다섯 명 중에서 나는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매력 있게 느껴졌고 로마의 영웅들 중에서는 안토니우스였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참으로 멋지게 그려졌던 솔론이 이 영웅전에서는 빛을 잃었다. 대신 뤼쿠르고스가 돋보였다. 그는 왕들에 의한 참주제와 원로들에 의한 과두제, 백성에 의한 민주제 등을 혼합한 혼합정체를 만들었다. 토지를 재분배하고 부에 대한 욕망을 근절하기 위해 공동식사제도를 도입했다. 그가 돈에 대한 가치를 평가절하하기 위해 철제 돈만을 사용하게 한 것은 웃음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는 또 법을 성문화하지 않았다. ‘성문법이란 거미줄과 같은 것이어서 약하고 작은 것이 걸려들면 붙잡을 수 있어도 힘 있고 돈 있는 자가 걸려들면 갈기갈기 찢어진다.’고 한 아나카르시스의 말이 그 이유인 듯싶다. 그리스의 영웅들에게서는 참으로 많은 제도와 정책들이 만들어진다. 어떤 사람의 권세가 압도적이어서 민주주의의 평등과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지면 그들은 10년 동안 도편추방하여 그의 명성과 권위를 훼손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처벌의 수단이 아니었다. 오히려 탁월한 자들을 비하하기 좋아하고 그렇게 특권을 박탈하고 한풀이를 함으로써 시민들의 시기심을 달래게 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레오니다스 등을 스승으로 삼았던 알렉산드로스는 빼어난 외모와 자기 절제, 섬세한 심성 등이 돋보였다. 고열에 시달리다가 갈증이 나서 포도주를 마시고는 정신착란에 빠져 헛소리를 하다 죽었다고도 하고 또 독살설도 있는데 그 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알 수도 없고 어떻게 죽었는지가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그의 죽음이 아까운 것만은 사실이다.

로마의 영웅 다섯 명 즉 마르쿠스 카토, 티베리우스 그락쿠스, 가이유스 크라쿠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에게서 탁월함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이미 플루타르코스의 검증을 거쳤으니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여전히 커다란 울림으로 남아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든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같은 수많은 명언들을 남기고 삼두동맹, 갈리아전쟁, 역법개혁 등 서양사에 큰 영향력을 끼쳤지만 끝내 암살당하고 만 카이사르가 아니다.  

그런가 하면 역자로부터 ‘탁월한 자질과 유리한 조건을 살리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다가 무비유환의 삶을 살다 간 반면교사’라는 소리를 듣지만 제2차 삼두정치를 성립했고 동방원정을 했던 안토니우스도 아니다. 그것은 이런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정복한 클레오파트라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가 드넓은 영토를 정복했다면 클레오파트라는 두 정복 왕을 정복한 셈이다. 과연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 플루타르코스가 기술한  그리스 로마 영웅 23쌍 중에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여성의 이름은 없는 듯하다. 영웅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당시에 여성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최소 9개 국어를 구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플푸타르코스에 의하면 그녀는 자신의 혀를 여러줄의 현악기처럼 다루었다고 한다. 그녀는 또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기 위해 엄격한 식이요법으로 체중을 줄이기도 하고 안토니우스가 다가오면 황홀하다는 듯 쳐다보고 떠나가면 괴로워 기절할 것 같은 모습을 지어보였다고 한다. 그녀는 미모뿐만 아니라 매력과 자기 절제, 정치적 술수까지 모조리 갖추었던 듯하다. 옥타비아누스의 개선행렬을 장식하는 전리품으로 사용될 수 없어 자신의 죽음마저도 아름답게 치장할 줄 알았던 여자. 순간의 기지는 말할 것도 없고 교활함까지도 사랑스러운 이런 여자를 어떻게 남자로서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내가 그리스 로마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한탄했다. 이 매력적인 영웅들을 유혹하느라 일생을 탕진하더라도 아깝지 않을 듯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를 읽고 당시에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같다. 카이사르가 신념과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면 안토니우스는 흥분과 격정이 꿈틀거리는 감정의 원초적 공간으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카이사르가 위험을 무릅쓰고 권력과 통치를 추구 했다면 안토니우스는 사랑을 좇았다. 카이사르가 공적인 제도 수립 등에 힘썼다면 안토니우스는 ‘모방 수 없는 생활인의 동아리’, ‘죽음을 함께 하기로 한 동아리’같은 사적인 놀이도 즐겼다. 카이사르가 생김새와는 다르게 지도자의 면모로 묵직한 모습이라면 안토니우스는 스스로를 조롱거리로 만들어 즐기기까지 하는 경박하지만 귀여운 모습을 지녔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은 죽음이다. 카이사르의 권력에 대한 지나친 야심은 암살을 부르고 안토니우스의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집착은 자살을 소환한다. 카이사르는 예기치 않은 죽음이 가장 훌륭한 죽음이라고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죽었다. 안토니우스는 자신이 누렸던 온갖 행운을 생각하며 세상에서 최고의 명성과 권력을 누리다가 죽는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플루타르코스의 말대로 운명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가치있게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던 당시의 사람들을 지금의 우리와 비교해보게 된다.  

플루타르코스가 인물들을 그려낼 때 단지 영웅적인 모습만을 그리는 것은. 비교열전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들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탁월함과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는 결점까지 모두 보여준다. 영웅들이 남긴 수많은 명언들과 플루타르코스의 수사학이 빚어내는 이 책은 말의 향연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플루타르코스의 화려한 문장이 페르시안 카펫처럼 펼쳐진다. 당시의 시민들이 글을 몰랐기 때문에 정치가들에게 웅변술은 생명이었을 것이므로 끊임없이 웅변술을 갈고 닦았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이 플루타르코스의 수사학인지 당시 그리스 로마인들의 수사학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 영웅들의 웅변은 다분히 철학적이고 도덕 교과서 같은 반면 로마의 영웅들에게서는 민중의 영향력이 보이고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그리스인들이 신탁에 의존하며 신을 숭배했다면, 로마인들은 실존인물들을 신격화하며 그들을 숭배했다. 각각의 인물들을 살피노라면 물질문명은 극한까지 발달했지만 인간의 본성은 병아리 눈물만큼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족, 3월 15일이 알렉산드로스인지 안토니우스인지가 헷갈리지만 둘중의 한사람이 죽은 날이었던 것같은데... 어디서 봤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저주받은 기억력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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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치 2011-03-15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레오파트라는 모든 일에 올인하는 스타일이었나봐요.ㅎㅎ;;
읽고 싶게 리뷰를 쓰셨어요.^^

반딧불이 2011-03-15 13:17   좋아요 0 | URL
네..그런것 같죠? 참으로 열정적이었던 여자 같아요. 정복왕을 정복하려면 저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참에 클레오파트라에게서 좋은 것 뿐만 아니라 나쁜 것까지도 다 배우려구요.~

맥거핀 2011-03-15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웅의 신화가 사라져버린 우리들의 세계에 영웅전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향수만은 아니겠지요. 왜곡된 영웅화나 영웅화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만이 남아있는 이 시대에 영웅전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케해보는 글입니다.
그러나저러나 옛날 분들 글 참 잘써요. 글쓰기에 어찌 그렇게 힘이 있는지..

반딧불이 2011-03-16 11:04   좋아요 0 | URL
'비교열전'이 '영웅전'이라는 제목으로 둔갑한 걸 보면 우리나라의 출판성향이랄까 하는 것도 읽혀지는 것 같아요. 당시 사람들은 '도편추방'이라는 제도를 통해 개인이 영웅화되는 걸 경계했으니까 말이에요. 굳이 영웅이라는 말을 사용해야한다면 당시 사람들의 영웅은 자기절제에서 영웅이었다고 봐야할 것 같았어요. 현대인들에게 특히 정치가들에게 강력하게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훌륭한 문장때문에 저는 이 책을 거의 글쓰기와 상상력의 독본으로 읽은 셈이 되었어요.

감은빛 2011-03-2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심하게 축약된 책이었던 것 같구요.
클레오파트라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9개 국어를 구사했다니 대단하네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반딧불이 2011-03-25 13:40   좋아요 0 | URL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클레오파트라가 아름다웠던것 같지는 않지만 같은 여자인 제가 매료될만큼 매력덩어리였던 것 같아요. 저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를 준비해놓았답니다. 여러줄의 현악기같은 클레오파트라의 혀를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연주하는지 맛보려구요.

starover 2011-04-22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꼭 읽어봐야 할 이야기로서, 그의 영웅전이 찬사받는 이유는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모든 인간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저자는 '영웅들'을 통해서 드러냈기 때문이죠.

반딧불이 2011-04-22 21:1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이프리트님.
영웅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저는 이 세상을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아 부끄럽고 즐겁고...그랬습니다.

kampfwagen 2021-08-2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 15일에 사망한 인물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입니다.

반딧불이 2021-08-24 19:5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