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되었던 여행은 취소되었고, 대신 우리집으로 여행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캐나다로 이민간 아들의 친구, 4년만에 귀국한 조카들, 시골에서 손주들을 보시겠다고 올라오신 아버지 어머니. 그 어머니 아버지께 인사드린다고 시도때도 없이 드나드는 형제들. 드나들던 사람이 별로 없던 집안이 들썩들썩 하는 느낌이다.
정해진 끼니 때도 없이 내가 먹고 싶을 때가 식사시간이었던 내 습관은 여지 없이 깨지고 때맞춰 밥짓기가 여간 고되지 않다. 끼니를 챙기려니 어쩔 수 없이 반찬에도 신경을 써야하고 안하던 요리까지 하게 되었다. 밥먹고나면 과일도 먹어야지 차도 끓여야지.... 찬장에서 잠자던 그릇들이 오랜만에 햇빛 구경을 한다. 매실도 설탕에 절여지고, 양파김치, 마늘쫑 짱아찌, 오이지 등 한동안 멀어졌던 밑반찬들이 하나둘 항아리와 그릇을 차지하고 나앉았다.
내친감에 이불빨래도 했다. 이불 속 껍데기까지 모두 뜯어서 삶고 귀신이 씌였는지 풀까지 먹여 호청을 모두 새로 시쳤다. 골무끼고 이불호청을 시치고 앉아있으니 이것이 아마도 전생에 하던 일이지 싶을만큼 아득하다. 고실고실한 이불 위에 벌러덩 누워 고우영의 만화책 십팔사략도 보고, 그러다 한소끔씩 낮잠도 잤다. 책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쌓여있지만 불평 한마디 없다. 손 가는대로, 마음가는 대로 이책저책 꺼내보았다.
고우영의 만화책은 언제봐도 재미있다. 내게는 거의 역사교과서나 다름 없는 책이다. 음양이니 오행이니 하면 다리아래 자리 편 사람들이나 도사님들이 하는 얘기로 치부해버렸었다. 과학적 지식이 딸리는 어른들의 자기합리화라고도 여겼었다. 이랬던 것들을 책으로 읽으니 우주를 보는 새로운 접근 방법에 신선함도 느껴졌고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지만, 책을 덮고 나면 뜬구름 잡듯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다. <음양이 뭐지?> <오행은 뭘까?>는 우주를 바라보는 동양적 시각을 알기 쉽게 설명해놓았다. 그림이 많아서 얕잡아 보았지만 끝까지 얕잡아볼 수는 없는 책. <음양오행으로 가는 길>은 뒷부분이 어려웠다. 특히 앙관천문도와 부찰지리도를 간신히 이해했지만 거기에 지간이니, 절기니, 방위니, 팔괘니 하는 것들을 접목시킨 것을 이해하려 드는 것이 내게는 무모한 일로 여겨진다. 내가 이것을 내것으로 만들려고 드는 것은 음양오행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역행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다. 대충넘기고 동의보감으로 건너 뛰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의 값이 38000원인데 현재 정가가 68000원이다. 이 책을 번역하시던 선생님 중의 한 분이 '방중술'을 미끼로 나를 유혹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책이다. 200% 가까이 책값이 올랐으니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가보다. 중간중간 끄적이고 밑줄긋고 한 것을 보니 좀 들여다보긴 한 모양인데 마치 남의책을 훔쳐보는 것 같다. 음양 오행에관한 기초지식을 알고 보니 허준 선생이 하는 말들이 어떤 맥락에서 하는 얘기인지 감이 잡힌다.
그런데 이런 책들을 재미삼아, 간식먹듯이 대충대충 훓어보는 동안 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만 14개월동안 나와 동거하던 두드러기다. 언제부터인지 이것들이 안보인다. 마음같아서는 돼지 한마리 잡아 동네잔치라도 벌리고 싶지만 언제 또 나 여기 있소 할지 몰라 쉬쉬하며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책 안 읽고 글 안쓰니 두드러기가 사라졌다. 나는 '긁으면 긁을수록 드러나는/두드러기의 실체'를 보면서'긁어도 긁어도/ 다다르지 못하는 가려움의 실체'앞에서 '세계와 나 사이에 피부가 있다는 걸 알았'고 '삶이 나를 긁고 있'다고 썼었다. 그동안 내 몸에 피던 붉은 꽃들은 아무래도 책 알레르기였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가시같았던 몸에 살이 붙고, 메추리알을 후라이 해놓은 것 같았던 가슴도 계란보다 조금 더 커졌다.(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 이거 보시고 글샘님께서 모금운동하실까 염려된다.-이러다 나 외설녀로 알라딘에서 쫓겨나는건 아닐까...) 음양오행에 따르면 당연한 것이지만 이것이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어 마냥 궁금할 따름이다.